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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감옥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송수권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여승 중에서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 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구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 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칩사온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게 어떻게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지?
엿보기와 스토킹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그렇지만 손 대지 않고 관찰하려는 마음은 왠지 알 듯도 하고.

 

 오랜만에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책을 읽은 듯하다. 쪽을 만들 때의 느낌을 시로 쓴 것처럼 시인은 한가하고 느긋하게 시의 처음을 자연으로 장식한다. 화사부터 약간 요동을 치는 듯하더니 후반부에선 뛰기 시작한다. 왠지 서정주와 비슷한 구절이 많아서 혹시 그를 동경해서 시를 짓는지 궁금했는데 제목만 비슷하고 서정주와는 조금 다른 정서를 보이는 것 같다. 서정주가 여성에 관한 판타지를 전개하고 있다면 송수권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몇몇 관점이 꼰대인 걸 애써 무시하면 말이다. 특히 시집 초중반의 어머니가 나오는 시들은 어쩜 그렇게 노스탤지어틱한지... 남도 사투리에 유달리 공을 들였다는 티가 나서 오히려 더 영혼없이 볼 수 있는 시였다.

 

 

  

단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같은 시는 괜찮았다.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이라는 책도 있었는데 둘 중에 누군가 한 명이 아이디어를 베낀 것일까, 아님 우연히 둘이 서로 통한 것 뿐일까. 혹 마음이 심란한 사람이 있다면 이 두 권을 다 읽어보아도 괜찮을 듯하다. 아니면 지금 내가 읽은 한 권은 시, 과거에 내가 읽었었던 다른 한 권은 산문이니 마음에 드는 걸로 잡아서 보시거나. 사실 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보다 이쪽이 더 좋은데, 배흘림기둥에 대한 묘사가 이 두 책보다 상대적으로 더 딸려서이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이 시집은 굉장히 내가 좋아하는 구절과 싫어하는 구절이 명확하다.

 

  

P.S 국어는 꾸준히 연습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수능은 저자가 모르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1등급이 나오려면 어떡해야 하나? 찍어라.

 필기체로 쓰여진 시를 읽으니 좋은 점.

 1.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운데 아무튼 커서 천천히 소리내서만 읽으면 어쨌던 읽을 수 있다. 덕분에 저절로 속도조절은 됨.

 2. 왠지 좌측에 타자친 글이오타가 아주 많은데(...) 저자의 육필은 틀린 게 없다. 틀린 게 있으면 먹물로(붓필기다.) 지우고 빠진 게 있으면 V표시로 첨가하면 된다. 하기사 나도 그래서 발주할 때 힘들어도 꼭 손으로 쓰지만... 타자칠 땐 실수가 많아서 한 번 볼 거 두 번 봐야 함 ㅡㅡ;;;

 

묵호항 중에서

고모부는 질펀한 동해에서 돌아와 무덤 속에 잠들었다

무량수전의 배홀림기둥에 기대어 중에서

천고에 몇 번쯤 학이 비껴 날았을 듯한
저 능선들,
날아가다 지쳐 쓰러졌을 그 학 무덤 같은 능선들,
(...)
부석사 무량수전 한 채가 연화장을 이룬
그 능선들의 노을 빛을 되받아 연꽃처럼 활짝 벌고
서해 큰 파도를 일으키고 달려온 선묘 낭자의 발부리도
마지막 그 연꽃 속에 잦아든다
(...)
마침내 태백과 소백, 양백이
이곳에서 만나 한 우주율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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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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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다, 망했다 하지만, 내가 망하지 않는 한 결코 나라는 망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비유하자면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콩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 생산의 근원이 여기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작품에서 남편을 두 번 잃은 소복여인이 잠깐 나오는데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요코 생각나더라...

