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재 궁구하고 있는 부분은 지난 번 이 카테고리에서 말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내게 있어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자이고, 그것은 그의 실체-양태 이론으로 구체화된다. 나는 지금 이 이론의 주변을 뒤집고 다니고 있다. 


럿셀은 그의 철학사에서 철학을 과학과 종교 사이의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다면 나는 단순하게 철학 일반, 혹은 형이상학을 지식의 최전선, 혹은 주변부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활동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여러 제약 조건들을 걸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요점은 철학은 지식의 양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가?) 그리고 지식의 양태들은 당연히 시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17세기, 18세기 유럽, 특히 스피노자가 살았던 네덜란드라는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요즘 네덜란드 출신 저자들이 스피노자 등에 관해 쓴 문헌들을 주로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꽤나 놀라게 된다. 이 저자들은 자기네 옆 동네에서 이, 삼백 년 전에 살았던 어떤 인물의 흔적을 추적하듯이 스피노자를 연구한다. 그렇게 수집된 구체적인 자료들이 풍기는 생생함은 어느 방법론 따위에 비길 바가 아니다. 예컨대, 에티카 한 권을 책상 위에 놓고 그것의 내적, 논리적 구조를 치밀하게 추적하는 작업은, 때로는 정말로 허망한 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적 게으름을 정당화해주는 방법론에서 오는 허망함.)


물론 네덜란드 출신 학자들의 연구들이 나의 애초 기획을 흔들 수도 있다. 예컨대, 나는 스피노자 사후 그의 철학은 아주 잊혀졌다가 독일에서의 스피노자 르네상스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고, 기존의 설명을 따라갔었다. 그러나 사태가 꼭이 이렇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네덜란드 출신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나는 이제 안다. - 그러나 애초 내가 스피노자를 형이상학자로 다루고자 했을 때 내 머리 속에 있던 그 형이상학의 정체는, 근대 네덜란드라는 시간성을 고려하자 더 명석해지고 판명해졌다. 이대로 쭉 가도 될 것 같은데?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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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11-15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그 느낌이 뭘까요? 저도 느껴보고 싶은 느낌입니다..ㅎㅎ

러셀-비트겐슈타인을 지나...이제는 스피노자인가욤??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 동시대 사람들이 스피노자를 연구한 결과물은 어떤지...우리나라에서는 구경도 해 볼 수 없겠죠? 좋은 문헌들을 접하고 계시네요~ 유학의 장점이 이런 것이겠죠!^^

스피노자 전기를 보면 당시 스피노자가 파문당했을 시 동시대 플랑드르 지역 사람들은 스피노자를 매우 비난했다는데...당시 사람들이 스피노자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하네요~

weekly 2024-11-16 02:29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그 ‘느낌‘이란 건 애초 생각대로 진행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 확신감... 이런 거예요. - 전문용어로 ‘착각‘, ‘혹은 ‘환상‘, 이런 것일지도요...

아마 철학도라면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철학자들이 있을 텐데요... 저는 스피노자였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때 요긴한 철학자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덜란드 사람들이 스피노자 연구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이이, 이황 연구하는 것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예컨대, 직접 오죽헌을 가볼 수 있고, 그 건축물의 문화적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잖아요? - 인터넷 시대이다보니 관련 문헌들은 검색해보면 웹에서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