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소설을 끝까지 읽을 생각은 없었다. 작은아들이 먼저 읽고 잔인한데 제 취향이었다고 해서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 몇 페이지 읽어볼까 싶어 시작했는데 그만 끝까지 읽고 말았다.실제 일본에서 일어난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로 인터넷 서점에서 19세 이상 성인 인증을 해야 검색될 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등장한다.마치다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오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온몸에 끔찍한 상처를 달고 있는 17세 소녀 마야를 발견한다.가정폭력을 의심한 경찰은 마야를 조사하고 마야가 탈출했다는 선코트마치다 맨션 403호를 찾아가게 된다.그곳에서 폭행 피의자로 아쓰코를 검거하게 되지만 그녀 역시 오랫동안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조사가 거듭될수록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알아낸다.소설은 아쓰코를 조사하다 밝혀진 요시오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를 찾는 수사 과정과 여자 친구 세이코와 꿈같은 동거를 시작한 신고가 갑자기 찾아와 같이 살게 된 세이코의 아버지를 의심하면서 시작된 추적전을 담고 있다.맨션에서 벌어진 사건과 신고가 뒤쫓는 세이코 아버지 정체가 궁금해 읽기를 멈출 수가 없어 잠깐 본다는 게 완독을 하고 말았다.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고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경악하게 된다.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가스라이팅 범죄는 가족이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기 시작하다 어느 순간 자신이 살기 위해 죄책감마저도 없어져 버리는 순간을 목도하며 두려움이 느껴진다.거기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심리적 지배를 통한 범죄라 피해자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어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더 충격적이다.가스라이팅으로 벌어진 사건은 국내 뉴스에도 종종 등장하고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또한 비슷한 형태의 가스라이팅이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누구든지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소설은 당연히 성인 인증을 해야 할 만큼 잔인하지만, 잔인함 만으로 끝낼 소설은 아닌 듯하다.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들이고 그 누구도 타인을 조종하거나 짓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은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고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특색이 있습니다.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 <뉴스위크>에서 ‘카툰의 왕’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 있는 카투니스트로 활동한 작가는 <슈렉>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개인적으로 작가의 그림책 중 세상의 괴물들을 다 모아놓은 듯한 <#엉망진창섬>을 가장 좋아하는지라 <뒤죽박죽 수상한 자바자바 정글> 속 괴물들도 기대하게 됩니다.어쩌다 오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레너드는 사람들이 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는 자바자바 정글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크고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며 계속 나아가던 레너드는 꽃한테 붙잡혀 있던 나비를 구해주고 무서운 비가 내리는 정글을 서둘러 걸어갑니다.돌처럼 굳은 괴물의 목구멍을 지나 뱃속을 지나 거대한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온 레너드는 해먹을 치고 쓰러지듯 누워요.레너드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도 모를 정글 속에서 위험에 처한 나비를 구해주기도 하고 깜깜한 밤을 혼자 보내기도 합니다.레너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으며 용감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위험이 닥쳤을 때는 지혜롭게 위기를 타개해 나갑니다.어른인 저는 결연한 표정의 레너드와 다채로운 색감의 정글 안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는”, “어쩌다 여기 오게 되었”는 지 모를 자바자바 정글에서 겪는 레너드의 이야기가 문득 우리의 삶과 닿아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그저 계속 나아갈 뿐”이라며 무서운 정글 안에서 용감했던 레너드를 보며 불쑥 용기를 내 봅니다.