 

 간단히 말하자면 종갓집에 시집온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시어머니도 옛날에는 며느리였고 시할머니도 옛날에는 며느리였더라... 생각해보면 종갓집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없다. 종갓집 여자애는 존재할 뿐. 여자애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맞는 남자가 있을 때까지는 여자가 아니다. 소설에서도 나오듯이 종갓집 남자는 몇 번씩이나 여자를 잃어도 보쌈이라도 해서 얻으면 된다. 마치 인형을 얻듯이. 아니, 얻어야 한다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음의 여자들은 살아있다. 그러나 여자는 남편을 잃으면 잃은 대로 산다. 그녀의 옆엔 죽은 남편, 잃어버린 남편이 있다. 시체를 끌어안고 그들은 죽음의 철학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우리나라에 열녀가 많은 이유가, 그들이 유달리 착하고 선해서가 아니라 갈 곳을 잃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누가 그녀들의 갈 곳을 없앴을까. 누가 그녀들에게 종가라는 무거운 짐을 지웠을까.

 강모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도 화살로 바위를 뚫을 것이냐 피해갈 것이냐는 기표의 질문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나는 피해가고 싶다. 하지만 어쩐지 바위를 뚫고 못 쓰게 된 화살들에 유독 마음이 쏠린다.

 그 화살 중 하나가 청암 누님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녀를 보면 나는 페론 부부가 생각난다. 그녀가 종가에 '취임'했을 때 업적을 세운 일은 '물을 트기 위한 공사'였는데, 이는 중국에서 치수를 함으로서 나라를 만든 우왕의 업적에 비할 만하였다. 그나마 우왕에게 물이 있었다면, 청암 누님은 없는 물을 만들다시피 하고 없는 자식과 손주를 만들다시피 했다. 종갓집치고는 다소 혁명적인 방식이었지만,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고 서민들의 계급타파에 대한 의식이 상승하다보니 아무리 그녀같이 크고 양기가 가득한 붉은 꽃이라도 결국 견디지 못하는 듯하다. 아무튼, 집안은 국가요 고부갈등은 정치란 걸 잘 보여주는 훌륭한 글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 의하면, 종가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일구어 놓고 지켜온 우리나라의 문화였다.

 

 

 

  

종가 중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강모는 근친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어서 잠자리를 거부하고, 신부의 처녀막에 관한 환상은 그쪽이 먼저 부수어버렸다. 미러링이란 그런 것이다. 여자들이 분노했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그들이 한남한남한다고 해서 불쾌하다 따지고 들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욕망이 먼저 여자들을 내팽개치고, 마음을 짓이겨버리고, 기운을 음기로 돌려버렸다. 그런 주제에 어딜 멋대로 여자를 음기라 하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내가 그래도 죄와 벌에서 스미드리가일로프를 이해했으니 그래 혼불의 강모도 이해가 되겠지 했는데 손나 바나나 코레와 웃소다 아직도 이 새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쨌던 결혼했음 딱 지 아내를 지 껄로 만들어야지 그것도 못 하고 첫사랑인 사촌누나 보고싶어 하는데 어릴 때 소꿉장난 한 이후 쭉 만나보러 갈 생각도 못하고 할머니가 무서워서 결혼했고 아무튼 슈발 죤나 처음부터 끝까지 지 생각만 하는 놈 하... 나 같으면 신방에서 발랑 드러누워 쳐 잘 때부터 벌써 뛰쳐나가거나 촛대 들고 때린다 어릴 때 이 책 잡고 나서 바로 집어 던질 뻔했는데도 신부가 불쌍해서 끝까지 봤지만 근본적인 감상은 지금도 변하는 게 없네 암덩어리 새끼... 여자가 부처다 여자가 부처야.

 아무리 토지가 불공평하게 나눠진 시스템에 대한 불평이 옳다 할지라도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일제강점기일 땐 제일 우리나라 민족을 많이 수탈하는 일제의 손에서 독립하고 평등을 이루는 게 옳았을 것이다. 청암 누님의 혜안은 본능에 가까웠다. 그녀와 율촌댁과 효원은 과연 일제강점기 후반에 속하는 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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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 - ‘국제펜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작 동심원 1
이준관 지음, 최혜란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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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누군가
누군가
얼굴을 내밀고
어디 가니?
물어볼 것 같은

골목길을 향해
열려 있는 창문

누군가
누군가
손을 내밀고
종이비행기
날려 보낼 것 같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창문

  

엥 이거 완전 반지하 얘기 아님까? 그러고보니 누군가가 선거함에 종이비행기 접어서 넣었다고 쿨럭쿨럭.

