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주인공은 안진진, 25세 미혼여성. 시장에서 내복을 팔고 있는 억척스런 어머니, 행방불명의 상태로 떠돌다 가끔씩 귀가하는 아버지, 조폭의 보스가 인생의 꿈인 남동생이 가족이다.
'안진진'이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처음에 부모가 합의하기는 진, 이라는 외자 이름이었는데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도중에 아버지의 마음이 변해서 즉흥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참 진(眞)자 같은 것은 한 번 쓰면 너무 무거우니 두 번으로 합시다, 하여 안진진이 되었다. 진진이라는 이름 앞에 '안'이 붙는다는 사실까지는 유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진은 생각했다.
소설은 그런 진진이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부르짖는 것으로 시작한다. 진진은 이성적인 남자 나영규와 감성적인 남자 김장우 사이에서 누구와 결혼할지 고민하는 동시에, 어머니와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인생행로는 사뭇 다른 이모와 엄마의 삶을 바라보며 모순투성이인 이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필력 덕분인지 가독성이 엄청나서 막힘없이 술술 읽었다.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더딘 나로서도 깨나 빨리 읽은 편이었는데, 작가 노트를 읽으며 깨달았다. 좀 더 천천히 읽을 걸.
누구라도 거저 얻은 것에는 애착이 덜한 법이다. 비싼 값을 주고 얻은 물건은 그 값만큼 알뜰살뜰하게 취급된다. 한 권의 책을 알뜰살뜰하게 읽는 법에 대해 궁리를 하다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메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p.301-302)
이 책을 손에 쥔 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사람에 비하면 며칠에 걸쳐 읽은 나는 느린 편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으로 빨리 읽은 편이었고, 천천히 읽지 못했다 해서 이 책을 거저 얻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책을 구매했던 2021년이 있었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보고 책장에 꽂아둔 책을 꺼내 읽은 2023년이 있다.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모순>을 그냥 누군가의 인생 책으로 여기고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책장에 꽂아둔 책을 꺼내 읽음으로써 안진진의 이야기는 내게 왔고 더불어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진모의 이야기와 이모와 이모부 그들의 딸 주리 그리고 나영규와 김장우의 이야기까지 내게 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매 쇄마다 표지의 색상이 변경된다는 점이 인상 깊다는 글을 썼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의 정보를 찾아보니 최근 양귀자 소설의 모든 저작권을 양도받은 도서출판 「쓰다」는 새로이 <모순>의 개정판을 내면서, 초판이 나온 지 벌써 15년이 흘렀지만 몇 번이고 재독하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오래도록 소장할 수 있는 책, 진정한 내 인생의 책으로 소유할 수 있는 책이 되고자 세련된 양장본으로 독자와 만나는 것이라고. <모순>을 완독 하고나니 출판사의 의도가 이해되었다. 20대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보다 나영규와 김장우의 이야기 쪽에 더 관심을 보였을까.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읽으면 감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다.
진진의 시점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라 그런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종종 떠올랐다. 2022년에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있었다면, 1998년에는 장편소설 <모순>이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간 이래 쇄를 거듭하며 책이 나왔으니 1998년에만 있지는 않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