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인즈 게이트 Steins Gate 원환연쇄의 우로보로스 2 - NT Novel
미와 쵸시로 지음, 김정규 옮김, huke 그림, 니트로플러스 원작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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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낚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녀석은
ㅡ진실의 문을 열 수 없는 법이다- p. 743

 

 

  

일단 작가가 수고했다. 당신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이다.

이루마 히토마같은 천재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했지만,

역시 당신은 그런 중2병들을 따라가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문체도 그렇고 오카베 린타로도 중2병 캐릭터가 되는데 실패했다. 몹시 유감이다.

 

 나는 생각한다. 현진건이 살던 사회가 술 권하는 사회였다면, 지금 우리는 자살 권하는 사회를 살고 있지 않나 하고, 그런 면에서 오카베 린타로가 '신이 마유리의 죽음을 정해놓았다'라고 하는 생각한 것은 착각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거기서 약간 비틀린 오해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신이 아니라, 악마가 아닐까 한다.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알 수 있지만, 수많은 오카베 린타로가 한데 뭉쳐서 저항하는 대상은 오히려 악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나마 슈타인즈 게이트 선으로 넘어오는 데 성공한 린타로도 15년 후엔 죽는다 한다. 소설에서는 적히지 않았지만, 결코 천국에 떨어지진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유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토록 나락에 떨어진 자신을 구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나마 15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 할 순 있겠다. 하지만 인간을 변화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짧다.

 

 성당을 의무적으로 다녔다. 오히려 내 신상에 위기가 닥친 적이 있던 초등학교 시절 덕분에 규칙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하면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되려나? 그 때부터 어렴풋이 신이 나를 내려다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하지만... '악마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낀 시기는 대학교 때 와서이다. 메탈 우파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보면, 나비효과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의 불장난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될 것이다. 나도 '잠깐 바람 좀 쐴까?'하는 생각이 내 인생을 이렇게까지 바꿀 줄은 몰랐다. 국정교과서를 만든다고 한다, 광주에서 아무 죄 없이, 그저 숨쉬고 있다는 이유로 죽은 시민들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좌파로 변신했다. 일본에서 윤동주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잡아다 산 채로 생체실험했다는 사실은 묻힐 듯하다. 대신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쌀을 일본에 수출했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들이 밉다. 그저 그 치들과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이 기억 못하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는 이유만으로' 죽도록 혐오스럽다. 오카베처럼 그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기 전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사정을 지켜볼 수도 없다. 오카베는 분명 행운아이다. 그들에 대한 원한을 해소했으니 지옥으로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혹은 나와 운동권으로 연관된 사람들은,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미워하고 있으니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모두 리딩 슈타이너 기질을 가지고 있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중2병 환자들이다. 역사의 승자들이 이 수많은 오카베 린타로들을 위해 베풀 자비는 단 한 줌도 없을 것인가.

 

 그저 데자뷰를 지닌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가. 당신들이 그들을 좀 도와줬으면 한다. 오카베도 도저히 자신 혼자서는 버틸 수 없어서 크리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유리를 살려달라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이론에 의해 버려진 다음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고 자살한다. 그 노동자의 가족들이 절망감과 광폭함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마치 산책하듯이 가뿐하게 베란다를 걸어나가 떨어진다. 이번 국정교과서가 작성되면 그 국정교과서를 작성하길 거부한 80%의 교수들과 그 교과서에서 패자로 기록된 수많은 독립유공자 등의 사람들이 사회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잘려나갈 것이다. 마치 슈타인즈 게이트 의외의 세계선에서 마유리가 죽어도 그러려니 하게 되고, 크리스가 죽어도 그러려니 하게 되듯이 말이다. 여기선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들이 큰 문제다. 당신들도 결국 뇌과학의 그속한 발달로 인해 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상범으로 찍혀 잘려나가 죽기 직전에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이미 당신을 도와줄 가능성조차 없다. 그나마 시위라도 있는 지금 이 때밖에 기회가 없다. 이 세상 온 연옥이 악마로 넘쳐나기 전에... 부탁한다.