 

 이야 아무튼 무지 깜짝 놀랐다. 동시 팟캐스트같은 데서는 이름도 잘 안 나오고, 무엇보다 이 책은 그림이 좋아서 충동적으로 산 책인데 아무 생각 없이 이준관이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니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온다. 출판사에도 관련되어 있으신지 동시 선집이 특히나 많았다.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 그런지 학교에 대한 묘사가 내가 생각했던 그 닭장과는 무지하게 달랐지만(...) 골목다운 골목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서로 통하는 듯하여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요번에 시흥동에 이어서 하안동까지 리모델링 들어간다고 하는데 너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가장 미워 죽겠는 친가가 그래서 강원도로 도피할 자리를 알아본다고 하는데... 날 서울에서 강원도로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것들이 ㅋㅋㅋㅋ 무튼 리모델링이 필요한 곳이 있지만 그렇게 무작정 개발해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집값이 오르고 돈을 버는 게 아닌데. 게다가 하안동은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대안을 한창 찾아가는 중이라 아깝긴 하다. 뭐 그런 이야기는 다른 책 리뷰에서 좀 더 자세히 할 거지만.) 쑥쑥이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의성어와 의태어에 굉장히 신경을 써서 시를 지으신 것 같으니 혹시 그쪽에 관련해서 아이에게 가르치려 하는 학부모가 있으시다면 이 동시를 주목해 주시라고 말하고 싶다. 출판사에게 좀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블X래X의 의태어 동시나 의성어 동시를 읽는다고 받아쓰기에서 만점받고 수능 국어영역에서 1등급 받고 그런 거 아니다. 책을 읽는 걸 좋아하게 되고 뭐 그런 과정이 필요한 거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시인이 창문에 대한 이야기를 툭툭 꺼냈다는 데에 있었다. 무언가 창작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듯한데. 특히 창문을 반쯤 열어놔서, 숙제를 해야 하는데 바깥의 일에 이것저것 귀를 기울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저자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ㅋ 숙제를 원고쓰기로 바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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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 시선 : 해협의 로맨티시즘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8
임화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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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포도주를 중에서

찬란한 새 시대의 향연 가운데서
우리는 향그런 방향 위에
화염같이 붉은 한 잔 포도주를 요구한다

새벽 공격의 긴 의논이 끝난 뒤 야영은
뼛속까지 취해야 하지 않느냐

명령일하!

승리란 싸움이 부르는 영원한 진리다
그러나 나는 또한 패배를 포기하지 않는다
승패란 자고로 싸움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피로하지 않는 것이다
적에 대한 미움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지혜 때문에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결별에 임하여 무엇 때문에
한 그릇 냉수로 흥분을 식힐 필요가 있느냐
벗들아! 결코 위로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서는 아니 된다.

 

 

페친의 페친이 예술에 우열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거론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화를 거론해야 옳다. 

 

 소위 문학 아닌 것들에 대한 거론은 임화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월북했고 배우로도 활약했으며 조선프톨레타리아예술가 동맹의 지도자가 되어 계급혁명 운동을 했었다지만 그는 한사코 예술의 우열에 대해 확실한 주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시절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예술의 완성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다. 그는 문학을 직업이 아니라 업으로 삼았으며, 이는 현재의 전업 작가 즉 작가로 먹고산다는 안이한 개념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예 그는 열등한 것들을 내성소설과 세태소설로 나누어 그런 쓰레기는 문학이 아니다라고 까지 주장했다. 그는 문학의 해협에서 노닌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나중에 김동리가 적절히 채갔는데, 흔히 '문학에서 정치얘기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김춘수에게서 나온 줄 알지만 사실은 좀 더 일찍 김동리에게서 나왔다. 그로 인해 '본격문학'이라는 단어가 생겼는데, 이렇게 임화의 예술에 대한 성찰은 왜곡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소설도 동시에 와해되고 궤멸되어 소위 지식인층들에게 비웃음당하고 손가락질 받게 된다. 예술의 우열은 있다. 그러나 왜 예술의 우열이 거론되는지, 그걸 입밖으로 꺼낸 사람의 속마음이 뭔지 그걸 먼저 살펴봐야 한다.

