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 우리도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의 이마트에 해당하는, 테스코에 장을 보러 갔다. 물(커피 만들 때 쓸 용도), 화장지(화장지가 다 떨어져 갔으므로), 파스타(사태 장기화 대비용)를 사려고 했었는데, 물을 제외하고는 선반이 텅텅 비어 있었다. - 여기서 질문! 파스타야 그렇다치고 왜 사람들은 화장지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 멋대로의 생각으로는 화장지가 문명적 삶의 마지노선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근처 마트에 가서 화장지를 사는 데 성공했다. 개장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카트들이 떼로 몰려들어서 옴싹달싹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브랜드의 화장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도 곧 동이 나겠지 싶었다.)


엊그제 영국 총리가 봉쇄 정책에서 지연 정책으로 전염병 정책을 변경한다고 선언했다. 봉쇄 정책은 한국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발본색원 정책을 의미하는 것인 것 같다. 지연 정책으로 변경하겠다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광범위한 확산을 막는 것이 이제 불가능하니 과부하로 인한 의료 체계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검역, 역학 조사, 검사 등은 최소화하고, 중증 환자의 치료 위주로 해나가겠다는 뜻일 것이다. 총리는 경증 환자는 자가 격리(그러므로 자가 치료?)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다 만약 이탈리아처럼 중증 환자가 폭증한다면?) 


마트에 사람이 몰리고, 선반이 텅 비는 품목이 더러 생기는 것 말고는(아, 스포츠 경기들도 취소되고 있고 재택 근무가 늘고 있다), 아직 영국의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단,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못봤다. (그리고 나의 아내도 오늘 아침에 인도 출신 친구와 '기생충'을 보러 극장에 갔다. 기생충을 보고나면, 특히나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 같아서 차마 가지 말라고 말리지 못했다.)  

    

(서양 사람들은 마스크 쓰는 것을 싫어한다. 싫어한다? 이 말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차라리 마스크를 쓰고 동네나 동네 번화가를 다닐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고, 유난떤다는 시선을 받을지도 모른다. 동양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 주위의 시선을 더 의식한다는 말은 반쪽만 맞는 말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다. 다만 그 시선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문화마다 다를 뿐이다. 서양에서 그 시선은, 예컨대 털털하고 쿨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젊은 남자가 용모에 너무 신경을 쓴다면 주변으로부터 게이냐는 질책을 받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정말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야 할 것이다. 병이 더 광범위하게 퍼지고, 용기 있는 누군가가 하나 둘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 그리고 마스크 수급이 원활해지면, 그때서야 마스크를 쓰는 것이 쿨함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는 예외 조항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 오랜 만에 블로그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여튼 아까 유튭으로 한국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미국 NBC 방송에서인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한국에 대해 취재한 것이 있었다. 박원순 서울 시장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박원순 시장에게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얻은 교훈 한 두 가지를 말해 달라 하자, 박원순은 투명함과 신속함을 들었다. 후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전자transparency는 지금까지는 서양적인 가치로 여겨지던 것이었다. 찾아보면 동양의 사상적 근저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가치이지만... 나는 한국 정부가 투명성을 정책의 가장 커다란 기조 중 하나로 표방하고, 그것을 정책의 강점으로 내세운다는 점에 대단히 뿌듯함을 느낀다. 좋은 정부란 시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부이고, 이번 정부는 투명성이 얼마나 위대한 가치인지를 잘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직 한국이, 그리고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그래프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이번 사태가 운명과의 싸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이러스가 지수적으로 확장하는 그래프가 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른데도 감염 추이가 얼추 동일한 그래프를 따라가는 것 같다. 인간의 개입이 그래프의 기울기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인구의 반 이상이 감염될 수 있다는 경고를 통해 일종의 숙명론을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은 공격적인 발본색원 정책을 통해, 감염자 수준을 일정 수치 아래로 억제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는 듯 하다. 이 믿음은 한국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고, 당국의 정책 판단이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 정부는 이런 식의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공공 의료 자원은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현상 유지에 급급한 수준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운명과 씩씩하게 맞서 싸워서 최종적으로, 너무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승리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Wish people were all happy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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