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생태 2011.9
자연과생태 편집부 엮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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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인간만의 식량 창고가 아니듯이 멸치도 인간만이 즐기는 생선이 아니다. 그것이 생태계다.- p. 86  
   

 잠자리 유충이 있다는 사실은 있었지만 표지로 직접 보고나서는 컬쳐쇼크를 먹었다고 할까. 아마 표지처럼 저렇게 크지는 않을테지만, 어딜봐도 잠자리만한 생김새는 눈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 곤충이 그렇게 날씬하고 이쁜 잠자리가 된다니. 변태하는 과정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변신과정을 세세히 보여줘서 그제야 실감이 갈 수 있었다. 사실 저 잠자리 유충의 생김새 때문에 우편함에서 자연과 생태 9월호를 받다가 흠칫했더랜다;;

 이번 호에서는 생물탐구나 설명보다는 실질적으로 채집과 수집에 들어가는 방법들이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GPS를 작동시키는 방법이라던가, 똥을 채집하는 세세한 비결이 적혀있어서 나에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켜 준 책이었다. 전자는 기계치인 사람이 최신기기를 다루기 얼마나 힘겨워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찮고 힘들지만 열심히 초보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히 설명해주시는 것만 봐도 이 코너를 쓰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의 모습이 보였다. 후자에서 똥을 말리기 위해 전자렌지에 돌렸다가 터졌다는 글을 보고는 폭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때 한창 먹으면서 보고 있었기에 식욕이 약간 떨어지긴 했었지만(...) 환경보호에 대한 우려와 지적의 목소리들이 서서히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는데, 본인은 긍정적인 신호라 생각한다. 자연과 생태를 다루는 잡지에서 동식물들이 자라날 공간을 우려하지 않으면 어디서 그 문제를 우려할 수 있단 말인가. '아파트'가 환경에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철저히 이윤만 고려해서 만든 아파트'가 문제라는 마지막 코너도 인상적이었다.

 이전에 소소한 재미를 일으켰던 만화코너가 없어져서 허전하다는 단점만 빼면, 이번 호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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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비망록 -하 - 세계현대작가선 10
주제 사라마구 지음 / 문학세계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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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로마의 성 빼드루 성당은 기초석에 축복이 내려진 순간부터 봉헌이 이루어질 때까지 120년이라는 기간 동안 노동과 자금을 필요로 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지 않는다면, 폐하는 로마에 다녀오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폐하 앞에 조립되어 있는 모형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신 모양입니다만, 이제 또다시 그런 성당을 지으려면 240년이란 시간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건축물이 완성될 무렵이 되면 폐하만이 아니라 폐하의 아들, 손자, 그 손자, 그 손자의 아들, 그 손자의 아들의 아들까지 돌아가신 뒤일 것입니다.- <수도원의 비망록 2>- p. 144
 
   

  사실 이런 선남선녀가 나오는 테마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크로노 크루세이드같은 애매한 결말도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점수를 약간 박하게 줄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 소설자체는 격하게 내 취향이다. 어떤 분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감명깊은 소설들 중 하나라느니 어쩌고 해서 나는 그게 허풍치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소설이라면 그런 허풍은 한번쯤 떨어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로 타락한 종교와 부패한 왕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있어선 그닥 충격적인 소재는 아니다. 본인이 가장 깊은 감명을 받은 장면은 바로 수도원이 건축되는 과정이다.

 세계사 만화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린시절 어느 집에 놀러가면 닥치고 세계사 만화책들을 들춰보았더랬다. 보통 2~3권 즈음에 등장하는 피라미드 건축장면. 본인의 집에선 이집트의 백성들이 재밌어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피라미드 벽돌을 쌓았더랬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이웃의 집에 꽂혀 있는 세계사에선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부들은 왕의 신하들에게 잡혀 강제로 끌려왔고, 채찍에 맞아가며 혹독하게 일하고 있었다. 본인으로서는 어느 세계가 진짜 세계일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을 짓다가 소리소문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도 건축 모형만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변덕스럽게 제 2의 빼드루 성당을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왕. 과거가 더 살기 좋았다는 말은 단지 현실의 어려움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이다. 일단 현재 이전의 중세에서는 정말 말도 안되는 변덕들로 인해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노역이나 전쟁에 끌려가야만 했다. 그러나 현실이 만만치않게 어렵다는 건, 현실에서 해결된 일들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진배없다. 최초의 비행기 발명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발띠자르는 결국 그의 자질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막노동을 하다가 죽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꽃 한번 피어보지 못하고 소진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이유는 단 하나. 부자와 빈자들 사이의 소통과 분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청와대 안에서 4대강 모형을 가지고 노시는 게 취향이신지요, 쥐각하.

