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 박영근 유고시집 창비시선 276
박영근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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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어느날 너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것이다

미친 꽃들처럼
봄을 온통 들어올리는 그 웃음소리처럼

그리고 너는
자궁에 물이 마르고
고름이 흐를 때까지
오래 여자를 헤매일 것이다

시궁창에 제 새끼를 버리고 노랫가락을 두드리는
여자의 가랑이에선
또 물이 흐르고

저기 봐라, 술병 속에선 꽃들이
벌써 벌건 속잎을 벌리고
환하게 젖고 있다


 


 

하이네나 괴테를 보는 듯하다면 너무 과한 비유일까? 아니, 이건 마치 쇼펜하우어의 사랑은 없다를 보는 듯한 충격이었다.


노동시집에서 사랑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섬세하게 부정적으로 쓰여진 시를 발견할 수 있다니! 노동계에서 거리를 둘 때 쓰여졌다 하지만 여하튼 노동시에 대한 편견이 떨어져나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인휘씨도 이것과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쓰신 적도 있었고.



 

광명 철산은 내가 살았던 곳이다.
치과 갈 돈이 없어 이가 전부 까맣게 썩은 내 절친이 잇몸이 드러나게 씩 웃었던 곳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를 보니 그가 사는 곳은 내가 사는 곳과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니체가 말한 가장 험준한 산 꼭대기에 도달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았던 사람같았다.


나이 치고는 꽤 빨리 민주화 운동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노동 쪽은 85년도가 암흑기였다고 한다. 구로동맹 파업 후 지독히 감시 탄압을 했다고. 그 시기면 아마 수배 중이지 않았을까 싶다. 시인은 1984년에 첫 시집을 쓰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구로에서 인천가서 노동 관련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신 듯한데 노동이 85년도부터 암흑기면;;;; 어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다 철렁하네..

팔오년 구동파 이후 공단엔 칼바람, 불신검문. 밤늦게 불만 켜져 있어도 통반장들이 정보과에 연락했다고 한다. 현장 투쟁이 납작 엎드리고 어디서 털렸다는 소문만 들려오던 때.
팔육년 삼월. 다시 동맹파업이 일어나지만 일거에 제압당했다 한다. 그 때 박영진 분신. 전국 노동자들이 그를 살려내라고 거리 시위까지. 그러다 5.3항쟁 부천서 성고문 사건, 광산 프락치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강경대 이한열 살해, 6.10항쟁. 그러니 육십 항쟁을 만든 건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그렇게 어려운 노동시는 아니다. 사실 사랑시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이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많이 어두운 시들이긴 하지만. 사람은 썩어야 세상의 거름이 된다. 마음 속에 간직한 그런 사랑, 세상과 당사자가 거부하는 그 외사랑도 썩어서 낮게 흐르면 세상의 거름이 될 수 있을까. 문예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금지되다시피 하다. 사랑이나 어머니같은 단어가 기존의 문학에서 너무 흔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랑은, 이해인 수녀의 그것이 느껴진다. 이해인 수녀는 남녀간의 정으로 표현되던 사랑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나는 이 시에서 노동계에 대한 그의 사랑을 읽는다. 그래야 세상의 텅빈 구멍이 울릴 수 있다. 남녀간의 정은 최근엔 그저 사적인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낡은 집 중에서

(제발 80년대니 90년대니, 그런
헛소리로 나를 불러내지 말아요
나는 지금 2000년대의 근사한 헛소리를 씹고 있고
달콤한 똥을 싸고 있다구요
밤새 불을 켜고 있던 불륜의 활자들이
얼굴을 처박고 벌써 납덩어리가 되었잖아
아, 나에게도 홈페이지가 있다면
무슨 별이 뜰까
소주병이 애국가를 나발부는 이 질탕한 밤에)
(...)
기억은 늘 둔중한 지하철처럼 시간을 깔아뭉개고 지나갔어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맞는 말인 듯하다. 쌍팔년대 90년생 뭐 그리 중요할까. 사르트르도 그러지 않았나 과거는 과거고 사람은 현재를 살고 있으며 자신은 미래에 좀 더 진보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고 있다고. 기억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나 진정으로 진보한 사람의 의식이 이 책에서도 느껴진다.


