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는 비채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보내주기 전 보낸 메일을 읽으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새롭게 단장한 소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날개에 안내된 <전설의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라는 문구와 소개된 책들을 보고 아차 싶은 마음이 컸다.믿고 읽는 출판사의 도서라 무턱대고 욕심낸 게 아닌가 후회하기도 했고, 초반에는 사와자키 탐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이기에 집중하기 어려워 새로운 이름이 나올 때마다 소개된 등장인물을 들여다보느라 바빴지만, 어느 순간 다음 일정이 있다는 게 아쉬울 만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사백 일 만에 도쿄로 돌아온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사와자키는 의뢰인을 대신해 자신을 기다리는 노숙자를 만나게 된다.노숙자에게 전달받은 다른 사람의 명함에 적힌 ‘우오즈미’의 연락처로 전화하지만, 통화는 되지 않고 명함 주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사와자키는 의뢰인인 우오즈미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어렵게 그를 만나지만 사건을 의뢰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게 된다. 탐정 사무소에서 돌아가던 우오즈미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의식을 잃기 전 십일 년 전 자살한 누나의 사인을 다시 조사해 줄 것을 의뢰한다.소설은 십일 년 전 우오즈미의 고등학교 시절 벌어진 승부조작 사건과 누나 죽음의 관련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1990년도가 배경이라 지금처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수사에 중요한 단서가 되지 않았고, 공공장소에서도 흡연이 용인되던 시기였다.거기다 자동응답기가 아닌 자동응답서비스가 이용되던 아날로그적인 시기라 지금의 수사 환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그렇지만 사실을 모두 이야기하지 않을 뿐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사와자키의 조사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작은 단서와 상대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과 적당한 선을 지키며 조사하고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모습에서 감정 따위 드러내지 않는 냉철함을 돋보이게 한다.거기다 사와자키를 습격한 괴한들과의 격투는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적대관계에 있는 폭력단과의 케미는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소설에 숨통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특히 노숙자인 마스다와의 마지막 대화는 인생을 달관한 듯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후기를 대신하는 짤막한 토막소설 <세기말 범죄사정-죽음의 늪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어딘가에 진행되는 범죄를 닮아서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된다.비채 덕분에 사와자키를 알게 됐으니 우선 #그리고밤은되살아난다 를 읽어봐야겠다.
<본 도서는 열린책들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동사 “하다“를 주제로 우리가 하는 다섯 가지 행동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에 관해 25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러지 중 네 번째 <듣다>이다.다섯 명의 작가가 전하는 듣는 행위에 관한 이야기는 과연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 집중해 들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멀어진 ‘L‘과 ’나‘의 이야기인 <사송>은 둘이 내뱉는 언어가 대화보다는 독백에 가까워 그들이 만나온 세월이 더 서글펐다.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가 하는 말소리를 나만 듣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전래되지 않는 동화>는 실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잘 들으려 노력하면서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는 무심한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져 쓸쓸하다.엄마와의 갈등으로 가출 후 삼촌과 지내게 된 아이의 이야기 <폭음이 들려오면>은 한 번 어긋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나는 얼마나 아이들 말에 귀 기울였나 되돌아보게 된다.엄마가 다쳤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찾은 <나의 살던 고향은>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 ‘영지‘는 약속을 실행하지 않고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이 아닌 마음의 소리에 따라 일을 저지르게 된다.가장 선명하게 읽혔던 이야기 <하루치의 말>은 ‘애실’과 ‘현서’의 관계가 내내 불안불한하더니 기어코 생각했던 방향으로 진행돼 서글퍼진다.애실이 끝까지 현서가 했던 말을 믿었고, 사정이 있을 거라 이해하려 하는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남긴 현서의 말은 비수처럼 꽂혀 입을 다물게 된다.조용하다는 거야. 원하는 만큼 조용하게 있을 수 있다는 거. 아무 이야기도 안 들어도 된다는 거.현서는 결심한 듯 자세를 고쳐 앉고 마지막 말을 건넸다.애실아, 그동안 네 이야기 들어 주는 거 나 너무 힘들었어.어쨌든 일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 돈은 어떻게든 갚을게. 더는 오지 마. (p62)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하기보다 어려운 게 제대로 듣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누군가가 하는 말을 오해 없이 듣기가 어려워 차라리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면 평안해질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그래서인지 원하는 만큼 조용하게 있을 수 있어 좋다는 현서의 말은 특별하지 않은 어떤 말인가를 뱉으려는 내 입을 막고 귀를 열게 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첫날엔 어떤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될까도 궁금하지만 새롭게 만날 담임 선생님이 누굴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학교에 가게 됩니다.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시작하는 날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하게 될 아이들 앞에 기대와는 다르게 뚱뚱하고 흰머리가 사방으로 뻗치고 코끝에는 조금만 안경을 걸친 할아버지 선생님이 등장합니다.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주는데 그 안에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드와 비슷한 카드가 들어있습니다.