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부터 9/14까지 프랑스를 돌아다녔다. 파리에서 절반, 엑상 프로방스에서 절반. 주로 미술관을 돌았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세잔.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느꼈다. 할 말이 너무 많으므로 가능한 말을 줄여야 한다.

프랑스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 대단히 활기차다. 사람들은 대단히 친절하다. 문화는 대단히 풍요롭다. 런던에서는 영국 사람들이 외국인들에 눌려 산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프랑스의 주인은 의심의 여지없이 프랑스 사람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대단히 열심히 일하며 또 일을 대단히 잘한다. (카페나 가게의 점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내 감탄했다)

세잔. 엑상 프로방스의 첫 아침 민박집을 나서는 순간 "아!"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형광색이 날 정도로 파란 하늘과 강한 햇빛 아래, 담벼락을 덮고 있는 초록 이파리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 바로 세잔의 붓터치 그대로였다. 나무의 형태들, 나뭇잎이 뭉쳐 있는 모습들, 해지기 직전의 나무들의 독특한 색감과 입체감...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내내 세잔의 풍경화 속을 걷는 듯 했다. 세잔의 비밀. 그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로컬 아티스트다.   

파리에서 이미 완전히 압도된 상태로 떼제베를 타고 엑상 프로방스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옆에 앉은 한 친구가 물었다. "피곤해?" "응.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응." 그러면서 나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모티프를 찾아야 해." 우리는 함께 웃었다. 우리는 허허롭게 웃었다. 창 밖으로는 너르고 푸른 프랑스만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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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BBC Proms 공연을 봤다. 예정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같이 수업을 듣던 스페인 친구 하나가 로열 앨버트 홀에서 피아노 콘서트가 있다고 같이 보자고 해서 가게 된 것이다. BBC Proms 공연인지도 몰랐다.

비가 간간히 내리는 가운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5파운드(한국 돈으로 9천원 정도)를 내고 시간에 맞춰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우리 자리는 맨 위층이었다(갤러리라고 부르더라). 연주가 막 시작되려는 찰라였다. 홀이고 좌석이고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갤러리에는 누워서 연주를 듣는 사람, 앉아서 듣는 사람, 심지어 책을 읽으며 듣는 사람도 있었다.

Proms 공연은 Promenade concert의 약자라고 한다. 즉, 자유롭게 걸으면서 듣는 콘서트란 뜻. 100년도 더 전에 시작되었고 가능한 저렴한 가격에 가능한 자유로운 복장으로 가능한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라고 했다. - 수업 시간에 이렇게 들었다.

연주된 곡들에 대해 내가 가진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 처음 듣는 곡들이었다. 그러나 환상적이었다. 나는 음악에 푹 빠져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신경 쓴 것은 엉뚱한 대목에서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대체로 성공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 4악장이 시작되고 전 악단이 마구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지휘자가 된 것처럼 리듬을 타다, 바로 여기다 하며 무릅을 휘날렸다(손에 맥주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홀에서도 박수가 일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나도 조금 무안해졌다^^) 갑자기 관악 파트를 비롯한 전 파트가 죽어라 하며 엄청난 소리를 내며 메인 주제를 다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갖가지 변주가 쏟아지다 드디어 피날레! 어땠냐고? 행복해서 죽는 줄 알았다! 눈물이 날 정도.

우리는 죽어라 하고 박수를 쳤다. 지휘자가 나와서 악단을 다 일으켜 세우고 인사를 하고 들어가도 막무가내였다. 발을 구르며 앵콜을 안해주면 공연장을 무너뜨리겠다는 기세로 박수를 쳐댔다(팔 떨어지는 줄 알았다^^). 두어 번 뜸을 들이다 지휘자가 나와서 앵콜 곡을 연주하고 들어갔다. 우리는 다시 박수를 쳐대며 지휘자를 불렀다. 지휘자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뜸을 들이다 또 한곡을 연주해 주었다. 우리는 또 박수를 쳐댔다. 지휘자가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이제는 주머니가 빈 것 같았다. 그만 놓아주어야 했다.

