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사퇴 이후 현재 지지율은, 박빙이긴 하지만 박근혜가 우세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박근혜는 이 추세를 선거날까지 그대로 끌고 가면 된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닌 한 텔레비젼 토론에 참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국을 돌면서 박근혜를 이렇게 열렬히 지원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테레비젼 화면으로 전국에 과시하기만 하면 된다.
문재인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계기가 필요하다. 두 가지 계기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텔레비젼 토론이다. 박근혜가 테레비젼 토론을 계속 피하고 있기 때문에 법정 테레비젼 토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고, 박근혜가 현재 유세를 하면서 독한 말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테레비젼 앞에 앉았을 때 미처 분위기 적응을 하지 못하고 큰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첫 법정 테레비젼 토론이 문재인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 같다. (물론, 한국 정치에서 테레비젼 토론에 큰 영향력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다른 하나는 물론 안철수다. 나는 안철수가 후보 사퇴를 하면서, 만일 그가 정치를 계속 할 생각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오직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즉, 문재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다. 만일 문재인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거나 불명확하게 한다면,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안철수의 정치 경력은 사실상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엔 팽, 후자의 경우엔 대선 패배의 원흉)
안철수는 또다른 옵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문재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즉 옷에 때를 묻히지 않으면서 이번 대선 기간을 조용히 보내고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 아마 안철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리라.
첫째, 정치는 지지층을 위한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좋으냐? 그럼 이걸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아 보자! 이런게 정치다. 안철수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안철수라는 개인에 대한 즉흥적이고 우호적 "감정"이 그런 프로그램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감정들은 어제 내린 눈과 같이 실체가 없다. 안철수가 지혜롭다면 현상을 실체로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능동적인 개입을 통해서!
둘째, 정치는 어떤 형식으로든 결국 개입이다. 지금 돌아가는 판국을 보라. 박근혜가 단독 토론하는 것을 보았는가? 그는 공정성 차원에서 단독 토론을 요구한다고 하였지만 그 토론의 형식과 내용은 박근혜에 대한 철저한 특혜였다. 저 사람들이 말하는 공정, 정의, 국민이라는 단어들의 실내용이 다 이런 것들이다. 저 사람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념과 네가티브로 선거 국면을 한사코 정책과 인물 대결 양상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반칙들이 새정치의 혁신 대상 아니던가? 안철수가 입으로 말하던 새정치는 그저 단어일 뿐이었을까? 지금 대선판에서 이런 반칙들을 지적하고 룰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바로 안철수 당신이다! 안철수는 시민들이 새정치에 대한 염원으로 모아준 힘을 지금 바로 쓸 수 있다. 그토록 새정치와 정권 교체를 말해왔지 않은가? 안철수는 개입을 통해 새정치를 현실 안으로 끌어올 수 있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안할 수도 있다. 민주당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싫다면, 혹은 민주당과 한 묶음으로 엮이기 싫다면... 그러나 어쨌든 불개입도 개입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갖고 있는 힘의 포기다.
셋째, 그러므로 안철수가 결국 대선 불개입을 선택한다면, 아마 누구도 5년 후 안철수를 대선에서 또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정치는 활발한 의견 교환의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열리지 않는 신탁과 같은 정치인은 박근혜와 2012년의 안철수로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어쨌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오바마와 정상회담을 하는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영국에서 12월8일쯤에 부재자 투표를 할 것이고, 전진을 위해 또 한 발을 떼는 나의 사랑하는 한국을 기대하며 여기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석사 학위 마칠 때까지 블로그는 접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