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물들 -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
허수경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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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 쳇! 지금 없으면 영원히 없는 거잖아. 예전에 콘돔을 썼는데도 임신한 적 있어요.
민철: 킥킥, 너무 격렬해서 터졌나? 아닐걸요. 우리는 압축공기를 콘돔에다가 집어넣어 터질 때까지 강도 체크하고 누수 실험도 하기 때문에 불량률이 채 1 퍼센트도 안 돼요. 싸구려 저질 콘돔을 썼거나 사용법을 잘못 알았거나.......
이듬: 요새는 낙태도 어려우니까 터미널 화장실 같은 데 핏덩이를 쏟아놓고 가는 애들도 있대요. 입양특례법인가 뭔가가 만들어져 입양도 쉽지 않으니까 신생아, 심지어 태아까지 단돈 몇십만 원에 팔고 사려는 사람들이 북적인다고 해요. 인터넷 불법 거래를 통해서......
민철: 그래요? 말세군 말세! 언젠가 베이비박스 이야길 들어보긴 했지만. 그쪽은 이런 문제에 민감하네요. 아 참! 그래서 임신했던 애는 낳았어요?
이듬: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배시시 웃으며) 이제 가야겠어요. 급식 시간 끝나가거든요....

 

평상시 편견에 가득차 있는 나는 시인의 사물에 관한 에세이들을 모은 것인데 술이 얼마나 등장하는지 세볼 셈으로 책을 봤다.<- 그런데 역시 여러 구절에서 등장하더라. 주로 같이 술을 마시는 데 대한 내용이 나오는 데서 공통점이 있었다. 심지어 아예 탁주를 주제로 글을 쓴 사람도 있었다. 역시 바다에서 마시는 술이 최고지.

 

 가끔 자신이 술을 마시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가 술을 마신다던가 학대를 한다거나 이혼을 한다거나 하는 엄청난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막힘없이 풀어내는 글들이 많다. 심지어 이를 닦는 극도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숨김이 없는 게 아름답다더니 정말로 하나도 감추려고 하지 않는 듯하다.

철학가들의 이름도 자주 나와서 좋았다. 특히 신현림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이름을 대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의 이름을 읊조리면 자꾸만 가스등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녀도 혹시 의식하면서 일부러 그의 이름을 댄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일상적으로는 못 보일 것도 다 보여주는 이 책이 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문단계가 썩었다는 이야기가 요즘 자주 나온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젊은 시인들은 대조적으로 한없이 발랄하다. 그래서 무게가 없는 글이라거나, 부모님 이야기를 주구장창 이야기하는 글도 보인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차지하다보니 이 책이 출간되었던 그 시절 너도나도 꺼냈던 세월호 이야기가 그나마 드물게 나온다는 게 장점이랄까. 결국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역사와 자신이 겪은 삶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꽤 명랑하게. 클립의 이야기는 사건이 없다. 하지만 별다른 재료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도구적 존재는 그 도구를 쓰는 현존재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저자들은 사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두장으로도 그렇게 숨김없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있었다. 사물을 찬양하는 구절이 많았지만, 모두가 그런 구조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 또한 포인트다. 예를 들어 위의 구절에서 나오는 콘돔이라던가, 고통이 없다고 속일 수 있는 알약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다. 사물을 보는 눈을 조금이나마 새롭게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독자에게 사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준다고도 생각된다. 특히 소수자들과 힘 없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된 사람들에게, 보통 읽기 어려워보이는 미래파 시인들이 무릎을 숙이고 접근하는 게 느껴진다.

 

금으로 변한 은수저를 평생 팔지 않고 모시고 살겠다고 말한 지 2년 만에 팔찌를 팔았다. 통장에서 뒹굴어 다니는 것이 먼지뿐이었다. 돈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대관령 깊은 산 속에서 움막 교회를 짓고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시는 귀한 분이 오신다는 소리에 단 한 번 머뭇거림도 없이 냉큼 보석방에 주었다.
최인숙 시인과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박흥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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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 Workers 34호 : 2017.09.01
워커스 편집부 지음 / 사단법인참세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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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휠체어이용 장애인, 베지테리언이 있어서 불편한 게 아니다. 그들과 동일한 자리에 서있어야 하는 순간, 자신이 공기처럼 누리던 특권을 누릴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느낀다.

