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로드 1 - 불사자의 왕, Novel Engine
마루야마 쿠가네 지음, 김완 옮김, so-bin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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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릭 최고 지배자라고 너희가 부르는 존재가 겉멋만 그런 게 아니란 걸 알려주마. 성능에만 의지하는 자에게 질 것 같으냐.

 

 

오늘은 버스를 잘못 타서 정확히 직장 반대편 끝자락에 위치한 온천에 갈 뻔하여 기분이 high해져 쿠킹요리 서평리뷰를 써보겠습니다. (이제 계란을 태우지 않고 반숙을 잘 만들 줄 알게 되었습니다. 보고 있나 픽업아티스트 프로듀서 아재.) 

 

 아무튼 버스를 잘못 타고 몇 분 뛴 다음 이제 제대로 직장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내 인생행로와 시급 1만원이 안 되는 월급과 또한 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나는 정말 근엄진지하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절대음감이고 빨간머리 앤 완역본을 끝까지 보고 에밀 졸라를 포르노처럼 읽고 내 동생처럼 박경리 토지를 줄줄 다 읽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생략하고 왜 종로 3가의 그 김씨 있잖아라는 식으로 말을 시작한 게 문제라는 거다. (어쩌면 그저 종로 김씨 말야로 대뜸 서론을 꺼내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반성으로 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결론은 이거다. 첫째, 소설과 애니를 다 보았느냐 말았느냐는 상관이 없다. 소설팬이 있고 애니팬이 있다고 보면 된다. 둘째, 원본과 스토리를 달리 한 건 애니팀의 마음이지 당신들이 상관할 게 아니다. 물론 스토리의 질이 문제이긴 하지만 자유로운 텍스트와 상대적으로 제약이 많은 애니 방영시간에는 다소의 퀄리티 저하는 어쩔 수 없다. 움직이는 일러스트라면 특히 더하다. 셋째, 고어의 부족은 다소 마음에 걸리나 그 막장이라는 일본에도 살육장면과 피에는 단속을 엄중히 한다는 증거가 된다. 예를 들어 테라포마스를 애니로 만들 때는 잘린 장면이 얼마나 많은지 몇 분 분량짜리가 전부 시커멓게 나왔다고 한다. 이 정도쯤 되면 그걸 또 짤릴줄도 모르고 신나게 그렸을 사람들이 불쌍하다. 뭐, 그렇게 짤릴 걸 고려하고 적당히 표현했어야 한다는 거지만. 그런 점에서 오버로드는 손 잘리는 장면 빼고는 다 교묘하게 검열을 피했다.

 

 이제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해석 들어간다. 작품의 해석에서 어른의 사정이라느니 감독 마음이라느니 자본의 부족이라느니 까대는 것은 다르게 말해서 나무위키같은 잡학지식만 풍부하지 예술성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책 머리글이나 후기에 주목하고 평론을 쓰는 평론가나 다름이 없다. 물론 책 머리글, 후기, 저자의 생애 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미래상이라던가 이데아를 보지 못한다면 매체에도 나오지 말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펜을 꺾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다들 인터넷으로 써대는데 애지중지하며 들고 다니는 펜은 있을까?) 소설 오버로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애니 오버로드는 신(창조자)의 아무 생각없음과 능력 딸림에 대한 가책이 있고, 피조물의 순종 속 치밀한 계산과 창조자에 대한 도전이 있다. 성우의 목소리는 애니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므로 중요하다는 숭엄한 교훈도 있다. 게다가 이 애니는 클레만티느(유우키 아오이/고식 빅토리카)의 목소리와 알베도(하라 유미/아이마스 시죠 타카네)의 목소리로 그 이념을 행동에 옮기고 있다.

