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단
정보라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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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오후 열 시 이십삼 분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담화가 없었다면 여느 날과 똑같은 하루였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날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오늘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연대하고 함께 투쟁하는 작가 정보라는 ‘그날 계엄을 막지 못했더라면’이라고 상정하고 소설을 써간다.
1차 계엄이 실패하고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부결되자 대통령은 2차 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은 사회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총구를 들이댄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소설은 계엄 성공 후의 사회를 보여준다.
설마 이렇게까지 될까 싶다가도 이미 1980년 5월의 광주를 경험했기에 소설은 끔찍하게 사실적이고 두렵다.
여전히 계엄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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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숲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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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서평 이벤트에 당첨돼 북로드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작가인 아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엄마와 단둘이 살던 유마는 엄마의 재혼으로 부유한 새아빠와 살게 된다.
방 두 칸짜리 연립주택에 살던 유마는 도쿄의 고급 주택가로 이사를 가게 되고 친구들과 헤어져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초등학교로 전학한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쯤 새아빠가 갑작스럽게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면서 유마만 일본에 남게 될 처지가 되지만 다행스럽게 새아빠의 동생인 삼촌이 당분간 유마를 돌보기로 한다.
삼촌은 하교하는 유마를 차에 태워 실종된 아이를 찾아주고 답례로 받은 별장인 고무로 저택으로 데려가 그곳에 머물게 한다.

삼촌은 유마에게 별장 뒤 사사 숲에서 일어난 어린이 실종 사건을 이야기하며 절대로 숲에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삼촌은 갑자기 일이 생겨 도쿄로 돌아가고 삼촌의 연인인 사토미와 단둘이 별장에 남게 된 유마는 첫날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기척을 느끼기 시작한다.

7년 전 <마가>란 제목으로 출간됐던 소설이 새로운 제목과 판형으로 재출간됐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엄마의 재혼으로 변화한 생활 환경과 인간관계는 열한 살 유마에게는 낯설고 어렵기만하다.
친아빠도 글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마에게 다정하지 않았고 새아빠 역시 엄마의 임신으로 귀찮아하는 것 같다.

엄마와 떨어져 금단의 숲이 있는 오래된 별장에서 지내게 된 유마가 느낄 감정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도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특별한 계기 없이 이계를 체험해 온 유마이기에 사사 숲에서 겪은 일이 현실이었는지 착각인지 그것도 아니면 환상이었는지 모호해 더 두렵게 느껴진다.

작가의 소설에서 많이 봐 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성어들의 향연은 10년 주기로 일어나는 어린이 실종 사건과 맞물려 더 공포스럽다.
호러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답게 이야기는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인간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불행의 종착지와 광포에 탄식하며 읽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마지막 유마가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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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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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비채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인 가오루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런 가오루는 여름 동안,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 마을 가네사다네의 작은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고 싶어 한다.

가족 행사에서나 가끔 뵙는 작은할아버지는 가네사다네에서 재즈카페를 운영하는 유쾌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가오루를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것 같아서이다.
작은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재즈카페 오부브에는 전직이나 과거를 알 수 없는 오카다가 함께 일하고 있다.

소설은 지금까지 읽어온 작가의 다른 소설처럼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여름날의 재즈카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매일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단골손님과 그 안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선별해 틀어주는 카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가오루에게 어른들은 이유를 캐묻지 않고 특별한 대우를 하지도 않으며 그저 지켜보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뿐이다.
뜨거운 여름 같은 청춘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보낸 가오루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작은할아버지와 오카다가 보통 사람들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참혹함을 건너 지금의 시간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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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는 건 뭘까? 초등학생 질문 그림책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미세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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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직관적이고 딱딱한 제목의 <싫다는 건 뭘까?>는 미세기 출판사의 초등학생 질문 그림책의 아홉 번째 질문입니다.
오랫동안 어린이를 위한 동시를 쓰신 이상교 작가님의 글에 톡톡 튀는 독특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밤코 작가님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싫다는 건 ‘난 안 좋아!’라는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해지는 거야”

그림책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싫음‘의 정의를 알려주고, 싫다는 감정을 참기만 하는 게 옳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마음에 싫다는 감정을 품고만 있지 말고 불편하고 싫은 것을 제거함으로 편안해지는 상황을 새 옷의 라벨을 예로 든 점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화라 더 이해가 쉽습니다.

만약 친구와의 사이에 싫다는 감정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려주고, 싫은 걸 가만뒀을 때 무섭고 심각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알려줍니다.
특히 ‘싫어하는 게 많다고 반드시 속 좁고 나쁜 사람’이 아님을 단단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싫다는 건 나를 알아 가는 열쇠야.
나는 어떤 이유로 그 무언가를 싫어하게 된 걸까?
이유를 생각하면서 자신을 꼼꼼히 돌아보게 돼.
이처럼 나를 알아 가게 하지.
나를 아는 지름길인 거야.”

지금이야 싫은 건 싫다고 말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싫다고 말하면 참을성 없는 아이로 치부하며 어른들이 싫은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어른이 된 뒤로도 누구 앞에서 싫다는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여태껏 지내왔습니다.
내가 싫다고 말하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할까 봐 또 나를 싫어할까 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참아 왔던 것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주제인 ‘싫다’를 아이들의 눈높이로 쉽게 이해되는 글과 귀여운 그림이 예시로 든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어른이 덧붙여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싫은 게 많은 게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이뿐만이 아니라 양육자인 어른들도 꼭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으며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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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선물 피터 레이놀즈 단어 시리즈
피터 레이놀즈 지음,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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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문학동네 그림책 서포터즈 뭉끄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

‘피터 레이놀즈’를 처음 알게 된 건 <#점>을 통해서입니다.
미술 시간이 끝났지만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두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베티에게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라는
말을 건네 아이가 그리고 싶은 것을 스스로 그리게 했던 이야기는 가르친다는 의미를 돌아보게 했지요.

먼저 읽은 <단어수집가>는 단어를 모으는 제롬을 통해 단어가 주는 힘에 대해 느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단어의 선물> 역시 단어 수집가 제롬의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단어 수집을 열심히 하는 제롬은 “축하를 전하는 낱말, 희망을 전하는 낱말, 기쁨을 주는 낱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낱말”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단어 중에는 제롬의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단어는 없었습니다.
“세일! 폭탄세일! 마지막 세일! 외부인 출입금지! 불법주차 견인조치! 폐업특가!” 처럼 차갑고 거칠고 날카로운 말들만 가득합니다.
신문 기사의 제목도 사람들의 대화 속에도 온통 실망과 짜증이 가득한 단어들뿐입니다.

<단어수집가> 속 제롬이 단어의 힘을 알게 됐다면 <단어의 선물> 속 제롬은 아름답고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들을 이용해 여러 사람과 함께 희망을 전해 줍니다.
제롬은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단어들을 공원으로 가져가 사람들과 원하는 낱말들의 나무를 만들어 봅니다.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문장은 물론 세계 평화를 꿈꾸는 문장도 등장합니다.
단어가 모여 큰 소망이 되고 멋진 단어들로 가득 찬 나무는 모두의 마음을 한데 모이게 합니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작가의 자유분방하고 힘 있는 그림이 어울린 이야기는 마음을 따듯하게 하고 세상을 밝힙니다.
작가의 소망처럼 ‘긍정의 힘을 주는 단어들이 세상의 평화를 불러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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