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렁크 픽션 위픽
서장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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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위즈덤하우스와 위픽에서 진행한 위뷰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위픽 시리즈 백 세 번째 이야기는 작가의 현실을 소설 속 화자 ’정원‘의 일상에 투영시킨 ‘메타픽션’입니다.
서장원 작가의 소설은 문학상 수상작품집과 출판사 계간지에서 몇 편을 읽은 게 다라 작가의 이름이 오롯이 박힌 단독 소설을 만나는 것이 반갑고도 벅찼습니다.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너무 심약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글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정원‘은 같은 건물에 있는 격투기 체육관의 코치인 ‘조성’에게서 그 강인함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조성이 가진 비밀을 알게 되면서, 정원은 지금까지 자신이 혐오했던 이들에 대해 돌아보고 그들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있잖아, 개소리하는 사람들만 걸리는 역병이 돌았으면 좋겠어.” (p40)

퀴어도 혐오하고, 여성도 혐오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사람들은 과연 나쁘기만 한 걸까요,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혐오하는 우리 역시 떳떳할 수 있을까요?
책과 영화를 볼 때면 늘 선과 악을 구분하며 보던 저에게는 누군가를 향한 혐오는 언제나 명백한 ’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혐오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가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설을 덮은 뒤에도 한참을 골몰하게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고, 또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성과 정원이 없애고 싶은 인간들의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쉽게 선과 악으로 나누고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 나 역시 다른 누군가를 판단하고 배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사람도, 좋기만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 앞에 나의 이분법적인 잣대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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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있으면 좋겠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72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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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길벗어린이 출판사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백만 번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지만 엄마는 매번 “안 돼.”라는 말로 대답합니다.
그날도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장을 보러 가고, 아이는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작은 목소리로 “고양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대답이라도 하듯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옵니다.

<고양이 있으면 좋겠다>는 고양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의 소망이 이루어지지만, 걷잡을 수 없이 나타나는 고양이들로 인해 벌어지는 유쾌한 소동극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사노 요코 작가 특유의 무심한 듯 유머러스한 시선 속에서,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엉뚱한 경험을 치른 아이는 그럼에도 여전히 고양이 한 마리쯤은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혼잣말처럼 “고양이 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가 특유의 따뜻한 그림과 끝끝내 미워할 수 없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행복한 기억을 소환시킵니다.
비록 고양이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내게 고양이는 볕이 잘 들어 따뜻해진 툇마루에 몸을 웅크리고 갸르릉거리는 이미지로 기억됩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가곤 했던 고모 집의 고양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까칠함을 가졌다가도, 어느새 보드랍고 따뜻한 몸을 비비며 까칠한 혀로 손등을 핥아주던 행복한 기억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노 요코 작가의 <고양이 있으면 좋겠다>를 읽으며 어린 시절 보냈던 고양이와의 행복한 시간들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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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지도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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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리드비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우케쓰 작가의 ‘이상한 시리즈’는 <이상한 집>, <이상한 그림>, <이상한 지도>로 이어진다.
아쉽게도 나는 <이상한 집> 한 권과만 인연이 닿았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이상한 지도>는 전작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던 구리하라의 대학생 시절 이야기다.

“나는 젊은 시절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한 여자의 충격적인 수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취업 준비생인 구리하라가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머니의 죽음에 의문을 품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품으로 남겨진 요괴로 가득한 오래된 지도를 매개로 구리하라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그 지도 속 장소를 찾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의 메모를 따라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는 ‘가소코 마을’로 향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열차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이상한 지도>는 ‘이상한 시리즈’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가장 나중에 출간되었지만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독특한 재미는 지도에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그림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지도와 표식, 일러스트가 등장하지만 페이지 곳곳에 숨어 있는 단서들을 따라 고지도의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밝혀가다 보면 추리의 재미가 한층 더 풍성해진다.

