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살림지식총서 282
변광배 지음 / 살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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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아셨지요, 어떡하면 좋겠어요?"
"그럼 지우면 되지 않아. 싫은가?"
"좋아요, 이야기할 곳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사르트르가 철들 무렵을 쓰던 시기의 프랑스에서 낙태는 불법이었다.

 

상당히 오래 전의 이야기인데도 혁명적이란 느낌이 든다. 단지 여전히 사르트르보단 보부아르가 더 매여 있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사르트르나 보부아르나 다수의 애인을 만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 말고 다른 신체 건장한 애인을 만나 육체적 사랑을 나누자마자 그 재미에 홀랑 빠져서 그와 속세(?)의 결혼을 하고 싶다고 주장했었다. 나중엔 다시 사르트르에게 돌아오지만, 그 행동도 사르트르의 철학을 완전히 이해해서 자신의 이념을 흡수하도록(이념에 흡수시키는 게 아니라) 바치려는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걸 보면 보부아르의 사상은 역시 낡았다고 본다. 이미 보부아르의 페미니즘 사상은 옛날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페미니즘을 급진 페미니즘이라 부르는 이유에 대한 참고사항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보부아르는 결국 사르트르에게 자신의 성 경험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하지 않고(사르트르와 그렇게 하자고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의 애인들을 질투하는 성향까지 보였다. 특히 30대에 접어들고 사르트르가 젊은 러시아 여자를 만났을 땐 심한 위기감을 느낀 듯하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여자를 사귀고 성생활을 즐기는 건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보부아르를 속박한 건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진보해도 소용이 없다. 어차피 사회의 시선이 그녀에게 폭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상, 계약결혼을 유지하는 자신의 삶이 옳다는 진리를 사회의 시선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그 정도로 용기가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급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다. 발렌타인 데이 때 남성 대다수는 직접 만든 초콜릿을 선호한다고 한다. 나도 전애인에게 직접 만든 초코스틱(실패작)을 받은 적은 있으니, 그 정성으로 받는 감동은 안다. 그 정도로 넘어가면 되는데, 사람들은 '여기 댓글에 여성들이 너네가 만들어 먹으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라는 댓글을 먼저 단다. 특히 동성의 젊은 여성이 그럴 때 나는 굉장히 놀랍고 실망스럽다. 물론 그런 분들은 '자신은 강하다,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어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단 그런 글을 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부류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피해자가 되거나 너무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질 때, 그 사람들은 당신을 친구로 받아들일까? 대뜸 얼굴에 주름이 많아졌다고 놀리면? 피해받은 게 너무 억울해서 가해자를 고소하겠다고 한다면? 최근 젊은 여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싫어한다던가 고은 시인 규탄에 항변하는 건, 결국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약자가 약자에게 돌을 던지는 짓이다. 보부아르는 계약결혼으로 자신이 일반 여성들과는 다르게 산다는 걸 페미니즘적으로 주장하고 싶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매혹적인 글은 보부아르의 글보단,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주장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지극히 페미니즘적 글인 '자기만의 방'이다. 결국 하나하나 설득하여 모두가 변할 때 세상의 변혁은 가능하다. 나는 키보드워리어를 하기 싫어서 조용히 페친을 끊었지만. 이 행위도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키보드워리어를 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것도 하나의 틀을 깨려는 싸움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의 규칙(그것도 자세히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까지는 매우 좋았다고 본다. 특히 모든 것을 다 말하되 다른 애인을 사귈 수 있다는, 서로가 초인적인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심지어 어찌보면 상충되기까지 한 그 두 조약의 조화가 좋았다. 언뜻 보면 인류가 인류를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변광배 씨가 썼다고 하는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삶을 잘 요약했으며, 계약결혼의 핵심을 잘 요약했다고 본다. 특히 작품으로 작가들 각자의 사랑에 관한 생각을 설명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대체 그녀는 그 안경 낀 남자를 어떻게 참고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쇳소리의 포주 같은 목소리하며, 쭈글쭈글한 파란색 정장, 게와 동성애자들과 나무뿌리와 존재의 질척한 더러움과 하이데거스러운 짬뽕 철학에 집착하던 그 남자를.