 눈 가지고 장난치는 건 나스 기노코의 전매 아이디어인줄 알았더니 이제보니 그녀의 소설이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인용한 티가 많이 난다. <눈먼 자들의 도시>도 사실 너무 유명해진 소설이라 부담이 갔는데 지금 이 책을 보고 나니 볼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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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애장판 1~8 박스 세트 (완결)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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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치...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가장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으로 판명된다. 인간은 거의 모든 종류의 생물을 잡아먹지만, 내 동족들이 먹는 것은 고작 한두종류야... 훨씬 간소하지.- <기생수 1>  
   

 막판에서는 신이치가 이 말을 다시 뒤집는 행동을 하면서, 인간답게 돌아간다. 지금까지 봤던 만화책 중에서 바람의 검심 다음으로 훌륭한 엔딩이었다. (그 반전 외에 또 다른 반전도 있지만 스포일러이므로 생략. 오른쪽이가 신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 하나만 밝혀두겠다. 역시 공부하는 천재는 당해낼 수가 없음.) 사실 오른쪽이처럼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음. 인간이 다른 인간을 생각하는 것조차 힘든데, 세상을 지킬 겨를이 있는가? 바람의 검심 1권에서 켄신이 말한 대로, 소중한 사람 하나 지키기에도 벅찰 노릇인데. 그런 점에서 나는 신이치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본다. 그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용사가 아니라, 그저 가족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오른손의 괴물과 계약을 맺고 싸우는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사실 전투장면도 SF장르답고 꽤나 임펙트했지만 오른쪽이와 신이치 사이의 미묘한 우정관계와 대화에 관심을 좀 더 집중했다. 작가는 대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이 글을 썼을까? 오른손에 또 다른 생명체를 그리고, 자신에게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져보며 오래 곱씹지 않았을까? 더불어 인간이 환경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매우 독특한 견해을 갖추고 있다. 최근 환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유심히 보아야 할 책이다. 기생수가 인간과 섞여서 지내는 장면이 약간 껄끄럽고 찝찝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모든 생물들이 같이 공생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 정치를 포함하여 지구를 지킬 줄 모르는 인간사회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결국 긍정적으로 전개되나, 싶다가도 날카로운 풍자로 독자들을 콕콕 찌른다. 인간의 몸으로 낳은 아기를 지키다가 죽은 기생수, 기생수보다 더 끔찍하게 인간들을 죽이는 인간. 인간답다는 건 무슨 뜻이고 괴물답다는 뜻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답다는 개념은 존재한다. 굳이 신이치의 여자친구가 제시한 개념으로 축소시킬 수는 없는 것 같지만. 인간같은 기생수가 있고 기생수같은 인간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듯하다.
 

 P.S (SF 캐릭터들을 수집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질문. 당신의 팔에 기생할 생물을 고른다면, SF 괴물을 고르겠습니까, 아니면 초미소녀를 고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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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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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가 번역한 소설들은 다 좋은데, 약간 아쉬운 게 있다면 번역가들이 열이면 열 하나같이 전부 번역을 삐끗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양철북도 그랬다. 물론 난 독일어를 할 줄 모르므로 오스카가 그렇게 어렵게 말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가끔가다 정말 납득이 안 되는 부분들이 보여서, 읽다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음... 하지만 독일어는 역시 너무 어려워서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단 말이지.

 아무튼 이번에 나온 내용은 1권에서 잠깐 나오는 그 스피드 있는 전개가 식은 것 같았다. 딱히 인상적으로 보이는 장면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본인은 이상하게 오스카가 3살 외모에서 벗어난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딱히 외양이 꼽추로 변해서 유감이라는 건 아니지만, 어른처럼 완전히 성장한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북소리로 사람들에게 감정전이를 시켰다는 건 나름대로 해피엔딩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씁쓸한 고백실패로 끝난 1권 이후로는 쭉 찝찝하기 그지없는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30세'에서 이 소설은 끝이 나는데, 솔직히 이 책을 읽었을 땐 갑작스럽고 말도 안되는 살인(?)사건 전개에 약간 허무한 감도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할 때 몸에서 전율이 일게 한다. 내 생각에서 끝날 뿐이고, 소설에서 오스카를 꺼내서 추궁할 수도 없겠지만 어쩌면 주인공은 무명지 사건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명지의 주인이 도로테아 간호사였다는 걸 알았을지도? 아무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독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오스카마저도 교활하고 약삭빠른 인간이었다. 진실과 거짓이 하나로 뒤섞인 오스카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른들의 '내가 어렸을 땐 세상이 이렇게 팍팍하지 않았어' 같은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자각하게 될 것이다.

