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지고 나서야 날개짓을 한다고 했던가... 혹은 내가 곧잘 하는 농담으로,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리면, 그래서 길이 끊기면 그때부터 철학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든지...


영국의 어떤 전직 판사 출신 아저씨가 신문에 기고하기를, 현대인들은 죽음을 너무 무서워하여 삶으로부터 죽음을 필사적으로 떼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안을 줄 알아야 하고, 그것과 동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봉쇄는 우리를 철학자가 되게 하고, 실존적 고민을 하게 하고, 현대적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더러는 근대성의 비판자들과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도 한다. 여튼 우리 시대의 실존의 조건이 폭압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실존의 조건은 이런 식의 사유조차 거의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선, 개인의 실존적 결단과 한 사회의 정책적 결정은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일반론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 개인의 실존적 결단이란 그로 인한 전적인 책임(설사 죽임에 이를지라도)을 자신이 온전히 받아안을 것임을 표명하는 것이지만, 이 치명적인 전염병 사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개인이 행한 전적으로 무해해 보이는, 전적으로 사적인 행동(이 좋은 봄날 공원에 나가 한가이 거니는 것)도 그 책임의 범위가 그 개인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실존의 조건에 따르면 그것은 단순히 우발성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질문을 돌이켜보게 된다. 현대적 삶에서 개인들은 원자화되었는가, 혹은 복잡한 네트워크의 한 계기일 뿐인가, 아니면 어떤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인 것인가? 우리는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할 수 있다. 답은, 셋 다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철학자들은, 전통적인 철학자들이 제출한 답들의 한계를 바로 지적할 수 있다. 그네들은 대상이라는 개념을 매우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 물론, 여기서 이 대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철학적 논술을 할 수는 없다. 이 글의 의도는 잡담을 하자는 것이므로...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김용옥씨가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하는 유튭의 일부를 봤다. 앞선 강의에서 고전 그리스 철학에 대해 강의를 한 듯 하고, 그 내용은 아마도 플라톤적인 이원론을 설명하는 것이었던 듯 하다. 가지계/감각계, 혹은 사물 존재/이데아 존재, 혹은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 혹은 무상한 것/영원한 것, 등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그럼 언어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요?" 순간 강사의 얼굴이 굳고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심오한 사유의 길로 통할 수 있는 질문을 피상적인 것으로 둔갑시킨 후에야 자신이 준비한 구도에 겨우 끼워 맞출 수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여학생은 플라톤의 정의를 벗어나는 존재의 예를 제시한 셈이다. 언어의 존재. 철학자들은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자이다. 바로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하이퍼-대상이든, 하이브리드든, 또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든. 공정하게 말하자면 플라톤 역시도 당대의 요구에 맞춰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자였다. 그의 경우는 이데아의 존재를. --- 그리하여 일반화시켜 말한다면 철학자는 현재에 대해 사유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을까?


(김용옥씨의 서양철학사에 대한 지식이 2, 300 페이지 짜리 철학사 한 권 이상이 아님은 이제 비밀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김용옥씨가, 자신이 약속한 대로 조선철학사를 결국에는 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동서양 철학에 식견을 갖고 있고 중국과 일본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학위를 한 분이라니, 경력상으로 이 이상의 사람을 20, 30년 안에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소용돌이 속에서 보면 한국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갖고 있는 나라인 듯 싶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역시 사상적인 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대영박물관 서점에 가보라. 중국과 일본 섹션은 책장 하나 둘씩 배정되어 있는데 한국 관련 서적은 단 한권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보면 나의 기대는 단지 기대일 뿐인 것 같다. 한국 갔다 오는 친구에게서 최한기의 "기학"이라는 책을 사오게 해서 대충 봤었다. 그리고 실망. 19세기 중반, 과장해서 말하면 두 개의 문명이 만난다. 그리고 두 문명의 만남의 양상은 몇 가지가 되지 않는다. 요컨대, 당시 조선을 기준으로 조선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몇 개 되지 않는다. 1). 배척한다. 2). 서양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것을 되돌아 보면서 개혁 노선을 취한다. 3). 취할 것은 취하고 배척할 것은 배척한다. 4). 거의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5). 둘을 융합하여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위의 선택지들의 상당 부분은 이론적인 것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튼, 최한기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한 것은, 이론적인 수준에서의 5)였다. 김용옥이 그렇게 광고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나의 그런 기대가 바보같은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식의 융합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몇 세대를 거쳐야 가능한 것이지, 한 사상가의 생애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뉴턴 앞에 갈릴레오 등이 있었듯이 최한기 앞에 그런 인물들의 축적이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누군가가, 마치 괴테의 작품들이 독일어의 표준화에 기여한 식으로, 한국 철학사의 정립에 기여하는 그런 작품을 당장 써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아마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이럴 것이다. 그런 작품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 그런 작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 것이라고. 몽상, 혹은 환각에서 깨어나자.)      


