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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지금은 4차선 도로가 마을 앞에 생겼지만 어린 시절 우리 마을은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걸어 학교를 다니고 간식이라고 해봐야 감자, 고구마, 옥수수가 다였던지라 어린 시절 먹거리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대처에 나오면서 짜장면도 처음 먹어보고 식당에서 삼겹살도 처음 먹어봤으니 모든 것이 새롭고 놀라움에 연속이었다.
그러니 처음 마셔보는 술과 안주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고 모든 음식은 술과 통하던 시절을 거치기도 했다.
주량을 몰라 인사불성이 되기도 하고 먹은 것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먹는지 술을 먹기 위해 안주를 고르는 지 모호한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어울리는 술이 생각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러서인지 숙취가 하루의 일정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회복하기까지 여러 날이 걸리는지라 기분 좋은 반주정도로 음주 생활을 즐기고 있다.
‘주류(酒類)문학의 마에스트로’ 권여선 작가의 글을 읽으며 여러 번 입맛을 다시고 순간순간 시원한 소주 한잔이 간절해졌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부산과 서울에서 산 작가와 살았던 곳의 접점이 없는 탓인지 소개된 음식들에 대한 향수가 많이 겹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된장찌개에 땡초를 넣는 것도 두려워하는 맵찔이지만 땡초를 무섭게 난도질해 넣은 깡장과 고추장물이 만들고 싶어졌다.
거기다 작가와 나는 같은 재료지만 전혀 다른 요리법으로 음식을 떠올렸다.
나에게 꼬막이란 살짝 삶아 피주머니가 달린 그런 꼬막이나 밥반찬으로 깐 꼬막위에 양념장을 살포시 올리는 게 전부인데 들어본 적도 없는 꼬막조림을 설명하고 있다.
보들보들 짭조름한 꼬막이 아니라 “층층이 양념된 고막 냄비를 불에 얹어 처음엔 센불로, 다음엔 중불로 바특하게 조린다.”(p173)니 그 맛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작가의 맛깔스러운 글 솜씨는 생전 먹어보지 못한 가죽 장아찌와 나물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그 맛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린 시절 간순이로 살았던 작가의 음식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시레기를 삶고 젓갈을 담그고 그것들을 소분하여 갈무리하는 모습은 음식 만들기에 젬병인 나에게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작가의 글이라고는 소설 “레몬”을 읽은 것이 전부라 감히 논할 수는 없지만 글에서 맛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속에 시원한 소주 한잔 털어 넣고 펄펄 끊는 감자탕 국물을 후후 불어 먹고 싶어진다.
나는 첫애를 임신하고 감자를 밑에 갈고 짠듯하게 조린 갈치와 둥글둥글한 조선호박을 채치고 장에서 사온 맛조개를 듬뿍 넣어 호박 채수만으로 빠듯한 국물에 말아먹는 국수가 먹고 싶어 엄마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이제는 갈치를 조려먹을 수도 있는 실력이지만 우리엄마만 만들 수 있던 국수는 맛조개 구하기도 쉽지 않은 탓에 영원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돼버렸다.
작가의 글솜씨, 맛솜씨에 잊고 있던 지난 시절과 추억을 되짚어본다.
거기다 초판 한정 짧은 소설 <자전거, 캔맥주, 그리고 곰>은 젊은 시절 서툴렀던 만남들을 떠오르게 한다.
25도 소주의 도수를 확 떨어뜨린 라이트가 막 나오던 시절 학생회관 뒷골목에서 개가 된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재워주고 아침에 엄마가 끓여준 해장국까지 대접했지만 그 은혜도 모르고 살았던 나를 깊이 반성하며 맛있었던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