 피천득씨는 딸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로렌스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는데, 어떤 책을 고를 자유를 금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보지만 굳이 읽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오히려 이 책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어야 했나 생각한다. 너무 대놓고 성적 상징들과 잔혹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펼쳐내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야기들을 읽는 독자에게 비틀린 웃음을 자아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책이라 생각한다.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독일사회의 여성학대를 다루어낸 이야기들만 해도, 자세히 생각하면 매우 끔찍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책을 읽고있던 당시엔 역겨움에 눈을 찌푸리며 헛웃음만 치고 있었다. 이 반응도 오스카의 영향이었을까.

 그렇다고 교훈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독일에 대한 통렬한 비판보다도, 남자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 듯해서였다. 본인은 파르치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철북에서 권터 그라스가 내놓은 간접적인 해석이 맞는 듯하다. 파르치팔이 하얀 눈 위에 피 세 방울이 떨어진 광경을 보면서 여인의 생각을 하듯, 오스카는 그리스도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면서 적십자의 빨간 마크를 생각하고 있다.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무섭게 몰두될 정도로 대단한가보다. (물론 오스카의 혹을 만져보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혹 때문에 꼽추와 결혼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냥 할머니 콜야이체크의 감자치마 네 벌 속으로 들어가 냄새를 맡고 싶다는 오스카의 말도 마찬가지이고. 남자들이 같은 나이의 여자들보다 어려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의아하기 그지없는 자궁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그래서 남자라면, 누구나 나이들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만의 지하실 계단에서 떨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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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Goodman Brown and Other Tales (Paperback) Oxford World's Classics 50
Hawthorne, Nathaniel / Oxford Univ Pr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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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이 책에 있는 글들을 다 읽은 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소설들 중에서 young goodman brown만 읽었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두겠다. 내용도 짧고 소재도 딱히 언급할 게 없는 만큼, 소개도 간략하게 할 예정이다. 글쎄다... 이번엔 좋은 글귀를 달지 않았다. 좋은 글귀를 달기에는 너무나도 짧고, 너무나도 암울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나다니엘 호손이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나서는 깜짝 놀랐다. 여느 공포소설들에 견주어봐도 비교하기 힘들만큼 긴장감을 잘 사용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연을 광기의 측면으로만 묘사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불쌍한 숲을 다 태워서 요상한 악마주의적 잔치로 만든 건 마을의 기독교인들이지, 한밤중의 숲이나 혹은 야생동물 혹은 인디언의 짓이 아니다. 자칫하면 바쿠스의 잔치까지도 '인공적인 광기'로 오인될 수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항상 자연이나 신 탓을 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불행은 우리가 자초했음을 명심해두어야 할 것이다.

 일단 악마와 목사가 결탁하면, 인간들은 그 밑에 조아려서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고 멀게 만든다. 그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목사 밑에 있는 사람들의 목사에 대한 진술이 천차만별로 다른 것이다. 물론 사람들을 결탁시키는 데엔 비전 혹은 환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지만, 과연 설교가 성경의 올바르고 진실된 말씀에 합당한지 아니면 단지 목사의 의견인지 자세히 살펴보고 따져야 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악귀나 마녀를 따르기 쉬운 입장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행실에 대한 변명을 해줄 순 없는 법이다. 우리는 어두운 숲을 해쳐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져 있다. 그러나 만일 좋은 사람 브라운을 신뢰하고 또한 브라운에게서 신뢰를 받는 동료가 있었다면 그도 쉽게 그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서는 브라운도 충격에 휩싸여 아내 페이트와 자신을 구하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않았고, 악마주의 제사에 참가한 사람들도 그 속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이미 중단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종교의 폐단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것 또한 인간이 초래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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