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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눈이 내리다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평점 :
<도서는 래빗홀출판사의 래빗홀클럽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
2004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작가의 소설은 앤솔로지에 수록된 단편 한편을 읽은 게 전부라 초면이라 할만하다.
한국 SF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소설집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이자 로제타상 후보작인 <고래눈이 내리다>와 짝을 이룬 <귀신숲이 내리다>는 심해와 우주라는 전혀 다른 장소가 배경이지만 생태계 파괴와 지구 회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다른 존재들에게 인간이 어떤 악형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심해에 살고 있는 생물과 우주에 버려진 거대구라는 점이 흥미롭다.
“저 위의 주민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제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려나요? 흙 위를 뒤덮은 괴물들이 지금 다 사라지고 나면, 썩지 않는 것을 먹고 죽는 아이들도, 그런 것에 목이 감겨 살이 짓물려가며 죽는 아이들도 사라지려나요?“
(p22, 고래눈이 내리다)
실상 지구에 인간만 한 자연재해는 없다. 원전이 터져 방사능으로 뒤덮인 곳이나 태풍으로 초토화된 지역, 폭탄으로 유리질처럼 녹아내린 도시마저도, 사막처럼 황량해지는 대신 울창한 숲이 들어선다. 치사량의 방사능이든 맹독성 낙진이든, 그 어떤 재해도 인간만큼 파멸적이지 않다. 재해는 오히려 지상 최대의 재난인 인간이 떠나가게 하여 동식물의 낙원을 되돌리곤 한다.
(p226,귀신숲이 내리다)
소설가가 되기 전 게임 회사에서 시나리오 작가 겸 기획자로 활동한 이력 덕분인지 <저예산 프로젝트> 속 게임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증강현실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기다 엽편 소설인 <까마귀가 날아들다>는 우리가 실제 경험한 작년 12월의 사태가 다른 평행우주에게 다른 결과로 일어난 경우에 예상되는 일 같아 소설의 발표된 날짜를 찾아보며 작가의 선경지명에 놀라게 된다.
함께 읽은 출간 기념 무크지 속 인터뷰는 작가가 쓴 소설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거기다 에세이는 작가가 어린 시절 처음 읽은 책 소개는 물론 글 쓰기에 도움을 준 여러 가지 그림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에게 한층 가까워진 느낌을 갖게 된다.
바람이라면 sf작가가 요즘 읽고 도움을 받았거나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도 소개해 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해를 시작으로 게임의 증강현실 속, 테이터화 된 세계는 물론 우주까지 넓혀가며 진행되는 소설은 생태, 상실, 회복, 기술 문명 등 현대적 문제들을 다각적으로 다루고 있다.
낯설고도 경이로운 세계를 펼쳐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 당장 일어난 일이 아닐 거라는 안도와 언젠가는 실제로 일어날 일이지도 모르는 불안을 안겨주는 주며 우리에게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