 일단 워커스가 이번에 출간한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에 대한 의견을 올렸다는 게 중요한 듯하다. 조지영 집행위원장과 만나서 이루어진 인터뷰 글인데, 일단 이 글은 8월 23일에 그녀와 만나서 취재한 뒤에 9월 1일에 나에게 도착했다. 그런 걸 보면 상당히 촉박한 기간 안에 쓰여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잡지가 월간 잡지임을 감안할 때 기사는 보통 8월 초중반이나 7월에 취재한 기사를 다루게 마련이지 않은가. 이 잡지를 발간한 곳이 참세상이고 책갈피 출판사와 연관이 없진 않다보니 빨리 자기 잡지의 의견을 냄으로써 그쪽과 연을 끊고 싶었던가 보다. 지극히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단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과 그 2탄에 속하는 책을 보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그런 책을 읽음으로서 내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성폭력 사건을 굳이 상세하게 보고 싶지 않다. 또한 그 출판사와 일원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는 어찌보면 참으로 단순한데, 출판할 자유가 있다면 불매운동을 벌일 자유 또한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돈을 벌지 않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밥줄도 끊긴다. 이런 인간들은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무궁무진하게 있어서 그 점이 또한 나를 열받게 하지만, 일단 내가 그 발판이 되진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 책을 구매해서 읽는 사람을 보는 눈이 좋을리가 없을 거라고 본다.

 

 

 

그 책을 산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내겠다만, 책의 형태로 나왔다고 해서 다 읽기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은 내용의 만화는 기피하면서, 이런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텍스트로 나왔으니 좋아할 것이다. 서점에서 일하다보니 만화책이라고 하면 모두 교훈성이 없다고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심술이 생긴다. 웹툰 마음의 소리에도 교훈은 있다. "나대지 마라."

 2011년 서울시의원회관 로비. 서울시학생인권조례의 주민발의안 원안 통과를 요구하던 성소수자공동행동의 농성에 반대하러 온 이들 피켓에 이런 놀라운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때가 보수 개신교 그룹의 혐오선동 문구에서 처음으로 '항문성교'가 등장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정작 이 피켓에 더 놀란 이들은 의원회관에서 농성 중이었던 퀴어 활동가들이었다. "우리도 입에 잘 못 올리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쓰다니!"
(...)
-성을 '성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성교는 곧 남성 성기의 '삽입'이라고 인식한다.
-때문에 한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여성 성기를 대신해' 다른 남성의 항문에 삽입하는 것이 곧 동성애라는 왜곡된 인식을 전제하고 이에 대한 혐오를 선동한다.

성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섹스가 전부이고, 섹스는 남성이 여성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삽입하는 것이 전부라고 인식해 온 사회가 지금까지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야기해 왔다.

다른 페미니즘이나 퀴어 글들을 보면서 속 시원한 것에 앞서서 나의 미래가 좀 두렵기도 하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남성들은 당연히 집안일을 나에게 미뤄둘 텐데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나는 좀 나와 사상이 맞는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의외로 집안일 부담이 철저하지 않기는 커녕 설거지조차도 하지 않으려 하는 배운 인간들이 운동권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분노하거나 울지 않으면 싸움도 제대로 못하고, 정말로 분노하면 말 그대로 터져서 피가 솟구칠(...) 신체기관이 참 많은 나로서는 우려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집안을 개판으로 내버려둘 수는 없고. 이래서 에너지가 있는 나이에 결혼을 해서 서로 맞춰가는 게 중요하기는 한 듯하다. 역시 따로 살아야 하나...

