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스 Workers 34호 : 2017.09.01
워커스 편집부 지음 / 사단법인참세상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페미니스트, 휠체어이용 장애인, 베지테리언이 있어서 불편한 게 아니다. 그들과 동일한 자리에 서있어야 하는 순간, 자신이 공기처럼 누리던 특권을 누릴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느낀다.

 일단 워커스가 이번에 출간한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에 대한 의견을 올렸다는 게 중요한 듯하다. 조지영 집행위원장과 만나서 이루어진 인터뷰 글인데, 일단 이 글은 8월 23일에 그녀와 만나서 취재한 뒤에 9월 1일에 나에게 도착했다. 그런 걸 보면 상당히 촉박한 기간 안에 쓰여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잡지가 월간 잡지임을 감안할 때 기사는 보통 8월 초중반이나 7월에 취재한 기사를 다루게 마련이지 않은가. 이 잡지를 발간한 곳이 참세상이고 책갈피 출판사와 연관이 없진 않다보니 빨리 자기 잡지의 의견을 냄으로써 그쪽과 연을 끊고 싶었던가 보다. 지극히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단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과 그 2탄에 속하는 책을 보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그런 책을 읽음으로서 내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성폭력 사건을 굳이 상세하게 보고 싶지 않다. 또한 그 출판사와 일원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는 어찌보면 참으로 단순한데, 출판할 자유가 있다면 불매운동을 벌일 자유 또한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돈을 벌지 않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밥줄도 끊긴다. 이런 인간들은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무궁무진하게 있어서 그 점이 또한 나를 열받게 하지만, 일단 내가 그 발판이 되진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 책을 구매해서 읽는 사람을 보는 눈이 좋을리가 없을 거라고 본다.

 

 

 

그 책을 산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내겠다만, 책의 형태로 나왔다고 해서 다 읽기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은 내용의 만화는 기피하면서, 이런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텍스트로 나왔으니 좋아할 것이다. 서점에서 일하다보니 만화책이라고 하면 모두 교훈성이 없다고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심술이 생긴다. 웹툰 마음의 소리에도 교훈은 있다. "나대지 마라."

 2011년 서울시의원회관 로비. 서울시학생인권조례의 주민발의안 원안 통과를 요구하던 성소수자공동행동의 농성에 반대하러 온 이들 피켓에 이런 놀라운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때가 보수 개신교 그룹의 혐오선동 문구에서 처음으로 '항문성교'가 등장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정작 이 피켓에 더 놀란 이들은 의원회관에서 농성 중이었던 퀴어 활동가들이었다. "우리도 입에 잘 못 올리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쓰다니!"
(...)
-성을 '성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성교는 곧 남성 성기의 '삽입'이라고 인식한다.
-때문에 한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여성 성기를 대신해' 다른 남성의 항문에 삽입하는 것이 곧 동성애라는 왜곡된 인식을 전제하고 이에 대한 혐오를 선동한다.

성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섹스가 전부이고, 섹스는 남성이 여성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삽입하는 것이 전부라고 인식해 온 사회가 지금까지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야기해 왔다.

다른 페미니즘이나 퀴어 글들을 보면서 속 시원한 것에 앞서서 나의 미래가 좀 두렵기도 하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남성들은 당연히 집안일을 나에게 미뤄둘 텐데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나는 좀 나와 사상이 맞는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의외로 집안일 부담이 철저하지 않기는 커녕 설거지조차도 하지 않으려 하는 배운 인간들이 운동권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분노하거나 울지 않으면 싸움도 제대로 못하고, 정말로 분노하면 말 그대로 터져서 피가 솟구칠(...) 신체기관이 참 많은 나로서는 우려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집안을 개판으로 내버려둘 수는 없고. 이래서 에너지가 있는 나이에 결혼을 해서 서로 맞춰가는 게 중요하기는 한 듯하다. 역시 따로 살아야 하나...

