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의 난쟁이
무라카미 류 / 예음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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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같은 대국이 베트남같은 소국에게 군사개입을 하여 괴롭히는 행위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렇지 않아."
"뭐가 그렇지 않죠?"
"너희들은 강력한 조국인 미국이 가난한 소국인 베트남조차도 간단하게 점령할 수 없다는 점에 초조했던 거야."
 
   

 위의 내용만 보면 "오오미 개념글이네요"라고 칭찬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무라카미 류는 파시즘을 어느 정도 찬양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항시 명시하시길 바란다. 무튼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과는 달리 이 소설은 상당히 몽환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굳이 중요한 부분을 꼽자면 소설 중후반이라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어떤 공장도시에 갖힌 매저키스트 난쟁이와 여자가 미치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자꾸 하기 시작하는데, 그 때 그들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처지의 가상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가상인물이 상상하는 가상인물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난쟁이의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썼던 동화이야기까지 합치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엄청나게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특히 그들이 환상의 세계에 있는지 아닌지를 무지하게 신경써야 한다. 스토리가 뒤죽박죽이고 끝도 열린 결말이라서 전체 내용을 열심히 훑어보지는 않아도 된다. 난 지금 할아버지의 수기에 집중해서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도에 끝나버려서 쿠스쿠스가 신에 의해 코끼리에게 깔려 죽었는지 아닌지가 엄청나게 신경쓰이는 중이다. 잠도 안 올 기세다(...)  

 소설은 사회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듯하다가, 점점 범위가 넓어지면서,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SM에 기초해서 근본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결국엔 인간의 정신적인 한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독자의 정신적인 한계까지 실험할 태세다. 이 책을 읽고 '재밌었다'라고 말하는 사람 자체가 마조히스트가 아닐지 의심될 정도. 아무튼 '피어싱(유년의 기억)'같은 소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 하드한 SM들이 등장하므로, 굳이 SM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집어보시라. 이미 품절되어 시중에선 팔지 않으며, 중고책방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책이다. 본인은 국회도서관에서 짱박혀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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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공황 -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사회의 사이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4
김수행 지음 / 돌베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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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양에야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생산자들의 이윤 획득 욕심을 충족시키지는 못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양의 상품이 생산-공급되었다"는 것이 과잉생산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 p. 49  
   

 신상재님이 빌려주신 책을 어제 다 끝내버렸다. 버스 안에서 대공황이 진행되기 시작한 2009년부터 2011년까지의 간단한 연표를 볼 때는 살짝 졸았지만(...) 그래도 나름 훑어본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파산신청을 하거나 위험하다고 지적된 은행 숫자까지 낱낱이 쓴 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3년 간의 경제신문을 낱낱이 파헤쳐가면서 대공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파악할 시간도 여력도 없으니까. <인사이드 잡>이란 영화에서 본인은 듣도보도 못했던 리먼브라더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해서 그 동안의 스토리를 모르는 나로서는 살짝 짜증이 났었다. 이 책에서 약간이라도 전후사정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동안 김수행 씨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에 대해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라고는 학자라는 직업뿐이었다. 이 책에서 학자치고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을 하시길래 도대체 어떤 학자이신가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끄트머리에 쓰여진 저자의 소개를 살짝 봤는데 <자본론>을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하셨다고 한다. 특히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분이시라고. 그럼 그렇지.
 마르크스도 자신의 이론에 끝을 맺지 못해서 말이 많았는데, 이 분도 책의 결말을 매우 애매하게 쓰셨다. 세계는 대공황을 향해서 가고 있다. 소위 이기적인 상위 1% 자본가들의 99% 인간들에 대한 착취 때문에. 그 때문에 99%의 인간들은 각자 지역별로 단결해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해결책을 요약하자면 그게 다이다. (게다가 후자의 주장은 끝부분이 아니라 초중반 부분에서 한 장 분량으로 등장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끝을 보지 않는 사회학 저서들은 나를 참 허탈감에 빠지게 하고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의 시대를 대공황이라 부르는지 쉽게 설명하려 나름대로 노력한 티가 엿보인다. 뭐 본인도 일단 모르는 문장을 세 번 읽고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숫자에 울렁증을 일으키는 대중들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대놓고 수학공식을 내놓은 그 용기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책이 등장하는 걸 보면, 앞으로도 전세계에 대해 좀 더 폭넓게 생각하는 경제학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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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불면증에 걸린 좀비들 세상이다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백종유 옮김, 박태일 감수 / 청림출판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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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는 입술에 와 닿는 커피의 맛이라기보다는 소비자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회상하는 것, 즉 체험인 것이다.- p. 245  
   