같이 간 친구가 어땠냐고 묻길래 마돈나를 인용해 주었다. "Better than sex."^^

나는 Proms 공연이 일주일에 한번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5파운드는 고정비 지출로 해 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연장 밖에 붙어 있는  프로그램을 보니, 맙소사 매일한다! 당장 내일 공연 프로그램은 말러, 거기다가 바이올린은 안네 소피 무터! 모레는 홀스트의 플레닛! (이번 주 토요일이 이번 시즌 마지막 날이란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런던의 지하철은 요즘 거의 푸시맨을 필요로 하는 수준이고, 대형 병원들은 파산하고 있고, 폭동의 뒤폭풍은 아직 진행 중이고, 살던 집에서 쫒겨 나는 사람들도 많고, 높은 양육비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는 여성들도 많고, 영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거의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전세계로부터 듣고 있고, 영국의 민주주의는 금권 민주주의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영국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문제들을 수없이 안고 있다. 지구상의 다른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영국은 위대한 나라다. 단돈 5파운드에 최상급의 음악과 연극을 볼 수 있고, 후대에 무한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는 오리지널한 예술작품들을 공짜로 볼 수 있다. 가능한 많은 구성원들에게 생존 이외의 다른 가치를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사회는 위대하다. 그 경험의 폭이 넓을 수록, 그리고 깊을 수록 그 사회는 위대하다.

지하철을 향해 걸으면서도 우리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London is a great city. It offeres us such a great concert at such a cheap price! (문법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이 뻔한 broken English를 영국 사람들로 가득한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주절댔다. But it's too expensive to live in... 같은 말로 적당히 균형을 맞추면서 말이다.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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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놓은 동영상은 닥터 후 시즌1의 마지막 에피소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닥터다. 어제 bbc1에서 닥터후를 보다가 문득 옛날 닥터 생각이 났다. 그리고 유튜브를 찾아보니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말이 안된다. 그리고 그 말이 안된다는 것을 핑계로 하고픈 이야기들을 마음껏 펼쳐놓는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방종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에도, 당연히 윤리가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내게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닥터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너무 너무 사랑스럽다. (닥터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타임로드 종족이다. 그래서 그의 다소 과장되고 꺼벙한 행동들 속에는 치유할 수 없는 고독이 숨겨져 있다) 또, 이 드라마의 작가와 감독은 배역과 장면들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다. 위 동영상 속의 두 여인을 보라. 닥터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디테일들이 드라마를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디테일이 전부다)

화가는 색을, 작가는 문장을, 음악가는 음을, 감독은 장면을, 배우는 연기를 함부로 소비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희소한 자원처럼 다루어져야 하며, 절대적 필연성의 연쇄에서처럼 펼쳐져야 한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유일한 규칙, 구닥다리식으로 말해서 유일한 윤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윤리라는 단어가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의 것은 아무래도 좋다.    

(아래는 저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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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까지 집에서 세잔의 편지 모음과 세잔에 관한 책을 읽었다.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저녁녁에 친구가 와서 함께 인근에 있는 펍에 갔다. 펍 앞에는 자그마한 강이 흐른다. 작은 배가 오르내린다. 커다란 백조가 떠 있다. 사람들 손에서 던져지는 빵조각에 익숙해 있는 듯 싶었다. 해가 지면서 지평선 근방의 구름들이 빨갛게 물든다. 구름들이 산의 자취를 하고 있다. 머리 뒤편으로 바나나 모양의 달이 떠오른다. 어둠이 내리도록 공기는 투명하다. 파란 잔디, 그림같은 집들. 뛰노는 아이들. 감자 튀김에 샐러드, 커다란 이층 햄버거, 그리고 맥주 한 잔으로 저녁을 먹었다. 강변을 따라 짧은 산책을 했다. 강물의 표면이 갖가지 색깔로 빛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금요일 저녁이었다.

어제 산 세잔의 편지 모음은 "PAUL CEZANNE LETTERS"라는 제목의 책으로 John Rewald가 편집한 것이다. 출판연도를 보니 1941년이다. 나는 이걸 8 파운드에 샀다. 활자가 큼직 큼직하여 시원하고 두터운 종이엔 색바램이 거의 없다. 활자 눌린 자국이 운치가 있다.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을 여기에 옮겨두려 한다. 주로 예술에 관한 부분이다. 이하.


