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스코틀랜드가 독립 투표를 한다. 반대가 대체로 앞서는 분위기이지만 대단히 박빙이기 때문에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것 같다. 만약 찬성이 우세하여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확정된다면 참으로 역사적인 일일 것 같다. 영국에 살면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대단한 사건을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내 생각을 적어놓는다.

사실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 일 주일 전쯤에 여론조사에서 독립 찬성파가 처음으로 우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의 총리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이 다 스코틀랜드로 날아갔다. 어제 영국 총리는 "당신들이 보수당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보수당이 영원히 집권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제발 부탁이다. 떠나지 말아달라."고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여왕도 나섰다. 여왕은 이번 일에 절대 개입하려 하지 않았었다. 독립과 관련된 일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대변인을 통해 미리 선을 그어놓았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여왕이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졌는가 보다. 여왕은 "잘 생각해서 선택하라" 정도의 교과서적이고 애매한 말을 내놓았다. 여왕의 충고가 독립 투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작은 나라다. 그래서 독립하여 자립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통화 문제라든지, 독립 찬성 결과가 나오는 순간 스코틀랜드 금융 기관들의 뱅크 런 가능성이라든지 하는 수 많은 예측 가능한 난제와 또, 경제계에서 주로 나오는 협박도 있다(스코틀랜드에 있는 기업 본사를 다른 데로 옮긴다든지 하는). 

그러나 나는 이 모든 부정적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는 독립해서도 파운드화를 계속 쓰려 하는데 잉글랜드 중앙 은행에서는 이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중앙 은행이 이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파운드화 경제 권역의 몰락을 피하려면 스코틀랜드 독립파가 기대하는 대로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와 파운드 통화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립이 확정될 경우 스코틀랜드 은행들의 뱅크 런을 방지하기 위해서 잉글랜드 측은 이미 많은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건 말건 두 나라는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공동 운명체일 수 밖에 없다. 잉글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비자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던데, 당연히 비자 협정을 맺어 현상을 유지하게 할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작은 나라에 작은 인구를 가진 소국이다. 당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북해 유전이다. 그래서 석유만 믿고 독립하려 한다는 비판이 많다. 스코틀랜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델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인 것 같다. 특히 노르웨이와 같은 소국이면서 잘 사는 나라. 솔직히 내 생각에는 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한동안은 물론 석유 자원에 기대야 겠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잘 교육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정된 석유 자원을 갖고 흥청대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고부가가치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영국 정부와 다른 노선을 취하면서 말이다. (독립 투표의 찬반이 50 대 50으로 갈리는 와중에서도 선거 운동 양상은 차분해 보인다. 비비씨에서 찬반 대표를 스튜디오에 불러 토론을 하는데 의자 하나씩 갖다놓고 나란히 무릅을 맞대고 차분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합리적인 국민들이니 독립해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내 생각에 스코틀랜드의 독립으로 진정한 타격을 받는 쪽은 잉글랜드일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영국(유나이티드 킹덤)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진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유니언잭은 사라진다. 유니언잭 깃발에 스코틀랜드 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유나이트드 킹덤이라는 정식 국호도 사라진다. 이제는 갈라선 킹덤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브리튼이라는 말도 영국을 호칭하기 위해 쓸 수 없다. 브리튼섬의 북부 3/1이 스코틀랜드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3/1, 인구의 10% 정도, 그리고 정체성도 잃고 나면 영국의 위상은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은 이미 자신들이 세계를 이끌고 가는 강국 중 하나라는 생각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 인식이 더 가속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영국은 어디로 갈까? 영국 테레비젼의 한 방송에서 기자가 터키 사람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터키는 유럽인가 이슬람인가?' 이 우문에 터키 사람들은 이렇게 현답을 말했다. "터키는 유럽과 이슬람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마치 영국이 미국과 유럽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듯이." 