내가 왠만해서는 인터넷 구매를 하지 않고 시장이나 매장에서 구매를 하는 이유는, 쇼핑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나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유불문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건 사실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일단 인터넷으로 구매한 물건 중에 마음에 드는 걸 찾았던 경우가 별로 없기도 하다. (책 구매만 빼고, 라고 하고 싶지만 예스 24에서 그닥 좋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책 구매를 해도 예스 24는 무조건 피한다.) 또한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를 구매했다고 치자.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집에 있는 그 물건을 보면 그걸 구매하기 위해 돌아다녔던 경험들이 떠올라서 마음껏 공상에 잠길 수 있다. 전쟁을 할 때 버튼 하나 누르지 않고 무인기를 보내서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는 쇼핑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물건을 파는 자도 로봇이고, 물건을 사는 자도 로봇이다. 설령 그들이 인간을 욕하면서 그들을 멸망시킬 계획을 인간의 언어가 아닌 무언가로 몰래 대화하더라도 인간들은 할 말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고 있는데도 일런 머스크 테슬라 사장은 AI가 북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는 먼 훗날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더욱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결국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었어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관계를 쌓으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병원 두 차례 들락거리니 아무리 어제 과식한 몸 튼튼한 나라도 진이 다 빠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글을 보니 왜 이리 허기가 지고 수술한 부위는 아프고 무엇보다 쓸쓸해지는 것일까. 크나파는 가늘게 자른 면을 버터와 크림치즈로 튀긴 뒤 설탕이나 꿀을 입혀 달게 만든 디저트 음식이라고 한다. 얼마나 맛있겠는가. 치즈하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슬라이스 치즈를 오랜만에 집자마자 병이 터지는 걸 보고 어머니는 치즈 금지령과 집에서만이지만 혼술 금지령을 내릴 테세이다.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지만 술을 못 마시고 치즈를 못 먹는 나를 진심으로 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주변에 나타나지 않을 듯하다. 최근 친구 정리를 하면서 소주 친구까지 걸렀으니 자업자득이기는 하지만...

22호 워커스에서 푸엔테스 부편집자 인터뷰를 보고나서 머릿속에 혼돈이 왔었는데, 역시나 지금 정리된 기사를 봐도 개판인 듯하다. 우파는 근거도 없이 마두로 대통령이 콜롬비아 출신이라고 비난하고, 야권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서 서명을 위조하고, 테러리스트나 폭력 시위가 난무하여 전직 군인이 경찰 헬기를 탈취해서는 정부청사와 대법원에 총을 난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음... 우리나라 상황이 훨씬 더 개판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우리는 당장 지금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니까;;; 조속히 해결되었음 좋겠다. 굳이 사회주의가 해결책이라면, 그걸 선택하는 게 옳은 일이겠지.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이 도래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박세리 선수의 맨발 투혼을 보며 애국심을 다잡았고, 나라 빚을 갚겠노라며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 아물지 않는 상처에 자꾸 고름이 찬다. 애써 잊으려 할수록, 세상이 온건해 질수록 더욱 그렇다. 내 손에만 있는 줄 알았던 고통이 이제 세대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진부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들을 포기할 수가 없다.

일단 표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목이 특이하다. 1997.1121.20000.982라고 적혀있다. 한눈에 1997년 IMF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의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들에게 핸드폰이 아니라 삐삐가 널리 쓰이던 시절의 유행어였다. 나는 하루가 지나서야 생각났지만 삐삐란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젊은 친구들은 아예 이해를 못하는 듯하다.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금모으기 운동할 때 모인 금의 양일 것이다, 숫자 자체가 IP 주소일 것이다 등등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행어란 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아무도 이해를 못하는, 그렇다고 외계어처럼 신선하지도 않은 투명어가 되어버리고 만다. 씁쓸한 일이다.

 

 

'누구의 사진일까 ㅎ 이 지방이 유달리 이전과 별로 달라질 게 없는 장소란 뜻일까? 아님 드물게 즐거웠던 추억일까? 아무튼 오색약수는 지금도 사진의 풍경과 비슷하군. 나중에 가볼까 싶네.'
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아무말 큰잔치란의 글에서 큰 웃음을 주었다.

 

 얼마 전에 '힙스터 체크리스트'가 세간에 떠돌았다. 체크리스트에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찰스 부코스키를 읽고 강원도 양양에서 서핑을 즐기거나 대만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야 힙스터다. (...)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고 방송에 나오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평양냉면'과 '알리오 올리오'를 먹는다. 냉면에 가위질을 하면 안 된다고 면장질을 하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힙스터 체크리스트 같은 건 사실 언어도단이다. 힙스터의 본질은 '구분짓기'에 있다. 독보적이고 독특한 취향으로 자기를 타인과 구분짓는 것, 그러니까 자아와 주체의 확립이 힙스터의 의미라면 "이래야 힙스터"라는 힙스터 판독기에 편입되는 순간 그는 이미 힙스터가 아니다.

