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쟁 -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 하는가?
심용환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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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빨치산으로 불리는 정순덕이 1963년에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혼자 산속에 살았던 것에 불과했다.

  

 뜻밖에도 이슈가 될 만하다고 생각했던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해보니 서고에 처박혀있는 데다 빈말로라도 절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긴 나도 저자의 최신 책을 읽으려다가 집은 책이니. 전에 읽으신 분이 팝콘 봉지에 책을 넣고 섞다가 돌연 허리가 아프셔서 파스를 집어 등에 붙이려 했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책에 붙인 듯한 상태였다. (심지어 파스가 정말 붙여져 있었다.) 나름 보수적인 지역에서 사는지라 그냥 본 사람이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하나. 물론 그 표지 상태보다도 도종환 시인의 추천사가 더 더러웠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의 과거를 안 이상 도저히 헌법의 상상력은 볼 수 없을 듯하다. 그 책 다룰 땐 도저히 독서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생겼으면 ㅠㅠ 여러가지로 책을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고민된다. 일단 헌법의 상상력은 안 본다. 이래서 헌법 책은 헌법 구절을 풀이하는 책 위주로 봐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젠 일베어도 옛날 말이 되었다. 내 생각엔 댓글알바가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점점 역사에 대한 그들의 열광이 식지 않았을까 싶다. 흥미롭게도 어떤 일에 돈이 연관될 때면 재미는 반비례된다. 그러나 재미있는 건 이제부터이다. 일베에 남은 몇몇 역사충들은 '일본에 대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알아간다'라고 말했다 한다. 다시말해 이들은 그들만의 신흥종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로 남을 혐오했을 때의 즐거움을 기억하는 몇몇의 사람들은 이제 여혐으로 기울어졌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라는 말은 간혹 이렇게 섬뜩해질 때가 있다. 이 때문에 제국의 위안부도 2차피해 어쩌고라는 책갈피 책도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를 대변할 뿐이지 역사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는 사회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은 가해자에 의해 이용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명성쌓기 외 타인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처음엔 아기자기하고 간단하게 역사 내용이 쓰여져 있어서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보다보니 한마디로 '몸이 근질근질거린다'. 

사실 내가 시험공부한다는 핑계로 갖은 덕질을 했었는데(...) 그게 일제강점기 시절 작가들의 소설을 거의 몽땅 마스터한 것, 그리고 사회 자습서(그 당시 서술형으로 길게 쓰여진 책이 있었다)를 몽땅 형광펜으로 그어놓고 공책에 써넣기였다. 연도 순서로 정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말이 있었고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게 공부하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옛날부터 쓰는 게 좋았다. 그러나 세계사랑 한국사랑 나란히 놓고 연표가 깔끔히 정리되어 있는 책은 예전부터 동경해오던 책이기도 했다. 아무튼 옛날 고3시절 공부와 독서에 미쳤던 시절이 생각나면서 피가 끓어오른다 할까,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한 건 아니기에(중간에 판타지와 BL소설에 빠짐) 요즘 애들이 얼마나 세세히 역사를 공부하는지를 보고 부러움에 배가 아프다고 할까. 두서없지만 여하튼 괴로웠던 때만 떠올라서 잊어버리려 노력했던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보수적이면서 참 급진적이기도 하다. 정통 우주세기 건담빠들은 야사에 속하는 디오리진조차도 우주세기에서 빼려고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교과서에 싣기도 하고;;

우리나라 민중들이 너무나 단순한 민중들이란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경제성장기에 돈 막 쓰고 독재정권 찬양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문송합니다 등의 유행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김영삼 문민정부에 분노했다고 할지라도 일반화를 해서는 곤란하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서, 먼 훗날에 일어날 것이 아니라서이다. 왜 지금 민주사회주의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가. 노력이란 단어를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정도의 몸부림은 필요하다. 국가가 싫으면 무인도에서 혼자 살라지. 어차피 그 무인도도 대부분 '개인'의 소유지라지만 말이다.

