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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개정판 표지에 그려진 그 누군가의 얼굴은, 일단 여자의 얼굴이나 표지만 딱 볼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얼굴이다. (마지막에 밝혀지지만.) 아마 이 책에서 나타나는 섹스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약, 난교, SM 등이 난무하는 관계에서는 엑스터시도 사랑도 아름다움도 없다. 그저 원초적이고 적나라한 관계일 뿐. 그 안에서 철저히 무력하게 끌려가서 삶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그저, 무력을 지켜보는 경멸감뿐이었다. 어째서 그렇게나 젊은 사람들이 그런 세계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고, 류가 본 외국인과 일본인 여자에 관한 이야기만 약간 등장할 뿐이다. 사실 그래서 전혀 현실감이 없는 일인데도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다. 이 소설은 은근히 외국인들에 대한 기분나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뭐, 외국인들에게 수많은 일본 여자들을 뺏기는 남성들이라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자업자득 아닌가? 그 문화 속 가부장제부터가 문제있는 일인데. 뭐 여러가지 잡소리를 중략하고, 그렇게 혐오스러운 책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유는 원초적인 세상 속에서 류가 발견해낸 피묻은 유리조각, 그 속에서 비치는 '무언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대한 묘사들 중 그 어느 것도 저 상징물만큼 어울리는 것이 없다.) 세상은 넓은 것이고, 우리가 겪은 그 어떤 험난하고 험악한 경험도 부드러운 것에 감싸여 있는 한낯 유리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그 속에 있고, 난 그 안에서 언제나 무한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본다. 사실상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무라카미 류의 영혼과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이것은 무라카미 류의 가장 소극적인 저항이자, 가장 밝은 희망에 빛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