그래서 워커스 처음 부분에 오색약수 간 누군가의 젊었을 적 사진을 올렸구나 ㅋㅋㅋ 아 이 맛에 워커스 봅니다. 어찌 그 사진을 처음에 올리고 마지막에 이런 글을 딱 때릴 생각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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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실황앨범 (피아노 협주곡 1번, 네 곡의 마주르카 Op. 33, 에튀드와 환상곡) [디지팩] - 프리데리크 쇼팽 협회 공식 음반
쇼팽 (Frederic Chopin) 작곡, 카스프쉬크 (Jacek Kaspszyk) 지휘 / 씨앤엘뮤직 (C&L)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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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혁명사

공산 당원이었던 나의 어머니는 소련군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나는
인파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다른 남자의 얼굴에 키스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위기는 황홀했고, 어머니는 환호했고, 나는 살짝 발기했다.

불편한 잠에 취하자 나방이 한 마리 날아들었다.
나는 세상이 깨닫는 첫 존재라는 걸 끄적이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그런 비탄이라도 없기를 바라보았다,
불완전한 삶 속의 완벽한 소설을 꿈꾸어보았다.

나의 유년은 왠만한 혁명보다 더욱 피 냄새가 짙었다.
바로 이것이 나의 지난 십 년간의 유년에 대한 침묵 자세 말투 신화 소설이다. 아직도 내 눈에는 나방이 보이지만, 나는 안다, 나방은 내 눈에만 보이는 환영
이라는 것을.

십 년, 무려 십 년 동안 배인 냄새

 

  

이 책은 해방촌 북카페 치읓 2층에서 찾았다.

 

그 때 발견한 이후로 몇 년은 흘렀으니 아마 지금은 찾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사실 시간도 때울 겸 아무 책이나 잡는 대로 사겠다는 심정으로 갔는데, 예상 외로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맘에 쏙 드는 책은 너무 비쌌고, 가벼운 책들은 과하게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진이 든 책들을 많이 취급하다보니 텍스트가 해설 위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이 책은 병적인 분위기를 제외하고는 사진과 아무 관련도 없는 텍스트가 나열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한동안 점찍고 있다가 변함이 없어서 샀다.

처음에 볼 때는 이를 닦다가 잇몸에 피가 나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그래서 쭉 훑어보다가 어떤 사람과 아파트 옥상에서 상자 종이를 깔고 앉아 키스하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키스했던 그가 화자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장면도. 왜 우리는 나의 삶에 대해 놀리는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그가 더 이상 놀리지 않게 내가 똑바로 행동할 방법(?)을 궁리하는 걸까. 하긴 경험상으론, 그 사람은 99.9% 대항을 반항으로 알아듣고 날 더 마구 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냥 마음대로 살도록 무념무상으로 내버려두는 게 좋더라. (그리고 연인이면 반드시 헤어져라.)

내 기억으로는 이 책을 쓴 사람 혹은 편집한 사람 혹은 둘 다 다함께하고 관련이 있는 듯하다. 운동권 여러분들은 다들 알다시피 그 내부가 몹시 개판이고 이 책을 쓴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난 워커스를 욕하면서도 보는 이유가 있듯이, 이 책도 몇몇 부분은 좋아서 보고 있다. 근데 왜 워커스랑 디자인이 무지 똑같은지는 물어보고 싶다. 패턴 좀 바꿀 생각 없나.

이 책엔 가상 인물인지 실제 인물인지 도통 헷갈리는 체코의 게이 곤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1984년에 사망한 그는 (Aran으로 추정되는) 1990년에 태어난 누군가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2013년에, 그가 빠진 강물은 아니지만 아무튼 물이고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강을 찾아간다. 그는 한강의 어떤 섬을 찾아가려 노력하면서 그 섬의 역사와 가까워 보이면서도 먼 그 거리에 놀란다. 그와 섬 사이엔 법이 가로막혀 있었다. 섬 주민들은 정치가들에게 속아 와우산으로 이주해 가려다가 몇몇이 한강에 희생당했다고 전해진다. 과연 용의자는 한강뿐인가.

 

간지러움 중에서

껍데기에서 껍데기로 옮겨진 낯선 이의 혈액보다 피부에 닿아 끈적이던 과즙이 오히려 더 내 피 같았다.

