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스코틀랜드가 독립 투표를 한다. 반대가 대체로 앞서는 분위기이지만 대단히 박빙이기 때문에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것 같다. 만약 찬성이 우세하여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확정된다면 참으로 역사적인 일일 것 같다. 영국에 살면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대단한 사건을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내 생각을 적어놓는다.

사실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 일 주일 전쯤에 여론조사에서 독립 찬성파가 처음으로 우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의 총리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이 다 스코틀랜드로 날아갔다. 어제 영국 총리는 "당신들이 보수당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보수당이 영원히 집권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제발 부탁이다. 떠나지 말아달라."고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여왕도 나섰다. 여왕은 이번 일에 절대 개입하려 하지 않았었다. 독립과 관련된 일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대변인을 통해 미리 선을 그어놓았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여왕이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졌는가 보다. 여왕은 "잘 생각해서 선택하라" 정도의 교과서적이고 애매한 말을 내놓았다. 여왕의 충고가 독립 투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작은 나라다. 그래서 독립하여 자립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통화 문제라든지, 독립 찬성 결과가 나오는 순간 스코틀랜드 금융 기관들의 뱅크 런 가능성이라든지 하는 수 많은 예측 가능한 난제와 또, 경제계에서 주로 나오는 협박도 있다(스코틀랜드에 있는 기업 본사를 다른 데로 옮긴다든지 하는). 

그러나 나는 이 모든 부정적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는 독립해서도 파운드화를 계속 쓰려 하는데 잉글랜드 중앙 은행에서는 이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중앙 은행이 이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파운드화 경제 권역의 몰락을 피하려면 스코틀랜드 독립파가 기대하는 대로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와 파운드 통화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립이 확정될 경우 스코틀랜드 은행들의 뱅크 런을 방지하기 위해서 잉글랜드 측은 이미 많은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건 말건 두 나라는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공동 운명체일 수 밖에 없다. 잉글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비자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던데, 당연히 비자 협정을 맺어 현상을 유지하게 할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작은 나라에 작은 인구를 가진 소국이다. 당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북해 유전이다. 그래서 석유만 믿고 독립하려 한다는 비판이 많다. 스코틀랜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델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인 것 같다. 특히 노르웨이와 같은 소국이면서 잘 사는 나라. 솔직히 내 생각에는 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한동안은 물론 석유 자원에 기대야 겠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잘 교육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정된 석유 자원을 갖고 흥청대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고부가가치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영국 정부와 다른 노선을 취하면서 말이다. (독립 투표의 찬반이 50 대 50으로 갈리는 와중에서도 선거 운동 양상은 차분해 보인다. 비비씨에서 찬반 대표를 스튜디오에 불러 토론을 하는데 의자 하나씩 갖다놓고 나란히 무릅을 맞대고 차분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합리적인 국민들이니 독립해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내 생각에 스코틀랜드의 독립으로 진정한 타격을 받는 쪽은 잉글랜드일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영국(유나이티드 킹덤)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진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유니언잭은 사라진다. 유니언잭 깃발에 스코틀랜드 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유나이트드 킹덤이라는 정식 국호도 사라진다. 이제는 갈라선 킹덤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브리튼이라는 말도 영국을 호칭하기 위해 쓸 수 없다. 브리튼섬의 북부 3/1이 스코틀랜드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3/1, 인구의 10% 정도, 그리고 정체성도 잃고 나면 영국의 위상은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은 이미 자신들이 세계를 이끌고 가는 강국 중 하나라는 생각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 인식이 더 가속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영국은 어디로 갈까? 영국 테레비젼의 한 방송에서 기자가 터키 사람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터키는 유럽인가 이슬람인가?' 이 우문에 터키 사람들은 이렇게 현답을 말했다. "터키는 유럽과 이슬람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마치 영국이 미국과 유럽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듯이." 

어떤 의미에서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는 바로 이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를 싫어한다. 그런 국민 감정이 이번 투표의 주된 동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서라도 독립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이번에 50%에 육박하게 된 것은 현 집권 세력 즉, 보수당에 대한 혐오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처 수상 이래로 스코틀랜드 내의 보수당은 거의 씨가 말랐고 현재도 보수당 의석은 한 석이든가 전무이든가 한 상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로서는 자신들이 거의 선택하지 않은 정권이 자신들을 통치한다는 현실에 대한 반발감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거가 독립 반대로 끝났으면 좋겠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영국이 단일한 정체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아마, 특히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꽤 많으리라 생각한다. 보수당 정권이 이끄는 대로 자유주의적 전략을 계속 가져가도 좋을 것인가 등등의 고민 말이다(작년엔가는 우체국을 민영화시켰다). 다른 대안은 없는가? 한쪽에서는 대안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런던은 거대한 국제 도시가 되어 해외로부터 엄청난 투자를 유치해 온다. 그리고 그 수익을 영국 전체가 나눈다. 그러니 자유주의적 전략을 쓰지 않고는 영국 전체가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런던과 런던 나머지 지역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고 있다. 잉글랜드 북부 어떤 마을에 대한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대처 정권때 산업 기반이 싹 사라진 후 마을 전체가 거의 복지 수당에 의존해 사는 현실. 테스코(한국으로 말하면 이마트) 카운터 말고는 딱히 일자리도 없는 현실... (영국은 산업 선진국이지만 놀랍게도 자국 기업이 보유한 자동차 회사가 없다. 다 팔아버렸으니까. 또, 놀랍게도 독일은 선진국이지만 아직도 연필을 만드는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영국과 독일의 차이는 독일이 훨씬 많은 옵션을 갖고 있다는 것이리라.) 이런 고민들은 영국 사람들이 알아서 잘들 하겠지...

[딴 나라이야기였다. 한국은... 뉴스를 거의 보지는 않지만, 네이버에 프리미어 리그 뉴스를 보러 들어갈 때면 제목은 그래도 스쳐 보게 된다. 야권에서 난리가 있는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을 보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인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겨도 국민들이 여권을 옹호해 주고 야권에는 표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야권은 무기력에 빠지고 위축되고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난리가 났다고 야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밤에 잠을 자지 않았으니 지금 졸린 것과 똑같은 생리적 현상이니까. 현재 한국 정치는 시스템의 실패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반전의 계기는 무엇일까? 글쎄... 반전의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 반전의 계기보다는 일말의 반전의 계기라도 없애버리려는 정권의 활약이 더 돋보이는 것 같다. 쳇...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로 이야기를 맺고 싶었는데 찾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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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9-1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영국에 거주했던 사람으로서 스코들랜드 독립 여부가 투표에 부쳐진다는,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를 듣고 놀라웠는데 weekly님의 이 글을 읽으니 마치 정리 잘 된 신문 기사를 읽는 듯 하네요.
여왕이 최소한의 관여만 하는 모습, 총리가 스코들랜드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어 참 영국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영국 우체국이 민영화 되었다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어요. 그럼 더 이상 Royal Mail이 아닌거네요?

weekly 2014-09-19 23:11   좋아요 0 | URL
예, 저 엄청난 일을 참 영국스럽게 잘 치뤄낸 것 같습니다. 오늘 J K 롤링이 민주적인 절차로 일을 처리해 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고(트윗), 어제자 가디언 사설은 민주적 절차로 분리 독립 문제를 처리해 내는 영국의 모습을 세계는 부러워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엄청 부러운 일입니다.

로열 메일 이름은 그대로예요. 여기서도 팔릴 당시 헐값 매각 논란이 있었구요...

마태우스 2014-09-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많은 것을 알게해주는 글이네요 감사드립니다

weekly 2014-09-19 23:11   좋아요 0 | URL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