 

 나는 정말로 지옥에 빠져도 괜찮다. 다만 촛불을 킨 내 옆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한 번만이라도, 잡아주길. 그들의 손을 잡아주기에 내 손은 너무도 힘이 없다. 점점 차가워진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마도 악마가>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결말을 너무나 간절히 부러워했던 나로선 그들에게 위로를 줄 수 없다. 간절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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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의 발견 창비시선 350
이병일 지음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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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장

 

작은 돌, 큰 돌, 옆구리가 깨진 돌, 대가리 날카로운 돌 모아 담장을 쌓아올린다. 황토와 짚을 잘 섞어서 두 집 사이에 돌 울타리를, 매화나무와 감나무의 경계선을 후회도 없이 쌓아올린다. 나는 큼지막한 돌덩이를 양손으로 옮긴다, 감나무 그늘로 옮긴다. 저만치 매화나무 꽃눈이 지켜봐도 돌풍과 작달비에 끄덕없는 돌담을 쌓는다.

오늘 나는 담장을 쌓아올리며 겨우내 잠자던 어깨 근육을 흔들어 깨웠다. 돌덩이 하나 놓고 수박만한 태양을 놓는다. 돌덩이 하나 놓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를 놓는다. 곰곰이 바람의 각도와 수평을 맞추고 또다시 돌덩이와 재미없는 한낮의 하품을 마저 놓는다. 그때 나는 줄곧 이 담장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와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

나는 자명하게도 담장을 쌓는 일에 끝없는 동작으로 있는 힘을 탕진 중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

 

 사실 이 시인은 명랑한 남극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왠걸, 첫 시집의 첫 시부터 왠지 내 이야기같아서 너무 좋았다. 어언 27년간 사람간의 관계에 벽을 치고 산다고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 ㅠㅠ) 온갖 욕을 다 먹던 나였다. 그래서 최근 장벽을 걷는다고 일부러 허물없이 대했더니, 이제는 좀 아닌 척 하면서 살라고 한다. 심지어 이용해먹고 배신까지 때린 인간들도 나왔다. '좋아, 그래서 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잔뜩 심통이 나 있던 차에, 이 시를 읽고 정말 위안을 받았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그러나 그런 위안도 잠시, 다음 시들을 읽어보면서 도대체 이 시인을 믿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감을 못 잡겠다. 깜짝 놀라서 시집을 확 덮다가 시집의 표지를 새삼 보게 되었는데, 보라색이다. 역시나 이 시인도 나처럼 별난 부류이구나 싶은 허탈감이 들면서도, 당당하게 인간 관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정한' 벽을 친다고 시를 쓰는 시인도 저렇게 사는데 나도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뭐 딱히 시가 이상하다거나 내 취향이 아니란 건 아니다. 도리어 심하게 내 취향이라서 문제다. 인공수정 같은 시에서는 물고기의 인공수정을 보면서 인간을 인공수정시킨 후 죽이는 장면을 떠올린다. 처음 듣자마자 뇌리에 꽃힌 명랑한 남극에서는 자신이 품고있던 알을 맹렬하게 쪼아먹는 황제펭귄을 등장시키면서 자연의 부성애 모성애 운운하는 인간들의 주둥이에 강펀치를 날린다. 자연과 동화하여 자연의 시선으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시인의 관점이 굉장히 두드러지는 시였다. 마치 샤머니즘을 떠올리게 한달까. 개인적으로 마지막 페이지에 소문과 안녕, 서울이여!를 넣은 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사회비판적인 시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시인은 자연에 대한 시를 쓰는 게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마음은 벌써 남쪽 마이산이 있는 곳으로 가 있는 것 같으신데, 지금쯤엔 혹시 그 쪽에서 살고 계시는지?  

 

  

월광욕이란 시에 등장하는 사슴이 뭔지 궁금한 분들은 이 사진을 참조하시길.

시인이 시를 쓰는 동안 어떤 아바타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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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1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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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무수한 선택지를 만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조금만 지나도 너무나 명백한 것이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결국 인생의 비극을 만든다.


 


 

이 말을 듣고 딱 생각난 게 있는데, 게임 창세기전의 엠블라이다.