어떤 의미에서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는 바로 이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를 싫어한다. 그런 국민 감정이 이번 투표의 주된 동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서라도 독립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이번에 50%에 육박하게 된 것은 현 집권 세력 즉, 보수당에 대한 혐오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처 수상 이래로 스코틀랜드 내의 보수당은 거의 씨가 말랐고 현재도 보수당 의석은 한 석이든가 전무이든가 한 상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로서는 자신들이 거의 선택하지 않은 정권이 자신들을 통치한다는 현실에 대한 반발감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거가 독립 반대로 끝났으면 좋겠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영국이 단일한 정체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아마, 특히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꽤 많으리라 생각한다. 보수당 정권이 이끄는 대로 자유주의적 전략을 계속 가져가도 좋을 것인가 등등의 고민 말이다(작년엔가는 우체국을 민영화시켰다). 다른 대안은 없는가? 한쪽에서는 대안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런던은 거대한 국제 도시가 되어 해외로부터 엄청난 투자를 유치해 온다. 그리고 그 수익을 영국 전체가 나눈다. 그러니 자유주의적 전략을 쓰지 않고는 영국 전체가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런던과 런던 나머지 지역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고 있다. 잉글랜드 북부 어떤 마을에 대한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대처 정권때 산업 기반이 싹 사라진 후 마을 전체가 거의 복지 수당에 의존해 사는 현실. 테스코(한국으로 말하면 이마트) 카운터 말고는 딱히 일자리도 없는 현실... (영국은 산업 선진국이지만 놀랍게도 자국 기업이 보유한 자동차 회사가 없다. 다 팔아버렸으니까. 또, 놀랍게도 독일은 선진국이지만 아직도 연필을 만드는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영국과 독일의 차이는 독일이 훨씬 많은 옵션을 갖고 있다는 것이리라.) 이런 고민들은 영국 사람들이 알아서 잘들 하겠지...

[딴 나라이야기였다. 한국은... 뉴스를 거의 보지는 않지만, 네이버에 프리미어 리그 뉴스를 보러 들어갈 때면 제목은 그래도 스쳐 보게 된다. 야권에서 난리가 있는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을 보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인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겨도 국민들이 여권을 옹호해 주고 야권에는 표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야권은 무기력에 빠지고 위축되고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난리가 났다고 야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밤에 잠을 자지 않았으니 지금 졸린 것과 똑같은 생리적 현상이니까. 현재 한국 정치는 시스템의 실패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반전의 계기는 무엇일까? 글쎄... 반전의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 반전의 계기보다는 일말의 반전의 계기라도 없애버리려는 정권의 활약이 더 돋보이는 것 같다. 쳇...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로 이야기를 맺고 싶었는데 찾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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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9-1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영국에 거주했던 사람으로서 스코들랜드 독립 여부가 투표에 부쳐진다는,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를 듣고 놀라웠는데 weekly님의 이 글을 읽으니 마치 정리 잘 된 신문 기사를 읽는 듯 하네요.
여왕이 최소한의 관여만 하는 모습, 총리가 스코들랜드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어 참 영국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영국 우체국이 민영화 되었다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어요. 그럼 더 이상 Royal Mail이 아닌거네요?

weekly 2014-09-19 23:11   좋아요 0 | URL
예, 저 엄청난 일을 참 영국스럽게 잘 치뤄낸 것 같습니다. 오늘 J K 롤링이 민주적인 절차로 일을 처리해 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고(트윗), 어제자 가디언 사설은 민주적 절차로 분리 독립 문제를 처리해 내는 영국의 모습을 세계는 부러워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엄청 부러운 일입니다.

로열 메일 이름은 그대로예요. 여기서도 팔릴 당시 헐값 매각 논란이 있었구요...

마태우스 2014-09-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많은 것을 알게해주는 글이네요 감사드립니다

weekly 2014-09-19 23:11   좋아요 0 | URL
말씀 감사합니다.
 

1. 

8월10일부터 14일까지 웨일스에 다녀왔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을 여행 할 때 목표지는 주로 도시, 갤러리, 박물관 등이었는데 이번 웨일스 여행은 거의 바다와 산으로만 다녔다. 첫 숙박을 한 스완지가 마침 딜런 토마스의 고향이라 딜런 토마스 센터와 스완지 박물관의 딜런 토마스 섹션을 잠시 둘러 본 것을 제외하면.


해안가 트래킹 코스나 800미터 높이의 어떤 산에 오른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내년에도, 아마 매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웨일스에 대한 기억은 나의 모든 디지털 기기의 월 페이퍼를 장식하고 있다.


2. 웨일스의 800미터 정도 높이의 산을 오를 때의 일이다. 길이 완만하고 잘 관리되어 있어 오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정상 부분만 15미터 높이로 약간 가파른 성 모양이었다. 약간 험해 보였지만 높이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꼭대기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성 모양의 중간 부터가 구름 속이었다. 비바람이 매섭고 차갑게 불어대었다. 정상에 올라가자 비바람에, 짙은 구름에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을 찾으며 무심코 걷는데 바로 앞이 벼랑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미친 듯 불어대는 차가운 비바람 속에서 어느 젊은 부부가 4살,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비바람 속에서 어른들에게도 위험해 보이는 가파르고 커다란 돌무더기로 된 정상까지의 코스를 그 부부는 그 자그마한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젊은 부부도, 그리고 아무 투정 없이 묵묵히 걷고 있던 아이들도.