일이 생겨서 인천으로 왔다. 사람은 적고 개펄이었던 곳엔 도로가 설치되어 있다. 곳곳마다 직원을 구하는 포스터로 가득하지만 실한 일자리도 아니고 그저 아르바이트 뿐이다. 새삼 여기에도 있었을 조개미 아짐은 조생이 자루 놓고 돈을 받아서 뭘 하고 싶었나 생각해본다. 왠지 현남 오빠에게에서 등장하는, 공부에 스트레스 받아서 여자애들과 사랑 없는 섹스를 하기로 했다는 중학교 남자아이가 생각난다. 결국 다 부질없는 것을.

시인은 묻는다. 욕망이 생의 에너지인지, 다만 추문인지를. 보통 시인처럼 무언가가 결핍되기에 사람은 욕망을 갈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얻으면 얻을수록 사람은 더욱 더 큰 것을 갈구한다. 시인의 경우 진정한 자본주의 타파에 대한 욕망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의 절망마저 또한 삶의 에너지라 보았다. 철저한 추함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만든 바 있다.

욕망은 무엇인가를 강하게 갈망하는 것을 다양하게 뜻한다. 요샌 성적 욕망의 의미가 클 뿐. 그러나 원래 변태는 무엇인가가 전혀 속성이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공부하려는 욕망이 강하면 더욱 노력해서 공부를 잘하게 된다. 매우 드물지만, 보통 훌륭한 학자나 철학자가 그러는 걸 볼 수 있다. 변태는 죽음의 공포마저 이겨내며 성의 욕구를 갈망한다. 그 정도로 공부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욕망은 목표하는 무언가를 향상시킨다. 성이나 공부를 말이다. 그리고 전보다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는 올바른 삶 중 한 예이다. 나는 박영근 시인이 뜻하던 대로 노동계에서 욕망을 이루지 못했으나, 시에서 비슷한 레벨의 경지를 이루어냈다고 본다.

인제를 지나며

인제 산촌 어디쯤인가 지나는데
눈보라가
외딴집 한 채를 비켜가네

거기서 나는 보느니
눈 맞으며
눈 맞으며
마당가 빈 나무 밑을 서성대는
누렁이 한 마리
훗날
먼 데
내 모양일레

지게문을 열고
머릿수건을 쓴 늙은 어머니
흰빛만 쌓여가는 마당을 물끄러미 내다보네

눈이 많이 오는 들판에 누워서 손과 발을 휘저어 나비 모양을 그리며 추위에 이를 달달 떠는 채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시인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내 망상이겠지만. 그는 별들처럼 울었을까. '지긋지긋하게 눈물이 많았지. 지가 들이부은 술처럼.' 소설가 분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시인을 잘 아는 소설가의 말에 의하면 그 어머니는 자식 돌아올 날만 그리움으로 쌓다 돌아가셨다 한다. 그 자식은 누렁이처럼 갈 곳 잃어 서성거리는 것이라고. 장면이 너무나 갑자기 바뀌어서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 싶었다. 그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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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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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벗을 생각조차 못하고 달리던 이들은 보도블록 틈새에 힐이 끼었는데, 발을 뽑으려 해도 보도블록은 지옥에서 넝쿨을 뻗어 올라온 생물체인 양 힐 끄트머리를 악물고 놓아주지 않았으며, 구두는 구두대로 끈끈이주걱처럼 발을 감은 연쇄 상황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당최 구두는 왜 벗겨지지 않는지 헤아릴 틈도 없이, 깨금발을 뛰던 참가자들은 목이나 머리에 화살을 맞곤 제 한쪽 발목을 잡아 감싼 자세 그대로 쓰러져갔다. 광장은 넘어지면서 머리가 깨진 이들의 피로 빠르게 물들어갔다.