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가 ‘예소연‘이 24년부터 26년에 걸쳐 다른 지면에 발표했던 7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은 소설집이다.위픽 시리즈로 출간돼 읽은 <소란한 속삭임>을 제외하고 모두 처음 읽은 소설이다.선이는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어린 시절 친구 기문을 만나지만 함께 하지 못한 시간만큼 둘은 어색하고 거기다 기문은 잊고 살았던 선이 엄마의 치부를 건드린다.이제 그들은 관계는 <추운 뺨에 더운 손>처럼 잠깐의 온기를 전할 수는 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온기를 나눌 사이는 아닌 듯하다.표제작 <너의 나쁜 무리> 속 할머니는 유선에게 자신을 여사라고 부르게 할 만큼 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유선을 끌어들이는 모습은 그래도 어려울 때 찾는 게 가족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소란한 속삭임>을 연대하지만 다시는 안 보는 사이가 될 수도 있고 밥벌이로 맺어진 관계 때문에 벌어진 <작은 벌>은 이중일의 앞날을 아득하게도 한다.할머니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 소개될 때는 <아무 사이>도 아닌 희지 씨의 이야기는 돌봄의 주체지만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는 고용인의 숙명이 느껴진다.그래도 두부 할머니가 핸드폰에 저장한 이름에 다시 기운을 내는 희지 씨를 보며 다음에도 할머니의 두부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혈연, 또는 업무적으로 이어졌지만, 그들은 언제라도 그 관계를 끊어도 될 만큼 느슨하고 얽매여 있지 않다.때로는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기도 하지만 소속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는 관계들이 대부분이라 서로에게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다.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기대하고 있다 미치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그로 인한 괴로움이나 고민도 없을 것이다.예소연이 그린 인물들은 서로가 위로하다가도 언제든 등 돌려 걸어가도 서운하지 않은 관계들이라 한패가 되어 서로를 구제하다 헤어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기에 끈끈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파격적인 표지와 제목만 보고서 고른 소설이다.책을 읽기 전 찬찬히 작가에 대해 살펴보니 예전에 작가의 소설을 딱 한 권 읽은 적이 있다.열두 살 소년이 우연한 사고로 동네 꼬마를 살해한 이야기인 <#사흘그리고한인생>인데 그때 재미있게 읽고 선물하기도 했지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책 두께를 보고 포기한 기억이 있다.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60대 여성인 마틸드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부터 잔인하지만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전쟁이 끝난 후에는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눴던 앙리의 소개로 청부 살인 업자로 활동하다 의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을 낳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다시 청부 살인 업자가 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소설은 오랜 기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수행해 오던 청부 업자가 점점 기억에 착오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주어진 임무 수행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탐문은 마틸드에게 다다르고 마틸드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챈 조직에서는 제거 작업에 들어간다.특별히 눈에 띄지 않은 탓에 경찰의 조사를 받지만, 무사히 빠져나간 마틸드에게 남은 건 본능과도 같은 끝없는 살인 충동뿐이다.예전 같지 않은 육제적 제한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에도 마틸드는 멈추지 않고 앙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둘의 관계 때문인지 처연하게 느껴진다.모든 것이 정리됐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오는 반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오는 슬픔이 얼마나 크면 치매마저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싶어 가슴이 뜨거워진다.유능했던 킬러의 쓸모가 다 해지자 조직에서 무참히 버려지는 모습은 현실 속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아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작가가 1985년에 집필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덕분에 소설 속 세상은 핸드폰도 없고 DNA 감식도 없고 CCTV도 없다.소설은 마틸드를 추적하는 경찰을 중심에 두는 대신 마틸드의 살해 현장을 직관하게 하고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늙은 킬러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래서인지 마지막까지 마틸드의 평안을 빌게 된다.
<본 도서는 책송이네 책장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웅진주니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앤서니 브라운>은 어릴 적 아들이 영어학원에서 지은 이름이 ‘앤서니’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이름을 가려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신간 그림책은 역시는 역시다 싶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옛날옛날 늑대가 돌아다니던 시절, 토마스, 핀, 잭은 깊은 숲으로 놀러 갔다가 자그마한 오두막을 발견합니다.오두막 안에는 할머니가 계셨고, 소년들은 오두막 문을 두드리고 재빨리 달아났습니다.다음 날엔 오두막에 도착해 무서운 늑대 울음소리를 내고 달아나고 그다음 날에는 오두막 문에 낙서를 하고 잽싸게 달아납니다.그다음 날도 잭은 할머니를 보러 가자고 말하지만, 핀은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토마스는 유령 흉내를 내자는 잭의 장난이 너무 심한 것 같아 숲을 떠나버립니다.할 수 없이 잭 혼자 침대보 한 장을 챙겨 숲속으로 향하는데 나무 사이에서는 으스스한 소리가 들려오고 무서운 늑대까지 잭 앞에 나타납니다.‘옛날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단번에 그림책에 몰입하게 합니다.깊은 숲속에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주는 선입견과 편견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합니다.세 소년 역시 할머니를 만나기 전부터 할머니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 짓궂은 장난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앞면지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작가 특유의 화풍과 페이지 곳곳에 숨어있는 그림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누군가를 대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특히 아이들에게 편견을 심어주는 주체가 대부분 어른이라는 생각에 나 역시 그런 일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그 할머니는 마녀가 분명하대!아이들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댔어!”편견은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두려움을 만듭니다.옛날옛날 늑대가 돌아다니던 시절의 모르는 상대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 낸 이야기의 결말이 행복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편견을 갖고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