사실 영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 무척 대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차가운 가을날에 아이 둘이 연못에 들어가 있는데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부모, 개가 아이를 향해서 뛰어들고 아이는 놀라서 울며 아빠 뒤춤으로 숨는데, 그걸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아빠, 산을 달리는 증기 기관차를 탔을 때 차량 난간 위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들어 올려서 아이가 풍경을 더 잘 볼 수 있게 도와주던 할머니...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더 행복한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그 환경을 가꾸어주는데 가장 큰 관심을 갖지만 영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자율적인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가장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후자가 더 성숙한 부모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윤일병 구타 사망 사고. 여자는 회계사, 남자는 IT 종사자인 한국 부부가 있는데 영국으로 이주오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이제 겨우 4살인데 한국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 현재 영국 영주권을 따고 브라질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IT 종사자가 있는데, 아들을 한국 군대에 보낼 거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안 보내려고 지금 이 고생하고 있는 건데?" 영국에서 영주권을 따고 한국에 돌아가 1년 정도 생활하다 1주일 전에 돌아온 친구 왈,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한국의)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군대 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네! 우리 애는 자기는 군대 안가는 줄로 믿고 있고..."


세월호 사태에 이어 이런 끔찍한 구타 사망 사고를 접하고 나면 진정 국가라는 것이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사고는 어느 때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대해 국가가 대처하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 금방 견적이 나온다. 국가를 믿어도 될런지, 아니면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할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를 믿을 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 같다. 현실이 이렇다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바로 귀국 비행기에 오늘 것이고, 아이를 낳게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100% 한국 사람으로 키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 댓글이 있어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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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에 모처럼 런던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의 참가는 별 것 없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에서 나와 판매하는 관련 신문, DVD, 버클을 사고 서명을 하는 정도. 


사진에 영국 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수상 관저인 다우닝 거리 10번지 바로 앞에서도 사람들이 확성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파는데 바쁜 나머지 이 무차별적인 학살에 대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영국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를 외치고 있었다. 대 여섯살 정도의 아이들이 온 몸에 빨간 물감을 칠하고 바닥을 뒹구는 포퍼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 런던은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부동산 붐이 한창이었다. 친구가 워털루 역 뒤쪽에 흑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엘리펀트 카슬에 가자고 했다. 그곳의 길거리 음식들이 맛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그 '개발'이라는 것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그저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개발이 시작되면 그곳에서 수십년 동안 저렴한 임대료를 내며 살던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언론에 종종 이런 뉴스가 나기도 한단다. -내가 요즘 신문, 뉴스를 통 보지 않는다. 암튼, 한국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를 영국에 와서도 듣게 된다.


3.


지난 가을, 겨울에 비가 많이 와서 잔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봄부터 씨도 뿌리고 신경을 많이 썼더니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내년 정도 되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작년 여름에 땅 파고 하느라 나름 고생을 조금 했기 때문에 볼 때마다 흐뭇하다.


정원이 정말 좁아보인다. 실제로 봐도 다를 바는 없지만:)


4. 요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한국 뉴스 등은 내가 즐겨 가는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얻어 듣는다. 친구들과 한국 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한국이 이상한 나라가 되었어"라는 말로 짧게 이야기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새누리당이 연속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새누리당적인 색채가 사회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사회에서 새누리당적인 세계관이 주류로 오래 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곧 변곡점이 오리라고 기대한다. 


5. 부모님이 노인 연금 7만원 돈 정도 받던 거 끊겼다고 하신다. 크게 의미있는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섭섭하다고 하신다. 그 7만원 돈은, 젊었을 때 고생하면서 세금도 내고 나라에 기여 한 것에 대해 나라가 고마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셨다고 했다. 


