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입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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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인스타그램에서 ‘호러 문장 수신’이벤트가 있었다.
여름엔 역시 호러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지라 망설임없이 신청했고 몇 개의 문장을 받아보고는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해 고른 책이다.

작가 김인숙은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인데 죄송하게도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모두 13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다른 지면을 통해 발표된 4편과 미발표작인 9편의 연작소설이 실려있다.

제목만큼 아름답지못한 첫 번째 이야기 ‘자작나무 숲‘은 호더인 할머니와 손녀인 ‘나’의 이야기로 ‘할머니는 지금 내 차 안에 죽어 있고, 나는 그런 할머니를 버리러 가는 길이다.‘(p8)라는 문장과 tv속에서 본 쓰레기집의 전경이 겹쳐 내내 무언가 튀어 나올 것 같은 공포에 떨게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동명인 소설은 태풍이 불기 시작하자 하인도에 발이 묶인 예술인들 중 한 명인 소설가가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하인도 레시던시에 묵은 예술가들은 모두 죽은 소설가와 인연이 있고 소설가 딸의 죽음의 목격자거나 관련이 있는 이들이다.

9편의 연작소설에서는 ’호텔 캘리포니아‘와 ’모텔 캘리포니아‘와 여자들의 죽음과 그 죽음에 관련된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호텔 캘리포니아 근처의 폐아파트 단지를 조사하는 전직 형사인 탐정 안찬기와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이야기는 사운드나 갑작스러운 화면 전환으로 공포를 주는 공포 영화보다는 분위기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읽다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는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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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위픽
임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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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잔고 0, 인간관계 0, 행동반경 0, 메신저 알림 0.

나는 존재감 제로인 인간이다.
그야말로 내가 죽어도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할 그런 존재다.

그런 존재감 없는 내가 납치됐다.
목숨이 아홉 개라는 고양이 오후에게 납치됐다.

그것도 보일러 배기가스 연통이 빠지는 바람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뒤
저승에 닿기 전에 납치 당했다.

고양이 오후는 길고양이의 안전한 삶을 위해
존재감 없는 나에게 그 비법을 전수받고 싶어한다.

임선우 작가는 <<유령의 마음으로>>로 먼저 만났다.
유령이 나오지만 그 안에 따듯함을 잊지 않는 이야기들이라 좋았던 기억이 있다.

고양이 오후도
존재감을 없애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목숨쯤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고양이 오후에게 배워야할 것,
바로 사랑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때 그때가 존재감이 제로가 되는 순간이다.
소설 속 내가 택한 길이 <0000>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가 나를 사랑한다면
어느 순간 “0”이 아닌 다른 숫자들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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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와 키키 - 어수룩한 멍멍이 토비와 냉소적인 야옹이 키키의 시골 일일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박라희(스텔라박) 그림, 이세진 옮김 / 빛소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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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됐지만 ’자연과 동물을 끔찍이 사랑했던 프랑스 대표작가‘라고 합니다.
’어수룩한 멍멍이 토비와 냉소적인 야옹이 키키의 시골 일일’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멍멍이 토비와 고양이 키키의 일상을 두 동물의 대화로 풀어가는 방식입니다.

등장 동물 소개란에 검은 얼룩무늬의 수컷 불독 토비와 샤르트뢰 종의 수컷 고양이 키키에 대한 소개 아래 아주 작게 ‘하등 중요하지 않은 주인’ 그녀와 그가 소개된 모양만 봐도 이야기의 중심에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에 대해 오해하기도 하고 불의 강렬함에 끌리기도 하고 천둥번개에 놀라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특징을 자세히 관찰해서인지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어색함이 없고 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인간에게는 ’멍멍‘이나 ’야옹‘으로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를 통해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박라희 작가’의 귀여운 그림은 이야기를 더욱 풍요롭게 해 줍니다.

또한 <빛소굴>출판사 도서의 아름다운 외형은 ’토비와 키키‘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튼튼한 양장본과 두꺼운 종이에 색연필로 그린 토비와 키키는 살구색의 표지와 가름끈으로 귀여움을 더합니다.
동물의 마음을 알고 싶은 집사는 물론 동물 영상을 즐겨보고 동물과 함께 하고 싶은 독자라면 홀딱 반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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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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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부터 1926년 10월까지 31호, 1931년 1월 속간 후 1934년 8월까지 약 42호, 총 73권 내외로 발행’된 잡지 <<신여성>>을 강독하고 함께 공부한 필자 9인이 이를 바탕으로 2005년 <<신여성_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를 출간했다.
이후 잡지 <<신여성>> 발간 100주년을 맞이해 20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책이 바로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다.