 

 

 P. S 게임은 역시 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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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이야기 - Faust Box 이야기 시리즈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VOFAN 그림 / 파우스트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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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현재 환경문제는 애써 무시하자. 흔히 에코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를 주장하며 고기 먹는 행위를 줄일 걸 주장할 때 정상적인(?) 잡식 인간들이 반박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인간은 원래부터 잡식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다른 힘센 잡식 동물이 인간을 먹을 때도 사람은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 상황이 닥칠 때 침착한 반응을 할 수 있는 인간은 적다. (침착하면 정신에 문제가 있지 않나 검사도 받아봐야 하겠다.) 둘째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까, 약한 것을 잡아먹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더 우월한 종족이 탄생할 때, 당연히 그 종족은 그 말을 한 인간보다 세다. 당신을 종복으로 만든다는 장담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자신을 그 우월한 종족에 송두리째 바칠 각오가 있는가? 그 종족이 바치기를 결코 원하지 않더라도? 세 번째로, "우리가 서로를 일정 수 잡아먹어야 개체 수가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님을 명심해라. 세 번째를 말하는 당신을 돌아보라. 당신은 살아있는가, 아님 이미 옛날에 죽었는가? 당신은 인간인가?

 지금 생각난 게 있는데 나도 저런 상황에 있으면 아라라기처럼 할 것 같다. 아니, 자신하진 못할지라도 아라라기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결국 한치 앞을 못 봐도, 미래가 아무리 부정적이라도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인간이니까.


 

 

 

작화는 여러모로 지적할 게 많은데, 그 중 하나만 하겠다. 왜 누님일 때만 얼굴이 뭉개지고 로리일 때는 정성스럽게 그리냐. 심지어 아라라기에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피를 빨려서 작아질 때도 정상이냐 응? 너네들이 아무리 로리가 좋더라도 키스샷은 이 영화의  주인공 이상으로 시리즈 전체를 좌우하는 인물 아니니? 신경 좀 써주지 않으련?

 

 오시노 메메가 정말 최적의 해결방안을 제시했지만, 지가 꼼짝 못할 줄은 생각 못한 게 함정. 아라라기가 애인을 금방 찾을 줄 모른 것도 함정. 그리고 내 별명이 알로하 셔츠(오시노 메메)인 것도 함정. 나 저렇게까지 대단한 인물 아닌데...

 모노가타리가 그 다음 진행된 걸 보면 기존 균형이 거의 완전히 붕괴되었다. 알로하 셔츠가 왠지 균형이 붕괴되는 걸 보기 싫어서 선배에게 맡기고 일부러 떠나지 않았나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역시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무튼 내용 요약하면, '아라라기가 그랬는데도 봐줬단 말야?'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긴 한데, 스토리상 봐야될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중심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탄에서 그렇게나 서비스를 보여준 것에 비하면 하네카와 츠바사 출현 비중 적어. 아라라기가 추진력 딸려. 무엇보다 하네카와 츠바사와 최근 관계가 석연찮은 이유가 그놈의 밸런스 때문인 거 같음. 그치만 그 밸런스가 명백히 깨지고 있는데???

 

 

 P. S 생각해보니 상처이야기 소설판에선 나온 "이미 너의 몸에서 영원히 상실된 속옷이다"가 극장판에선 안 나왔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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妄想代理空間站 (平裝, 第1版)
零雜志 / 世紀文叡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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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원숭이 수준이면서 프라이드는 인간 수준인 건가?

 

사실 난 이 애니 제목만 보고 '현대인들 일하느라 망상할 시간도 없으시죠? 제가 대신 망상해드리겠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는 줄 알았다.

 

 뭐 마로미 애니메이션이 그런 의도라면 그런 의도겠고 영 틀린 건 아니지만... 장르는 스릴러요 사실상 주인공은 소년배트이기 때문에 영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상상으로 소년배트의 모습을 점점 더 키워서 나중엔 되려 이름보다 더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된다. 그러나 그걸 애니메이션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고(은근 자본주의의 프레셔를 강조하긴 하지만) 옴니버스 형태를 취해 현대사회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분석하는 게 이 애니메이션의 강점이다.

 생각해보면, 이 망상대리인이란 것은 단지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려는 거짓말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 궁지에 몰려 생겨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것에 직면할 수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취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외면으로 표출하면 정신병원에 가기 십상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말하기는 참 쉽다. 그러나 자신도 어느 정도 이 세상에서 가해를 한 적이 있기에 생존이 가능하며, 앞으로도 계속 가해를 할 것이고, 모두가 당신의 죄를 속죄해주지 않을 것이며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 끊임없이 당신을 비난하고, 그게 당신의 삶이라고 할 때 당신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죽을 것 같이 부끄러운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있는가?