 

 

P.S 문장이 좀 길다는게 흠이긴 하다. 단어의 반복을 줄였더라면 더 보기 편했을텐데 말이다. 게다가 이해하기가 좀 힘든 문장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드라마 각시탈 수준이다. 좀 더 섬세하게 물어보면 이해의 수준이 마치 이집트 파라오 시대 정도다. 그들이 우리의 강토를 짓밟고 조선 백성들을 끌고 가서 징용에 동원하고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식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미지 자체가 파괴적이고 영화적이다. 일제는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해 30년 이상 공을 들였고 36년을 지배했다. (...) 물론 해방 후에도 기회주의자라고 쉽게 규정하기에는 여러 진정성 있는 노력들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김활란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여사님이 얼마나 교육 문제를 위해 헌신하셨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냐'는 식의 여성계 어르신들의 반발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나오면 김활란이 기회주의자라서 비판하는 것인지, 아니면 김활란이 여사님이라고 차별하는 것인지 분별이 가질 않는다. 내용도 객관적으로 보기엔 쓸데없고 차라리 빼버려야 하는 문장인데 이걸 굳이 써놓은 게 수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알라딘에서 별 5개 중 4개 반으로 비교적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은근히 여성이 받은 수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여성을 비하하는 시각으로 보고 있어서 씁쓸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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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 Workers 35호 : 2017.10.01
워커스 편집부 지음 / 사단법인참세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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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평택 서쪽에 개발호재가 많다. 정부의 도시개발계획이 잡힌 곳이다. 동쪽의 고덕신도시의 경우도, 고객님들께 2년 만에 두세 배 수익을 내드렸다. 300만 원에 사서 700만 원에 되팔았다. 여타의 부동산 투자와는 수익률 차이에서 비교가 안 된다." (...) 함 센터장은 "정부가 남해안 권 8개 지역에 전략적으로 개발을 극대화하려는 부분이 있다"며 "대표적인 곳이 여수, 순천, 통영, 거제 등의 해양 개발 루트이며, 특히 여수는 남해안 개발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 민주노총은 최우선적으로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명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인 지대는 국가가 전액 조세로 환수하고, 국공유지는 토지공공임대제로 민간에게 임대할 것을 주장했다. (...) 또한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자에게 필요한 부동산 정책으로 토지보유세 강화, 국공유지 확대 및 공공택지 국공유 유지,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 공급의 활성화, 공공임대 주택 공급 확대, 개발이익환수제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말 그대로 나라를 다 말아먹으려는구만.

이 와중에 '아고라'라는 자그마한 출판사에서 레닌 전집 1차분 세 권을 출판해 반가움과 동시에 놀라움을 던져주었는데, 그것도 이대로 120여 권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출판사가 망할까봐 지금 상당히 두려운데;;, 지금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점차 잊어가고 돈에 눈이 멀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돈과 힘으로 빼앗아가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때 레닌의 책을 읽지 않으면 언제 읽겠는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지 100년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탐욕을 극복하지 못 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으며 다양한 사회주의를 접할 때 우리는 좀 더 다방면으로 자본주의의 문제를 깨닫게 될 것이다.

'브라질의 트럼프'라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 가능한 우파후보로 얘기되고 있다. 군인 출신으로 기독교 민주당 정치인인 그는 지난 20년 동안 말을 아껴왔지만 최근 인종주의적이며, 반여성적이고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논란을 심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데 무슨 여성우월주의라 하는지ㅋㅋㅋ 하 나참 어이 없어서. 그것도 자신을 진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더라. 인권을 위한 강변을 향하여 우월주의를 논하며 반발하는 이들의 시선. '반론할 수 없는 - 혹은 그네들의 빈약한 지성 내에선 반론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없는 - 강성한 아젠다에 대해 현실을 비트는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느낌이다. 비단 양성 문제 뿐 아니라 퀴어 젠더, 다문화 사회 등의 관련 논점에서도 그 지점이 많이 노출되었었다. 그러한 '현실을 뒤틀어 반대 여론을 조직'하는 이들의 공통적 방법론이 개별적 사례를 일반화하여 파괴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그런데 이를 형성하는 주체는 이른바 '주류 집단에 속해 있으나 이 내부에서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어, 약자 집단에 경쟁력을 어필하여 상대적 위계를 구가하던 기전을 상실하게 된 이들'이다. 마치 더 잃을 것이 없다는 마냥 부글거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발을 딛고 있는 지점은 주류 내인 것을...

자연주의 출산 영상을 보며 나름 공부를 했건만 진통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한테 일반병원에 가서 수술하자 권했지만, 남편은 허리에 힘을 빼라는 조산사의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고 한다. 아니 우리나라는 왜 그리 자연주의 출산 좋아하는지 모르겠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약도 못 하지 제대로 기구도 못 쓰지 그건 그냥 출산하시는 분 지옥 구경하고 오세요 이 소리 아님? 그리고 모체가 그렇게 스트레스 받는데 그 고통을 분담한 애가 건강하게 자랄까? 남자들은 출산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고, 여성들이 현명하게 알아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법을 배워서 영악하게 행동해야 하겠다. 타인에게 끌려다니고 복종하지 말아야 여성의 인권신장도 오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음반을 팔고 있어서 보여주기가 참 씁쓸한 현실인데, 인정해야 하겠다.

