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진 수진은 중학교 시절 3년을 함께 산 이모의 자살 소식에 서어리로 향한다.거대하고 영험한 물고기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서어리는 서어호를 둘러싸고 있다.“호수 아래에, 물 밑에 잠겨 어신님과 한 몸”이 되고 싶다는 이모의 유언에 따라 유골이라도 서어호에 뿌려주려 했지만 유골함 안이 텅 비어있다.수진은 마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호수로 향하고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하게 된다.무언가를, 누군가를 믿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때가 있다.텅 빈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나에게,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잠깐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작가의 말 중에서)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보이지않는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수진의 이야기를 읽으며 무언가를 절실하게 믿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한참을 생각해 본다.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으며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에 굳건하기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름난 명문가인 니레 가의 선대 당주의 법요식이 있던 날 큰딸 사와코와 조카이자 양자인 요시오가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범인은 법요식에 참석한 가족과 저택의 가정부, 그리고 가족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다.수사가 진행되고 사와코의 남편이자 데릴 사위인 새로운 당주 하루시게의 주머니에서 요시오가 먹은 초코릿의 은박지가 발견되면서 용의자로 지목된다.하루시게는 범행을 강하게 부인하다 불륜 사진이 발견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고 사형만은 피하기 위해 범행을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본격적인 이야기는 독살 사건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하루시게가 재판 후 40년이 지난 2008년 가석방이 되면서 시작된다.하루시게는 처제이자 연인인 도코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이 추리한 범인에 대한 편지를 보내게 된다.니레 가문 사람 중 홀로 남겨진 도코는 하루시게의 무죄를 믿는 것은 물론 자신이 지키고 있는 니레 가문의 당주가 돼 주길 간절히 바란다.그리고 하루시게가 추리한 내용에 대한 반박과 자신이 생각한 범인에 대한 추리를 답장에 써 보낸다.1966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명문가의 저택, 가족 간의 불륜, 그리고 한정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정통 본격 미스터리물 느낌이다.더군다나 가석방된 하루시게가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은 현대 수사물에서 볼 수 있는 증거 중심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편지만으로 추리해 범인에게 다가간다.다섯 통의 편지가 오가면서 범인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모습은 느리고 아날로그적이지만 40년을 감옥에서 보낸 하루시게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살인이 일어날 당시의 서사와 하루시게와 도코 사이를 오가는 편지를 읽으며 진범을 밝혀진 후의 일련의 일들 역시 억지스럽지 않아 좋다.특수 설정의 미스터리가 아닌 정통 미스터리를 찾던 독자라면 아주 맞춤인 소설이다.<본 도서는 블루홀식스 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10년째 방송 중인 <비밀과 거짓말>은 방송국 간판 보도 프로그램으로 제보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파주의 현천강에 익사 사고가 있었는데 그 사고가 수귀때문이었고 자신이 바로 그 수귀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라는 다소 황당한 제보였다.믿기 어려운 제보였지만 메인 피디인 박재민은 수귀를 방송 아이템으로 선정하고 전문가인 교수를 비롯 무속인이 포함된 촬영팀을 이끌고 현천강에 도착한다.막내 작가인 민시현은 촬영 중 피 묻은 댕기를 줍게 되고 댕기를 통해 살인 사건의 환영을 보게 된다.갑자스러운 폭우에 촬영은 중단되고 메인 작가인 전수라의 익사체가 발견된다.촬영팀은 서둘러 마을의 빈집에 시체를 옮기고 모두 그 곳에 머무르게 되지만 믿기 어려운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큰 혼란에 빠진다.소설은 막내 작가인 민시현과 무당의 애제자인 윤동욱이 중심이 돼 수귀의 정체를 파헤쳐가는 이야기다.특히 스스로 제어할 수는 없지만 물건에서 특정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인 사이코메트리를 할 수 있는 민시현의 활약이 눈에 띈다.피 묻은 댕기를 통해 살인자의 목소리를 듣게 돼 이미 범인을 알고 있다는 설정이지만 살인의 이유를 모르기에 공포를 반감시키지는 않는다.거기다 누가 수귀에 빙의되었는 지 알 수 없다는 사실과 수귀보다 더 공포스러운 악인의 등장으로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장마철 비가 주야장천 내리는 시기에 읽는 물귀신 이야기는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꽤나 공포스럽다.동네 토박이인 박길자 할머니가 30여 년 전 겪은 홍수에 대해 인터뷰는 수귀에 대한 공포의 포문을 열어주는 마중 이야기로 제격인 듯 싶다.고령의 주민들이 대부분인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와 어딘지 수상한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의심스럽다.