 

첫째, 외모 별로 따지지 않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아예 배가 나온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들(진심 외모만으로)도 있다.
둘째, 책에서도 적혀 있지만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보다도 더 패션감각이 좋지 않다. 가뜩이나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르트르는 오히려 여자친구가 잘 차려입지 않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다.
뭐든지 커플 중 여성쪽이 남성보다 더 참고 살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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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비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75
이민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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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분의 식사 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주방에는 낡은 냄비 낯선 냄비 동시에 끓고
일곱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면
세 쌍의 대화와 한 명의 독백이 발생할까
한 쌍의 대화가 탱크처럼 독백 위를 지나가고
세 쌍의 대화가 함께 폭발하면 거대하게 부푸는 핵구름 아래서

내통하는 입과 귀가 몰래 낳는 기형의 비밀들
목을 비틀면 벌컥,
거품부터 입에 무는 맥주잔을 쨍그랑 부딪치며
귀를 틀어막을 수 없어서 소시지로 꾸역꾸역
입을 틀어막는 사람들

합창은 혼자서 못 하나?
일곱이서 입을 맞추면 그건 침묵이 되나?


미안하지만 많이 비슷하..다..


초반부터 여자애 혹은 셋째라는 이유로 애를 지우려고 한 집안에서 시인은 태어났다. 지금은 미친 거 아닌가 싶을 테지만 시인이 40세라던데 옛날엔 이런거 많았고 지금도 드물게 있을 듯하다. 아무튼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아싸였다(...)


남자들은 잘 모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친구의 모임이 3명, 7명일 때 뭔가 그 싸한 느낌이 있다. (5명은 그래도 좀 안정적인 편이다. 경험담.)



이 시에선 3명의 친구가 있을 때 한 명이 먼 산 보는 장면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5명이 잠깐 언급되다 7명의 친구들이 있으면 상황이 얼마나 개같이 돌아가는지를 상세히 열거한다. 근데 혼자서 노는 느낌의 인물은 사실 모임이나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그 한 사람을 조리돌림하면서 화제가 생기니까. 그런데 아싸가 가장 견디기 힘든 때가 2명씩 묶어 3팀이 그 아싸를 멍석말이하고 있을 때이다. 이보다 더해서 4팀이 되면 차라리 포기하고 견딜 만하다. 이는 심리학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 1명이나 2명이 UFO를 봤다고 하늘을 쳐다보면 모두들 콧방귀를 뀌며 지나가지만 그게 3명째가 될 때는 꼭 하늘을 잠깐 쳐다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3명이 7명이 된다고 해서 그들이 나누는 우정의 관계가 커지진 않는다. 자리를 끊임없이 이동하며 리더를 자처하는 한 명 빼곤 모두들 자신에게 제일 가까이 있는 한 명에게 존버한다. 그러나 아싸랑 제일 가까이 있는 한 명은 두번째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절박하게 대화상대가 되어달라고 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시를 읽으며 꼭 여덟번째 사람이 되겠다 하는 사람은 같은 아싸거나 적어도 아싸 경험자이다. 난 뭐냐고? 그냥 모임에 들어가질 않거나 들어가도 그냥 모두를 아싸시킨다. 난 어차피 노력해도 1대1이 안 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심취해서 흐름이 이상한 데로 흘러가기도 해서 걍 저절로 떨어지는 사람들은 떨어지고 또 그것 때문에 새로 말을 거는 사람도 있고 ㅇㅇ 이걸 굳이 뭐라고 이름 붙이자면 철새 타입?
아싸라고 하고 싶은데 꼭 사람들이 내가 자리를 비우면 눈치를 채고 오라고 해서 현재는 그렇게까지 아싸라고 주장하기엔 좀 민망하다.
애초 짤도 이런 거지같은 걸로 올리고 대놓고 모두까기해서 걸리면 욕설찜질 당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프로필도 파오후 냄새 나는데(...) 여태 내 실물 알고도 페친으로 있어주는 사람들도 있고 인간관계가 바닥까지 안 간 것도 신기함.