 아이돌들을 사랑한다면 직접 콘서트에 가야 그들에게 돈을 대줄 수 있다는 거다. 하기사 콘서트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중고생들은 아이돌들에게 후원해줄 수 있는 방법이 시디 구입밖에 없나.

 

 

 

 무엇이든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두 가지 일은 인과관계가 있는데 항상 머릿속에서 잘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집 값이 오를 거라며 부동산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머릿속 계산과 책상에 앉아서 세운 계획에 의존해서 땅을 산다. 그 땅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깔끔한 모델하우스와 친절한 직원들을 보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꿈은 용산 철거민들과 화약병을 보지 못한다.
다음으로 로봇과 노조의 권리가 있다. 물론 워커스에서 이야기한 대로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그렇게 많이 감소시키진 않는다. 단지 단순한 직종들이 기계로 많이 바뀔 뿐이다. 역시나 로봇의 매끈한 몸체와 재빠른 동작에 관한 상상력은 생산직의 대량 해고에 관한 걸 보지 못한다. 빨리 취직되는 게 가능하며 뒤끝없이 헤어질 수 있는 클릭 워커의 깔끔함에 대한 상상은 수면 부족과 4대 보험의 침해를 보지 못한다.
이는 정규직과 하청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하청노동자나 파견직 같은 비정규직이 정말로 회사에서 퇴출된다면 몇 년 후던 몇 주 후던 정규직도 위험해질 것이다. 어차피 하청노동자가 하는 일이나 정규직이 하는 일이나 별반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면 결국 인간이란 그런 뻔한 사실도 간단히 잊어먹게 마련이다.

아니 근데 100kg의 장비가 추락해서 고장난 거 같다며 생산라인 가동 멈춘 게 조작극이냐? 100kg 반력암에 깔릴 뻔한 사람한테 병원에 가보라고 말한 게 업무방해이고? 진짜 보자보자하니 기업 놈들 말하는 게 너무 옹졸하고 사람 같지가 않다. 어느 별에 사는 새끼들이야?

소위 한국 리버럴, 내지는 소수의 탈민족 계열 좌파들이 일본 비극우 중도세력의 역사인식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배경이 대북강경 노선, 한미일 공조의 필요 때문이리라. 물론 한국에서 몰이성적인 반일국뽕 팔이가 분명 있어서 그것에 대한 반감의 발로인 면도 분명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한미동맹의 필요에 적극공감하고 중화패권주의에 주목하며 그 잠재위험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지만 한일간 역사 갈등을 안보외교 논리로 퉁치고 가는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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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에게 실망하셨다
마크 러셀 지음, 섀넌 휠러 그림, 김태령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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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를 게으르다고 비난하지. 내가 거리에 설교를 하러 가면, 사람들이 "게으름뱅이!" 또는 "일하러 가라!"하고 고함을 지를 때가 있어. 하지만 왜 알잖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저 그런 일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라는 것을 말이야. 자네는 군인처럼 머리에 벽돌을 맞아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야 해. 자네는 운동선수처럼 규칙을 지키며 경기를 해야 해. 자네는 농부처럼 곡식을 수확할 날을 기대하며 매일 열심히 일해야 해. 우리 말고 누가 이런 일을 하나? 나는 감옥에 갇힌 괴짜 거리 선교사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 자네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돼. 솔직히 말해주면, 자네도 이 일을 계속하면 결국 나처럼 될 것이야.

 

 

이 책을 들고 읽어나가면 굉장히 기독교인으로 보이나보다. 

 

 

신흥종교인들이 갑자기 날 흐뭇한(기분나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갑자기 종교와 영성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시작한다. 하기사 나도 이 책은 집어서 욥기를 펼쳐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알고보니 이 책을 쓴 사람도 욥기에서부터 시작했다더라. 혹시 내용이 궁금하면 실험삼아 그쪽부터 읽어보는 게 좋겠다.

 

이미 야훼 모에화 짤은 올렸으니 다른 짤을 올려보겠다. 사진은 루시퍼 모에화 짤이라고 한다. 단순한 모에화니 루시퍼가 여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여기서 하지 마시길 바란다.

