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곳 영국 시간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투표 상황과 개표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 친구에게 문자로 출구 조사 결과를 알려 주었더니 "Oh, my god!"이라는 한탄이 돌아왔다. 젠장!

2. 어젯밤 친구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여론 조사 기간 동안 문재인이 서울, 경기에서 박근혜를 선명하게 앞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걸 한국 사회가 극도로 보수화된 결과라고 받아들인다. 내게 있어 보수화의 징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성형 수술이 만연하는 것, 아이를 하나만 낳는 가정이 엄청 많아 진 것, 유치원 입학 때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것 등등이다. 즉, 사회 구성원 사이에 자력 구제의 경향이 심화되는 것을 나는 보수화의 징표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것들은 주로 젊은 세대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러나 어짜피 노장년 층의 보수화 경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3. 나는 이번 선거를 세대 간의 싸움이나 박정희 향수에 대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양극화 문제보다는 증세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부드러운 리더쉽보다는 그것이 야기할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박근혜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투표율이 70 퍼센트 중반이 넘었음에도 박근혜가 과반으로 당선되었다면 그것은 어느 특정 세대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고, 그러므로 보수화 역시 그러하리라. 이러한 경향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이번 선거가 그 계기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이번 선거가 그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4. 어쨌거나 이번 선거 결과는 절대적으로 기성 세대들이 선택한 것이다. 기성 세대들은 아우성을 치며 젊은 세대를 머릿 수에서 찍어 누르고 새누리당 정권을 연장시켰다. 그러므로 그 책임도 전적으로 기성 세대들이 져야 한다. 그 결과가 나오는 데에는 길어야 1, 2년일 것이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기성 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기를 소망한다. -나는 낙관주의자다.

5. 그러므로 진보 진영이 해야 할 일은 총선을 준비하며 전열을 가다듬는 일일 것이다. 첫째, 노무현 현상은 파산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한국 사회의 보수화는 김대중, 노무현 등의 민주화 정권에서 심화되었다. 물론, 당시는 IMF와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정권들을, 그 정권의 정책들을 큰 틀에서 지지했었다(한미 FTA 등등).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의 통찰과 비젼이 극히 협소했었다는 것이다. 그 비젼들, 그 정서들과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려 놓고 완전히 해체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라는 브랜드의 경쟁력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지나치도록 충분히 증명했다. 현재 야권의 선택은 안철수 중심으로 당을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민주당 사람들이 백의종군할 차례다.

6.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인 시대를 큰 실망감 없이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의 품격에 맞는 대통령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아직 바닥이 아니었다면 박근혜까지 가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 책임 소재가 너무도 분명하다. 선거가 극명하게 세대 대결로 갈렸고 젊은 세대가 머릿 수 싸움에서 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선거가 기성 세대들의 발언권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빌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극도로 심화된 보수화 경향을 되돌릴 계기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나는 낙관주의자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이 글도 쓰지 않았을 텐데... 암튼 계속 잠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2-12-2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수 중에 반가운 글 써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weekly 2012-12-20 19:16   좋아요 0 | URL
아, 안녕하셨어요? 어제 결과에 충격을 받아서 주변에서 시민권을 신청했다는 소리도 들리고, 시민권을 신청하겠다는 소리도 들리네요. 뉴스를 보니 투표 당일날 여론 조사에서는 문재인이 다 이겼다는 얘기가 있네요. 그것이 뒤집어 진 것은 50대의 90% 가까운 투표율 때문이라는 것이고... 박정희 향수고 이념이고 지역이고를 떠나 젊고 똑똑해 보이는 여성이 노년에 접어든 여성을 모질게 조롱하고 공격하는 모습에 이분들이 정서적 결집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그 장면들을 보면서 낄낄대고 속시원해 했기에, 진보 진영들이 현장의 정서에 무감한 채 범하는 실수들에 대해 이제 철저하게 돌이켜 봐야 할 것이라는 반성을 하게 되더군요. 노년층 분들 중에 일제나 독재 시대에 향수를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은 그 분들이 무식해서, 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들이 그 시대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보 진영의 진정성은 그러한 정서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한 진보 진영은 그 분들에게 또 하나의 '공주님'일 뿐이겠지요. 저는 이런 것을 이번 대선을 통해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서, 감정이 전부일 수는 없겠죠. 현실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라는 것이겠죠. 이번 대선은 어떻게 하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둘 이상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이제는 개인들이 아득 바득 자력구제하지 않고 사회적 연대에 대해 주의를 돌려 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공감을 형성해 내는 계기여야 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상당 부분 그런 합의가 이루어 졌다고 봅니다. 복지와 경제 민주화가 이번 대선의 주 의제가 되어 박근혜도 그에 참여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노장년 층들은 그 사회적 의제를 한강에 갖다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이유는 중요치 않죠. 결과만 의미있죠. 현실은 그렇게 냉정할 것이고, 그 책임은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그 책임 소재가 너무도 분명한 선거라고 봅니다. 50 대 이상의 노년층이죠. 너무 튀었거든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이 그에 대한 멍에를 지금껏 지고 있듯이 이분들도 그런 책임에서 오랜 기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시대가 힘들면 힘들수록 말이죠...

쳇, 또 너무 말이 많았네요...-.- 종종 들르셔서 좋은 말씀 주시는 것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며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동반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미리 기원 드릴께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