6.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한국의 운전 문화에 대해 읽었다. 또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연세대의 골품제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새누리당 정권이 지속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분노할 것도 없고 한탄할 것도 없다. 그냥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니까.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문제로 난리가 났을 때 나는 흄을 읽고 있었다. 웹에서 한국어 문서를 찾다 마침 두툼한 pdf 문서가 있어 읽다 보니 흄의 생애를 서술한 부분이 표절이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다. 나는 거기서 읽기를 멈췄으니까.) 에이어의 책에서 출전 표시 없이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저 pdf 문서는 연구비를 받아 작성한, 신진 학자의 것일 것이다. 나는 교육부 장관보다 이 분에게서 더 심각한 문제를 느낀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한국에 대한 착각을 거두게 한다. 새누리당, 경상도, 노인 세대... 이런 요소들 때문에 한국이 발목을 잡힌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저 요소들을 제하고 보아도 한국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한국은 우리들 모두의 평균적인 모습이니까. 


아마 교훈은 정치적 현상에 웃고 울지 말고 내실을 다져야 하리라는 것일 것이다. 적어도 내게 주는 교훈은 그렇다. 


7. 요즘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읽고 있다. 얼마 전에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사이트에 나 자신이 쓴 존재와 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무지 무지한 고집이 잔뜩 들어간, 그러나 내실은 하나도 없는 글이었다. 창피했다.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내 삶의 중요한 국면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고 사이트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암튼, 그 글은 내가 존재와 무를 샀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책표지만 잔뜩 늘어놓는 이상한 독서법의 유행에 대해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나는 이 책을 꼭 독파해 내야 하리라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존재와 무는 이제 서론이 끝나간다. 나는 문장 하나 하나까지 완전하게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철학책 중 최고로 어렵다. 그러니 들인 시간에 비하면 진도가 엄청 느리다. 내가 이 책을 완독하게 된다면, 그때 여기에 다시 자랑글을 쓸 생각이다. 사르트르가 슬슬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다 읽었을 때의 흐뭇함을 상상하는 것이 요즘 나의 주요한 설레임 중 하나이다. 저녁에 소파에 누워 염가판 존재와 무의 깨알같은 활자를 따라가는 것은 완전한 행복이다.


8. 오늘은 do nothing day. 나는 요즘 폭주 기관차같다. 인위적으로 날을 정해 주지 않으면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면서 폭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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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4-07-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으로부터의 시각/관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어떤 글들보다 인식/깨달음의 낙차가 큽니다.

한국은 우물 속에서 앞으로도 한 100년 이상은 벗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100년을 가기는커녕 그 전에 아예 없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국민’이라는 개념 혹은 대상은 결코 신성(불가침)한 개념/대상이 아닙니다.

정치인들, 정통성 없는 불의한 정권보다

나/당신/이분/저분들을 포함한 국민들이 훨씬 더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이 사실은 가장 결정적인/critical 사실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국민’이라는 신성한 대상입니다.

이 신성불가침의 신화 아닌 신화를 깨뜨리지 않는다면/못한다면

한국엔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막 다 읽은 참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그렇다. 처음 헌책방에서 사서 가볍게 읽었을 때는 지루하기만 하고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책에 줄을 쳐가면서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에 호러블하다고 코멘트해 놓은 게 있다.


이번 읽을 때 이 책은 확 달라져 있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런 섬세함을 포착하지 못한 나의 정신의 둔탁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하이데거는 그 명성으로 나의 주의를 두번, 세번, 네번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하이데거에 대해 서핑을 해보다가 하이데거의 일기가 출간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가 있는 그대로 드러난 귀절도 있다는 것이다.


"... 하이데거는 자신이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세계 유대주의가 서구의 근대를 추진한 주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또 노트에서 하이데거는 "세계 유대주의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군사행동에 관여할 필요가 없는 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최고의 피를 희생해야만 했다"고 적었다.


또 철학노트는 하이데거에게 반유대주의는 미국과 영국 문화에 대한 강한 적의와 겹쳐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런 문화를 '조작을 통한 지배'라고 부르는 것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한 구절에서 하이데거는 파시즘과 세계 유대주의처럼, 소비에트 공산주의와 영국 의회주의는 서구의 근대를 비인간적으로 만든 추동력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볼셰비키즘의 부르조아 기독교적 형상은 가장 위험하다. 그것의 파괴가 없다면 (부정적 의미의) 근대의 시대는 여전히 온전하게 남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는 레디앙. 2014년 3월13일자 가디언 기사를 대부분 참조한 기사인 것 같다.)