고속버스는 태연히 출발했고 나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아이스크림 하나를 빨아 먹었다. 배트맨 마크에 그려진 노란 봉지에 든 열대 과일 맛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스크림을 수박 맛으로 기억한다. 신발 밑창부터 손 끝까지 퍼지던 수박 맛으로. 

 

  

틀렸다 건담빠가 된 이제는 수박 하면 수박바만 생각나(...)

 

  

그래도 배트맨 씹은 건 미안해서 근엄진지한 짤로 올려본다.

 

1948-1984
1990-2013 중에서

"춘천 청평사 극락보전에 날 세워달라고 했다. 소양강 굽어 보며 놀러다녀야지."

 

  

그런 곳이 있었구나. 왠지 갈 곳이 자꾸 늘고 있다.

 근사한 질병 중에서

지난날, 수혈을 하며 오른팔에 꽃힌 주삿바늘로 나오는 피를 보며 그의 에이즈와 매일 남의 피를 때려 박으며 2년을 살아온 그녀의 혈관이 떠올라 막연하게 두려웠어요.

동성애 에이즈 만성신부전증 자살, 단 네 단어로 설명되는 더럽고 고통스럽고 오염된 썩어빠진 몸뚱이가 그들의 몸이라서 내 팔에 남은 멍 자국이 행복했다.

1984년에 이름 없는 강가에서 발견된 시체. 물에 불어서 200kg이 넘는 시체로 발견된 나의 환영과 2013년 자신의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버린 너의 육체가 아슬아슬한 다리 위에서 위태롭게 생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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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뉴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보경 옮김 / 학고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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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든 집 중에서

"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큰소리로 말고 속으로만 말하렴.
하지만 알아 두렴,
지금이 네가 이 계단을 내려가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저께도 내려갔던 바로 이 계단을,
그리고 내일이면 이 계단은,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밟게 된다는 것을.
안녕 정들었던 집이여, 안녕 격벽이여, 안녕 벽돌담이여.
나를 향해 활짝 열려 있던 문들이여 안녕,
안녕. 하지만 너는 잊지 마라.
그곳에서의 사뭇 행복하기만 했던 그 기억을.......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강의 모습을 보면 대충 이런 이미진가. 이 정도라면 롤랑 바르트를 만난 사강보다는 사강을 만난 롤랑 바르트를 부러워해야 할 듯한데.

 

 뉴욕에서 베네치아까지 쭉 도시를 소개하다가 중간도 안 되어 갑자기 시로 바뀐다. 그 다음에 나오는 수필들은 도시와 관련된 수필이라기엔 굉장히 주제가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국가나 역사와는 아주 연관이 먼 이야기도 아니니 반드시 편집자 주와 뒷페이지에 있는 주석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저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이 시에는 어떤 해설도 없고 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여성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이 분열증세가 있는 작품같다.

 

 

  

아리아 동인지를 보다보면 베네치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대목이 많이 등장한다.

 

 아리시아 씨가 곤돌라에 탄 손님과 이런 짓 저런 짓(...)을 하면서 베네치아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기 때문에 남자들이 몇 명씩 떼거지로 달려들어서 추근거린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던가. 하긴 아리아 본편에서도 '베네치아에서는 소문이 금방 난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다던가, 소문을 쑥덕쑥덕거리는 여편네들이 엑스트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곤돌라 토오리마스~"는 일본어라서 아기자기하지, 뱃사람 남정네가 걸쭉한 이탈리아 말로 고함을 내지른다면... 그냥 아리아의 네오 베네치아에 대한 환상을 계속 지니고 싶다 ㅠㅠ

사르트르의 말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듯하다. 그녀는 그들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징징거리지 않았다고 극찬한다. 이후에 그들의 책을 읽을 때가 다시금 기대되는 바이다.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언급할 때, 어떤 나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열거한다. 그런데 이런 기법을 박은정 씨의 시에서 본 듯하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박은정 씨는 여성으로서 받는 학대와 차별을 열거하는데, 시는 재밌었지만 사강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고향에서 그녀의 삶은 별 탈이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종종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특히 번역가가 프랑스 속담에 약한지 어떤 구절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게 보인다. 검색 좀 해보지 쩝.