거기다 동료들까지 평소와 다른 것 같아 모두를 수귀로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민시현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책을 읽는 내내 유난히 물빛이 어두운 현천강의 물소리와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누군가 인광을 번뜩이며 뒤를 쫒는 공포가 가까이 다가오는 듯해 집안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게 된다.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을 다시 되새기며 공포를 제대로 즐기고 싶고 강심장을 가졌다면 상관없지만 심약한 독자라면 절대 혼자 있을때는 읽기를 삼가하길 권한다.<본 도서는 넥서스 앤드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법학부에 다니는 기세 요시키는 우연히 중학교 시절 과외 선생님이던 마카베를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당시 의대생이던 마카베는 학교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곧 결혼을 앞둔 상태였다.우연히 마카베의 집에 가게 된 기세는 그가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협박범을 잡기 위해 탐정 사무실을 찾아간다.기세가 찾아간 기타미 탐정 사무소의 기타미는 중학교 1년 선배로 학창 시절 친척형 소이치가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사건을 해결해 줬던 자칭 탐정 견습생이었다.마카베는 결혼을 막으려는 협박 편지가 약혼자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쉽게 사건을 의뢰하지 못한다.누구보다 마카베를 존경하고 믿었던 기세는 망설이는 그를 돕기 위해 기타미 선배에게 직접 사건을 의뢰하게 된다.결혼을 앞 둔 남자에게 배달되는 편지때문에 시작된 조사는 마카베가 저지른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게 되고 주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전혀 다른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소설은 기세와 기타미가 화자가 돼 진행되면서 사건 해결을 위한 탐정의 조사 방법을 세세하게 소개함은 물론 인간적으로 믿었던 마카베의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혼란을 겪는 기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집념이 한 사람을 어떻게 파멸시킬 수 있는 지 알게 되는 순간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 채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를 마주하게 된 순간 다른 어떤 범죄자 이야기를 들을때보다 더 크게 두려워진다.소설은 협박범에 실체가 밝혀지고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주인공은 물론 독자에게 선택을 고민하게 한다.단순히 범인을 찾아내고 숨은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가 아닌 열린 결말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얼마만큼 관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시험에 들게 한다.만약 내가 기세라면 들고 있는 꽃다발에 숨겨진 독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령자 맨션의 1층에 자리한 편의점 텐더니스 모지항 고가네무라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점장 시바와 직원들을 비롯 편의점을 오가는 손님들의 이야기다.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 3편은 모두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다.첫 번째 ‘‘최애’가 모지항을 뜨겁게 하다’는 온라인 사이트에 만화를 연재하는 파트타임 직원 미쓰리의 최애 아이돌 아루 군이 모지항 관광 대사로 왔다가 시바 점장의 도움을 받게 된다.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편의점을 찾은 아루 군은 시바의 동생 쓰기에게 조언을 듣고 자신의 장점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헬로, 프렌즈’에서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된 가오리는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다.남편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가오리는 바닷가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 친구와 막 헤어진 다카라와 친해진다.그리고 우연히 만난 시바 형제의 여동생 주에루까지 합세해 자신들의 고민을 풀어나간다.세번 째 이야기는 2권에서도 등장한 다로의 이야기로 편의점으로 쓰기를 찾아온 미모의 여성이 다로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얼떨결에 그녀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한 다로는 쓰기와 얽힌 자매의 비밀을 듣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전편을 읽어 온 독자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에페소드들로 특별한 악인이 등장하지 않은 탓에 소설을 읽고 나면 힐링이 된다.전편보다는 시바의 활약이 부진하지만 주변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색다른 재미를 준다.여전히 시바 점장의 인기는 변함이 없지만 그의 주위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맴돌고 있어 위험에 처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한편 다로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과연 그 마음이 상대에게도 통할 수 있을 지 궁금해진다.시리즈가 3권까지 이어지고 내년엔 4권이 출간된다니 그 재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악인인 줄 알았던 인물들까지 그 속내는 더 없이 따듯한 탓에 강하고 매운 맛 소설을 읽다 말랑말랑한 소설이 읽고 싶을 때 안성맞춤인 상냥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