1. 현남 오빠는 "내가 늦게 끝나니까 너는 일찍 끝나면 좋지" 라고 했다 한다. 이건 정말 읽을 수록 에바다. 남의 걱정을 해주는 건 사실인 듯하고 안정적인 직장도 좋다. 근데 왜 남자가 일 늦게 끝나는데 여자는 일 일찍 끝내야 되냐. 집안일 시키게? 나도 남자는 월 200 이상 벌어야 한다 생각은 하지만 그건 집안에 비상이 생길 때나 한쪽이 해고당할 때 일시적으로라도 둘이서 먹고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근데 저건 무슨 의도인지 잘 모르겠다. 같이 퇴근하면 안되나? 현남 오빠 좀 교활하네.

82년생 김지영이 익살스럽게 표현하려고 빙의를 썼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기독교도가 빙의란 게 존재하냐 정신병이 아니냐라는 희안한 딴지를 걸었다(...) 그래서 현남 오빠에게는 가볍게 스타일을 바꾼 등. 개인적으로 전 이 소설 쪽이 좋다. 작가가 글을 좀 더 이야기체로 다듬으려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다른 한국 작가들처럼 단편소설을 계속 쓰려는 듯하여 많이 아쉽다.

2. 생각보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현명해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나보다. 나같은 경우 현실을 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게 주식에 투자하라는 말이었는데 난 지 삶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에게 그딴 식으로 말을 하는게 거슬려서 울었다(...) 평소 허세 부리는 건 알겠는데 세상에서 지만 똑똑한 것처럼 굴고 그게 사회에서 통한다는 게 가장 밥맛 떨어짐.
아무튼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 한 잔이라도 덜렁덜렁 들고 가지 말고 쟁반에 받쳐서 가야 한다."고 군기잡고 남자들 멀찍이서 구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신부학교 예지원에서는 저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미친 실화냐.

3. 경년에선 중학생이던 누구던간에 자기 의사대로 하고 싶으면 콘돔 준비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의사를 확인한 뒤에 할 수 있다는 듯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법하다.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보장하라는 운동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작가의 의도가 맞다고 본다. 여성의 경우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콘돔을 썼는데도 임신했다는 경우도 있고, 임신하면 여성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참 크다. 낙태해도 살인했다는 소리 듣고 애를 낳아 키워도 몸 함부로 굴렸단 소리를 듣는다. 최근 여성의 욕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섹스에 대한 남성의 환상을 키우는 도구가 된 듯하다.



 


 

4. 이방인이란 소설은 잘 봤다.


VR 증강현실 게임 중독자이면서도 수사를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남자가 손을 잡아서 그녀를 구해주려 했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런 점에서 그가 그녀를 도와줬다고 봤을 것이다. 그녀도 소설 이후엔 증강현실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페미니즘이라 보기엔 좀 미흡하고 단지 흡입력이 좋은 느와르물로 보면 될 것 같다.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5.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든 단편소설은 구병모 작가가 쓴 하르피아이의 축제의 밤이다. 고어 만세(...)

 

라이카가 벼룩을 다시 몸속에 넣어두었다. 벼룩은 힘차게 피를 빨았다.
"영리하고 건강할 것, 주인이 없을 것. 나는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다니는 집 나온 강아지였어. 연구소에 흘러들어 배 터지게 먹을 때만 해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 정신 차려보니 온몸이 전극이 달린 케이블로 칭칭 감긴 채 우주로 날아가고 있는 거야. 젠장, 이게 로큰롤이지 뭐야."
그는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를 허밍으로 부르며 눈을 찡긋했다.


라이카 너무 유쾌한 거 아니냐 ㅋㅋㅋ 무튼 화성의 아이는 내가 본 동물이 주인공인 소설 중 가장 잘 쓴 소설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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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Chris 2018-07-06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에서 최은영 작가님을 처음 만났죠. 얼른 신작도 읽어야...