CXXIX bis To Joachim Gasquet
and to a young friend

[원래 단편인 것의 전문임]

...I cannot say that I envy you your youth, that is impossibe but your vigour, your inexhaustible vitality.
...I am at the end of my strength. I should have more sense and understand that at my age illusions are hardly permissible and that they will always cause my undoing.
...At the present time I am still searching for the expression of those confused sensations that we bring with us at birth. If I die everything will be over; but what does it matter!
...Perhaps I was born too early. I was more the painter of your generation than mine...
You are young, you have vitality, you will stamp your art with an impulse that only those possesed of true feeling can give it. For my part I am getting old, I shall not have time to express myself...
Let us work...
...The study of the model and its realization is sometimes very slow in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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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XLVIII To Charles Camoin (Aix, 28th Jan., 1902)

...
You see that a new era in art is preparing, you sensed it coming; continue your studies without weakening, God will do the r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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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VI bis To Joachim Gasquet (Aix, July, 1902)

[원래 단편인 것의 전문임]

...I despise all living painters except Monet and Renoir and I wish to achive success through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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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VIII To Mademoiselle Paule Conil (Aix, 1st Sep., 1902)

...
Unfortunately what we call progress is nothing but the invasion of bipeds who do not rest until they have transformed everything into hideous quais with gas lamps - and, what is still worse - with electric light. What times we live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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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X To Ambroise Vollard (Aix, 9th Jan., 1903)

...
I am working obstinately, for I am beginning to see the promised land. Will I be like the great Hebrew leader or will I be able to enter?
...
I have made some progress. Why so late and with such difficulty? Is art really a priesthood that demands the pure in heart who must belong to it entire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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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XIII To Charles Camoin (Aix, 13th Sep., 1903)

...
I thought I had mentioned to you that Monet lived at Giverny; I hope that the artistic influence that this master cannot fail to have on his more or less immediate surroundings will be felt in accordance only with the strictly necessary weight that it can and must have on an artist young and well disposed toward work. Couture used to say to his pupils: "Keep good company, that is: Go to the Louvre. But after having seen the great masters who repose there, we must hasten out and by contact with nature revive in us the instincts and sensations of art that dwell within us."
...
What shall I wish you: good studies made after nature, that is the bes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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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XV To Louis Aurenche (Aix, 25th Jan., 1904)

...
In your letter you speak of my realization in art. I think that everyday I am attaining it more, although with some difficulty. For if the strong experience of nature - and assuredly I have it - is the necessary basis for all conception of art on which rests the grandeur and beauty of all future work, the knowledge of the means of expressing our emotion is no less essential, and is only to be acquired through very long experience.
The approbation of others is a stimulus of which, however, one must sometimes be wary. The feeling of one's own strength renders one modest.
...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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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런던에 온지 이주가 지난 어제서야 처음으로 미술관(혹은 박물관)에 갔다. 학원에서 함께 영어를 배우는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인들은 누구나 일본어를 잘 한다는 이야기는 철썩같이 믿으면서 내가 아직 영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보지 않았다는 말에는 경악을 한다. 이제 더 이상 그네들을 당혹스럽게 할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나도 더 이상 갤러리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셔널 갤러리를 전부 둘러 볼 수는 없다. 주로 거닌 곳은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걸려 있는 방들이었다. 회화 유파로 말하자면 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세잔의 그림을 보러 간 것이고. (아쉽게도 내셔널 갤러리는 세잔의 작품 등 19 세기 말 유럽 화가들의 작품에 강점이 있는 미술관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세잔의 작품 앞에서 감동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간 도판으로나마 세잔의 그림들을 많이 보아왔었고 그에 관한 글들도 많이 읽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세잔의 그림 앞에 서 있게 되자 별 감흥이 나지 않았다. 세잔은 자연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심사숙고하며 붓 터치 하나 하나를 더해가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그의 그림에서 발견한 것은, 말하자면 부주의하게 물감을 덕지 덕지 바른 흔적들이었다.