모두 7장의 본문과 부록으로 구성된 책은 모던걸의 정의를 시작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 ‘신여성’에 대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1장에서는 양산을 사고 머리를 구부리거나 염색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제껏 보지 못한 여성들의 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백화점을 다니고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고 스포츠를 취미로 했지만 호떡을 달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하니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2장의 신여성 수난사는 ‘은파리’로 대변되는 관음증적인 남성들의 시선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신여성’은 땅에서 솟아난 존재가 아닌 신식 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이었으니 그들의 학교 생활과 기숙사나 하숙 생활들을 엿볼 수 있는 3장의 문제적 기호, ‘여학생’도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와 자유연애는 물론 은밀하고 내밀한 성에 대한 이야기도 잡지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난다 긴다하던 모던걸들도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신여성>>의 필진들은 ’연애없는 결혼은 없다‘라는 자유주의 연애론을 이야기하면서도 결혼을 위한 전단계인 연애를 하는 신여성들에게는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을 넘어 비난을 퍼붓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에로 서비스‘자체를 직업으러 삼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비난을 쏟으면서도 직업여성의 에로 서비스를 노골적으로 기대하는 남성들의 이중적 태도도 볼 수 있다.

<<신여성>>은 여성잡지의 확산을 도모한 어느 정도 장수한 최초의 여성잡지이고 여성을 주체로 한 잡지였지만 주요 필진은 대부분이 남성들이었다.
거기다 <<신여성>>에 소개되는 여성들은 물론 잡지를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구독할 정도의 여성이라면 일반적인 범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읽는내내 잡지에 소개되지 않은 여성들과 그 잡지조차 읽지 못했을 여성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모던걸‘이 아닌 ’못된 걸‘로 불리던 그들의 일상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찌됐든 100년 전 여성을 위한 잡지 <<신여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들이 살았던 100년 전의 가정의 모습과 여성의 역할이 더디지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게 된다.


<본 도서는 한겨레출판의 서포터즈인 하니포터 9기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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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점 반 - 20주년 기념 개정판 우리시 그림책 3
이영경 그림, 윤석중 글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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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넉 점 반>은 ’나리 나리 개나리’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 고향 땅’ 등으로 유명한 윤석중 선생님의 시에 ‘아씨방 일곱 동무’를 쓰고 그린 이영경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 우리시그림책입니다.
이번에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넉 점 반’이 2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새옷을 입고 출간되었습니다.
책 사이즈가 살짝 커지고 표지 그림이 무심하게 여린호박을 따는 아기 모습에서 개미를 구경하는 아기가 그려진 그림으로 바뀌었네요.

아기가 엄마 심부름으로 구복 상회 영감님께 시간을 물어보러 갑니다.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아기는 혹시 시간을 잊어버릴까 “넉 점 반 넉 점 반” 소리내 말해 봅니다.
물 먹는 닭도 한참 서서 구경하고 개미 거둥도 한참 앉아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다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노래 부르다 해가 꼴딱 져 돌아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그림책이 처음 출간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좋은 그림책의 생명력은 언제나 길고 강인합니다.
20년 전 이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 어린 시절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면 깔끔하게 새단장한 개정판은 세월이 지난 탓인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향의 골목길을 사무치게 그립게 합니다.

방안에서도 손님이 오는 지 볼 수 있는 유리를 끼운 창호지 바른 문과 벽에 걸린 사진들, 그리고 꽃이 한 가득 그려진 둥근 양은 밥상에 꽃무늬 벽지까지 어느새 어린 시절 할머니방으로 데려다줍니다.
마을에 하나뿐인 가게는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만물상입니다.
주전부리는 물론 파란색 비닐 우산, 원기소 광고, 미원 등 가게 안에 물건들 모두 눈에 익습니다.

아기를 따라 마을을 걸어봅니다.
물 먹는 닭도 보고 아기와 함께 앉아 개미도 구경합니다.
잠자리를 따라가다보니 논길을 지나 수수도 도라지꽃도 분꽃도 흐드러지게 핀 곳까지 따라왔습니다.
이리 해찰하고 온 마을을 돌아다녔으니 집에 오니 해가 꼴딱 져 버렸습니다.

아기는 늦게 왔다고 혼내지 못할만큼 귀여운 모습입니다.
넉 점 반에 나가 다 저녁에 돌아와도 아이는 심부름을 끝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합니다.
윤석중 선생님의 시만 읽어도 좋지만 이영경 선생님의 그림과 만나면서 아기가 보는 풍경을 독자도 함께 볼 수 있게 됩니다.
20년 뒤에도 여전히 사랑받은 것 같은 그림책은 잊고 있던 그리운 시절로 데려다주네요.
시계따위 없어도 별 상관없던 시절, 언니가 있고 오빠가 있고 나의 젊은 엄마가 존재했던 그곳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본 도서는 창비그림책에서 진행한 20주년 개정판 서평단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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