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네 마트. 이제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마트 직원 한 명이 마스크를 쓴 채 한번에 서너 명씩만 마트에 입장시킨다. 그리고 보다시피 사람들이 2, 3미터 간격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 그러나 계산원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어제는 나도 휴지와 계란을 살 수 있었다.)


현재 영국의 분위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들기 직전의 긴장된 상태이다. 이미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아직은 이탈리아 수준으로 재앙적이지는 않다. 엊그제 어떤 뉴스에서 전문가들에게, 영국이 이탈리아의 운명을 따라갈 것인가에 대해 물었는데, 불행하게도 전문가들은 그렇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영국은 이번 주부터 모든 국민들이 가택 연금 상태다. 정부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집에 붙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 그리고 나는 한국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국민들에 대한 가택 연금 없이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고 있는지가 궁금하여 유튭을 뒤지기 시작한다.


내 생각에도 영국은 이탈리아의 전철을 따를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전면적인 가택 연금이 시작되었는데, 꼭 필요한 일, 이를테면 출근같은 경우는 예외였다. 그런데 월요일, 화요일(지금은 어떤지 확인해 보지 않았다) 런던 지하철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 마스크를 한 사람도 거의 없다. 영국 확진자의 1/3이 런던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상황인가?


한국 관련 유튭 동영상을 본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다.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 내부, 개찰구, 에스컬레이터 등을 일일이 방역하고 있다. 지하철 곳곳에 손세정제가 놓여 있다. --- 이러니 서울같은 대도시에서 소규모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감염자들이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대규모 감염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씨에서 방영한, 마스크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동영상을 본다.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댓글들은 일치단결해 있었다. 만일 마스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의료진들은 왜 마스크를 하는 것일까? 마스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싶어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살라는 얘기겠지? --- 그리고 이탈리아, 스페인 상황 뉴스를 본다. 그곳 사람들도 이제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방역하는 장면도 보인다. --- 이 모든 상황을 그동안 죽 지켜보았을 것이면서도 영국 정부는 그냥 손을 놓고 있다. 국민들에게 개인 보건을 철저히 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기가 막히는 뉴스는 의료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에게 보호 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잘 준비되어 있고 잘 보급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보호 장비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오늘 비비씨 뉴스 사이트에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국 의료진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보호 장비를 갖추고 있는가를 보도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 반면 영국 의료진들은 보호 장비가 부족하여 쓰레기 종량제 봉투로 두 발을 감싼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인공 호흡기라든지, 자가 진단 키트라든지 영국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쓰나미를 이겨내기 위한 방책으로 잘 준비되고 있다고 장담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자가 진단 키트를 곧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제조사에서는 정부에서 아무런 제조 오더도 받지 못했다는 식이다. 영국은 그냥 쓰나미를 쓰나미로 맞기로 했나 보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엊그제 영국 정부는 의료적 약자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등의 자원 봉사를 할 사람을 25만명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나도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튼 24시간만에 40만명이 자원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연대감으로 똘똘 뭉치는 것은 어느 사회나 비슷한 것 같다. --- 특히 이탈리아에서, 보호 장비도 제대로 없어서, 자신도 감염될 것이 뻔히 보임에도 환자들을 버리지 않고 진료하다 쓰러져간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특히 영국과 미국(그리고 아마도 일본)의 경우, 정치 지도자들이 사태를 얼마나 빨리 파악하고, 사태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리하여 얼마나 빨리 대책을 수립하느냐에 따라 피해의 규모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준비할 시간이 꽤 있었는데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이 외신을 통해 틈틈이 전해진다.(DW 뉴스같은) 


(여튼 이렇다... 우리도 집에 콕 박혀 있고, 어제는 올 들어 처음 잔디를 잘랐고, 마스크는 없지만 마트에 다녀와서는 꼬박꼬박 손을 씻고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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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 yeo 2020-03-27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 아니라 소상공인 대출이니 착한 임대인이니 하는 정책으로 시간을 끄는 실정에, ˝살려는 드릴게˝냐며, 그 다음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여하간 평소에 좋다고/나쁘다고 여겼던 특성들이, 현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기능을 하고 있어서 얼떨떨한 기분도 들어요. 지나치게 사소한 증상으로 과도하게 병원을 찾는다던 지적, 건강에 대한 집착이, 어느 순간 자발적인 예방을 하게 만든 것 같고요 (타인을 감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이유로 이뤄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의료인들의 순전히 기술적인 연대를 보면서, 도덕이라는 범주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좁은 땅에서 집약해서 살면서 유통인력을 갈아 넣은 만든 유통망 덕분에 사재기도 나오지 않은 것 같고요. 반대로 비말 감염이 아니기에 굳이 KF 인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건강하면 빨아쓰는 일반 면마스크를 껴도 된다고 하지만 강박적으로 일회용 KF94 마스크를 사려고 매일 약국 앞에 줄을 서고 힘들어 하는 풍경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 여하간 유럽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네요..

weekly 2020-03-27 17: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여러모로 같은 생각입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낙관적으로 침착성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것이 스테레오 타입이든 어떻든 간에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특성이 한국이 코로나 사태에 나름 잘 대처하고 있는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영국 엘리트 계급의 멜더스주의(이번의 경우에는 집단 면역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난)를 논외로 한다면, 영국이 이번 사태에서 보이고 있는 혼란스러움의 상당 부분은, 영국의 국가 모델이, 한국이 개입주의적이라고 한다면, 방임주의에 가깝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은 직전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대처하는데 무능함을 보였기 때문에 탄핵되었다는 특수성, 영국은 10년간의 긴축 재정으로 국가 의료 체계가 극도로 쇠약해 있는 상태라는 특수성 등 온갖 사항들이 다 고려되어야 하겠습니디만...). 사회-국가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시민들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한국 사회에서는 특유의 개입주의(흔히들 오지랖이라 하는)로,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로 나타날 것입니다. --- 어제 미국 입국자 하나가 코로나 유증상 상태에서 제주도 여행을 했다고 온갖 비난을 받는 장면을 봤습니다. 확증자 동선 공개(개인정보 공개)가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가장 나쁜 사례이기도 하지만, 이번 일로 차후 해외 입국자들이 지역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은 상당히 감소할 수 있겠지요. 이런 오지랖, 간혹은 전체주의적이라 비판당하기도 하고, ‘한국이 싫어서‘와 ‘헬조선‘에 있어 상당한 지분을 형성하는 이런 오지랖이 한국이 이번 사태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