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는 철학계의 갈로와와 같은 사람이다. 너무 일찍 죽었고 많은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지만, 후대 학문의 진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갈로와가 프랑스 사람다웠다면 램지는 교양 있는 영국 신사의 전형과 같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램지는 믿을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전설과 같은 천재성을 발휘했던 사람이었지만, 친절하고 너그럽고 낙천적이고, 문화적 소양과 사회에 대한 감수성을 모두 갖춘, 즉 인격적으로 균형 잡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램지가 어떤 사람이었느냐면... (주로 내 관심사에서... 약 좀 팔자~)
18, 19세인가에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에 대한 비평을 발표했는데, "논고"에 대한 첫 해명이자 지금까지 나온 해명 중 가장 우수한 것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the best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케인즈의 확률 이론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논문을 써내는 데, 이게 게임 이론의 전조가 되는 작품이라고 하더라. (그 위대한 케인즈는 자기 이론을 비판한 젊은이에게 어떤 보복을 하였던가? 그 젊은이가 캠브릿지 대학에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영국 신사들의 너그러움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찬양하라~)
럿셀의 "프랑키피아 마쓰마티카"라는 대작의 허술한 점을 보완하는 논문을 썼다. 럿셀은 이 대작의 다음 판을 준비할 때 램지의 도움을 받았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논고"는 처음에는 번역 불가능한 책의 범주에 속한다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램지에게 "내 책을 그토록 잘 번역했으니..."라는 편지를 보낸다.)
비트겐슈타인을 철학계로 복귀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고, 비트겐슈타인이 전기 철학의 난점을 깨닫고 후기 철학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이었다. (어쩌면 비트겐슈타인과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철학자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랬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램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이 일기에서 램지를 비판하는 대목을 읽는 건, 내게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그리고... 26세에 죽었다. (철학, 경제학 등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램지는 기본적으로 수학자다.)

갑자기 램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제 기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전에 사 놓은 램지에 대한 책을 아이폰으로 읽다가 한 대목에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과 램지와 나는 "논고" 5.542로 엮여 있다.)

"I find, just now at least, the world a pleasant and exciting place. You may find it depressing; I am sorry for you and you despise me. But I have reason and you have none; you would only have a reason for despising me if your feeling corresponded to the fact in a way mine didn't. But neither can correspond to the fact." (Ramse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