 

그 유명한 페르젠의 손자 자크 드 페르젠은 카프리 별장에 아편굴을 만들어 놓고, 어느 날 밤 그곳에서 시를 읊으면서 죽어갔다. 당시 유명했던 빨간 머리의 팜므파탈 미미 프란케티도 있었다. 그리스풍의 민소매 페플럼만 입고 다녔던 그녀가 나타나는 곳에는 으레 오케스트라가 함께 있었다. 몇 차례의 자살 소동이나 그에 얽힌 뒷이야기, 그녀가 새롭게 개발한 나무 나막신은 제외하고도, 그녀로부터 유래된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예로, 그녀가 즐겨 입던 페플럼은 미국에서 덩굴무늬 유아복 롬퍼로 교체되었으며, 그녀가 낭송하던 그리스 서정시는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금지된' 시들이 대신하게 되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해로운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자크 드 페르젠은 최초로 동성애 전문 잡지를 만든 사람이다. 또한 미미 프란케티는 카프리의 레즈비언 살롱을 오랫동안 주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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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현대작가들 A To Z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앤디 튜이 그림, 정윤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그렇다면 남성 피해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네. 투명인간이 되어버립니다. 애초에 남성의 성 경험을 자랑이자 '남자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남성에게 '괜찮아. 너는 순결해!'라는 말은 '와. 좋은 경험 했겠다!'로 탈바꿔 들립니다. 그렇다면 남성에게 피해를 입은 남성 피해자는? '남성에게 따먹힌 모질이, 등신'으로, 소위 말하는 '남성성'을 잃은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사실 책은 오락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힘든 삶을 살아보지도 못했고, 섬세한 성격을 지닌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자신이 최악이었던 그 날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도 글자는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고, 되뇌고 또 되뇌어도 자꾸 내가 당했던 일이 생각나서 결국 다시 읽지 않는 이상 책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던 때 만화 삼국지를 읽어보려 노력했다고 한다. 때로 책은 망각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반영하기도 하고, 독자의 추억에 강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재혼 가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나온다. 아버지 쪽의 자녀는 보통 어머니 쪽의 자녀보다 더 직위가 높은 취급을 받는 듯하다. 자녀의 성별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보통 재혼할 땐 결혼적령기가 지나간 여성 쪽이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형(아버지의 아들)이 저자(어머니의 아들)에게 저지른 성폭력은 명백히 저자에게 수치를 주어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알려주려는 수단이다. 그런데 왜 그런 행위를 꼭 레슬링이라고 칭한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는지는 몰라도 능글맞은 게 진짜 아저씨같다. 이 형도 누군가에게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목격했거나.

형의 괴롭힘이 교묘하고 군인과 닮았다는 점도 역시 형이 누군가에게 배운 게 아닌가 생각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일하는 곳의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난다. 높으신 분이 골프도 칠겸 겸사겸사 직장에도 들르신다 해서 사무실의 모두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고 상사들은 똥군기를 잡고 있었으며 높으신 분에게 한소리를 듣지도 못할 만큼의 말단직에 있는 나는 프린트를 출력 중이었다. 회의가 끝날 즈음 어떤 젊은이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근데 꼭 여기 군대같지 않아요?" 상사들은 모두 거품을 물고 젊은이에게 사정없이 동물들을 들이대며 비유하고 있었다. 그 후,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노조들에 의해 상사 포함 직원들의 폭력이 누출되었고 회사는 그래도 제법 일할만한 곳이 되었다. 여전히 군대같기는 하지만.

과연 어머니는 오로지 저자에게 아버지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섣불리 두번째 결혼을 했을까? 나는 저자의 단호한 추측에 반발하고 싶어진다. 첫번째 결혼도 그녀의 선택이고 두번째 결혼도 그녀의 선택이다. 물론 어머니가 남자보는 눈이 없는 걸 저자가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머니로 인해 가족을 선택할 힘이 없는 아이는 두 번이나 아버지를 이별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모성성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게 반드시 저자 탓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자해와 자살 시도를 선택하여 어머니에게 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어쩌면 서로 아주 중요한 일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게 두 모자의 유전적인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들의 태도가 좋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으나, 결정적으로 폭력에 대한 대처가 어른이 되서도 부족했던 듯하다.