아마 이 귀절들에서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이 별안간 훤해지는 느낌을 받은 사람도 있으리라.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원, 망각, 그리고 회복. 회복은 망각을 거슬러 시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대결하고, 해체하여 근거없음을 밝히려 애쓰고 있는 사유가 바로 그 망각의 사유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쩌면 저 일기의 귀절들이 하이데거 왈 망각의 사유의 구체적 참조점들 중 일부를 지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로 이렇다면 하이데거는 철학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하이데거가 정치적으로 순진해서 나치에 동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나치 동조와 관련해서 변명만 해대는 것을 보면서는 인간적으로 덜 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 일기의 귀절들은 하이데거가 나치와, 방법과 분야는 달라도, 실지에 있어서는 동일한 심정에서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하이데거의 사상이 많은 유태인 사상가들을 포함한 좌파 사상가들에게 특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이데거는 독일 계통 사상가들의 정서적으로 특징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비트겐슈타인 역시 현대의 과학주의와 영국 문화의 피상성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의 철학적 투쟁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의 권리를 확보하고 그 안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촌스러운 보수주의자일 수도, 신비주의자일 수도, 시대착오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기본 성향일 뿐이니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성향이 더 심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정치성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대결하고자 하는 사유가 어디에 귀속되는지 명확히 정의해 놓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그의 나치 입당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치는 망했지만 기본적으로 나치와 동일한 고민에서 출발한 하이데거의 사상은 여전히 현대의 가장 심오한 사상으로 남아있다...


하이데거에 대해 서핑을 하기에 전에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반짝 반짝 빛나는 문장들에 대해 포스팅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헛헛 헛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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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남부에 한인들이 몰려 사는 뉴몰든이 있다. 몇 칠 전 뉴몰든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으며 한인 신문을 보았다. 최고은이라는 이름의 생소한 가수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6월 말에 영국에서 열리는 글래드스톤베리 축제에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이 축제에는 잠비나이 등도 초대받았다고 했다. 나는 둘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집에 와서 바로 유튜브를 찾아 보았다. 

최고은.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싱어 송 라이터였다. 앨라니스 모리셋이나 돌로레스 오리어던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창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면적인 성찰을 담은 멜로디와 가사들. 나는 놀랐다. 요즘 시대에 이런 노래를 하는 가수가 있다니. 나는 최고은을 20대 초중반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놀랐던 것 같다. 사실 최고은은 31살이라고.

최고은에 대한 기사를 웹에서 찾아 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판소리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영어로 노래하는 것에 더 편해 한단다. 이상한 이야기긴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질 만한 주제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내가 처음 최고은의 노래를 들었을 때 느꼈던,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질 정도의 이질감이 지금의 한국과 최고은 사이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되니까. 

나는 최고은을 보면서 전라도 출신의 여성 작가들, 신경숙, 한강 등에게서 느끼게 되는 그런 분위기를 떠올렸다. 기본적인 바탕을 이루는, 말하자면 촌스러움,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내면성, 자폐적이라 생각될 정도의 내면성, 그리고 그에서 획득한 깊이, 마지막으로 그 깊이와 보편성 사이에서의 갈등과 긴장. 아마 그는 자신의 감성만으로 노래할 것이고 청자 중 일부는 그 긴장과 갈등 속에서 그 노래를 들을 것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런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가는 정말 희귀하다는 것이다. 

잠비나이. 유튜브에서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고 흥분했고, 솔직히 눈물이 날 뻔 했다. 거문고로 리프를 치고 해금으로 퍼스트 기타를 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잠비나이는 바로 이런 변태같은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있었는데, 그 음악은 실험적인 프로젝트 수준이 아니라, 드럼, 베이스, 기타로 오랫동안 정형화된 밴드 구성 이상으로 든든한 규범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듬 파트에 실린 해금이나 피리는 분명 전통적인 주법에서 크게 이탈한 것 같지 않은데도 현대적으로 들렸고, 때로는 어느 기타나 전자 사운드보다 더 파괴적인 소리를, 때로는 어느 보컬리스트보다 더 깊은 감성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잠비나이 멤버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들의 음악에는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전혀 없다.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니 뭔가 주저함이나 석연치 않음이 있을 만도 한데, 잠비나이는 확고함, 단호함으로 그런 허약함을 일소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시원하고 재미있고 힘이 있다. 긴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전혀 느끼지 않게 한다. 잠비나이의 음악은 마치 백발로 태어난 노자처럼 완성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것들이 너무나 놀라웠다. 그들은 아직 어린데 말이다.