 

 

일단 콘 사토시가 자신의 캐릭터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결국 병마에 굴복하여 자살을 택했기에 이 애니메이션은 더욱 더 애절하다. 퍼펙트블루와는 달리 심하게 낙관적이어서 이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었다. 글쎄, 나는 이 애니를 보기 싫었고 지인들의 독촉과 실시간 감시가 없었다면 이 리뷰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자살한 인간의 교훈적인 작품은 딱 질색이다. 응 그렇게 살라는 뜻은 잘 알겠다. 그런데 너는 왜 자살했지? 그러게 우울한 애니메이션만 만들다가 돌연 희망찬 애니메이션 만드는 거 아녀...

 

 P.S 콘 사토시의 죽음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을 거라 본다.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유언장의 어조를 보면 그다지 희망차진 않다. 무엇보다 '무슨 짓을 다 해봐도 희망이 없으니 집에서 죽고 싶었다'라고 쓰여 있는 게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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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스 2
이치구로 노보루 감독, 이지마 마리 외 출연 / 매니아 엔터테인먼트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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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죽을 용기는 있어도 졌다고 보고할 용기는 없는 거야.

 

 

 

성우가 감정이 없고 스토리가 개연성 너무 후달린다. 순수하게 캐릭터만 강조하면 어떤 애니가 되는지를 마크로스 2가 알려주려고 제작한 것만 같다.

 

 메시지는 강하지만 너무 짤막해서 단막으로 끊어서 생각해봐야 하는데 요새 애니를 스토리텔링 없이 교훈성으로만 보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것마저도 스타쉽 트루퍼스 너무 대놓고 베꼈다. 근데 마크로스 제작진들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이 애니 스토리 살리려고 애쓴 듯하다. 예를 들어 노래로 젠트란을 세뇌시키는 부분을 델타에서 고스란히 가져다 썼다. 망했으면 망했음을 인정하고 왜 망했나 분석해야 하는데 이슈타르 이쁘다 헉헉 질러야지 하는 오타쿠들 때문에 한치 앞이 안 보이나 보다.

 

 

 

 

 

 심지어 세뇌도 어쩐지 건담을 적당히 베낀 것 같다.

 

 나중에 이걸 바탕으로 델타가 기적적으로 스토리를 어레인지 시키기는 했다. 정숙(세뇌)과 파계(민메이 어택)의 대결로 바꾸어 놨는데 이건 나중에 상세히 논의할 기회가 있음 하기로 하자. 철학서 리뷰에 쓸 생각.

 

 

 

그래도 젠트라디가 민메이에 의해 훈계를 받고 마음을 돌리는 멍청한 외계인이 아님을 보여준 건 마크로스 시리즈 역사상 이 애니가 거의 최초였다.

 

 그래서 마크로스 7도 노래하는 젠트라디를 보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마크로스 2 특유의 분위기를 이길 수 없던 것이다. 이슈타르가 노래를 동경하게 된 과정도 애절했다. 주인공이 군인도 음악가도 아닌 기자라는 전개로 인해 이슈타르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꼰대 전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슈타르는 혼자서 노래의 신비성을 깨닫고 사랑에 관해서 좀 더 배우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여성인 실비 중위가 남자 상관과 불륜을 저지르지도 않은 채 호텔에서 몰래 작전 회의를 하는 장면은 지금 보아도 충격적이다. 남녀의 관계에 대한 편견을 없애버린 데서는 이 애니가 지금 방영중인 그 어떤 애니보다도 가장 진보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애니 아이돌마스터 제노그라시아보다는 낫지만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정도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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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검은 피
허연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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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나는 지금 목숨을 건다. 얼굴을 마주한 세상과 여자와 술값과 연탄가스에. 나의 꿈은 언제나 섬이며, 선착장의 붉은 깃발이며, 운명처럼 사라진 고향이다. 왜 가난은 항상 천재이며, 고독과 번민이 천재여야 하나. 사랑을 일삼기에도 난 시간이 없다. 서커스에서 춤추는 용과 나는 다를 게 없다. 뭐 시인 만세라고 빌어먹을 너희들은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고, 허 군이라고 부르고, 가끔은 젊은 시인이라고 부른다. 독일이 폭력과 마약에 시달린다고, 갈 놈은 다 가는데 나는 지금 출근을 한다. 이해하지 못한 채 끌려간다. 언제부터 너희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버티고 있었나. 왜 나는 목숨을 거나. 도대체 나는 왜 아버지를 닮고 있나. 나는 지금 병원에 간다. 목숨을 걸었으므로, 바람처럼 가야 하므로, 발자국을 지워야 하므로, 나는 지금 목숨을 건다. 지중해에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지중해에 가려면 돈 내고 여행해야 함~