2. 코로나 바이러스

한 마디로 말하면 영국은 평온하다. 하루에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고 있지만 그 죽음들은 단지 숫자일 뿐이다. 뉴스에서는 그 죽음의 현장을 보도해 주지 않는다.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요양원에서의 환자들의 죽음 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만 집계한다).그러나 그 숫자가 어떻게 되는지, 그 양상이 어떤지에 대해서 뉴스는 침묵한다. 


내가 어저께 확인한 것을 기준으로 말하면 영국의 일일 검사량은 사람 기준 12000명 수준이다. 그리고 확진률은 40%가 넘는다. 그러므로 영국의 코로나 곡선은 당분간 상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문가를 대동하고 나와서 기자회견을 할 때, 어떤 전문가가, 검사한다고 다 양성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국 자료를 보면 95% 이상이 음성으로 나온다고 말하던 것이 생각난다.)


할 말은 무지 무지 많지만 ... 밥 먹을 시간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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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 

철학의 고전들은 대체로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다(물론 예외는 많다). 긴 문장에, 긴 문단에, 두터운 페이지. 그리하여 철학의 고전들을 읽는 방법도 대체로 정립되어 있는 것 같다. 가능하면 아침 시간에 2시간 정도를 들여 매일 매일 읽으라. 그리고 반복적으로 읽으라. 칸트를 번역한 최재희 교수의 말에 따르면, 칸트는 10번 정도 읽어야 감이 온다는 것이다. 결국은 시간을 아낌없이 채워넣으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퍼스도 칸트를 그렇게 2년 동안 읽었고, 하이데거도 후설의 <논리 탐구>를 읽고 또 읽었다고 고백한다.


나도 그러한 조언을 따라 철학의 고전들을 읽는다. (요즘은 후설과 씨름하고 있다.) 처음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읽었는데 몸에 이상이 오는 것 같아서 5시로 늦췄다. 그리고 요즘은 서머타임에 적응하지 못하여 5시 30분으로 또 늦췄다. 


반복적으로 읽고, 또 많이 쓴다. 그러면 이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 이해라는 것이 어떤 심오한 통찰을 의미하는가?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원래 거기에 글자 그대로 적혀 있었던 것을, 이전에는 어떤 신비한 이유로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이제는, 거기 그렇게 적혀 있으니 적혀 있는 대로 읽는 것 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경험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책의 저자가 그 말을 특정하게 정의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저자는 일반적 의미의 경험이라는 말의 사용을 아예 피할 수는 없다. 저자는 혼용하여 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독자로서는 그 둘을 잘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구별을 못하면 경험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는 문장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둘을 잘 구별할 수 있게된다고 해도 대수로운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칸트 책의 한 문장에 대해 삼 십분 동안 해설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철학적으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책을 꼼꼼히 읽다보면 오탈자를 많이 찾아내게 된다. --- 그런데 그것이 과연 대수인가? 그와 같다.   


2. 코로나 바이러스.

영국은 이제 하루 사망자가 600명에 육박하고 있다. 1000명을 넘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 정부를 비판하는데 신중하던 언론들도 이제는 폭발하고 만다.  


영국은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의료진에 대한 보호일 것인데, 보호 장비의 보급도 늦고, 의료진에 대한 코로나 검사도 지지부진하다. 장차 의료진에 대한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의료진이 여럿 사망한 상태이기도 하다. --- 준비는 전혀 안되어 있지만 어찌 어찌 운이 좋아서 최소한의 피해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으면 했지만 현실의 매서움 앞에 그런 희망은 너무도 갸냘픈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이제 영국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될까 하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일 사망자 1000명이 넘어서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 옆 나라 프랑스는 중국에서 마스크 몇 억장을 수입하고,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마스크 공장에 가서 마스크 생산량을 몇 배로 늘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영국에서는 마스크가 효용이 있는지 어떤지 과학적 분석을 하고 앉아 있다. 오늘 마스크에 대해 보도한 비비씨 방송의 마무리 말은 이랬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쓰려 한다면 의료진에 갈 마스크가 바낙나지 않을까요?" --- 이걸 왜 국민들에게 말하는지? 정부에 대고 해야 할 이야기 아닌가?  