마음 속에 임자가 있는 사람은 속히 반경 10미터는 떼어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개인적으로 베라모드보다 더 좋아했는데... 썩을 살라딘 놈 ㅡㅡ



사람 하나하나에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기술이 하나씩은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이겼듯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 또한 세상의 그 수많은 무대 중에서도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분수에 맞게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한 사람의 인생길을 막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실패 한두번 한 정도 가지고 주저앉아서 찌질하게 징징대진 말자는 거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려면 반드시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은 다음 결정하는 게 좋다. 반발과 부딪침도 겪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그 길엔 한 점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샘터는 첫 부분에 김병수라는 사람이 나왔는데, 말을 매우 잘 해서 깜짝 놀랐다. 힘들고 지치면 세상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정상적인 감정과 생각을 마치 무슨 질환인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우울증이란 책을 읽었을 때에도 비슷한 교훈이 등장했다. (참조: http://vasura135.blog.me/80181223471) 지금은 그런 자기인식같은 것도 잠잠해지고 백종원 집밥 음식이나 힐링 드로잉북이 크게 유행하는데, 아니 해결책을 갈구하는 건 좋은데 정신병원에 가서 전문 상담을 받으라고 ㅋ 결국 사람들이 이렇게 침묵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본다. 집단븅산탈춤같은 정신병 유행현상 속에서 마구 날뛰다가 머쓱해졌는데 시스템 속에서 적당히 순응해서 살고 싶어서 힐링 '유행'에 파고들었다거나, 아님 이 미친 세상에 압도당해서 뭘 말하고 싶어도 침묵하고 잠정적 포기를 다짐하고 있다던가. 두 반응 중 어느 쪽도 그닥 바람직하진 못하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심리학 책 몇 번 집적대놓고 마치 자신이 심리 전문가인 것마냥 떠들기도 한다. 역겨워서 구역질이 난다. 그런 벌레같은 부류들의 허세 때문에 정작 정신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인간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대다수가 자신이 아픈지조차 잘 모른 채로 일상에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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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인즈 게이트 Steins Gate 원환연쇄의 우로보로스 1 - NT Novel
미와 쵸시로 지음, 김정규 옮김, huke 그림, 니트로플러스 원작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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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유리 너머로 보는 것처럼, 내가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소설 속에서 스즈하(알바 전사)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고 랩멤들에게 고백하고

역 앞 어딘가에서 나올 예정인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당일날 주인공에게 보낸 메일의 일부분.

결국 그녀는 그 날 아버지를 만나지 못해서 주인공이 사력을 다해 찾은 다음 그녀를 끌고 온다.

생각해보면 이 때부터 주인공이 남의 사연에 대해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듯.

뭐 스즈하가 워낙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도 했고, 게다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실패로 인해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반면에 사람들은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시간을 되돌려서 바보같이 망쳐버린 그 일을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어떤 사람에겐 매우 간절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금단의 영역일 수도 있다. 전자는 주인공에게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성별 때문에 기회도 없는 루카라던가 기타 등등 사연 많은 사람들. 후자는 크리스 정도를 들 수 있을까나. 하지만 크리스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버지와 왜 갈등이 생겼는지 잘 모른다는 점. 주인공이 금방 깨닫게 된 그녀의 문제를 그녀가 인식했더라면, 그녀는 어떻게든 과거를 되돌려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현재의 천재소녀에게 관심이 많은 주인공 오카베 린타로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만약 크리스가 시간을 돌려서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제대로 성공했더라도, 자신의 끼를 살리지 못하는 억압적인 환경에 만족할 수 있었을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슈타인즈 게이트는 자신을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자칭하며 연구실을 만들고 행동력을 증폭시켜나가는 오카베 린타로가 만능해커 다루와 천재소녀 크리스를 만나 우연과 우연을 겹쳐 타임루프머신을 개발해버리는 내용이다. 그러나 자영업자가 대기업에게 당하듯 그도 하루 아침에 세른이라는, 독재를 꿈꾸는 기관에게 연구원들을 빼앗긴다. 한마디로 그들은 총살당했다. (사실 구글이 만들려는 '섬나라'가 그런 형태가 되 버릴까봐 무섭다.)

