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집 앞에 있는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8시에 문을 열지만, 아마도 7시 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을 것이다. 8개나 되는 계산대마다 카트들이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내와 나는 장바구니에 당장 필요한 것만을 담았다. 우리 앞 줄에 카트에 물건을 잔뜩 실은 영국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우리가 뒤에 서자 다른 물건을 더 사는 척 하며 뒤로 슬쩍 빠져주더라. 우리 바구니를 보고는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었다. ---영국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자기는 계산할 물건이 많고 저 사람은 소량이면 흔히들 자리를 양보해 준다. 암튼 사려고 했던 달걀과 화장지는 사지 못했다. 영국 여기 저기서 패닉 바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한국과 영국 정부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대처는 상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첨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법은 심각하게 형이상학적이다. --- 그 심오함에 나같은 범인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뜻이다. 한 열흘 전에 영국의 수상은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인구의 60%가 항체를 갖게 되면 바이러스는 더 이상 의학적 약자에게 침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 인구의 60%가 감염되도록 하는 것이 영국 정부의 정책인가? 아니면, 과학적 숙명론을 따라 우리가 무엇을 하든 인구의 60%는 감염이 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일까? 영국 정부의 정책 목표는 무엇일까? 한국의 경우는 조기 검진을 통해 감염자를 빨리 찾아내어 격리하고 치료하여, 추가 감염을 억제함과 동시에 치명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 수상이 강조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영국의 경우는 감염을 억제하거나 치명률을 낮추는 것이 정책 목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영국 방역 당국의 목표는 의료 체계의 붕괴를 막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러므로 영국의 과학자들은 텔레비젼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리 위험한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네들은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과학적 증거를 살펴 보면,' '과학적 증거에 따라' 라는 말을 꼬박꼬박 덧붙이지만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과학적 증거가 지금 도대체 얼마나 축적되어 있겠는가? 지금 치명률이 보수적으로 잡아도 1% 이상인데, 그렇게 되면 영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몇 만명이 죽어나가야 한다. 영국 수상이 매일 기자회견에 데리고 나오는 고문 과학자는 그런 이야기를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언론에 이야기한다. (어느 뉴스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이 과학자에게 집단 면역이 되려면 인구의 몇 퍼센트가 감염되어야 하는 것이냐고 물으니까 이 사람이 60%라고 대답했다. 진행자가 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다시 묻는다. 16%? 아니, 60%. 진행자의 헛웃음. 세상에 이런 블랙 코메디가! 그래서 나는 이 고문 과학자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고 부른다.)    


그래도 이번 주부터 영국도 정책 방향이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오늘(금요일)부터 학교를 닫을 것이며, 일일 검사 양을 확대할 것이며 등등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글쎄... 정책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기존 정책의 타임 라인에 따른 대책들인 것인가? 바뀐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나로서는 영국의 정책이 철학적으로 하도 심오해서 잘 판단하지 못하겠다. 만약 정책이 바뀐 것이라면 영국은 어마어마한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될 것이다. 이삼 주 안에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사태가 영국에 휘몰아칠 것이라 하면서도 영국 정부는 그것을 자연적(필연적, 피할 도리가 없는) 현상인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상은 충분히 확보되었는가? 의료진을 보호할 마스크 등의 수급은? 은퇴한 의료인이나 의과대 학생들을 동원할 필요는 없는가? 등등은 영국에서는 국가 단위에서가 아니라 해당 기관들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 아니 어제 오늘부터 부랴부랴 국가 단위에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 사람으로서 내게 답답한 것은, 영국 정부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 언론이 거의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국가적 재난 사태에 대해 정부에 힘을 실어 주고 국민적 통합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정부와 다른 목소리는 자제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한국의 언론들이 아무리 심각하게 정파적이고 비열해도 한국의 언론 지형이 영국처럼 획일적인 것보다는 지금의 사태에서 국민들을 더 안전하게 해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가 실수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승냥이 떼 속에서 한국 정부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투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조차 심각하게 정파적인 한국의 언론 상황은 물론 최악이지만, 정부가 영국 정부처럼 엉망인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 물론 그 근원에는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한국과 서구 사회가 서로 다른 경험을 겪었고, 그러므로 다른 관념, 다른 기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놓여 있을 것이다.


아침에 간 마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명 보았다(어디서 구했을까? 혹은 확진자일까?). 계산원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각 상점은 패닉 바잉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보면 감염세가 쉽게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 치료제나 백신이 어서 개발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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