본 것이 그러하므로 나는 개념적 접근을 나 자신에게 허용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표면적 가벼움을 일종의 무게감, 깊이로 대체하고자 했다고 말해진다. 회화는 색들의 조화이고 대상들은 색면의 담지자이기 때문에 대상들 사이의 관계, 즉 구성에 심혈을 기울인 화가라고 말해진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는 색면을 약화시키는 전통적인 원근법이 무시되고 화면에 깊이와 질량감을 부여하기 위해 이러 저러한 기법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세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내가 본 것들이 해명될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방 저 방을 둘러보다 몇 번이고 세잔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세잔에게서 발견한 뭔가는 없었다. 일단 퇴각.

내가 둘러 본 방들에서 가장 인기있는 화가는 단연 반 고흐였다. 특히 해바라기. 사람들이 해바라기 그림 앞에 죽 둘러서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그림을 건너 뛰어야 했다. (요즘 시력이 좋지 않다-.-) 나를 가장 즐겁게 한 화가는 르느와르. 파스텔풍의 화려하고 부드러운 작품들. 깜짝 놀랐던 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얼굴 중 하나는 런던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얼굴이라는 것. 중년이 되어 비만하게 될 징조가 보이는 평범한 영국 소녀의 얼굴.

내셔널 갤러리를 나와 레이캐스터 레스터 역까지 걸어갔다. 그 근방에 중고 서점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두고 있었다. 서점 서너 군데를 돌아 책 네 권을 샀다. 에릭 호퍼의 책, 마이클 더밋의 책, 세잔의 편지 모음책, 세잔에 대한 책. 그리고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 격인 Foyles라는 서점엘 갔다. 사고 싶은 책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지만 점만 찍어둘 수 밖에. 런던을 걷다보면 발에 채이는 것이 스타벅스다. 거기 들어가서 책을 읽으려다, 이제부터는 먹을 걸 아껴 책을 사야 겠다 싶어 과감히 포기. 내셔널 갤러리 근처에서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지크를 연주한다는 광고판을 본 기억이 났다. 가증스럽게도 연주 날짜는 "TODAY"! 길을 걷다 마주친 "피그말리온" 공연을 알리는 광고판도 외면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가방 안에 버나드 쇼우(인간과 초인, 피그말리온, 인간과 전쟁, 핫브레이크 하우스)를 상시 휴대하고 다니던 내가 아니던가! 차라리 굶겨 죽이라.

저녁 무렵의 런던은 혼잡 그 자체다. 인도에는 쓰나미같이 왕성한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 도로에는 이층버스, 버스를 두 개 붙여 놓은 이량버스, 정장에 핼멧, 쌕을 메고 신나게 자전거를 밟아대는 퇴근길 직장인 부대, 거칠게 거리를 질주하는 시대착오적으로 둔탁하게 생긴 택시들, 심지어는 인력거까지, 아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아무 데서나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 아 거기다가 올림픽한다고 도로 곳곳에 벌여놓은 공사판까지! 런던이 거대한 국제도시임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갑자기 사뮤엘 존슨의 시건방진 말,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이다."라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당신이 조용히 책 읽는 걸 좋아하든, 클럽에서 온 몸을 흔드는 걸 좋아하든, 음악을 좋아하든, 연극을 좋아하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담소하는 걸 좋아하든, 담배 연기 자욱하고 음악 소리로 귀가 멍멍한 펍에서 새로 만난 위험한 남자와 떠들고 춤추는 걸 좋아하든, 이 놈의 도시는 다 받아줄 것만 같다. 정말 그렇다. 여긴 그런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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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9-0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leiceter는 '레스터'라고 발음하지요 ^^

weekly 2011-09-03 06:52   좋아요 0 | URL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국의 모든 것이 낯설지만 지명 스펠링과 발음은 특히나 익숙해 지지 않는군요. 아이폰 지도 앱을 들고 있어도 지명 스펠링을 맞게 입력할 자신이 없어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