여백이를 완독한 내게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세 구절이 남았는데, 그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말을 곱씹는 것이 나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행복하다, 라고 되뇌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불행하다, 라고 되뇌면 그만큼 더 불행해지곤 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사랑한다, 같은 말에는 분명 큰 힘이 있다. 단순한 말 한마디라도, 그 말을 되뇌며 살면 그만큼 무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p.15)



아침 일찍부터 너를 놓아두고 외출해야 하는 날. 늦은 와중에도 너에게서 눈을 못 떼다가 아슬아슬한 시간이 되어서야 집을 나선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그래서들 가족을 만드는가. 여백이에게서 매일 배운다. 가르침 없이 가르칠 줄 아는 여백이. (p.61)



하루는 작업실의 오빠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인데, 그 우연에 질문을 던지게 되면, 그게 필연이 되는 거래."
오래전에 함성호 시인의 시집에서 읽었다는 짧은 글귀인데,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말을 믿는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사실 모든 일은 우연이다. 솔직히 운명이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정해진 인연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편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 연인을 만나는 것도, 가족으로 태어난 것도, 오래된 친구와 길에서 마주치는 것도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필연적이게도 우리가 함께구나'라고 믿는 것이다. 새로운 연인과의 시작을 좀더 설레게 하고, 가족의 일부가 되는 고양이와의 만남에 좀더 애정을 담을 수 있는 핑곗거리. 그래서 우리는 재미없고 불분명한 삶의 조각조각을 꿰어 인연의 실을 엮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끄럽고 반짝이는 금줄이 아니더라도, 바닷가의 조개껍데기를 모아 실로 묶은 목걸이를 선물 받는다면, 한순간만큼은 그 목걸이가 보석인 것처럼 아주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상상한다.
나의 고양이 여백이도 사실은 그냥 졸리고 추운데 털이 있기에 내 모자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신기하다고 호들갑을 떨며 나와 여백이의 인연을 예쁘게 묶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백이와의 특별한 첫 만남을 자랑하곤 한다.
우연의 무게는 다 똑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바람'을 담아 이유를 덧붙인다면 그것이 필연이 되고, 소중해지며, 강하고 찬란한 '인연'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p.83)

 

 

 

특히 마지막 글은 너무 좋아서, 한 번 필사하고 세 번 소리내어 읽었다.

이 책 '여백이'를 접한 것이 '우연'이었다면, 책을 읽어보자 대출해 온 것은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필연'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3년 전에 신간 도서 목록에서 보고 그냥 지나쳤던, 작가님의 에세이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를

독서 목록에 넣으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악어 인형과 함께 큰, 가르침 없이 가르칠 줄 아는 고양이 여백이와 작가님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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