저희 집 같은 경우는 할머니(상당히 가부장적이십니다..)가 맏아들인 아버지에게 자기 마음을 다 알아주길 원하셔서, 근데 또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상황에서 아버지는 할머니께 거칠게 대하지도 못하고 마음고생 많이 하시죠.. 근데 또 제사 땜에 어머니도 고생 많이 하셔서 두 분 싸우면 또 아버지가 수습하고... 암튼 가부장제의 잔재가 남자든 여자든 힘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경년도 참 좋았죠. 마지막 문장이 진짜 아리더군요.. 다만 거기서, 왜 아들이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었는지도 문제가 되긴 되겠군요.

저도 하르피아이 되게 맘에 들었습니다. 남성들의 ‘방관의 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극단적 집단논리에 반발하는 여성들도 존재한다는 것까지 다루다니요. 현실과 판타지를 버무리는 실력은 역시 구병모 작가님!

이방인, 제가 주인공이 게임 중독자라 말했던가요... 암튼 이건 남성과 여성의 장르적 고정 역할을 뒤집었다고 해야 하려나.

그나저나 최정화 작가님은 너무 난해하게 쓰셔서, 알아먹기 넘 힘들었..

갈매미르 2018-07-06 21:13   좋아요 1 | URL
이방인. 형사보다는 범죄자를 좋아하는지라 처음에 딱 보고 별로그닥이었다가 점점 좋아졌어요 ㅎㅎ 이런 느와르물이라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저는 손보미 작가가 쓴 줄도 몰랐네요. 그들에게 린디합을에서는 생각도 못했는데 점점 발전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쇼코의 미소 이미 보셨더군요 전 미카엘라가 가장 좋았네요 ㅎㅎ 신작도 의외로 폭발적인 인기였습니다. 한국작가책 보시는 분 만나니 좋네요 ㅋㅋ 제가 가는 독서모임은 한국소설만 추천하면 대부분이 뭐 씹는 얼굴입니다 ㅠ 특히 최은영이라던가 김덕희라던가 박찬세 세대들이 맘에 안 드신다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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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은 아무 것도, 또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 인간은 그 속에 자기를 투사하고, 거기서 제 모습을 알아본다. (...) 사람이란 신경병을 떨어 버릴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고질병에서 치유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소 허세가 있는 말이지만, 나도 짧게나마 그런 느낌을 겪은 적이 있다. 빈혈로 인한 현기증일 수도 있지만() 할머니가 될 때까지 버틸 수 알았던 이빨이 넘어짐 하나만으로 간단히 부러질 땐 매우 웃겼다. 주변은 매우 소란스러웠는데 마치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앞니가 없는 내 미래를 생각하고 다 큰 나이에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사르트르같이 갈 때까지 간 외모였다면 울지 않았으려나?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 때문에 내 자만심이 치유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를 치료하고 나서 그게 마음에 들어서 내 자만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고질병인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내 외모를 잃기 싫다는, 결국 나도 금니만 남고 썩거나 혹은 한 줌의 가루로 태워져 희고 앙증맞은 항아리에 담긴다는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나 자신.



 