한국의 곳곳에서 젊은 세대들이 끊임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도 기뻤다. 그래서 글래드스톤베리 축제에 가려고 티켓을 알아봤다. 그런데 이미 매진. 아마도 1년 전에 미리 예약을 했어야 하나 보다. 어쨌든 이 팀들이 유럽에 자주 온다니, 네덜란드만 되어도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얘기. 현대의 한국에 보편성의 획득이라는 과제는 상당히 시급하다. 예를 들면 나는 엊그제 채리티 샵에서 산 달라이 라마의 책을 읽었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 문화의 지역적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중국 불교, 일본 불교, 태국 불교..." 등을 언급해 나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 불교는? 하며 섭섭해 할 것이다. 내가 접해 본, 서양 사람이 쓴 불교에 관한 책에는, 한국 불교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불교를 전달해 준 다리로만 의의가 있다든지,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에 어떠한 창의적인 부가도 한 것이 없다든지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년을 훨씬 넘는 동안 불교에 대한 아무런 창의적인 기여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제 그것은 현대의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에 어떻게 보편성을 제공해 주느냐 하는 문제로 전환된다.

내 방 책장에는 한국에서 가져 온 한국의 예술에 관련한 책들이 몇 있다. 그런데 별로 만족스럽지는 않다. 대체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우리 것은 이름다운 것이야"라는 관점에서 쓴 책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내가 여기 영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미에 관한 책들을 소개해 주고 싶어한다고 하자. 과연 한국에서 온 책들이 도움이 될까? 별로. 그 책들은 주로 신토불이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쓰여진 책은 한국 사람 자신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잠시 잠비나이의 이야기를 더 해보면. 잠비나니의 곡에서 들리는, 베이스 기타 역할을 하는 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자. 베이스 기타 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너무 두텁지 않아 온 곡을 안개로 휘씌우지 않고, 그래서 곡의 날렵함을 유지하게 해주고, 또 드럼 스틱 소리같은 것이 기가 막힌 조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내고 있는데, 이런 소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일까? 답은 우연히도 거문고라는 것이다. 이 기술은 보편적인 언어로 되어 있는데, 그 구현은 우연히도 거문고로 되어 있다. 우리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식은 항상 이와 같다. 물론, 음악 분야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좀 더 쉬울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한국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면 역사적으로든 현대적인 평가에 있어서든 최소한 중국과 일본에 대한 참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명시적 언급으로든 배경으로든 말이다. 이 경우에는 그 참조들이 우리가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다리, 플랫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게으름은 이 작업이 요구하는 어마어마한 노고때문이라는 변명에 고개가 살짝 끄덕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점, 태도일 수도 있다. 보편적 시각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려는 관점, 태도. 자신을 측정가능한 대상으로 내놓는 용기. 분명한 것은 이런 관점, 태도, 용기를 가졌었더라면 숭례문 복원 공사가 실패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한국의 현재 전반을 특징 짓듯이, 나는 숭례문 복원 공사의 실패가 한국의 고유 문화에 대한 현재 양상을 특징짓는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는 세계를 향해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을 방법론으로 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잠비나이가 보여준 신념이 이런 것일 게다. 자신이 고유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 그것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 이런 것이 변화를 추동하는 에너지일 것이다. 나로서는 잠비나이와 같은 패기의 밴드를 발견한 것이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는 것보다 더 기쁠 것 같다. 자신의 독자성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 그것을 확고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이런 것들이야 말로 현대 한국에, 특히 기성세대에게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포스팅하는 것으로 해야 겠다.)

(혹 댓글이 있어도 대댓글은 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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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6-03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잠비나이 정말 대단하네요!!!! 순간 훅 빨려들어갔어요 ㅠㅠ 글래드스톤베리.. 내년엔 꼭 한번 가보심이..^^ 짱짱한 뮤지션들 거기 다 오더라구요.

qualia 2014-07-3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어떤 한국 롹 밴드들한테서도 단 한 번도 놀란 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어느날 잠비나이를 듣고는 처음으로 놀랐었죠.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나와서 라이브하는 것을 들었더랬습니다.

잠비나이는 국악과 국악기를 현대 대중음악에 도입/접목/융합하는 데서, 전혀 새롭고도 차원이 다른 방법론/연주기법/조율/소리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노란둥이인 우리들이 팝과 롹을 하려면, 음악에서 김치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를 완전히 제거해내는 방법부터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우선은 흰둥이들의 팝과 롹을 완벽에 가깝게 ‘모방’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은/못한 한국적 팝과 롹, 혹은 재즈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단계도 거치지 않고 한국적 팝/롹 운운하는 것은 거의 모두 얼치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잠비나이가 국악과 국악기를 팝/롹에 도입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잠비나이는 자신들의 음악에서 김치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를 (어느 정도) 제거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