내가 왠만해서는 인터넷 구매를 하지 않고 시장이나 매장에서 구매를 하는 이유는, 쇼핑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나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유불문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건 사실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일단 인터넷으로 구매한 물건 중에 마음에 드는 걸 찾았던 경우가 별로 없기도 하다. (책 구매만 빼고, 라고 하고 싶지만 예스 24에서 그닥 좋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책 구매를 해도 예스 24는 무조건 피한다.) 또한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를 구매했다고 치자.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집에 있는 그 물건을 보면 그걸 구매하기 위해 돌아다녔던 경험들이 떠올라서 마음껏 공상에 잠길 수 있다. 전쟁을 할 때 버튼 하나 누르지 않고 무인기를 보내서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는 쇼핑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물건을 파는 자도 로봇이고, 물건을 사는 자도 로봇이다. 설령 그들이 인간을 욕하면서 그들을 멸망시킬 계획을 인간의 언어가 아닌 무언가로 몰래 대화하더라도 인간들은 할 말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고 있는데도 일런 머스크 테슬라 사장은 AI가 북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는 먼 훗날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더욱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결국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었어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관계를 쌓으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병원 두 차례 들락거리니 아무리 어제 과식한 몸 튼튼한 나라도 진이 다 빠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글을 보니 왜 이리 허기가 지고 수술한 부위는 아프고 무엇보다 쓸쓸해지는 것일까. 크나파는 가늘게 자른 면을 버터와 크림치즈로 튀긴 뒤 설탕이나 꿀을 입혀 달게 만든 디저트 음식이라고 한다. 얼마나 맛있겠는가. 치즈하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슬라이스 치즈를 오랜만에 집자마자 병이 터지는 걸 보고 어머니는 치즈 금지령과 집에서만이지만 혼술 금지령을 내릴 테세이다.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지만 술을 못 마시고 치즈를 못 먹는 나를 진심으로 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주변에 나타나지 않을 듯하다. 최근 친구 정리를 하면서 소주 친구까지 걸렀으니 자업자득이기는 하지만...

22호 워커스에서 푸엔테스 부편집자 인터뷰를 보고나서 머릿속에 혼돈이 왔었는데, 역시나 지금 정리된 기사를 봐도 개판인 듯하다. 우파는 근거도 없이 마두로 대통령이 콜롬비아 출신이라고 비난하고, 야권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서 서명을 위조하고, 테러리스트나 폭력 시위가 난무하여 전직 군인이 경찰 헬기를 탈취해서는 정부청사와 대법원에 총을 난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음... 우리나라 상황이 훨씬 더 개판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우리는 당장 지금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니까;;; 조속히 해결되었음 좋겠다. 굳이 사회주의가 해결책이라면, 그걸 선택하는 게 옳은 일이겠지.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이 도래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박세리 선수의 맨발 투혼을 보며 애국심을 다잡았고, 나라 빚을 갚겠노라며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 아물지 않는 상처에 자꾸 고름이 찬다. 애써 잊으려 할수록, 세상이 온건해 질수록 더욱 그렇다. 내 손에만 있는 줄 알았던 고통이 이제 세대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진부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들을 포기할 수가 없다.

일단 표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목이 특이하다. 1997.1121.20000.982라고 적혀있다. 한눈에 1997년 IMF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의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들에게 핸드폰이 아니라 삐삐가 널리 쓰이던 시절의 유행어였다. 나는 하루가 지나서야 생각났지만 삐삐란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젊은 친구들은 아예 이해를 못하는 듯하다.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금모으기 운동할 때 모인 금의 양일 것이다, 숫자 자체가 IP 주소일 것이다 등등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행어란 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아무도 이해를 못하는, 그렇다고 외계어처럼 신선하지도 않은 투명어가 되어버리고 만다. 씁쓸한 일이다.

 

 

'누구의 사진일까 ㅎ 이 지방이 유달리 이전과 별로 달라질 게 없는 장소란 뜻일까? 아님 드물게 즐거웠던 추억일까? 아무튼 오색약수는 지금도 사진의 풍경과 비슷하군. 나중에 가볼까 싶네.'
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아무말 큰잔치란의 글에서 큰 웃음을 주었다.

 

 얼마 전에 '힙스터 체크리스트'가 세간에 떠돌았다. 체크리스트에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찰스 부코스키를 읽고 강원도 양양에서 서핑을 즐기거나 대만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야 힙스터다. (...)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고 방송에 나오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평양냉면'과 '알리오 올리오'를 먹는다. 냉면에 가위질을 하면 안 된다고 면장질을 하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힙스터 체크리스트 같은 건 사실 언어도단이다. 힙스터의 본질은 '구분짓기'에 있다. 독보적이고 독특한 취향으로 자기를 타인과 구분짓는 것, 그러니까 자아와 주체의 확립이 힙스터의 의미라면 "이래야 힙스터"라는 힙스터 판독기에 편입되는 순간 그는 이미 힙스터가 아니다.

그래서 워커스 처음 부분에 오색약수 간 누군가의 젊었을 적 사진을 올렸구나 ㅋㅋㅋ 아 이 맛에 워커스 봅니다. 어찌 그 사진을 처음에 올리고 마지막에 이런 글을 딱 때릴 생각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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