폭력에 대한 공감은 사실 지역, 종교, 성별이 따로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어질 뿐이다. 물론 둘 다 크던 작던 어느 정도의 억울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건 사실이다. 피해자를 선택하는 건 정의의 길이기 때문에(그래서 의도는 아니나 일부러 페미니즘을 사칭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뭐, 결과가 좋으면 좋은걸수도 있지만.) 가해자를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거라고 대부분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가해자가 권력자라 생각하기 때문에 가해자 편을 드는 사람도 꽤 있다. 심지어 출판사에서 그런 책이 나오기도 한다. 여러분은 어느 쪽일까.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소위 연애 경험담인 '썰'은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성별에 따라서 이야기가 다른 건 씁쓸하다. 남성들은 했는지 안 했는지가 주로 관심소재라면, 여성은 '처녀'임을 유달리 강조하거나 아예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도 상당히 꼰대라서 썰이 그렇게 널리 공개적으로 이야기할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아직도 정절에 대한 편견은 존재한다. 남친과 남사친을 구별하는 것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유무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스킨십의 유무를 따지는 건 굉장히 좁은 시각이라고 본다.

그러고보면 이 남자는 상당히 희귀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형에게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대해선 공부할 생각이 하나도 없었고, 평상시에는 대중문학들만 보아왔기 때문에 성차별 문화에 물든 케이스. 그래서 포르노를 굉장히 싫어하고 썰에 대해선 분노를 느끼지만, 한편으로 '대중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몹시 그리워하는 게 이 저자의 상태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이렇지 않았더라면, 형이 저렇지 않았더라면 이상적인 가족이 형성되었을 거란 미련에 다소 사로잡혀있는 편. 그러나 말 그대로 저자가 이성적인 가족 안에서 살았더라면 이렇게나 성폭력 피해자에게 감정이입하지 않았을 거란 딜레마도 존재한다.

그리고 난 남성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는 레베카 솔닛이 참 맘에 안 든다. 일단 남자들의 세계를 버리고 이쪽으로 넘어온 이유가 각자 있을텐데 그들이 받았을 분노나 상처를 같이 이야기하고 나누지 않겠다는 건 자신이 마치 페미니즘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실질적으로 나는 (올바른) 남성학의 발전과 남성의 전화의 번성에 해결책이 있을거라 본다.

나는 성폭력 관련 책을 사면서 돈을 소비하고 있다. 글쓴이는 독자들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드는데, 그건 정의의 유무를 떠나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남이사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딸을 치던 무슨 상관이냐. 책은 이미 저자의 손을 떠났다. 추가로 한 마디 하겠는데, 강남에서 책의 저자를 불러서 유료 독서모임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뭐지? 책을 읽으면서도 혼자서 그 의미를 생각할 줄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냐? 뭐 돈 버리는 건 개인의 자유이지만서도. 그리고 저자 니는 글을 띄어쓰기도 문법도 무시한 채 개판으로 써놓고 감히 공지영과 한공주를 욕해? 그럼 너도 좀 제대로 써서 그 이상으로 돈 벌어봐라. 팔리게 써야 사주지.

 

졸린 눈을 애써 비비고 학교에 가면, 수많은 비웃음과 조롱, 그리고 괴롭힘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죠. (...) 그때 퇴마록을 처음 읽었었죠. 드래곤 라자도, 세월의 돌도, 더 로그와 월야환담도. (...) 그 시절, 저는 메모장에 적어 가슴에 품어놓을 정도로 새기고 싶었던 시가 한 편 있었어요. 소설 '룬의 아이들 윈터러'의 첫 장에 수록된 시였었죠.

'겨울을 지새는 자여.
그것은 아주 길고 긴,
결코 끝나지 않는 겨울일지도 모른다.

서리와 눈보라를 이기고
바람과 눈물을 견뎌
마침내 찾아올 그 봄은

네 시체 위에 따뜻한 햇살이 되어 내릴지 모른다.

그러니 마음을 푸른 칼날처럼 세워
천년의 겨울을 견딜 수 있도록 대비하라.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요. 참 우스운 이야기지만요. 저는... 살고 싶었어요. (...) 그치만, 만약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가면,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된다면. 소위 말하는 인서울을 하게 된다면... 저는 이곳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명작이다. 그 외에 설명은 생략한다.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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