 확고한 계획과 만신의 용기. 굉장히 뭔가 있어 보이지만 선택과 집중이다. 좋은 것을 향해 우리는 지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를 것은 걸러라. 앞을 가로막는 장난감이 운전대에 너무 많으면 정신만 사납다. 확실히 우리나라 시인 중에 임화만큼 시원명쾌하게 선택과 집중을 주장하는 사람이 또 없지.

 지금도 가부장제 때문에 고생하는 (청소년) 운동권들이 많은데, 그 때는 어땠겠나 싶다. 고향집에도 들어가고 싶겠지. 하지만 청년은 역시 집을 나가야 한다. 들어가서 고향을 보는 건 일단 20대 청춘 다 지나서 해도 늦지 않음. 일단 집을 나가면, 고향을 그리워하지 마라. 특히 엄마가 한 음식 먹을 생각 하지 마라. 요리할 수 있으면 혼자 요리해라. 고향에서 엄마가 절대 만들지 않았을 그런 음식으로. 설령 탕아로 욕을 먹어도 아들의 손에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부모는 아들을 받아준다. 그 전에 물론 쫄쫄 굶어봐야 하고.

 

 게다가 박헌영 선생이 북한에서 처형되기 전 박헌영 선생을 찬양하는 시를 지으며 우리에게 군림해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볼 땐 착잡하기까지 하다. 결국 모두가 국가의 농간이자 대본이라는 걸 임화가 눈치챈 건 감옥 속에서였다. 나이가 드시고 자식을 잃어버려서 둔해졌던 걸까? 서울 이후의 시들은 어딘가 딱딱하고 무언가 그 당시의 다른 시들을 베낀 듯한 티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까보자. 청춘을 찬양하며 젊은 운동권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수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내가 왜 임화가 별로냐면, 현해탄 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이 너무나 마초적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왜 너네 남자들 꺼냐?)

 내가 일제 선전 영화 너와 나의 시나리오를 교정한 것보다 더 안 좋다고 보는 게 바로 이귀례와의 관계였다. 본 이름은 귀남이었는데, 촌스러우니 귀례로 바꾸라고 강요한 것도 임화였다. 게다가 여성이 결혼하지도 않고 남자와 살면 욕 먹는 그 시대에 동거를 하다니 말도 안 되고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이건 설령 귀례라는 사람이 원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카프를 해산하라고 해서 해산시키고, 임화보다 더욱 사회주의자 성격이 강했던 귀례가 헤어지자고 해서 (자식까지 있는데) 그냥 헤어졌으며, 무엇보다 두 번째 여자인 지하련과는 결혼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 프톨레타리아 입장에서 결혼식이라는 형식적 허례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견지에서 그만 두었다고? 혁명 전사들의 동지적 결합이라고? 그럼 계속 이상적인 동지로 남았어야 옳지 동거는 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이귀례가 먼저 그렇게 말하도록 냅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좋아하는 여성이라면서 감싸줄 생각 전혀 없냐? 임화가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한 이후의 삶이 너무나 처참했다지만, 일단 첫 번째 부인과 그 자식보다는 오래 살았던 게 아닌가. 너 어느 곳에 있느냐라는 시에서는 자식(딸이다.)이 보고 싶다고 울부짖으면서, 그 와중에, 이렇게 말한다.