 

욥보다 더 불쌍한 인물이 난 예레미야라고 본다. 나는 처음엔 그가 멀쩡했다고 본다. 단지 다른 어떤 예언자들보다 굉장히 감정적인데, 사람들이 하느님을 너무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하고 예언자들을 싫어하니까 살짝 스트레스를 받아 고어에 흥미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요한 계시록의 수많은 암시들을 생각해 보면 사실 예레미야가 본 환상과 그렇게 다르진 않다. 스케일이 다를 뿐이지. 예레미야가 자신을 때리고 기둥에 매달았던 어떤 인간에게 한 조롱을 군중들이 예레미야에게 그대로 한다. 그래서 역대 성경 중에서 가장 소설같은 면이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감정적인 사람이라 하느님과 대화하는 장면에선 왠지 모를 시적 미학도 돋보인다. 지금은 예레미야 편을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바울이 제일 웃기고 골때린다고 생각이 든다. 감옥에서 글을 써서 그런지 말하는 게 점점 공상에 가까워지고 앞뒤 내용이 맞지 않는다. 그나마 인상깊은 글에서 좀 정상적인 글을 올렸는데, 그 이유는 정말로 저 글귀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긴 남이사 뭐라던 어떤 일에 목숨을 바치며 열심히 종사했다면 결국 보람찬 일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진정 자신의 일이 어떤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가에 대해선 깊이 통찰해볼 일이다. 에세이는 그것에 대해서 특히 강조하고 있다.

 

로마 제...... 아니지, 다시 말해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와 세상의 모든 왕들이 단 한 번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기 위해 아마겟돈으로 알려진 전쟁터에 모입니다. 바로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으로 돌아오십니다. '반지의 제왕'처럼 백마를 타신 채 손에 검을 높이 드시고는 하늘나라에서 달려 내려오십니다.

 

 

 강달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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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친과 문학이론 현대의 문학 이론 29
여홍상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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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바흐친의 '다중 언어성'에는 '모든 고정되고 지배적인 형이상학적 기표들을 탈중심화하는' 급진적이고 해체적인 운동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이른바 탈구조주의의 이론적 모티프를 선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 테리 이글턴, 축제로서의 언어(여홍상 편역 바흐친의 문학이론)는 이런 측면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주지만, 이글턴은 바흐친 이론의 전복적인 활력을 마르크스주의적인 '민중주의'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 p. 244

 

 

사진은 이 책의 저자들 중 하나인 테리 이글턴. 

 

 

바흐친이 무려 실제 존재하던 친구들의 가면을 쓴 이유는 이건가.
바흐친: 종교에 대해 특이한 관점을 가진 걸 숨긴 채로 책 출간 가능함(볼로쉬노프), 공산당 타이틀을 얻음으로서 안정적인 독자 확보(메드베제프)
&
볼로쉬노프: 바흐친의 필력으로 그나마 무명이던 이름이 세워질 수 있음.
메드베제프: 바흐친에 대해선 뭘 하는지 몰라도 걍 뭔가 잘난 척을 할 수 있음.

 

가만 있어봐 이거 진짜 천잰데?

바흐친은 사회의 다른 계층으로부터 다른 목소리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을 하나의 장르로서 취급할 수 있는 어떤  확실히 여성이 쓴 소설과 남성이 쓴 소설은 구분이 확 가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쓴 소설에서 나오는 남자는 굉장히 매력적이라던가, 남성이 쓴 소설에서 나오는 여자는 어딘가 사람 같지가 않다던가.

여성주의와 대화론이라는 논문이 여기 나오는 바흐친에 관한 그 어떤 논문과 견주어 보더라도 가장 빨리 읽히는 페이지 터너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왜냐면 이 논문은 어떻게 워마드가 실패하여 넷상 고대 유물로 사라져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워마드의 미러링은 남성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데엔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언어'에 너무 신경을 쓰거나, 혹은 남성들을 따라하는 데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무 언어도 쓰질 못했다. 결국 자신들의 언어를 창조해보기도 전에 매우 남성적이라 할 수 있는 평론가들에게 윤리적으로 공격받을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된 것 같지만 이전에는 여성이 썰을 푸는 걸 '소설 쓴다'고 했었다. 오히려 지금은 남성들에게 소설적인 것마저 빼앗기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흐친 거의 두세달 넘게 읽고 있는 듯한데, 소감은
"아, 철학책은 읽다가 도중에 쉬면 진짜 진도 안 나가지는구나." 였다.
지금은 완전 바흐친의 책에서 인용할 구절들을 찾아가면서, 텍스트를 따라간다... 정도로 집중력이 많이 딸리고 있다.
그나마 반 이상 읽었고, 3분의 2쯤 지나서 이렇게 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철학책이 다 이런진 모르겠는데 처음 3분의 1도 사실 많이 버겁긴 했다;;; 왜 스탈린 등을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는지 좀 이해가 안 갔달까;; 그나마 제일 많이 건졌다 싶은게 중간의 글들이고.

