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옥이
오승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그림책은 몇 백 페이지의 소설보다 더 큰 울림을 줄 때가 있습니다.
여순 사건을 다룬 <점옥이>가 바로 그런 그림책이 아닌가 싶네요.

5.18 민주화 운동이나 제주 4.3 사건보다 덜 알려진 여순 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벌어진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입니다.

흙으로 밥을 지어 흙밥 위에 계란 꽃을 얻어
점옥이도 한입, 백구도 한입 하며
놀던 아이를 어떤 색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나뭇가지의 앉은 새만 쳐다보고 캉캉 짓던
언니를 따라 달려간 백구에게 파란 물이 들 수 있었을까요?

언니가 갖고 놀던 인형 점옥이 눈으로 본 그날의 비극은
제대로 쳐다보기 어렵습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비와 바람이
천천히 점옥이 얼굴을 지워”버리듯
여순 사건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잊힌 일이 돼버렸습니다.

뒤표지의 “누가 우리를 기억해 줄까”라는 글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단순한 기억이 아닌 제대로 기억해야만 하는
그날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도서는 비채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대학 3학년 봄까지 이 년간,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네 편이 실려있다.
네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일하지만 ’나‘와 ’오즈‘가 어떤 동아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폐허나 다름없는 다다미 넉장 반의 하숙집에 살고 있는 ’나’는 본디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지만 유일한 친구이자 원수인 ’오즈’와 가깝게 지내면서 대학 생활 내내 허송세월을 보낸다.
‘오즈‘는 밤길에 마주치면 열 중 여덟은 요괴로 착각하고 나머지 둘은 요괴로 여길 만큼 심히 소름 끼치는 외모의 소유자로 칭찬할 점이 도무지 한 가지도 없는 사람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1학년 때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는 ’나’는 영화 동아리 ’계‘, 도무지 어떤 목적의 동아리인지 알 수 없는 ’제자 구함’,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 그리고 비밀 기관 ‘복묘반점’이라는 동아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소설은 평행우주 속 세상에 들어간 듯한 주인공이 네 곳의 동아리를 모두 경험하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소설 속 ‘나’를 비롯 등장인물 대부분은 찬란한 청춘을 마음껏 즐기는 이들이 아니다.
’나‘의 방 바로 위에 사는 ‘히구치’는 스승이라고 불리지만 특별히 하는 일 없는 일상을 보내는 듯하고
’히구치’ 스승의 라이벌이자 동아리 내에서 일인자인 ‘조카사키‘ 역시 충실히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은 뚜렷한 이유나 목적도 없이 그저 전통에 따라 반목하며 그 그 상황을 즐길 뿐이다.

우리나라 70~80년 대 청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보니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몸무림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인생 곳곳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를 마주하게 되고 선택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경우의 결과를 궁금해하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네 번의 전혀 다른 동아리를 선택하지만 비슷한 결과를 얻는다.
나방이 등장하고 나방 때문인지 ‘아카시‘군과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오즈‘는 다리 난간에서 떨어져 골절을 입게 된다.
소설은 인물들이 벌이는 일들의 이유를 찾기보다 그들의 행동을 왁자한 소동극 자체로 즐기며 된다.
매번 비슷하게 반복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인생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보다 그 선택한 것에 얼마나 최선을 다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진리를 건지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일랜드 - 제20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79
김지완 지음, 경혜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리아 국제공항의 안내 로봇 유니온의 이야기인 <아일랜드>는 제20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이다.
안내 로봇 열일곱 대 가운데 하나인 유니온 2호는 공항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어느 날 한국 국적의 제인 리를 안내하게 되고 그녀가 ‘차크라마’ 섬에 간다는 말을 듣게 되지만 유니온의 데이터에는 나오지 않는 섬이다.
유니온은 탐지견인 티미와 영혼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은 청소부 안다오와 우정을 나누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차크라마‘를 만들어 그 섬에 입주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매일매일 고르는 작업을 해 나간다.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인 공항은 언제나 활기차고 두근거리는 장소다.
유니온 2호가 4호에게 건네는 “당신은 당신이 고유하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유니온 2호는 다른 안내 로봇과는 전혀 존재가 된다.