“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지각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숙제를 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떠들고 싶을 때 쓰는 조커……“조커 카드에 적힌 글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은 황당해하면서도 흥분합니다.아이들이 기대했던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노엘 선생님은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만들어 줍니다.어른이 보기에는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꽉 막힌 숨통을 조금은 틔워주는 선생님입니다.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해도 천재지변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 노엘 선생님의 교육관에 모두 찬성할 수는 없지만 조커가 필요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습니다.“인생에는 조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너희가 사용하지 않는 조커들은 너희와 함께 죽고 마는 거야.” (p42)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소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할아버지의 죽음을 비밀로 할 결심을 하고 친구를 부른다.야구를 즐기는 이웃집의 함성과 울음마저 삼키며 ‘냉장고’를 비우는 소년의 모습이 대조적이라 더욱 마음이 아파진다.끝을 알 수 없는 ‘깊고 검은 구멍’ 같은 입속 반짝이는 금니를 매입하는 구둣방 남자에게 금니를 팔러 오는 큰 단골이 생긴다.처음에는 많은 양의 금니를 가져오는 남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남자는 짭짤한 수입에 그를 기다리게 되고 어느 날 그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부모의 야반도주로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없는 승주는 카페에서 어릴 적 친구인 유미라는 이름의 사원증을 걸고 있는 여자에게 아는 체를 한다.승주의 불안했던 어린 시절과 ‘아는 사람’이 된 유미의 이야기가 쓸쓸하지만 둘의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것 같아 작은 위안을 얻게 된다.소설 속 등장인물은 아이든 어른이든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죽음마저도 평안한 끝이 아니라 더한 고통으로 이어지고 우연히 찾아온 행운은 행운이 아니라는 걸 머지않아 깨닫게 되기도 한다.아들이 내던 소음이 사라지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던져지는 부모도 있다.어린 시절 어른만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실제로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현재는 생각했던 것만큼 넉넉하지 않고 자유롭지도 않다.<어른의 미래> 속 인물들은 어린 시절 꿈꾸던 어른의 미래가 아니라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팍팍한 어른의 모습이다.11편의 짧은 소설은 지금까지 읽었던 작가의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피도 개구리도 쓰레기도 쥐도 구역질 나는 존재들도 나오지 않는다.그럼에도 짧은 소설은 짧은 창끝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찌르며 편혜영이 편혜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본 도서는 비채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열세 번째 이야기다.미국으로 건너간 해리는 허름한 술집에서 매일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허비하던 중 중년 여성 ‘루실’과 친구가 된다.멕시코 갱단에게 큰 빚을 진 루실은 어느 날 갱단에게 잡히고 해리는 본능적으로 루실을 구해 도망치다 갱단 일원을 크게 다치게 한다.숨어있던 둘을 찾아낸 갱단은 루실을 인질로 삼고 해리에게 루실이 진 거액의 빚을 변제할 것을 요구한다.한편, 오슬로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실종된 두 여성이 참혹한 모습의 변사체로 발견되고 접점에 오슬로의 부동산 재벌인 ‘뢰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게 된다.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뢰드는 해리를 찾게 되고 해리는 거액의 빚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오슬로로 돌아온다.사실 작가는 물론 ’해리 홀레’라는 시리즈를 알지 못했기에 소설을 읽기 전 가장 큰 걱정은 전편의 이야기를 한 편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그것도 초반 한두 권이 아니라 열 편이 넘는 이야기인데 욕심에 읽겠다고는 했지만, 과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후회가 앞섰다.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소설에 들어가기 전 시리즈의 전권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있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뭐부터 말해야 할지. 불성실. 근무 중 중대 과실. 술에 취한 채 근무한 알콜의존자. 폭력 사건 여러 건. 약물남용 등등. 처벌은 피했지만 동료 한 명 이상의 죽음에 책임이 있고요. 요컨대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잡아들인 범죄자 대부분보다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 자죠. 게다가 같이 일하기에는 악몽 같은 자일 겁니다.” (p50)뢰드의 변호사가 전한 해리 홀레의 인상이 매력적이지 않은 탓인지 특별한 관계가 아닌 루실을 위해 거액의 채무를 갚겠다는 약속을 하는 모습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오슬로에 돌아와서도 단주하지 못하고 여자관계 또한 맺고 끊음이 분명치 않아 과연 사건의 중심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하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인물들을 모아 그들에게 적절한 임무를 부여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서는 전문가다움이 느껴진다.사건은 잔인하고 희생자들은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진범이 드러나고 살인 도구가 밝혀지는 순간 느껴지는 전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고, 참신하기까지 하다.살인 뒤에 숨겨진 아동에 대한 성 착취가 아이의 일생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껴져 마음이 아픈 탓에 악인이 죽음으로 끝을 맺지만, 생각만큼 통쾌하지는 않았다.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전작을 차례대로 모두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블러드문>으로 시리즈의 첫발을 내디뎌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6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 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열세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시리즈의 시작인 #박쥐 가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