이미 봉쇄가 내려진 상태이긴 하지만 운동, 산책 등을 이유로 한 외출은 허가된다. 우리도 매일 산책을 나간다.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지킨다. 길을 가다 맞은편에 사람이 오면 최대한 길 한 쪽으로 비켜선다. 그런데 그런 거리두기가 마트 안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마트에서 장보는 일이 가장 위험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가능한 마트에 가지 않기로 하고 있다.   


3. 로저 워터스.

로저 워터스는 올해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돌며 30회 이상의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도 8월달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리는 공연 티켓을 사놓은 상태였다. (공연 하나를 보려고 비행기 타고 뉴욕까지 날아간다는 것은 고전적으로 생각해서 미친 짓이지만, 아내와 나는 서로의 미친 짓을 막으려 하기 보다는 조장하는 스타일인지라 매번 미친 짓을 벌이고 만다...) 그런데 몇 칠 전에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공연을 내년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양반이 70대 후반의 나이를 향해 가는지라(43년 생이더라) 내년 일은 내년 가봐야 알 것 같다. 


(얼마 전 멕시코의 유대인 단체가 로저 워터스 보이콧 운동을 벌였고, 미국 프로야구 협회에서는 로저 워터스의 반-유대주의 의혹에 따라 로저 워터스 공연 광고를 다 치워버렸다고 한다. 그 이전에도 그런 식으로 스폰서가 여럿 취소되기도 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억압 정책을 비판하기만 해도 반-유대주의 의혹을 받는다. 그리고 반-유대주의라는 표딱지를 받는 것으로 공인(정치인, 예능인 등)의 경력이 끝날 수 있다. 나는 대학때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관련 강의를 들었었고 그 이후로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산 무화과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나온 로저 워터스 신보의 마지막 세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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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eoee 2020-04-1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weekly 님, 유럽에서도 그런 걸 강조하는 공부 문화가 있나요? 10번 읽기, 100번 읽기, 몇 년 붙들고 있기 등등... 타력을 강조하는 종교적 태도가 세속화된 건가, 싶기도 하고, 궁금하네요...!

weekly 2020-04-13 18:2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 제가 글을 좀 오해받게끔 쓴 것 같네요.:) 제가 알기로 서양에 그런 문화는 없구요. 근대 이전엔 서양에서도 인문학 = 주석학이었으니 확립된 고전을 거듭 읽는 것이 연구 활동의 거의 유일한 내용이었겠지만요... 제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퍼스(칸트), 하이데거(후설), 데리다(후설) 등에서처럼 고전에 대한 철두철미한 이해에 기반해서야 그만한 깊이의 후속 철학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논문들을 읽다보면, 이 저자는, 예컨대, 자신이 다루고 있는 후설의 그 저작을 거의 읽지 않았구나, 혹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제 나름으로 내린 결론이, 기본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동네 마트. 이제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마트 직원 한 명이 마스크를 쓴 채 한번에 서너 명씩만 마트에 입장시킨다. 그리고 보다시피 사람들이 2, 3미터 간격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 그러나 계산원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어제는 나도 휴지와 계란을 살 수 있었다.)


현재 영국의 분위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들기 직전의 긴장된 상태이다. 이미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아직은 이탈리아 수준으로 재앙적이지는 않다. 엊그제 어떤 뉴스에서 전문가들에게, 영국이 이탈리아의 운명을 따라갈 것인가에 대해 물었는데, 불행하게도 전문가들은 그렇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영국은 이번 주부터 모든 국민들이 가택 연금 상태다. 정부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집에 붙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 그리고 나는 한국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국민들에 대한 가택 연금 없이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고 있는지가 궁금하여 유튭을 뒤지기 시작한다.


내 생각에도 영국은 이탈리아의 전철을 따를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전면적인 가택 연금이 시작되었는데, 꼭 필요한 일, 이를테면 출근같은 경우는 예외였다. 그런데 월요일, 화요일(지금은 어떤지 확인해 보지 않았다) 런던 지하철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 마스크를 한 사람도 거의 없다. 영국 확진자의 1/3이 런던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상황인가?