피카르 부인에게 상당히 주목하게 된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어머니와 피카르 부인이 깜찍한 아이를 원했지 고상한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미래 모습을 볼 때 피카르 부인은 그의 바람기와 어느 정도 남들에게 주목을 받으려 어떤 무리한 짓도 감수하는 그의 특성을 간파한 듯하다. 피카르 부인과 관련된 두 사건과 사르트르의 피카르 부인에 대한 야한 상상은 사르트르에게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파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가장 동감하는 글이 사르트르가 노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마지막 글이었는데, 어렸을 땐 내가 너무나 약하고 키가 작아서 아이들하고 잘 놀질 못했다.
그래서 내가 운동하면서 지금은 체력을 길렀지만 지금은 또 술래잡기하며 놀아줄 사람은 없고 힘만 넘치니 노가다를 하지 않으면 일하는 것 같지 않다.
'내 인생은 여러모로 타이밍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사르트르를 보면 내가 자존감이 이 사람보다 좀 떨어지는 것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생각해보면 남자들은 키 작은 데 대한 컴플렉스가 엄청나던데 좀 특이한 인물인 것 같긴 하다.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아 그리고 젠장 어머니들 좀 자기네 애들과 책벌레인 우리 애가 같이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맙시다. 세상엔 한계란 게 있단 걸 당신들이 가장 알잖아요.

철학적인 말들이 많이 등장하긴 하는데 나는 그런 데엔 도통 관심이 없고 사르트르가 자신이 꼬마인 것을 인식하면서 쓰는 대목들이 정말 재미있다 ㅋㅋㅋ 보통 동시나 동화를 쓰는 사람들이 어린이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 걸 정말 못한다. 대부분 무지 환상적이거나 아님 매우 드물게 무지 부정적이거나 하다. 키가 작고 부인들의 가슴에 파묻혀 있는 애어른의 인생에 대한 불평불만에 주목해보시라.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르트르보다 니장이 일찍 죽었다. 물론 남자들이 허세를 부리려고 하면 끝이 없어서 죽음이 두렵다느니 다시 여성의 자궁에 들어가서 허공에 빠지고 싶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른 한다고는 하지만, 설마 니장까지 그럴 줄이야... 요즘 배우다 만 청년들이 자주 사용하는 게 니장 같은 허세이니 사르트르에게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하기야 그와 계약결혼한 여성 분은 사르트르보다 더 똑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모임에 제대로 끼지 못했지만. 나 같으면 저들을 따돌려서 아웃사이더로 만들었을 듯하지만, 사르트르는 아무튼 못생겼었으니. 그를 일생동안 사로잡는 열등감이 문장 너머로 전해진다. 결론적으론 그 열등감이 그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치장해줬지만. 사르트르가 필록테테스로 친히 예를 들어줬듯이 말이다.

 

나는 당장 심심풀이로 무슨 짓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러다가 '전능하신 천주님' 생각을 하기로 작정했다. 그 순간 천주님은 창공에서 곤두박질치더니 아무 해명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천주님은 없구먼." 나는 짐짓 놀라는 척하며 중얼거렸다.


군데군데 신에 대한 콩트같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이런 식의 글이 취향인 사람들은 꼭 이 책을 보시길 바란다. 혹시나 나처럼 천주교인이나 기독교인인데도 무신교도들의 유머를 보고 낄낄거리는 사람이 있을 듯하여 예시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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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독사 창비시선 397
이병초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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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 중에서

몸땡이는 캄캄허게 식었드래도
귀는 열어둔다는디 즈아부지
시방 내 소리 듣고 있지라
입때껏 뼈 빠졌어도
요게 머냐고
술에 곤죽이 되어가꼬
대문간에 고꾸라질 적마다
차라리 디지라고
칵 디저불먼 부좃돈이라도 벌제
무신 년의 복이 요로코롬 휘어졌디야
막 쏘아붙인 거 참말로 미난허요