마침내 밝혀진 고지도의 비밀은 단순히 한 개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시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여성들의 삶이 지도 속에 켜켜이 숨겨져 있다.
기묘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오래된 지도 한 장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종이에 불과했을 지도가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애쓴 이들의 처절한 흔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상한 시리즈’라는 이름처럼 기묘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사연을 좇다 보면,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된 지도에 남겨진 것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이었다는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뛰어난 재미는 물론 미친 가독성을 자랑하는 작품이니, 다음 일정이 있다면 아예 읽기를 미루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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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의 기술 - 한국 추리소설 작가 5인이 말하는
김이환 외 지음 / 알파미디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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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알파미디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지난 7월,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접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부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황망했다.
포털 뉴스를 검색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책과 함께했다.
특히 <#나미야잡화점의기적>은 주변에 입이 마르도록 추천하고, 친한 친구들에게 선물할 정도로 깊이 아끼는 소설이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의 기술>은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한국 추리 작가 5인이 작가를 추모하며 각자의 시선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된 <용의자 X의 헌신>이 포함된 갈릴레오 시리즈를 비롯해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가가 형사 시리즈, 그리고 <비밀>, <백야행>, <방황하는 칼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전건우 작가는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을 통해 애정 어린 소회를 풀어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도 함께 다룬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 명이 아니라 히가시노와 게이고라는 두 명의 작가가 글을 쓴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다작을 하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작가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정통 미스터리 소설로 그를 만났던 까닭인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나 <녹나무의 파수꾼>은 이름을 가렸다면 그의 작품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생경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그의 작품 세계는 한 가지 틀에 국한되지 않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품고 있다.

추리와 미스터리 장르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고, 소설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책을 한 권쯤은 만나봤을 것이다.
5인의 작가가 소개한 작품을 모두 읽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반가움이 앞섰다.
익숙한 작품과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는 즐거움도 있었고, 다른 작가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커졌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써낼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어온 독자에게 이 책은 지나간 작품들을 다시 꺼내보게 하는 반가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그의 작품을 많이 만나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수많은 작품 가운데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덮고 나니, 한동안 읽지 않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한 권을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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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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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비채 1만 기념 책 처방 이벤트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당첨되어 처방전과 함께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는데, 바로 스콧 스미스의 <폐허>다.
‘평생 단 두 권의 소설로 전설이 된 작가‘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나는 여태 이 작가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멕시코에서 휴가를 즐기던 두 젊은 커플은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독일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 그리스 청년과 함께 독일인의 동생을 찾아 정글 속 유적지로 향한다.
동생이 남긴 지도를 따라가다 우연히 마야인 마을을 만나고, 그들에게 쫓기듯 폐허 같은 유적지에 발을 들이게 된다.

지구 상의 생물 중 가장 무해한 종으로 여겨지던 식물이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고 인간을 공격해 온다.
소리와 냄새를 흉내 내고, 생각하고 움직일 줄도 아는 식물은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적대하게 만든다.

언덕 위에 고립된 일행의 앞을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가로막고 있고, 마야인들은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리스인은 부상을 당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 여유조차 없다. 오히려 그 죽음마저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누군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 가능성을 계산하며 고립된 상태에서 먹을 것은 점점 줄어들고, 일행 중 우두머리로 나선 제프의 행동은 때로 잔혹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시시각각 잔인하게 파고드는 식물의 공포와 함께, 극한의 상황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식물만큼이나 두렵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설명이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물이 왜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는지도, 마야인들이 왜 그들이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그토록 막았는지도 알 수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탈출할 방법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그들이 처한 공포를 함께 견딜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비 온 뒤 덩굴손을 뻗어 나가는 덩굴식물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혹시 저 식물이 정말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될 만큼 번식력이 강해 주변의 나무와 풀을 뒤덮고 광합성을 방해해 결국 고사시키는 가시박은 이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스즈키 고지의 <유비쿼터스>가 떠올랐다.
<유비쿼터스>가 전 인류에게 닥친 식물의 공포를 다뤘다면, <폐허>는 언덕에 고립된 개인에 닥친 공포에 집중한다.
공포의 범위는 훨씬 좁지만, 그 강도는 더 크고 잔인하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색다른 존재에 대한 참신한 공포가 궁금하다면, 또 <유비쿼터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그나저나 비채의 책 처방은 최고였다.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약사에게, 책 처방은 비채에게 맡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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