300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해가는 실망감. 소설이 뭐가 어쨌다고 그렇게 공격하시나. 그럼 철학서 저자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쓴 거 그대로 이루고 계신가? 충격적인 건 괴테조차도 소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썼다는 점이다. 아니 저기요 님이 쓴 것도 소설이거든요 ㅋㅋㅋ? 루카치는 문제적 주인공이 세상과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면 괜찮다고 말했다는데 솔직히 좀 꼰대같다. 새삼 바흐친이 위대하게 보여지긴 하다. 저렇게 소설에 대해 아무 말하는 시대에 소설과 대화를 옹호했다니 거의 선지자같은 역할을 한 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없다던 사사키 아타루와는 달리 이 책, 특히 바흐친과 현대 소설의 담론이라는 챕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상당히 명백하게 밝히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런데 주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가 아니라, 실험적인 요소와 시장지향적인 요소가 소설에는 어느 정도 섞여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대로라면 아마 이 논문은 당연히 포스트모더니즘은 있으며, 미래엔 리얼리즘과 같이 모두가 섞일 가능성이 있다고 귀결이 나리라. 그리고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건 바흐친의 축제이다. 모더니즘이 죽은 건 아닌 채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확실히 존재하는 듯하다.

 

시간 속의 모험은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초보적 방법으로 간주되지만, 싸구려 소설이나 연재 만화, 혹은 람보나 잃어버린 방주의 특공대 같은 영화들, 그리고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계속해서 등장한다. 왜 이러한 고대 시공성이 여전히 그토록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학적으로나 정신분석학적으로 크게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그러한 시공성은 행위와 사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기에는 그다시 생산적이지 않은 듯하다. 어떤 문화이건 이런 종류의 잔재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새로운 의견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시간여행은 너무 진부한 주제긴 하죠. 근데 리제로나 슈타인즈 게이트 열광을 보면 또 그렇지 않은 거 같고. 솔직히 후자는 왜 떴는지 이해가 가는데 전자는 이해가 안 갑니다. 막장드라마라서 그러나?

 

 

근데 리제로나 슈타인즈 게이트 열광을 보면 또 그렇지 않은 거 같고. 솔직히 후자는 왜 떴는지 이해가 가는데 전자는 이해가 안 갑니다. 막장드라마라서 그러나?

 

  

P.S 바흐친과 문학 이론에서 바흐친의 글 인용한 부분만 모음.-> http://vasura135.blog.me/221033277789

솔직히 이 중에 마음에 드는 한 글귀만 인상깊은 구절에 올리려 했으나 어느 하나를 정확히 고를 수 없더군요.

마지막에 바흐친이 연극에 대한 언급을 한 부분? 은 뺐습니다.

역시 바흐친 씨는 소설만 언급하셔야 바흐친 씨 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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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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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이쪽 눈에 대못이 박히고 말았수다. 네일건으로 작업하던 중에 잘못 발사했소. 얼마나 빠른지 눈을 감을 틈도 없었소. 내가 방금 성한 눈을 뜨고 여길 열어 거울에 비춰 보았다오. 세상에, 그런 광경이 없더구만. 선생이 한번 보고 어떻게 할지 말 좀 해주겠소?"
놀라운 말이었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닫힌 오른쪽 눈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욕설을 뱉었다. "이런 씨발."

 

  

 '못에 눈이 꿰뚫린 채로 대기실에 앉아있지 말라고오오오오으'라는 절규를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확하게 쇠꼬챙이가 뚫어버리고 지나갔다는 어느 책의 글귀가 생각났다. 기적적으로 환자는 살아났다고 했는데, 그 쇠꼬챙이는 대체 어떻게 제거했으며 그 쇠꼬챙이를 빼고 나서도 환자는 살아났을까. 쉐이빙크림이 항문에 들어간 이야기는 누군가가 그 안에 츄파츕스를 넣었다가 빠지지 않았다던 책 속의 이야기, 그리고 간호조무사 수업을 받던 중 한 간호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위하려고 어떤 여성이 질에 산장어를 넣었다가 병원에 갔다나.