한국 관련 유튭 동영상을 본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다.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 내부, 개찰구, 에스컬레이터 등을 일일이 방역하고 있다. 지하철 곳곳에 손세정제가 놓여 있다. --- 이러니 서울같은 대도시에서 소규모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감염자들이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대규모 감염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씨에서 방영한, 마스크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동영상을 본다.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댓글들은 일치단결해 있었다. 만일 마스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의료진들은 왜 마스크를 하는 것일까? 마스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싶어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살라는 얘기겠지? --- 그리고 이탈리아, 스페인 상황 뉴스를 본다. 그곳 사람들도 이제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방역하는 장면도 보인다. --- 이 모든 상황을 그동안 죽 지켜보았을 것이면서도 영국 정부는 그냥 손을 놓고 있다. 국민들에게 개인 보건을 철저히 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기가 막히는 뉴스는 의료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에게 보호 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잘 준비되어 있고 잘 보급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보호 장비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오늘 비비씨 뉴스 사이트에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국 의료진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보호 장비를 갖추고 있는가를 보도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 반면 영국 의료진들은 보호 장비가 부족하여 쓰레기 종량제 봉투로 두 발을 감싼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인공 호흡기라든지, 자가 진단 키트라든지 영국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쓰나미를 이겨내기 위한 방책으로 잘 준비되고 있다고 장담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자가 진단 키트를 곧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제조사에서는 정부에서 아무런 제조 오더도 받지 못했다는 식이다. 영국은 그냥 쓰나미를 쓰나미로 맞기로 했나 보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엊그제 영국 정부는 의료적 약자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등의 자원 봉사를 할 사람을 25만명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나도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튼 24시간만에 40만명이 자원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연대감으로 똘똘 뭉치는 것은 어느 사회나 비슷한 것 같다. --- 특히 이탈리아에서, 보호 장비도 제대로 없어서, 자신도 감염될 것이 뻔히 보임에도 환자들을 버리지 않고 진료하다 쓰러져간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특히 영국과 미국(그리고 아마도 일본)의 경우, 정치 지도자들이 사태를 얼마나 빨리 파악하고, 사태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리하여 얼마나 빨리 대책을 수립하느냐에 따라 피해의 규모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준비할 시간이 꽤 있었는데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이 외신을 통해 틈틈이 전해진다.(DW 뉴스같은) 


(여튼 이렇다... 우리도 집에 콕 박혀 있고, 어제는 올 들어 처음 잔디를 잘랐고, 마스크는 없지만 마트에 다녀와서는 꼬박꼬박 손을 씻고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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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 yeo 2020-03-27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 아니라 소상공인 대출이니 착한 임대인이니 하는 정책으로 시간을 끄는 실정에, ˝살려는 드릴게˝냐며, 그 다음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여하간 평소에 좋다고/나쁘다고 여겼던 특성들이, 현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기능을 하고 있어서 얼떨떨한 기분도 들어요. 지나치게 사소한 증상으로 과도하게 병원을 찾는다던 지적, 건강에 대한 집착이, 어느 순간 자발적인 예방을 하게 만든 것 같고요 (타인을 감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이유로 이뤄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의료인들의 순전히 기술적인 연대를 보면서, 도덕이라는 범주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좁은 땅에서 집약해서 살면서 유통인력을 갈아 넣은 만든 유통망 덕분에 사재기도 나오지 않은 것 같고요. 반대로 비말 감염이 아니기에 굳이 KF 인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건강하면 빨아쓰는 일반 면마스크를 껴도 된다고 하지만 강박적으로 일회용 KF94 마스크를 사려고 매일 약국 앞에 줄을 서고 힘들어 하는 풍경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 여하간 유럽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네요..