 

여행을 가기보단 정착을 하는 게 좋음~
아니다 정착을 해도 그것이 삶이 되는 게 아니다 넌 천성이 한국인이라 거기서도 빨리빨리할거야~
스트레스 안 받고 지중해 살려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라~
그러나 난 출근 ㅠㅠ

  


구상은 첫번째로 프란시스 베이컨을 좋아해서 주목했다. 

 

두번째로 실화는 아닌 것 같지만 이라거나 장담할 수 없으나 같은 문구도 있는데 부러 '책임질 수 없지만'을 쓴 그 어투가 마음에 들었다.
세번째로 문장이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자기로 타이핑했다더니 정말 이 시를 타이핑해보면 고고한 분위기가 흐를 듯하다. 김경주 시인과 비슷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이 시 후기를 김경주 시인이 써줬더라 ㅋㅋㅋ

  


고통의 매혹과 악습에 고개가 끄덕여 지려면 얼마 정도의 성숙과 시간이 필요한가.

 

이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월급과 꿍쳐놓은 돈의 액수를 공개하길 꺼려하듯 말하기 곤란한 듯하다. 빛을 피해 돌아다니면서 세상 사람들이 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시인조차도 내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곤란해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이렇게 시로 풀고 있을 테지만.

  


요즘엔 내 주변 사람들, 전애인들,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동창생들, 가족들을 용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살아왔던 전날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에게 이메일을 써서 안부를 전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를 원망한다면, 나에게 미안하다면, 나에게 조금의 감정이라도 있다면(없으면 그런 이메일을 쓰진 않았겠지.) 글을 써라.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답장은 해주지 않았다. 누군지 기억도 안 나는데 답장해주는 것도 미안하고. 

 

유달리 장례식에 관한 시가 많다. 쭉 훑어보는데 권진규의 장례식이라는 시가 있었다. 유일하게 장례식에 이름이 적혀있는 것도 독특하고 모차르트의 이름이 거론된 것도 신기했다. 도서관에 검색해봤더니 그를 소개하는 것 같은 책이 있는 듯하다. 흙으로 조각상을 만든 사람이라 한다. 한번쯤 본 듯한 작품이었다. 나중에 한번 빌려서 볼까. 그러고보니 자주 어깨가 빠졌거나 없는 사람들의 군상이 자주 나오는데 이 조각상을 보고 느낀 점이었나. 하기사 어딘가 사람이 축 늘어진 몰골이긴 하다.

시인의 이름이 관심을 끌었다. 허연이라니. 연이라는 이름이야 있을 법하지만 성과의 밸런스가 기묘하다. 허연시를 반대로 발음하면 시허연이지 않은가. 직업도 어째 시인으로 선택했는지. 빼도박도 못하게 허옇게 될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항거인지 또 시집 이름은 검은 피랜다. 표지도 검다. 내용을 보면 빛도 피해 다닌다고 한다. 궁금해서 자연히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그런 책은 일부러 잘 안 잡지만 또 우연히 허연을 산문으로 접했다. 그 굉장히 어머니 중심적인 산문이 의외로 좋아 시집까지 읽게 되었다. 타자기에 대한 로망도 한몫했다. 이 시집에 담긴 시를 쓸 때 타자기로 쳤다더라.

 

진부령

걸으면 산이고
또 다시 산이다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눈이다
눈발은 지쳐 쓰러진 것들의
체온으로부터 오고
어디에도 없는 눈 덮인 이 길이
잡목 숲에 버리고 온
그대의 마음이란 말인가
주고받았던 힘이란 말인가
뒤돌아보면
채 닦이지도 않던 눈물만 얼어붙어
먼 불빛들 사이
우뚝 서 있어라. 운명처럼
그대를 사랑한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으므로

 


그러나 저번 해엔 눈이 오지 않았네요ㅡ.

여름에 오랫동안 물이 공급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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