후기엔 소개되지 않았으나 세월호에 관한 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풍자가 강하다. 2018년에 와서야 리모델링의 열기가 퍼지기 시작했지만, 중산층은 5년 전부터 집을 가꾸느라 가구들을 빌리는 추세였다. 상류층들처럼 가구를 사기에는 아무래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언가를 빌려쓰는 추세, 홈퍼니싱, 카페와 모텔의 선풍적인 인기, 잠을 사고파는 사회를 모두 연결하여 적절한 비유로 풍자하고 있다.

 

tattoo 중에서

목욕탕의 이웃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때를 벗기듯이
벌거벗은 두 남자가 모텔방의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듯이
더 이상 벗을 수 없을 때
손가락들은 달라붙는가 흩어지는가
아름다운 노출의 수위는 어디까지인가
(...)
담벼락의 낙서를 긁듯 즉석복권을 긁어대듯 문신을 지운 사람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횡단보도의 흔적 위를 건너가고 있었다
두껍게 비누칠을 한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제 막 떠돌기 시작한 거리에서
모퉁이마다 비추고 있는 스탠드 불빛을 따라
나는 손목을 끌고 골목에서 골목으로 책갈피처럼 넘어갔다


아름다운 노출의 수위란 무엇인가.



그리스 로마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려 한 르네상스 작가던, 세계 각지의 대문호던 간에 '성적인 묘사'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표현하려는 것은 '인체의 아름다움'이나 고급지지 않은 서민들의 일상에 성적 쾌락의 추구는 본능처럼 남아있다.또한 예술 작품에서 인간의 'Sex'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목욕탕에 헐벗고 돌아다니는 그들의 목적은 '성적인 욕구'의 해소가 아니라, 그저 더럽혀진 자신을 목욕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무거운 옷과 장신구 따위는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 심신의 안정을 찾을 뿐이다.
다만, 제아무리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도 사회가 '정신병자', 혹은 '변태'라 부르는 자들의 눈동자에는 그저 성적인 대상, 속칭 '딸감'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예술과 인간의 신체의 아름다움은 그저 한 인간의 쾌락해소제로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성 혹은 섹스라는 행위 또한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이자, 가장 끔찍한 마약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잘 활용함으로써 비로소 최고로 나른다. 과하면 항상 독이 된다는 사실을, 성숙한 우리들은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당신의 눈동자는 지금, 명화속에 잠들어 있는 아프로디테를 예술로 보는가, 성적 대상으로 보는가.
당신은 신이 주신 선물을 열었는가, 혹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가.
물론,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상자는 같다.

원래 세상의 모든 비밀이라고 그 시에도 트랜스젠더가 등장했었다. 그래서 퀴어와 관련해서 tattoo와 같이 올려야 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할지 고민했었다. 어쩐지 가장 비유도 없고 산문적이고 고백적인 이 시가 자꾸 끌리더라. 그래서 왜 이 시가 그렇게 좋은지 고민했다가 그냥 마이너 인생이라서 그렇다(...)라고 생각했는데 또 책을 덮고 할 일을 하다보니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이 시가 더 성적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명확히 요구하는 것 같달까? 그러고보면 마이너 인생이라는 말 자체가 왜 이것이 좋은지 오래 생각하기 귀찮아서 습관적으로 던지는 변명 같기도 하다. 지양해야겠다. 마이너 인생이라...사람들과 사회는 우리 청년들에게 '마이너 인생' '조진 인생'이란 말들을 참으로 많이 던져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참 많은 돌을 머리 위로 던졌던 것 같다. 돈 없는 것은 버티지만, 수많은 실패와 인간관계의 허물어짐, 그를 통한 불신과 성격의 파탄.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재능없음의 깨달음. 잠시나마 재능 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오만하다고 꾸짖었었다. 차라리 돌맞고 죽어버리는게 나을까. 하고.
머리에 돌을 맞으면 아프다는 걸 아는데, 왜 우리는 굳이 하늘 위로 돌을 던지려는 걸까? 왜 그저 본능이 가는 대로 머리에 피가 날 때 까지 돌을 위로 던져 올릴까?

