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로 덮여 있던 가든의 나머지 절반 부분(파트 투라고 부른다)에 작은 언덕들이 있어서 그것을 까내고 체로 걸러서 좋은 흙은 벌크백에 담고 잔돌이나 진흙인 것은 모아다 스킵에 버리는 작업을 이번 주 초에 마쳤다. 


목재와 철망을 사다가 체를 만들어 작업을 하루 해보고는 작업 진도도 너무 느리고 허리도 아파서, 저 많은 흙더미를 이런 식으로 언제 다 처리하나 하고 좌절감에 빠졌었다(쏘울-디스트로잉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계를 몇 칠 대여해 사용해 보았지만 흙이 젖어 있어서 손으로 하는 것보다 효율이 더 나빴다.  


결국 하던 대로, 삽으로 흙을 체에 붓고 손으로 일일이 문질러서 고운 흙을 골라내는 식으로 작업해야 했다. 그래서 1톤짜리 벌크백 22개와 마대자루 33개 분량의 고운 흙을 골라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스킵 하나로 이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또, 나중에 잔디를 깔 때 따로 표층흙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 미친 짓이었지만 암만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은 열흘 정도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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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이념들 1> 하나만을 끝까지 읽었다. 이러 저러한 것들을 상수로 할 때 변수로 끼여 든 것은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시리즈였다. 이걸 보려고 네플릭스 가입까지 했고(영국은 한달 무료, 이런 것이 없다), 덩달아 <길모어 걸스>를, 시청한 순서대로. 7, 5, 6 시즌까지 봐버렸다. (주로 세수할 때 보기는 했지만)  


나의 아저씨: 1, 2 회를 볼 때는 기가 막힌 드라마가 여기 있구나 하는 감탄을 거듭 했으나 곧 열기가 사그라들기는 했다. 여튼 한류가 그저 이름은 아닌게로구나, 다 이유가 있는 게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해 너무 가르치려든다거나, 대사가 중언부언한다든가, 술집을 배경으로 한 일본식 드라마 아닌가, 하는 등등의 비판도 있을 것 같다. 혹은 있었을 것 같다.


길모어 걸스: 이번에 후반 시즌들을 보면서 드라마를 형식적으로 틀짓는 구조들에 관심이 갔다. 즉, 계급 갈등과 세대 갈등. 계급 갈등은 길모어 할머니-할아버지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계급과, 식당 주인 루크를 포함하는 스타스 할로우 주민들 사이의 이질성을 뜻하고, 세대 갈등은, 길모어 할머니-할아버지와 레인의 엄마 김여사로 대표되는 부모 세대와, 로렐라이로 대표되는 자식 세대 사이의 이질성을 뜻한다. 전자들은 존재의 튼실함에 기반해 있고 후자들은 상대적으로 존재의 가벼움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 계급에 속하지만 아시아 출신 부모 세대라고 할 수 있는 김여사는 바로 이런 점에서 길모어 집안의 노인들(화이트 부르주아)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들 부모 세대들은 결혼 등을 통해 자신의 집단에 들어오려는 사람에 대해 배타적이고 속물적인 검증을 하지만, 맘에 들던 들지 않던 자신의 집단의 구성원으로 일단 인정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존재의 튼실함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존재의 튼실함에 대한 부정성을 인물화한 것이 로렐라이라는 캐릭터다. 그러므로, 부정적 관계 속에서이기는 하지만 로렐라이라는 인물에게도 존재의 튼실함의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렐라이의 딸 로리에게는 존재의 튼실함의 세계에 대한 부정의 관계조차 없다. 그러므로 로리의 존재는, 길모어 할아버지가 표현한 대로, 드리프트하는 것으로 조건지워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로리의 성장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것으로 조건지워져 있는, 혹은 운명지워져 있는, 로리에게 그 가능성이 결국 운명이 되어 버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나는 이 극의 작가가 로리를 애초부터 그런 성격의 인물로 설정해 놓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리버럴한 부모들에게서 자란 아이들의 이런 방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니까. 


다음은 11월에 읽은 책:

1. <이념들 1>, 후설: 지루한 초반부를 지나고나면 뭔가 설득력 있는 전망이 제시되는 절이 시작되어 기대를 품게 하지만, 현상학적 환원에 대한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별로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끝내고나면 후설의 이념에 경도된 철학자들의 책을 찾아,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전향을 하게 한 것인가를 알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후반부에 접어들자 매우 흥미롭고 구체적인 분석이 이어져서 일단 후설을 계속 파봐야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다시 긍정하게 되었다. 아마 다시 이 책을 읽게 될 즈음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될 것 같다.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한 책:

1. <후설의 ‘이념들 1’의 핵심>, 폴 리퀘르: 후설의 책에 대한 주석서다. 서론 부분만 읽었다. <이념들 1>을 다시 읽을 때 참고하면서 읽게 될 것이다.

