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10일부터 14일까지 웨일스에 다녀왔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을 여행 할 때 목표지는 주로 도시, 갤러리, 박물관 등이었는데 이번 웨일스 여행은 거의 바다와 산으로만 다녔다. 첫 숙박을 한 스완지가 마침 딜런 토마스의 고향이라 딜런 토마스 센터와 스완지 박물관의 딜런 토마스 섹션을 잠시 둘러 본 것을 제외하면.


해안가 트래킹 코스나 800미터 높이의 어떤 산에 오른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내년에도, 아마 매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웨일스에 대한 기억은 나의 모든 디지털 기기의 월 페이퍼를 장식하고 있다.


2. 웨일스의 800미터 정도 높이의 산을 오를 때의 일이다. 길이 완만하고 잘 관리되어 있어 오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정상 부분만 15미터 높이로 약간 가파른 성 모양이었다. 약간 험해 보였지만 높이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꼭대기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성 모양의 중간 부터가 구름 속이었다. 비바람이 매섭고 차갑게 불어대었다. 정상에 올라가자 비바람에, 짙은 구름에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을 찾으며 무심코 걷는데 바로 앞이 벼랑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미친 듯 불어대는 차가운 비바람 속에서 어느 젊은 부부가 4살,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비바람 속에서 어른들에게도 위험해 보이는 가파르고 커다란 돌무더기로 된 정상까지의 코스를 그 부부는 그 자그마한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젊은 부부도, 그리고 아무 투정 없이 묵묵히 걷고 있던 아이들도.


사실 영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 무척 대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차가운 가을날에 아이 둘이 연못에 들어가 있는데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부모, 개가 아이를 향해서 뛰어들고 아이는 놀라서 울며 아빠 뒤춤으로 숨는데, 그걸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아빠, 산을 달리는 증기 기관차를 탔을 때 차량 난간 위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들어 올려서 아이가 풍경을 더 잘 볼 수 있게 도와주던 할머니...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더 행복한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그 환경을 가꾸어주는데 가장 큰 관심을 갖지만 영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자율적인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가장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후자가 더 성숙한 부모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윤일병 구타 사망 사고. 여자는 회계사, 남자는 IT 종사자인 한국 부부가 있는데 영국으로 이주오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이제 겨우 4살인데 한국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 현재 영국 영주권을 따고 브라질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IT 종사자가 있는데, 아들을 한국 군대에 보낼 거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안 보내려고 지금 이 고생하고 있는 건데?" 영국에서 영주권을 따고 한국에 돌아가 1년 정도 생활하다 1주일 전에 돌아온 친구 왈,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한국의)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군대 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네! 우리 애는 자기는 군대 안가는 줄로 믿고 있고..."


세월호 사태에 이어 이런 끔찍한 구타 사망 사고를 접하고 나면 진정 국가라는 것이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사고는 어느 때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대해 국가가 대처하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 금방 견적이 나온다. 국가를 믿어도 될런지, 아니면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할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를 믿을 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 같다. 현실이 이렇다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바로 귀국 비행기에 오늘 것이고, 아이를 낳게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100% 한국 사람으로 키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 댓글이 있어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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