왜 반가워서 하는 진심의 인사보다 빈껍데기인 채 척추를 구부려 하는 인사가 훨씬 더 환영을 받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들은 진심이 필요하지 않은가 보다.
커피 심부름을 왜 싫어하는가 시시콜콜 따지는 어른들을 보면 그들은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보다 침을 뱉어 내놓은 커피가 더 맛있는가 보다.
아이를 빗자루로 때리고 다리미로 지지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는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부부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을 들어 던지지 않고선 견딜 수 없다. 나 하나가 공손해지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게 던지는 만큼의 돌을 던질 것이다. 이게 아싸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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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1263호 : 2018.02.06
위클리경향 편집부 지음 / 경향신문사(잡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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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떠 있는 '남자' 밑에 펼쳐진 도심은 강남 삼성동이다. 요컨대, 포스터엔 '용산'이 없었다!
용산? 2009년 1월 20일 벌어진 용산참사 말이다. 마침 시사회가 열리던 날 바로 앞 토요일이 참사 9주기였다. 단순한 유비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용산참사를 '인용'하는 것을 보는 게 괴로웠다. (...) 그리고 이 아버지는 초능력을 발휘해 그날의 희생자들, 철거민들과 경찰들, 그리고 최종적으로 컨테이너에서 떨어지는 자신의 딸을 구해낸다! (실제 용산사건에서 여성 사망자는 없었다.) (...) 그러나 강추한다.


 
1. 그러나 강추한다는 뭐야. 나만 당할 수 없다는 건가? 무튼 안 보길 잘했네. X도 최종 전투에 지진 넣었다가 일본에 실제로 지진 일어나서 연재 중단되었었다. 현실과 겹친 장르물 만들 땐 신중해야 하는데. 조심 좀 하지 그랬어요.


강남을 찍어누르겠다!라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남을 이기는 초인이 되서야 세상을 구한다고 나서려는 게 좀 괘씸하기도 하다.

2. 물가가 어떤진 잘 모르겠지만 온타리오에선 시간당 최저임금이 12000원이고 더 올릴 예정이라던데 우리나라 노예들은 복지비 반으로 줄인다고 해도 굽신굽신거리며 갈 듯. 나 직장 그만뒀다고 했더니 어떤 사람이 90만원으로 땅 몇 평을 살 수 있는데 등의 말을 하더라 ㅋㅋㅋ 오졌다리 오졌다

3. 남들은 기업이 돈을 많이 버는데 무슨 손해를 입느냐는 식으로 비난하는가 본데, 기업은 기본적으로 상품이 창의성과 같다. 개성공단의 사건으로 인해 자식을 북한에 두고 온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 기업이 많을 것이다. 또한 남북대립이 극심할 땐 일촉즉발인 걸 생각하면 그들도 나름대로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도박을 한 셈이다. 실제로 제조업 위주인 경우가 많은 듯하다. 정부의 배신과 지시 하나로 기업이 갈아치워진다는 사실이 섬뜩한 거지. 물론 원래부터 그랬어야 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을 직간접으로 착취하는 대기업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이 보안에 도움이 된다는 글도 (정동영이 말했지만)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진행 당시 북한 군부대가 후방으로 이전하면서 좀더 안전해지긴 했다고 한다. 군부대 움직임을 남측이 쉽게 알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고.
북한의 생활에 대한 정보에 관심이 있다. 내가 앞으로 전공할 것에 연결되면 나중에 더욱 필요한 정보라고 본다. 아홉번째 파도 소설을 보지 않을 건 아닌데 주간경향 다 읽으면 짬짬이 읽을 것이며 이후론 주로 집에 쌓인 잡지를 처리할 계획이다.