 

경애하는 우리 수령은
무엇이라 말하였느냐
한 치의 땅
한 뼘의 진지일지라도
피로써 지켜내거라
한 모금의 물
한 톨의 벼알일지라도
원수들에 주지 않기 위하여
너의 전력을 다하거라
원수가 망하고 우리가
승리할 때까지 싸우라

 

  발렌티노인지 뭔지는 몰라도 난 얼굴 잘 생긴 남자는 딱 싫다. 야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손만 물리고 치료는 여성이 도맡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이 야수 길들이기에 성공한 이유는 '미녀라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야수에서 미남으로 돌아온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은혜는 털끝만큼도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다. 벨의 얼굴이 늙어가고 똥배가 나와간다고 지적질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중에서

그러나 네 높고 큰 산악의 귓전을 기울여보라!
네 잠잠히 넓은 대양과 호수의 푸른 눈알을 굴려보아라!
벗 '김'이 누워 있는 불룩한 무덤 위에
조으는 듯 피어 있는 머리 숙인 할미꽃이라든가,
아침 햇빛에 잠자던 머리를 들어
아득히 먼 저 끝까지
날마다 푸른 물결 밀려가는
이 아름다운 봄철의 들판이라든가,
그 위에 우뚝 허리를 펴
지나간 시절에게 패전한 흉터가 메일랑 말둥 한
움 터오는 나뭇가지들의 누런 새순이라든가,
저 버들가지 흩날리는 언덕 아래
텀벙 엎더져 눈을 털고
동해바다 넓은 어구로 흘러내리는
성천강의 얼음 조각이라든가를...
오오, 유수이다!
보는가! 저 얼음장 뒹구는 위대한 물결을!
(...)
정말로
가을에 아프고 쓰라린 기억은 한 번도
누런 풀숲에서,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는
할미꽃의 용기를 꺾지는 못했었고,
거센 동해의 산 같은 격랑도
삼동 긴 겨울
길 넘게 얼어붙은 빙하를 녹여
하구로 내려미는
한 오리 성천강의 가냘픈 힘을
막아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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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가네코 미스즈 전집
가네코 미스즈 지음, 서승주 옮김 / 소화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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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생시

꿈이 생시이고 생시가 꿈이라면,
좋을 거야.
꿈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좋을 거야.

낮 다음은, 밤인 것도,
내가 공주님이 아니란 것도,

달님은 손으로는 딸 수 없다는 것도,
백합 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시곗바늘은 오른쪽으로 간다는 것도,
죽은 사람들은 없다는 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좋을 거야.
가끔씩 생시를 꿈으로 꾼다면,
좋을 거야.

  

  항상 어떤 말을 감명깊게 들었다가 최근 들어 갑자기 확 식어버리는 그런 유형이 있다. 그게 내가 아니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친구관계는 유지하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 않으려 한다니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떤 말은 그런 법이다.

 

 나에게는 그 말이 "걷는 사람은 달리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달리는 사람은 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노력하는 사람은 천재를 이길 수 없다. 천재 중에서도 노력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쩌자는 말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라는 시가 나의 그 찜찜한 기분을 명확히 문장화해주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내가 새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말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은 방울의 음을 낼 수는 없지만 노래를 알고 부를 수 있다. 나는 나고 새는 새고 방울은 방울이며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좋다는 긍정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이 시집이 전반적으로 슬픈 시가 가득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 시 말고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시를 굳이 꼽자면 얻어맞는 흙과 밟히는 흙이 각기 농사를 짓거나 자동차를 지나가게 하기 쉽다는 내용의 '흙'이란 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한 밟히거나 차이지 않은 흙도 생명이 살기에 소중함을 강조함으로써 반전을 꾀하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쓸쓸함을 위로해주려는 마음씨 좋은 시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다. 장르가 동시라서 짧고 쉬운 한자가 많으니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쭉 읽어 내리기 딱이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면 한번쯤 깊이 숙고해보길 바란다. 예를 들어 위에 눈도 아래 눈도 가운데 눈도 모두 쓸쓸하다는 '쌓인 눈'이란 시에선 순식간에 온 우주를 무대로 하기 때문이다. '꿈과 생시'라는 시는 아직도 왜 죽은 사람들이 없다는 게 정해지지 않아서 좋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살면서 천천히 곱씹어보게 될 시들인 듯하여 시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읽었다. 시에서 나온 것처럼 놀던 사이에 어느새 친해진, 모르는 언니가 내 두뇌에 나막신 끈을 단단히 동여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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