여기는 응급실 원무과에서 근무했던 분의 이야기이다.

여관에서 술 한 잔 하다가 여친이랑 싸우고 여친이 삐쳐서 문밖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있는 사이, 침대 머리맡 전등에 목을 매서 실려왔던 청년이 생각난다. 심정지로 왔는데 결국 살아났다. 쓰레기 수거하던 환경미화원이 프레스에 팔이 들어가 잘려서 오시기도 했었다. 이가 부러져서 깨달은 적이 있는데, 머리카락처럼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부분이 사람에게는 의외로 많더라.

한 6~7년 쯤 전에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회복을 못하고 사망한 적이 있었다. 이식 수혜자 말고 공여자가. 신장이식 1만 건 했다 홍보도 하고 그랬는데 그 많은 케이스 중에 공여자 사망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홍보실에 있을 때 언론 대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회의에 들어갔는데 이 큰 병원에 그 많은 의사들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기자들도 의학의 한계로 인정하고 이식이란 게 어렵다고 그냥 넘어간 일이긴 하지만... 대학생 딸이 엄마 살리려고 신장 떼어준 것이었는데 딸이 죽었으니... 참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이었다. 정말 죽음의 세계는 알 수 없는 것인가보다.

여기까지가 원무과에서 일하셨던 남성 분의 이야기.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 요즘엔 식은 상태인 듯한데, 이 책에선 그 논란이 비교적 덤덤하게 쓰여있다. 

 

어떻게 해서든 환자를 살리려는 의사와, 더 이상 환자를 자신과 같이 있던 인간으로 볼 수 없는 보호자들의 절망스런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같이 침착하면서도 경악스런 대사들이 인상적이다.

심폐소생술 하는 사람도 고생이지만 지도하는 사람도 참 말이 쉽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처음하는 사람에게 육성만으로 이것저것 가르치기가 참 곤란하겠다.

아니 죽으려면 청부업자에게 죽여달라고 시키던가. 아, 돈이 필요한가. 무튼 절개하는 걸로는 자살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걸 이 책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뛰어내리던가 가스를 들이켜서 죽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은 만일 살아나면 아주 최악의 상황이 될 만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성공확률이 거의 로또에 가까운 셈. 거의 성공하더라도 만일 누군가 발견해서 저자같은 유능한 응급의학의에게 간다면 무의미한 일이겠다.

환자들 이야기만 계속 나오다가 무려 160쪽 분량이 되어서야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이 등장한다.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정치에 관심이 없나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 사람의 인터뷰를 워커스에서 처음봤다. 즉, 관심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아무래도 남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지 못하면 법에 저촉되는 경우도 있으니, 아마 조심스러워져야 하는 특수한 직업정신이 몸에 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이스버킷에 대한 비판적 의견에 광우병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 쐐기를 박는 걸 보면, 다정다감해 보이는 얼굴에 비해 꽤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래도 부모님은 무난하게 만났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회초리로 토할 때까지 두들겨맞거나 후라이팬으로 맞은 적은 있지만, 머리뚜껑이 열리거나 술병으로 두들겨 맞은 적은 없으니깐. 대신 선생님들에게 당한 적은 많다. 뺨을 세시간 가량 있는 힘껏 맞거나, 어머니가 뇌물을 안 준다고 왕따를 유도당하거나. 그럴 때마다 물론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선생님이 되라는 부모님의 말을 따르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보다 연장자라고 무조건 반말 까고, 욕하고, 멱살 잡고, 소리지르는 인간들은 여전히 많다. 30대가 되도 말이다. 그럴 때도 항상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싸가지가 없다, 상냥해져라 하는 말은 항상 듣지만,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아도 최소한 나는 살아있다. 남을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남의 말을 들을지 듣지 않을지는 본인의 판단이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사람 중 학대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작가님이 쓰신 글.
하이텔에 1200편. 블로그에 1400편.
내가 블로그에 대충 비공개 글까지 합쳐서 리뷰 1350편 썼는데 또 1300편을 더 써야 책 출간이 가능하다 ㅇㅇ

P.S 고대에는 전쟁에 나서기 전에 단체로 적군 앞에 나서서 스스로 목을 쳐 떨어뜨려 자살함으로써 적군의 사기를 꺾는 부대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러니 작가의 말처럼 자기 목을 쳐서 죽은 사람이 절대 없는 건 아니다. 단지 현대인들이 많이 약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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