4.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자진해서 백수를 했지만 그래도 히키 되다보니 더욱더 이런 기사 보면 천불이 난다. 부모 만나는 것도 우연으로 맺어진다고 한다면 정말 잔인한 결과가 아닌가. 라고 쓰지만 정작 나도 아버지가 집안이 좋을 땐 그런 계열이긴 했지 씁. 사람이 실수 좀 할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너무 엄청나다보니 할 말이 없다. 어린 시절 내가 머리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려야 했는데. 그래도 사기 당하는 사람은 당한다곤 하더라.

5. 언제나 해외의 정책은 좋지. 민간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중간이라는 사회주택도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빈부차이가 너무 심해져서 당장 이런 정책을 세웠다곤 하지만 고시원과 큰 차이가 없을테고 어차피 임대 산다고 면박만 먹을 것 ㅇㅇ 그냥 임대라는 글자 자체를 일정 기간 이상 살면 없애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물론 애는 키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애가 있으면 대책이 없다. 한시바삐 무슨 짓을 하던간에 임대에서 벗어나야 하는 걸 추천한다. 이래서 애 안 키울 것 ㅇㅇㅇ

6. 전경에게 꽃을 달아주던 사진이 오랜만에 등장했는데 저게 쉬워보이고 로맨틱해 보이겠지만 2007년에 나 운동권일 때 전경이 꽃 밟고 방패로 쳐서 잡아갔었다 멘탈파괴 오지고요.
세상은 꽃 달아주기도 쉽지 않다. 일반인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 레알 저런 여성분들 비웃는 운동권들도 그 시절 많았다. 대다수는 아니지만 드물진 않은 머릿속에 전략밖에 없는 빡대가리들. 면접 보면서 다 걸렀으면 좋겠으나 높으신 분들이 그런 분들인 단체라면 할 말이 없다.

7. 내가 사실 야구 빼고는 좋아하는 게 다 마이너 종목이었다. 수영, 체조, 피겨스케이팅, 테니스, 배구 등.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그래서 하이큐처럼 배구 하는 줄 아는 애들이랑 정현이 인스타그램 스타 되려고 테니스 했다니까 돌던지는 애들 졸라 싫어함 ㅇㅇ 스타들 나오기 전에 경기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냐. 그리고 배구는 여자 배구다.


한음파 x 폰부스 02 머리에 꽃을 (들국화 cover.)- https://www.youtube.com/watch?v=Pp4a4b93XGU


8. 굉장히 몽환적인 노래이다.
공무원 면접 설화를 쭉 봤다. 다 좋았다. 실무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고, 프로그램을 즉석에서 짜 보라는 질문도 괜찮았다. '왜 공무원이 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이 어디에도 없는 게 좀 아쉬웠다. 다들 뻔하니까, 라고 생각한 것일까. 지방 공무원이 되서 이루고 싶은 게 있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사람의 후기는 봤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지방을 사랑해서 그곳에서 무언가 프로그램을 짜고 시스템을 개혁하고 싶었다니 아주 좋은 미담이다. 이루려고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는 제끼고. 나는 뭐, 이제 진보(?)한 대통령이 올라오고 있고 앞으로 30년은 이대로 간다고 하니 그들의 밑에서 세상이 바뀌는 멋진 이야기를 현장에서 보고 싶다, 는 안이한 생각?

 

그때 나는 한국 르포만화의 계보에서 핵심적인 텍스트로 내가 살던 용산(보리, 2010)을 꼽았다. 용산참사 1년 뒤에 출간된, 참사의 막전막후의 삶을 담은 이 책 이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사람냄새, 먼지 없는 방, 사람 사는 이야기, 섬과 섬을 잇다, 단결툰 등 이어진 한국 르포만화들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이 발표의 중심 주장이었다.