쌍용차의 또 다른 한 분이 생을 자살로 마감하셨다. 시신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시체팔이, 관 장사, 이러려고 뒤진 거냐, 아이고 시원하다, 대한문 앞은 박근혜 대통령 님을 지키려고 목숨바쳐 온 애국의 성지인데 누구 맘대로 분향소을 차려! 당장 꺼져!”라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하루 종일 그렇게 퍼부어대고 간다고 한다. 그뿐이랴. 분향도 방해하고 바닥에 물을 뿌려 서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 가 서 있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촛불집회 때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세상에서 풀처럼 뽑아버려야 할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무심코 절 갔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내 지갑 리본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세월호 리본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대놓고 내 눈앞에서 시체팔이라던가 그러게 왜 배로 호화관광을 하느냐 소리를 해서 불교라면 소개팅을 신청해도 거절했던 생각이 난다. 왠만하면 사람 안 가리는데 지금도 그 말이 귀에 남는다. 또 다시 생각난다. 사람이 완전히 저승에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있는 부위가 귀라던데. 좋은 말을 해야 편하게 가신다는데. 나머지 분들이 돌아가시지 못하게 밤낮으로 맴돌며 지키고 싶다. 뭣도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들의 입을 부숴버리고 싶다. 더 크게 소리를 질러 이상한 사람들의 말을 덮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무섭다.

옛날에 하루종일 자살 얘기했던 단짝친구가 있었다. 그때도 어떤 어른이 걔한테 너는 무슨 어린 애가 그런 소리를 하냐고 해서 내가 오히려 열올렸던 생각이 난다. 얘에 대해 모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나 확실히 그 행위는 민폐였다. 그 누가 어떤 짓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지상에 남은 쌍용차 사람들의 슬픔을 그 누가 받아줄 수 있을까?

의자놀이 리뷰를 보니 역시나 무섭다는 말이 두번이나 나왔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확실히 그 어떤 사건보다 난 쌍용차가 무섭다. 이건 국가의 이지메에 가깝다. 아니, 사냥이랄까.

인간이란 뭘까.
시체팔이라니.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왜 죽었냐니.
그런 말을 꺼낸 네 입이 지옥이다.

세월호 관련 시 참살을 읽고 확 무언가가 치밀어올라 이 구절을 썼다만 시가 모두 다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사투리 섞인 구수한 서정시집에 속한다. 그렇지만 군데군데 악몽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그늘이 보이는 건 사실이다. 6.25 전쟁이라거나 북한 이야기를 들려주긴 하는데, 어떤 사람의 인생 이야기라던가 지명이라던가 사투리를 써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담담히 스쳐지나간다. 마치 '잠자리'처럼 자연 풍경을 묘사하던 중 생명 하나의 이름을 부르듯이. 그러나 '자살'이 그렇게 간단하게 툭툭 튀어나올 수 있는 단어일쏘냐.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드는 시집이다. 까치독사라는 이름이 상당히 어울린다. 섹드립도 나오는데 묘사를 보면 나와 같은 누님 취향이실 것 같다. 나도 시 바람소리처럼 그렇게 자다가 누님한테 한번 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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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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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법률혼을 한 성소수자들이 그렇지 못한 성소수자들에 비하여 더욱 건강한 것이지요. 

제일 친하다 생각했던 친척에게 커밍아웃했는데 친척이 부모에게 아웃팅해서 부모에게서 온갖 차별과 모욕 발언을 들었을 때는 평생 잊지 못함. 

 

그게 사실 친척들에게 맘 못 열고 연을 끊은 가장 큰 요인이고. 이건 진짜 허락하지 않음 가정해체 순식간에 많아질거다. 난 앞으로 양성애자나 동성애자로 자신을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거라 봄.

 

 

 