 

  

그야말로 슈타인즈 게이트 게임을 해본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명대사다.

 

 자신에게 리딩 슈타이너라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지 않고 타임루프머신을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소꿉친구 마유리랑 결혼해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퇴직 후 얌전히 치킨 집이나 차리고 있었을 오카베 린타로는 여기서 분노와 증오가 폭발한다. 아무래도 처음이어서 그렇겠지만... 전에 슈타인즈 게이트 애니판에서도 말했듯이 마유리가 죽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보면서 마유리에 대한 그의 마음은 무뎌진다. 아무래도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대가일 것이다. 난 슈타인즈 게이트의 비공식적인 주제가 그것이라 생각해왔다. 더군다나 소설판에서는 루카코가 여자로 변하지 못하는 등, 미래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1권에서는 그렇다.) 미래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나오진 않지만 아마도 세른은 2034년에 타임머신을 개발한 이후론 과거를 엿바꿔먹듯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거 같던데,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이것이 자영업자의 시련인가.

 그러나 소설판에서는 조금 달랐다. 과학적인 이론이 체계성을 띄면서 그것을 설명하는 크리스의 대사가 증가했고 역할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오카베 린타로의 개인적인 갈등이 훨씬 부각된다. 어떤 시인이 팟캐스트에서 그러더라. 남을 챙기는 척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치면 가족과 애인도 다 바꿀 것 같은 자신이 비겁하고 혐오스럽다고. 딱 오카베 린타로가 그런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또 한편으로 자기애가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슬퍼(?)하지만 페이리스처럼 쉽게 받아들여서 증폭시키려 하면 부담스러워한다. 이래저래 중2중2한 인간들이란 까다롭다. 츤데레 마키세 크리스도 오카베의 독백에 의하면 '땅바닥에 추락해 실을 끌고 무리해서 기어다니는 연'과 같은데, 같은 호기심에 의해 서로 끌린 이들이 어떻게 서로의 아픔을 보다듬어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아무래도 이 소설 출판한 사람들 가운데 크리스 빠가 숨겨져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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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의 눈 문학과지성 시인선 193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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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맑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겨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유성이 뿌리는 가루의 영향으로 인해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는 스토리 설정 때문에

밤하늘을 잘 그릴 수밖에 없었던 (...) 샤를로트라는 만화영화의 한 장면.

 

 이 시집에 수록된 '섬'이라는 시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감옥에 갖혀서 볼 수난 못 볼 수난 다 보고 미국에 온 시인의 자괴감이 생생히 느껴져 온다. 매스컴의 범람으로 인해 닥쳐오는 일반인의 가벼운 상대적 박탈감과는 질이 다르다. 그를 따르다가 미국에서 죽은 동생에 대한 일종의 죄의식, 고국의 광고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기시감, 아무래도 고향으로 느껴지지 않는 미국과 점점 변모해가는 한국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던 그는 이 시집의 끝부분에 가서야 무언가 교훈을 깨친 듯 이 시를 썼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 시집은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지닌다.

 

 가수 루시드폴이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해서 한달음에 서점에 달려가서 구입했는데, 결론적으로 내 취향의 시는 아니지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그의 성격이 느껴져서 좋았다. '게이의 남편'이란 시에서 그런 점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아무리 미국에서 살고 자유주의자를 표방하더라도 동성애자는 아직 낯설어서 그런지 그 때만은 다른 시에서와는 달리 확연히 화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문집 쓰면 잘 쓰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시가 워낙에 인기를 끌었었는지 이 시의 제목 그대로 2003년에 산문집이 나왔더랜다. 의사생활 은퇴 후에는 한국을 자주 방문할 뿐더러 비교적 최근인 2013년까지 열심히 책을 펴내고 계신다 한다. 사어, 즉 죽은 말에 관심이 있어서 연구를 지속하고 계신 듯하고 이 시에서도 한국어를 잘 모르고 살아왔던 걸 후회한다고 하시는데 왠걸. 정말 그렇다면 이런 훌륭한 시를 쓰실 수 있었을까? 겸손이 지나치시네,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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