2. <현상학>, 한전숙: 한국에서 가져온 책. 독자 친화적인 책이기 때문에, 즉 반복적이고 깊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일종의 용어 사전으로 활용하다가 후반 장부터 제대로 읽어나갔다. 내가 직접 읽은 후설과 이 책 사이의 간격이,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이루고 있는 진보의 지표다. 진보에 대한 느낌이 대부분의 경우 환상일 뿐이긴 하지만.

3. <내적 시간 의식의 현상학>, 후설: 전반부는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어느 순간 흐름을 놓쳤다.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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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한 쪽을 깍아서 다른 쪽에 쌓아 놓은 더미. 정원을 평평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사진으로는 작아보이지만 꽤 커다란 이런 더미가 두 개나 있다.  보통은 뚜껑이 없는 작은 콘테이너('스킵'이라고 한다)를 대여해서 이런 흙이나 돌부스러기 등을 처리한다. 그런데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서 체를 만들어서 좋은 흙과 잡부스러기를 분리해내고 있다. 좋은 흙('톱 쏘일'이라고 한다) : 잡부스러기 = 5:1 정도? 분류 효율은 좋지만 시간을 무척 잡아먹는다. 허리도 아프고. (바로 옆에 돼지 두 마리가 보인다. 그러므로 냄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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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을 만들고 그 위에 프라이버시용으로 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잎이 거의 다 떨어져서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키도 펜스를 넘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작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키가 큰 나무는 비싸다. 화단 벽은 만들지 않고 턱을 약간 경사지게 해서 잔디로 버텨볼 생각이다. 땅 깍는 일은 한도 끝도 없다. 시간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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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2020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해로 기억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영국에서는 첫 번째 기나긴 롹다운이 있었고 이제 두 번째 롹다운이 코 앞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속에서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는다. 그 첫 번째가 자전거 타기다. 올해 영국에서는 자전거가 엄청나게 팔렸다. 그래서 나도 샀고 여름 동안 열심히 타고 다녔다. 악기 배우기도 인기다. 그래서 나도 15 파운드 짜리 중고 기타를 하나 샀다. 올해 안에 5곡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재 연주 가능 곡은 물론 하나도 없다. 롹다운 때문에 가든이 딸린 집(하우스라고 한다)의 수요가 높아졌다. 마침 나도 가든의 뒷 절반 부분의 정글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영국에서도 서점이 사양 산업인데 올해는 첫 번째 롹다운 직전까지 서점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올해를 돌이켜보면서 나도 좀 유식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가능한 많이 읽자는 다짐을 했다. 요컨대, 무엇보다도 2020이 나의 유식함의 시작 해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은 10월에 읽은 책들이다.

1. 폴 리퀘르. 리건: 리퀘르에 대한 간단한 평전, 논문, 인터뷰 등을 모은 책. 재미있게 읽었다.

2. 무의식. 매킨타이어: 내가 원한 것은 무의식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였지만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만 다루고 있었다. 저자는 무의식은 임상적으로든 실험적으로든 검증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내가 알고 싶었던 바다.

3. 해석의 갈등. 폴 리퀘르: 처음으로 읽은 리퀘르의 저작. 재미 있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척 많기 때문에 따로 리뷰를 쓰고 싶다. 나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한 부분만 말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의식과 언어가 내적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4. 현상학 해설. 데트머: 후설의 저작들을 차례로 따라가며 설명하는 책. 그러므로 책 제목이 좀 잘못된 듯 하다. 그저 그런 책.

5. 사르트르의 두 가지 윤리학. 앤더슨: 조잡한 책. 사르트르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을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르트르의 철학 자체가 피상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나는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6. 이념들 2. 훗설: 훗설의 기획, 그러니까 환원과 구성의 의미에 대해 조금씩 감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후설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분석들을 따라가다보니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고야 말았다.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시작했으나 아직 끝내지 못한 책.

1. 지각의 심리학. 버넌.

2. 데리다와 훗설. 롤러: 데리다를 중심으로 한 저작들을 차례로 해설하는 책인데 데리다에 대한 탁월한 해설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데리다에 대한 해설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3. 이성의 위기. 버로우. 일종의 사상사인데 그렇게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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