이 중에서 섬과 섬을 잇다만 봤지만 내가 살던 용산이 서브컬쳐 계열을 넘어 우리나라의 대중들에게 르포만화를 알리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부정 못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낸 출판사가 직원들에 대한 대우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굳이 이 만화를 보려면 도서관에서 빌려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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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에 앉다 시인세계 시인선 27
장인수 지음 / 문학세계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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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역의 폭설 중에서

비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포장마차의 행렬
(...) 밥그릇에 사정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허겁지겁 녹여 먹는 취업 준비생들
한국사, 헌법, 영어 공부에 청춘을 건
9급 공무원 수험생들
속성 단기 완성 강좌처럼
금세 한 끼 식사를 해치웁니다
미끄러운 육교를 간신히 건너
학원 건물로 사라집니다
"씨발, 천지 분간은 필요없다."
학원 입구에서
폭설을 뒤집어쓴 어떤 남학생이
하늘을 치어다보며
선언문을 읽듯 소리칩니다
하늘이 평평 내려옵니다


새로 직원이 채용되었는지 (근데 알아보니 아니더라)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문은 사라졌다. 그래도 전화가 없는 걸 보면 이제 다시는 나에게 문의 안 할 건가 보다. (이것도 아니더라)


다른 알바 하지 말라고 압박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시간협의랜다. 편의점을 갔는데 저녁 8시에 시작해서 아침 8시에 끝낸단다. 일 끝나고 집에 오면 9시다. 3시간 자고 절대 13시에 출근할 수 없는 걸 몸으론 잘 알고 있는 나이면서도 미련이 남는다. 차라리 그렇게 일해서 벌면 부모님을 고생시키지 않은 채 더 떳떳이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러나 다음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직원들이었다.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사실 생각해보면 자리를 옮길 때부터 내 개고생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눈 앞에 그려지기 때문에 관둔 게 80%지.) 내 눈앞에서 대놓고 책은 팔리지 않으니 내 코너를 축소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사장, 역시 대놓고 내 앞에서 서적코너 언제 문 닫느냐고, 너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수런댔던 직원들. 굶어죽게 생겼으면 다시 마트 가서 경력 들이대면서 비벼댈 지언정 다시는 이 지방에서 그 직장의 일은 하지 않으련다. 이 와중에 포항은 8시간 일하고 140만원 제대로 준다고 한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따지고보면 이래서 내가 노량진을 가면 안 됨 ㅋㅋ 술만 쳐마시고 공부 안 할게 뻔해.

 

돼지국밥이란 아무래도 서민적인 이미지가 강한 음식이다.


카뮈, 니체, 원효 이들은 모두 시대를 풍미할 사상가들이지만, 우리 가난한 서민들이 실존주의든 철학이든 해탈이든 알 바가 있을까. 그들은 우리가 어리석다고 할 수 있지만, 깨달음의 기회 없이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갈 뿐인 우리. 찬 바람이 할퀴는 가운데 흘러가는 삶을 우리는 걸어감에, 잠시 주막에 들러 돼지국밥으로 심신을 따뜻하게 달래는 것을 그 누가 욕하리요. 카뮈여, 니체여, 원효여. 토렴을 한 뜨끈한 돼지국밥을 함께 먹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국물을 들이켜자. 그저, 우리는 옆에 내 사랑하는 자식, 아내, 친구가 있음에 안분지족하면서 걸어갈 뿐이고, 지금 내 앞에는 아삭한 깍두기가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소소한 삶의 길 속 작은 것에 만족하는 우리를 욕하는 것이 오히려 돼지가 비웃을 일이 아니던가. (그리고 돼지국밥엔 소주가 있지 않나.) 전에 부산에 가서 돼지국밥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시간도 장소도 살찌는 것도 잊고 순대까지 추가해서 마구 퍼먹었었다. 여행 마치니 3키로 쪄 있더군()

 


