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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시 100선 -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읽는
윌리엄 B. 예이츠 외 지음, 김옥림 옮김 / 미래북 / 2013년 11월
평점 :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만큼
젠 브레이
가끔씩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만큼
그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라고요.
이것은 그대의 사랑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대에게
나를 안고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매달리는 것뿐이랍니다.



타입문 세계에서 능욕당한 3인방이라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이분들 다 임자있는 남자에게 모든 걸 바쳤다가 죽도밥도 안 된다.
이 책에선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하라는데 그 녀석이 나한테서 돈 뜯어간 기억밖에 나질 않는 걸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이기적인 애인가 보다. 잠깐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기억을 못하는 걸 보면 그냥 인간관계에 소홀한 게 연애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최근에 깨진 연애도 그 남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과 도저히 잘 지낼 자신이 없는 케이스이다보니 더더욱 그렇다. 마을 주민과 이웃 사촌간의 관계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사람 간의 거리를 두라는 책이 유행을 타고 있던데 난 거리를 두는 건 확실히 잘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족이나 나와 친한 친구들은 아직도 사람을 너무 좋아하지 말고 거리를 두라고 한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소리인지 이해를 못했다가 저 시구절을 보고서야 알았다. 헤어지고 나서 몇 년 정도 시간이 지난 Y가 생각났다. 유달리 내 말귀를 못 알아듣던 녀석을 나는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 녀석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나한테 연애 마지막 때 쯤 '내가 홍등가를 가서 성관계를 하고 오면 어떨 거 같냐' 라는 말을 던져서 나에게 헤어지자는 답을 거의 즉시 받게 되었는데, 그렇게 못된 말을 했던 건 내심 그런 나에게 질려서겠지. 그러나 미련은 없다. 어차피 결혼을 하면 사랑'했던 전날의 추억' 속에서 살아갈 텐데, 험난한 세상에서 그 정도 유혹도 못 이긴다면 앞으로의 미래 설계도 메챠쿠챠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겐 걱정말라고 해주고 싶다. 난 항상 사람들과 이별할 때가 익숙하지 않아 곧잘 울지만, 그만큼 훌훌 털고 일어나는 시기가 짧고 회복도 빠르니까.
주변에서 실연의 상처에 시달리며 사는 남자들을 보면 괜히 뜨끔한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심지어 성폭력 대책위 내부에서 사랑싸움했다가 온갖 소문에 시달려 진보진영 자체에서 퇴출된 케이스도 봤다. 여자들이 교육도 잘 받았는데 사회까지 어려워져 남자를 보는 눈이 높아진 데 대해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는 사랑을 하려면 그에 관련한 자격이 필요하다. 코에 콤플렉스가 있지만 언변이 유창한 시라노가 남을 통해 고백을 하지 않고 직접 고백했더라면, 그의 생각처럼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도 사람 관계라 맺고 끊음에 대해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랑할 때 최소한의 에티켓을 지키고 전부를 바쳐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 없다면, 나에게 온 세상의 전부여야 하는 그 사람의 사랑도 얻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