weekly 2020-03-27 17: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여러모로 같은 생각입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낙관적으로 침착성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것이 스테레오 타입이든 어떻든 간에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특성이 한국이 코로나 사태에 나름 잘 대처하고 있는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영국 엘리트 계급의 멜더스주의(이번의 경우에는 집단 면역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난)를 논외로 한다면, 영국이 이번 사태에서 보이고 있는 혼란스러움의 상당 부분은, 영국의 국가 모델이, 한국이 개입주의적이라고 한다면, 방임주의에 가깝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은 직전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대처하는데 무능함을 보였기 때문에 탄핵되었다는 특수성, 영국은 10년간의 긴축 재정으로 국가 의료 체계가 극도로 쇠약해 있는 상태라는 특수성 등 온갖 사항들이 다 고려되어야 하겠습니디만...). 사회-국가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시민들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한국 사회에서는 특유의 개입주의(흔히들 오지랖이라 하는)로,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로 나타날 것입니다. --- 어제 미국 입국자 하나가 코로나 유증상 상태에서 제주도 여행을 했다고 온갖 비난을 받는 장면을 봤습니다. 확증자 동선 공개(개인정보 공개)가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가장 나쁜 사례이기도 하지만, 이번 일로 차후 해외 입국자들이 지역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은 상당히 감소할 수 있겠지요. 이런 오지랖, 간혹은 전체주의적이라 비판당하기도 하고, ‘한국이 싫어서‘와 ‘헬조선‘에 있어 상당한 지분을 형성하는 이런 오지랖이 한국이 이번 사태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집 앞에 있는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8시에 문을 열지만, 아마도 7시 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을 것이다. 8개나 되는 계산대마다 카트들이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내와 나는 장바구니에 당장 필요한 것만을 담았다. 우리 앞 줄에 카트에 물건을 잔뜩 실은 영국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우리가 뒤에 서자 다른 물건을 더 사는 척 하며 뒤로 슬쩍 빠져주더라. 우리 바구니를 보고는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었다. ---영국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자기는 계산할 물건이 많고 저 사람은 소량이면 흔히들 자리를 양보해 준다. 암튼 사려고 했던 달걀과 화장지는 사지 못했다. 영국 여기 저기서 패닉 바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한국과 영국 정부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대처는 상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첨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법은 심각하게 형이상학적이다. --- 그 심오함에 나같은 범인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뜻이다. 한 열흘 전에 영국의 수상은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인구의 60%가 항체를 갖게 되면 바이러스는 더 이상 의학적 약자에게 침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 인구의 60%가 감염되도록 하는 것이 영국 정부의 정책인가? 아니면, 과학적 숙명론을 따라 우리가 무엇을 하든 인구의 60%는 감염이 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일까? 영국 정부의 정책 목표는 무엇일까? 한국의 경우는 조기 검진을 통해 감염자를 빨리 찾아내어 격리하고 치료하여, 추가 감염을 억제함과 동시에 치명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 수상이 강조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영국의 경우는 감염을 억제하거나 치명률을 낮추는 것이 정책 목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영국 방역 당국의 목표는 의료 체계의 붕괴를 막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러므로 영국의 과학자들은 텔레비젼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리 위험한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네들은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과학적 증거를 살펴 보면,' '과학적 증거에 따라' 라는 말을 꼬박꼬박 덧붙이지만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과학적 증거가 지금 도대체 얼마나 축적되어 있겠는가? 지금 치명률이 보수적으로 잡아도 1% 이상인데, 그렇게 되면 영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몇 만명이 죽어나가야 한다. 영국 수상이 매일 기자회견에 데리고 나오는 고문 과학자는 그런 이야기를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언론에 이야기한다. (어느 뉴스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이 과학자에게 집단 면역이 되려면 인구의 몇 퍼센트가 감염되어야 하는 것이냐고 물으니까 이 사람이 60%라고 대답했다. 진행자가 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다시 묻는다. 16%? 아니, 60%. 진행자의 헛웃음. 세상에 이런 블랙 코메디가! 그래서 나는 이 고문 과학자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고 부른다.)    


그래도 이번 주부터 영국도 정책 방향이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오늘(금요일)부터 학교를 닫을 것이며, 일일 검사 양을 확대할 것이며 등등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글쎄... 정책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기존 정책의 타임 라인에 따른 대책들인 것인가? 바뀐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나로서는 영국의 정책이 철학적으로 하도 심오해서 잘 판단하지 못하겠다. 만약 정책이 바뀐 것이라면 영국은 어마어마한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될 것이다. 이삼 주 안에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사태가 영국에 휘몰아칠 것이라 하면서도 영국 정부는 그것을 자연적(필연적, 피할 도리가 없는) 현상인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상은 충분히 확보되었는가? 의료진을 보호할 마스크 등의 수급은? 은퇴한 의료인이나 의과대 학생들을 동원할 필요는 없는가? 등등은 영국에서는 국가 단위에서가 아니라 해당 기관들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 아니 어제 오늘부터 부랴부랴 국가 단위에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 사람으로서 내게 답답한 것은, 영국 정부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 언론이 거의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국가적 재난 사태에 대해 정부에 힘을 실어 주고 국민적 통합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정부와 다른 목소리는 자제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한국의 언론들이 아무리 심각하게 정파적이고 비열해도 한국의 언론 지형이 영국처럼 획일적인 것보다는 지금의 사태에서 국민들을 더 안전하게 해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가 실수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승냥이 떼 속에서 한국 정부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투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조차 심각하게 정파적인 한국의 언론 상황은 물론 최악이지만, 정부가 영국 정부처럼 엉망인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 물론 그 근원에는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한국과 서구 사회가 서로 다른 경험을 겪었고, 그러므로 다른 관념, 다른 기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놓여 있을 것이다.