솔직하다 못해 빨개벗은 시는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이런 부류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여성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고리타분하다. 윤리적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라 시에 대해서까지 이런 말을 붙이기 미안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아내를 강제로 덮치는 건 강간이다;;; 아무리 도중에 실패했다 해도, 감기가 걸려서 열이 높은 아내와 한다는 건... 그냥 과장해본 말이라 해도 발정을 억누르는 듯한 시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마광수처럼 다수의 여성이 아니라 한 여성(아내)에게만 집중하는 게 특이하다 볼 수는 있겠다. 굉장히 가족에 대해 많이 쓰는데, 단란하고 약간 과격한 가족에 대한 글은 좋지만 현대시의 흐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 때문에 간단한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기가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야한 시를 좋아할지는 의문이다. 중간에 위치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내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해서 페미니스트는 아니듯 시의 주제가 항상 조금씩 어긋난다는 느낌이 있다. 그게 좀 아쉽다.

 

 소 떼

아버지와 설악산에 갔다
한계령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면서
두루 시선을 주던 아버지, 왈,
ㅡ저 바위는 소처럼 눈을 희번덕 부라리네
ㅡ화가 잔뜩 난 것처럼 갈기를 바짝 세웠어
ㅡ제 엉덩이를 내려치는 소꼬리 같구먼
ㅡ구유통을 두 뿔로 치받는 모습이야
ㅡ긴 혀로 새끼를 핥는 모습이야
ㅡ발정난 암소가 밤새 영각을 켜는 모습이야
ㅡ정액을 질질 싸며 수소가 암소를 올라타는 모습이야
ㅡ수소 자지는 어른 팔뚝보다 더 크지, 장엄하지!
아버지의 눈에는
공룡능선, 소청봉, 귀떼기청봉, 비선대의 용솟음이
온통 장엄한 소 떼로 보이나 보다
설악산을 오르며 소 떼 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심란한 마음을 또 시가 이렇게 위로해주네요 ㅋㅋㅋ
한번도 이렇게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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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이한열 - 쓰러져 일으킨 그날의 이야기
김정희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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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코리아 2018을 봤다. 내용 중 이런 게 있었다. 사람들이 일부러 낡은 듯이 만든 새(?!) 운동화를 산다고 한다. 가성비가 매우 좋으며 마치 막 베낭 여행을 마치고 온 듯한 힙한 분위기가 나는 걸까? 나는 1988년에 태어났고 영화에도 나온 정의구현 사제단 중 한 분인 김승훈 사제님께 2007년 첫 영성체를 받았다. (나는 그때 매우 기분이 언짢아 있었던 것만 기억나지만.) 그리고 2007년 핸드폰은 물대포에 작살나고 구두축은 나가버리고 하얀 가루가 온 몸에 묻었다.

이 시기의 1년 전인 1986년을 보자. 그때 롯데면세점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해외 명품을 팔았으며 본고장에서는 볼 수 없는 레어한 브랜드들도 많았다. 부자인 사람들은 거기서 쇼핑을 즐겼고 그 시간에 물고문을 받은 사람들도 몇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그 사건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박종철이 죽을 때 너도나도 일어났다. 그러나 그 사건에 무관했던 사람들도 소수이지만 있었다는 이야기다. 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기거나 위스키를 마시던 이들은 교묘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영화에서의 그 빽있는 경찰처럼.

어느 목사님이 그랬다. 어머니는 나라를 위해 자식을 사지에 던져야 한다고. 그래야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에밀레종은 잔혹한 어머니의 천당가려는 욕심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어머니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아재소리 좀 하자면 그 무엇에도 지지 않으려는 요즘 사람들의 날카로움은 좋게만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이든 사람들도 그렇다. 오늘도 서울을 가니 지하철에서 표독스럽게 전화하는 여성과 실연당했는지 전화하며 울부짖는 여성을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둘 다 나이가 지긋하셨다. 마치 나라를 잃으신 듯한 슬픔이 그들의 소리를 듣는 내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나라를 그렇게 지키셨으면 1987년과 2007년의 그런 일은 아예 없었을 것 같았다. (이 글 보고 빼액대는 사람들에게 미리 말하지만 나는 여성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무원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일까. 소수의 부자일까 다수의 국민일까. 요새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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