일단 굉장히 훌륭한 책이나 사정이 있어서 리뷰에서는 몇 가지 문제들만 지적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사회적 주제를 많이 담아내려 노력한 게 보인다. 꽤 문학적인 문장들도 써 가면서 저자 자신이 느끼는 아픔을 정확히 표현해내려 노력을 기울였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데에 대한 저자의 동경이 느껴졌다. 그러나 재미있게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탓인지, 누구나 생각하고 쓸 만한 기초적인 상식이 들어가 있다. '이런 글 나도 쓸 수 있어!' 이런 의미는 아니고(...) 아무래도 통계 위주의 글을 쓰다보니 사회적 인식은 보편적으로 가는 느낌이랄까. 솔직히 말해서 저자의 새로운 의견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세월호에서도 피해자를 '아이들'이라고 제한하여 표현하는 데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다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저자는 그 표현을 그대로 실어놓았다. 자신의 딸이 자칫 세월호 같은 일을 겪게 될까 불안하다는 것이다. 솔직한 표현은 좋았으나, 글이 출판된 시기가 2017년이다. 시간이 3년 정도 지나고 많은 의견이 나오고,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투적 문구가 되었다. 솔직한 측면은 좋았다. 그러나 기왕 발언을 조심하려는 측면이 있었다면 그쪽을 좀 신경써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안타깝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세월호 참사 생존자나 유족들에 대해 치유 프로그램을 성급하게 진행했다는 의견에 찬성이다. 솔직히 이용해먹은 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었는데, 그분들의 눈빛은 진심같아서 쉬쉬했던 생각이었다. 개인에 따라서 느끼거나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건 정신건강연구에서 기본적인 상식이다. 물론 난 정신치료에서 약의 효능과 프로그램의 효과를 믿는다. 그러나 쌍용에서와 달리, 세월호는 아이들과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발언권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한채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는 느낌이다. KBS에서 연극한다고 나오시고, 세월호 관련 책을 홍보한다고 나오시는데, 그거 돈은 제대로 주시는지? 그리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지 않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예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좀 쉴 때는 쉬게 해주고, 무리하게 강요하지 말라는 거다. 환자가 원치 않는 치료를 할 때 그건 실험이지, 치료가 아닐 듯하다.

여기서도 페미니즘 주장이냐, 라고 하면 딱히 덧붙일 말은 없지만 아무튼 세월호 유족이 아니라 어머니라 부르는 사람들 꼭 있다. 그나마 유민 아빠가 유명해져서 이미지가 나아진 거지. 그래도 세월호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때 유족 말고 나오는 단어가 어린이, 그리고 어머니이다. 애 있는 사람들 감정이입하는 건 알겠는데 기분나빠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피해자와 유족이라는 단어에 좀 더 신경을 써줬음 좋겠다.

결론은 치유 프로그램이 성급하다고 저자가 말해놓고서 그 근본적 이유는 생깐다는 느낌이란 거다. 아동청소년은 가뜩이나 정신의학 쪽에 관련되선 보호를 못 받고 있는데, 정신과 의사들이 몰려오면 메챠쿠챠가 될 수밖에 없어서리. 성인은 성인대로 치유를 못 받고.

또한 생각해봤는데 저자는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한 환경을 외전까지 다루면서 이야기하는 면이 있었다. 세월호 다음으로 자세했다. 덕분에 소방공무원의 복지는 앞으로 많이 개선이 될 것이라 본다. 그러나 정작 스트레스로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공무원으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무원들 이야기는 없다. 자료는 못 봤지만 자살 가장 많이 하는 공무원 집단 아닌가. 소방쪽 많이 복지가 개선되었다는데 사회복지쪽도 좀 다뤄주지 ㅠㅠ

더욱 슬픈 사실은 이 책에 이런 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회 여러 현상에 관심이 많은 교수가 그닥 없어서 그나마라도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머리가 이 정도로라도 돌아가지 않는 인간들이 우리나라 사회에 넘치고 찬다. 논문이 어렵다면 최소한 이 책의 저자가 추천하는 책 정도는 읽었으면 좋겠다. 다루는 사회현상 하나하나마다 다 전문도서 한 권 이상은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 너무 짧다. 씁.

 

동성애가 HIV/AIDS의 원인이라는 비난은 앞서 말한 이유로 공중보건학적인 관점에서 옳지 않으며, 한국사회에서 HIV/AIDS의 발생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관리하는 데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013년 기준으로 강원도의 모성 사망비는 서울에 비해 4배 이상 높았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강원도에 거주하는 임산부들에게 산부인과 의료접근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하지, 어떻게 해야 강원도에 살고 있는 임산부들을 서울로 이사하게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이거 정말 비유 찰지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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