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에 모처럼 런던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의 참가는 별 것 없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에서 나와 판매하는 관련 신문, DVD, 버클을 사고 서명을 하는 정도.
사진에 영국 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수상 관저인 다우닝 거리 10번지 바로 앞에서도 사람들이 확성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파는데 바쁜 나머지 이 무차별적인 학살에 대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영국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를 외치고 있었다. 대 여섯살 정도의 아이들이 온 몸에 빨간 물감을 칠하고 바닥을 뒹구는 포퍼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 런던은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부동산 붐이 한창이었다. 친구가 워털루 역 뒤쪽에 흑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엘리펀트 카슬에 가자고 했다. 그곳의 길거리 음식들이 맛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그 '개발'이라는 것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그저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개발이 시작되면 그곳에서 수십년 동안 저렴한 임대료를 내며 살던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언론에 종종 이런 뉴스가 나기도 한단다. -내가 요즘 신문, 뉴스를 통 보지 않는다. 암튼, 한국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를 영국에 와서도 듣게 된다.
3.

지난 가을, 겨울에 비가 많이 와서 잔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봄부터 씨도 뿌리고 신경을 많이 썼더니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내년 정도 되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작년 여름에 땅 파고 하느라 나름 고생을 조금 했기 때문에 볼 때마다 흐뭇하다.
정원이 정말 좁아보인다. 실제로 봐도 다를 바는 없지만:)
4. 요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한국 뉴스 등은 내가 즐겨 가는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얻어 듣는다. 친구들과 한국 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한국이 이상한 나라가 되었어"라는 말로 짧게 이야기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새누리당이 연속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새누리당적인 색채가 사회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사회에서 새누리당적인 세계관이 주류로 오래 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곧 변곡점이 오리라고 기대한다.
5. 부모님이 노인 연금 7만원 돈 정도 받던 거 끊겼다고 하신다. 크게 의미있는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섭섭하다고 하신다. 그 7만원 돈은, 젊었을 때 고생하면서 세금도 내고 나라에 기여 한 것에 대해 나라가 고마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셨다고 했다.
6.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한국의 운전 문화에 대해 읽었다. 또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연세대의 골품제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새누리당 정권이 지속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분노할 것도 없고 한탄할 것도 없다. 그냥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니까.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문제로 난리가 났을 때 나는 흄을 읽고 있었다. 웹에서 한국어 문서를 찾다 마침 두툼한 pdf 문서가 있어 읽다 보니 흄의 생애를 서술한 부분이 표절이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다. 나는 거기서 읽기를 멈췄으니까.) 에이어의 책에서 출전 표시 없이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저 pdf 문서는 연구비를 받아 작성한, 신진 학자의 것일 것이다. 나는 교육부 장관보다 이 분에게서 더 심각한 문제를 느낀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한국에 대한 착각을 거두게 한다. 새누리당, 경상도, 노인 세대... 이런 요소들 때문에 한국이 발목을 잡힌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저 요소들을 제하고 보아도 한국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한국은 우리들 모두의 평균적인 모습이니까.
아마 교훈은 정치적 현상에 웃고 울지 말고 내실을 다져야 하리라는 것일 것이다. 적어도 내게 주는 교훈은 그렇다.
7. 요즘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읽고 있다. 얼마 전에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사이트에 나 자신이 쓴 존재와 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무지 무지한 고집이 잔뜩 들어간, 그러나 내실은 하나도 없는 글이었다. 창피했다.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내 삶의 중요한 국면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고 사이트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암튼, 그 글은 내가 존재와 무를 샀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책표지만 잔뜩 늘어놓는 이상한 독서법의 유행에 대해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나는 이 책을 꼭 독파해 내야 하리라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존재와 무는 이제 서론이 끝나간다. 나는 문장 하나 하나까지 완전하게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철학책 중 최고로 어렵다. 그러니 들인 시간에 비하면 진도가 엄청 느리다. 내가 이 책을 완독하게 된다면, 그때 여기에 다시 자랑글을 쓸 생각이다. 사르트르가 슬슬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다 읽었을 때의 흐뭇함을 상상하는 것이 요즘 나의 주요한 설레임 중 하나이다. 저녁에 소파에 누워 염가판 존재와 무의 깨알같은 활자를 따라가는 것은 완전한 행복이다.
8. 오늘은 do nothing day. 나는 요즘 폭주 기관차같다. 인위적으로 날을 정해 주지 않으면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면서 폭주한다.
(혹 댓글이 달리더라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