티미와 안다오가 단순한 탐지견과 청소부가 아닌 소중한 친구이듯 당연하게 하던 안내도 전혀 다른 의미가 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유니온에게 의미 있는 고유한 존재가 된다.
동시에 유니온 2호도 다른 유니온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동화는 유니온을 잘 표현한 그림과 티미와 안다오의 우정, 그리고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담고 있어 즐거움을 준다.
아이와 함께 읽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에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도서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완독 후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영화예술학과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줄리에나 배곳>은 미국 문단의 슈퍼 스타로 소설, 시, 에세이, 아동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극찬받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에 수록된 15편의 소설은 짧은 분량의 이야기지만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sf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머나먼 우주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가 아닌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근미래의 지구가 배경이라 특별한 괴리감없이 즐길 수 있는 소설들이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지지모임”은 헤어진 애인들에게 꾸준히 낮은 점수를 받아 데이트 앱에서 영구 퇴출 처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정부에서 지급한 팔찌를 의무적으로 영구 부착하고 자신만의 고유하고 유일한 데이트 프로필을 갖고 있는 그들은 사회적 낙인이 찍힌 탓에 그 모임 사람 사이에서만 데이트가 가능하다.

<버전들>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지만 ‘직접 참석할 수 없지만 기억을 공유하고 싶으‘면 버전을 대신 보내는 방법을 택한다.
아트로스는 대학 친구, 벤은 사촌의 결혼식에 그들의 버전을 참석시키고 버전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다.

<역노화>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 유전자 역전으로 역노화 과정을 시작하면 노년, 중년, 청년기를 거쳐 십 대가 되고 아이가 되어 폐 미발달로 죽음을 맞는다.
팔십 인 나의 아버지는 역노화 방법을 택해 죽음을 맞으려 하고 참관인이 된 나는 아버지의 변화를 지켜보게 된다.

<포털>
어느 여름, 이유도 없이 사방에 포털이 생기기 시작하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구멍에 손을 넣어봤던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지기도 하고 그 구멍으로 들어가 영영 사라지기도 한다.

소설은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그만큼 섬뜩하기도 하다.
더없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공동체에서 살고 있던 <옥스헤드의 아이들>은 정전과 동시에 지금까지 다정한 부모인 줄만 알았던 존재들이 동작을 멈추는 순간을 목도한다.
유명인의 DNA를 훔쳐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구제를 위해 절절함이 가득한 편지에 보내지만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하는 <디어 브래들리 쿠퍼> 속 결말이 마음 아프다.

수록된 소설은 그리 유쾌한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하루에 십 년씩 젊어지지만 죽음에 다가가는 아버지를 지켜보아야 하고 자살한 엄마가 무서운 형상으로 나타나 위협하기도 한다.
세상은 치사율 100퍼센트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종말에 서서히 다가선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옴과 동시에 다시 우리를 사랑하는 부모는 되살아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게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가장 행복한 때를 떠오르게 되고 답장 없는 편지에 ”우리 모두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강변하는 아이가 꿋꿋하게 살아가는 세상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리는 근미래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세상이라 더 섬뜩하고 슬프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고 살아나간다.
부모가 설령 로봇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그대로 모방한 ‘버전’이라고 해도 그들 모두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
소설 속과 똑같은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 따위는 없을 것이다.


🍀초판 1쇄 한정 이벤트 본 도서 구매 시 문장 책갈피 증정 이벤트가 있습니다. 3종 중 1개 랜덤 증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병실에서 눈을 뜬 ’오기‘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정년이 보장된 대학의 나름 잘 나가는 교수인 오기는 사랑하는 아내와 떠난 여행 중 일어난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오기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장모뿐이다.
오기는 아내가 아름답게 가꾼 정원이 있는 타운 하우스의 집으로 돌아오고 장모는 집에 드나들던 이들을 한 명씩 내보내며 직접 간병에 나선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손뿐 말을 할 수도 없어 눈만 깜빡여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남자는 장모의 행동이 수상하기만 하다.
바깥의 모든 것과 차단시킨 장모는 아내가 떠난 후 폐허로 변한 정원에 큰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비밀을 간직한 듯한 남자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장모가 한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남자의 하루하루가 공포로 변하기 시작한다.
움직일 수 없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오기는 오롯이 장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설령 장모가 자신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소설은 전신마비 환자가 느끼는 공포와 무력감은 물론 오기가 누워있는 방의 냄새까지 읽는 내내 그대로 전해진다.
아내가 남긴 고발문을 읽었을 거라 짐작되는 장모에게 어떤 내용의 글인지 모르는 까닭에 변명할 수도 없는 남자와 딸을 잃은 고통에 광기마저 보이는 장모의 모습은 그 심정이 이해되기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남자 오기와 죽음보다 더한 남편의 배신에 괴로워했을 아내, 그리고 딸의 괴로움을 아는 순간 사고의 진실까지 의심했을 장모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되기에 삶이 지옥이 된다.
일상의 평안을 깨뜨리는 것은 어느 한순간의 실수로 시작되기에 더 공포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