아침에 간 마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명 보았다(어디서 구했을까? 혹은 확진자일까?). 계산원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각 상점은 패닉 바잉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보면 감염세가 쉽게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 치료제나 백신이 어서 개발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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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에, 우리도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의 이마트에 해당하는, 테스코에 장을 보러 갔다. 물(커피 만들 때 쓸 용도), 화장지(화장지가 다 떨어져 갔으므로), 파스타(사태 장기화 대비용)를 사려고 했었는데, 물을 제외하고는 선반이 텅텅 비어 있었다. - 여기서 질문! 파스타야 그렇다치고 왜 사람들은 화장지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 멋대로의 생각으로는 화장지가 문명적 삶의 마지노선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근처 마트에 가서 화장지를 사는 데 성공했다. 개장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카트들이 떼로 몰려들어서 옴싹달싹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브랜드의 화장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도 곧 동이 나겠지 싶었다.)


엊그제 영국 총리가 봉쇄 정책에서 지연 정책으로 전염병 정책을 변경한다고 선언했다. 봉쇄 정책은 한국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발본색원 정책을 의미하는 것인 것 같다. 지연 정책으로 변경하겠다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광범위한 확산을 막는 것이 이제 불가능하니 과부하로 인한 의료 체계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검역, 역학 조사, 검사 등은 최소화하고, 중증 환자의 치료 위주로 해나가겠다는 뜻일 것이다. 총리는 경증 환자는 자가 격리(그러므로 자가 치료?)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다 만약 이탈리아처럼 중증 환자가 폭증한다면?) 


마트에 사람이 몰리고, 선반이 텅 비는 품목이 더러 생기는 것 말고는(아, 스포츠 경기들도 취소되고 있고 재택 근무가 늘고 있다), 아직 영국의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단,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못봤다. (그리고 나의 아내도 오늘 아침에 인도 출신 친구와 '기생충'을 보러 극장에 갔다. 기생충을 보고나면, 특히나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 같아서 차마 가지 말라고 말리지 못했다.)  

    

(서양 사람들은 마스크 쓰는 것을 싫어한다. 싫어한다? 이 말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차라리 마스크를 쓰고 동네나 동네 번화가를 다닐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고, 유난떤다는 시선을 받을지도 모른다. 동양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 주위의 시선을 더 의식한다는 말은 반쪽만 맞는 말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다. 다만 그 시선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문화마다 다를 뿐이다. 서양에서 그 시선은, 예컨대 털털하고 쿨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젊은 남자가 용모에 너무 신경을 쓴다면 주변으로부터 게이냐는 질책을 받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정말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야 할 것이다. 병이 더 광범위하게 퍼지고, 용기 있는 누군가가 하나 둘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 그리고 마스크 수급이 원활해지면, 그때서야 마스크를 쓰는 것이 쿨함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는 예외 조항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 오랜 만에 블로그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여튼 아까 유튭으로 한국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미국 NBC 방송에서인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한국에 대해 취재한 것이 있었다. 박원순 서울 시장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박원순 시장에게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얻은 교훈 한 두 가지를 말해 달라 하자, 박원순은 투명함과 신속함을 들었다. 후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전자transparency는 지금까지는 서양적인 가치로 여겨지던 것이었다. 찾아보면 동양의 사상적 근저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가치이지만... 나는 한국 정부가 투명성을 정책의 가장 커다란 기조 중 하나로 표방하고, 그것을 정책의 강점으로 내세운다는 점에 대단히 뿌듯함을 느낀다. 좋은 정부란 시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부이고, 이번 정부는 투명성이 얼마나 위대한 가치인지를 잘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직 한국이, 그리고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그래프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이번 사태가 운명과의 싸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이러스가 지수적으로 확장하는 그래프가 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른데도 감염 추이가 얼추 동일한 그래프를 따라가는 것 같다. 인간의 개입이 그래프의 기울기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인구의 반 이상이 감염될 수 있다는 경고를 통해 일종의 숙명론을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은 공격적인 발본색원 정책을 통해, 감염자 수준을 일정 수치 아래로 억제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는 듯 하다. 이 믿음은 한국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고, 당국의 정책 판단이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 정부는 이런 식의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공공 의료 자원은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현상 유지에 급급한 수준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운명과 씩씩하게 맞서 싸워서 최종적으로, 너무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승리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Wish people were all happy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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