 1학기에 ’한국문학과 대중문화’라는 수업을 들었다가 테마파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게 되었다. 옛날 단순히 롤러코스터를 탈 때 짜릿한 느낌을 찾던 유원지가 유행했었지만, 현재는 시간을 초월한 폐쇄공간 테마파크가 유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테마파크는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동심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체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 책도 사람들을 특별한 체험으로 끌어들이는 직업이 서비스업을 제치고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본인으로서는 이 문장이 가장 감명깊었다.
 처음엔 일단 미래학에 대해서 설명한 뒤 곧 다가올 21세기에 대해 정치국면, 사회국면 등등으로 나눠서 상세히 설명한 책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이라고 하면 일단 초등학생들이 그릴만한 장면들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유리막이 씌워져 튜브에 연결된 섬이라던가, 아파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알아서 불이 번쩍 켜지고 요리가 알아서 조리되는 컴퓨터 시스템이라거나. 그러나 이 책에서는 최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려 노력한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소규모 단체와 기업들 중 몇몇을 소개하며, 앞으로 이들이 번창할 것이라 기술한다. 물론 미래학에 대한 설명은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의 출현을 얼추 지금 상황과 비슷하게 예견하는가 하면,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여러 무수한 상담가들이 넘쳐날 것이라 한다. 긍정적인 측면의 발달은 상당히 비슷하게 맞춘 듯하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년가량 지난 지금 이 책을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미래학에서 미래를 너무 낙관적으로, 혹은 너무 부정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최대한 미래의 상황에 대해서 예견한 다음, 예상할 수 있는 문제들을 파헤쳐보고,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창의적으로 생각해보는 작업이란다. 세계에서 유명한 미래학자는 앨빈 토플러이며, 우리나라에선 딱히 특정한 학과는 없고 숙명여대에서 미래학 석사과정을, 한국미래학연구원에서 자세한 조사를 진행중이라 한다. 나중에 미래학에 관련된 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이렇게 내가 읽고 싶어하는 책의 리스트는 또 늘어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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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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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의 공포소설이 흔히 그렇듯이, 이 책에서도 일본 공포소설의 짝퉁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안녕, 나디아>에서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채용해왔다. <남의 일>에서 '큐티하니'를 채용해 온 것처럼. 그러나 '큐티하니'만큼의 기발함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캣오나인테일즈>에서는 어딘가 토미에 냄새와 모텔탈출기 냄새가 뒤섞여 나는 듯... 어디선가 이토 준지 냄새가 나는 <사향나무 로맨스>까지. 끝에서 '할머니의 명예를 걸고' 이 글을 썼다는 후기를 읽고는 정말 가지가지한다 싶었다. 아무리 처녀작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베껴오다니... 돈 주고 샀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듯하다. 그러나 <시선>에서는 나름대로 반전을 가미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더이상은 스포일러이니 생략. 그러나 추리와 반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포기하지 말고 읽어야 할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가 두 차례나 언급됨은 물론, 소외받는 사람들의 절단된 관계를 다룬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그나마 별 두 개 정도는 가미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하도 공포소설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보니, 이 작가를 나중에 더 만날 기회가 있겠지. 그러나 그 다음 소설도 이렇게 은근한 표절기법을 사용했다면 그 땐 본격적으로 때려칠련다. 괜히 읽다가 화만 났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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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 - 돈과 멀어지지 않고 행복해지기
제윤경.정현두.박종호.김미선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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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행복해지는 삶이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돈을 원 없이 쓰고 사는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만큼 지혜롭게 잘 쓰는 과정에서 조금씩 바뀌고 나아지는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저축은 분명 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p. 180  
   

 내용도 매우 짧을 뿐더러,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시를 들어서 신용카드의 폐단을 설명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들춰볼 수 있었다. 금융소비자협회란 곳에서 증정한 책이었는데,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신용불량자들을 흔히 보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볼 필요도 없이 그 위험을 잘 알고 있다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지갑 속엔 아직도 신용카드가 있지 않은가.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도박과 주식과 기타 등등의 요인으로 인해 파산하는 사람들을 너무 흔하게 보아왔기 때문에, 지갑에 신용카드를 만들어놓지 않았다. 그러나 본인에게도 주식에 투자해놓은 금액이 있고, 가끔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유혹하는 은행원을 보면 잠시 머뭇거리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최근 핸드폰 소액결제로 무언가를 구입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었다. 화폐가 아닌 돈을 쓴다는 건 매우 무서운 일임을 알았고, 모든 일엔 반드시 대가가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이 신용카드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백수가 되지 않는 이상은 신용카드와 주식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저축하면서 빚 한 푼 없이 사는 삶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이 책이 돈에 대한 애증으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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