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구두를 벗을 생각조차 못하고 달리던 이들은 보도블록 틈새에 힐이 끼었는데, 발을 뽑으려 해도 보도블록은 지옥에서 넝쿨을 뻗어 올라온 생물체인 양 힐 끄트머리를 악물고 놓아주지 않았으며, 구두는 구두대로 끈끈이주걱처럼 발을 감은 연쇄 상황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당최 구두는 왜 벗겨지지 않는지 헤아릴 틈도 없이, 깨금발을 뛰던 참가자들은 목이나 머리에 화살을 맞곤 제 한쪽 발목을 잡아 감싼 자세 그대로 쓰러져갔다. 광장은 넘어지면서 머리가 깨진 이들의 피로 빠르게 물들어갔다.

1. 현남 오빠는 "내가 늦게 끝나니까 너는 일찍 끝나면 좋지" 라고 했다 한다. 이건 정말 읽을 수록 에바다. 남의 걱정을 해주는 건 사실인 듯하고 안정적인 직장도 좋다. 근데 왜 남자가 일 늦게 끝나는데 여자는 일 일찍 끝내야 되냐. 집안일 시키게? 나도 남자는 월 200 이상 벌어야 한다 생각은 하지만 그건 집안에 비상이 생길 때나 한쪽이 해고당할 때 일시적으로라도 둘이서 먹고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근데 저건 무슨 의도인지 잘 모르겠다. 같이 퇴근하면 안되나? 현남 오빠 좀 교활하네.

82년생 김지영이 익살스럽게 표현하려고 빙의를 썼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기독교도가 빙의란 게 존재하냐 정신병이 아니냐라는 희안한 딴지를 걸었다(...) 그래서 현남 오빠에게는 가볍게 스타일을 바꾼 등. 개인적으로 전 이 소설 쪽이 좋다. 작가가 글을 좀 더 이야기체로 다듬으려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다른 한국 작가들처럼 단편소설을 계속 쓰려는 듯하여 많이 아쉽다.

2. 생각보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현명해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나보다. 나같은 경우 현실을 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게 주식에 투자하라는 말이었는데 난 지 삶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에게 그딴 식으로 말을 하는게 거슬려서 울었다(...) 평소 허세 부리는 건 알겠는데 세상에서 지만 똑똑한 것처럼 굴고 그게 사회에서 통한다는 게 가장 밥맛 떨어짐.
아무튼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 한 잔이라도 덜렁덜렁 들고 가지 말고 쟁반에 받쳐서 가야 한다."고 군기잡고 남자들 멀찍이서 구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신부학교 예지원에서는 저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미친 실화냐.

3. 경년에선 중학생이던 누구던간에 자기 의사대로 하고 싶으면 콘돔 준비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의사를 확인한 뒤에 할 수 있다는 듯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법하다.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보장하라는 운동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작가의 의도가 맞다고 본다. 여성의 경우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콘돔을 썼는데도 임신했다는 경우도 있고, 임신하면 여성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참 크다. 낙태해도 살인했다는 소리 듣고 애를 낳아 키워도 몸 함부로 굴렸단 소리를 듣는다. 최근 여성의 욕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섹스에 대한 남성의 환상을 키우는 도구가 된 듯하다.



 


 

4. 이방인이란 소설은 잘 봤다.


VR 증강현실 게임 중독자이면서도 수사를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남자가 손을 잡아서 그녀를 구해주려 했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런 점에서 그가 그녀를 도와줬다고 봤을 것이다. 그녀도 소설 이후엔 증강현실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페미니즘이라 보기엔 좀 미흡하고 단지 흡입력이 좋은 느와르물로 보면 될 것 같다.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5.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든 단편소설은 구병모 작가가 쓴 하르피아이의 축제의 밤이다. 고어 만세(...)

 

라이카가 벼룩을 다시 몸속에 넣어두었다. 벼룩은 힘차게 피를 빨았다.
"영리하고 건강할 것, 주인이 없을 것. 나는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다니는 집 나온 강아지였어. 연구소에 흘러들어 배 터지게 먹을 때만 해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 정신 차려보니 온몸이 전극이 달린 케이블로 칭칭 감긴 채 우주로 날아가고 있는 거야. 젠장, 이게 로큰롤이지 뭐야."
그는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를 허밍으로 부르며 눈을 찡긋했다.


라이카 너무 유쾌한 거 아니냐 ㅋㅋㅋ 무튼 화성의 아이는 내가 본 동물이 주인공인 소설 중 가장 잘 쓴 소설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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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Chris 2018-07-06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에서 최은영 작가님을 처음 만났죠. 얼른 신작도 읽어야...

저희 집 같은 경우는 할머니(상당히 가부장적이십니다..)가 맏아들인 아버지에게 자기 마음을 다 알아주길 원하셔서, 근데 또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상황에서 아버지는 할머니께 거칠게 대하지도 못하고 마음고생 많이 하시죠.. 근데 또 제사 땜에 어머니도 고생 많이 하셔서 두 분 싸우면 또 아버지가 수습하고... 암튼 가부장제의 잔재가 남자든 여자든 힘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경년도 참 좋았죠. 마지막 문장이 진짜 아리더군요.. 다만 거기서, 왜 아들이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었는지도 문제가 되긴 되겠군요.

저도 하르피아이 되게 맘에 들었습니다. 남성들의 ‘방관의 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극단적 집단논리에 반발하는 여성들도 존재한다는 것까지 다루다니요. 현실과 판타지를 버무리는 실력은 역시 구병모 작가님!

이방인, 제가 주인공이 게임 중독자라 말했던가요... 암튼 이건 남성과 여성의 장르적 고정 역할을 뒤집었다고 해야 하려나.

그나저나 최정화 작가님은 너무 난해하게 쓰셔서, 알아먹기 넘 힘들었..

갈매미르 2018-07-06 21:13   좋아요 1 | URL
이방인. 형사보다는 범죄자를 좋아하는지라 처음에 딱 보고 별로그닥이었다가 점점 좋아졌어요 ㅎㅎ 이런 느와르물이라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저는 손보미 작가가 쓴 줄도 몰랐네요. 그들에게 린디합을에서는 생각도 못했는데 점점 발전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쇼코의 미소 이미 보셨더군요 전 미카엘라가 가장 좋았네요 ㅎㅎ 신작도 의외로 폭발적인 인기였습니다. 한국작가책 보시는 분 만나니 좋네요 ㅋㅋ 제가 가는 독서모임은 한국소설만 추천하면 대부분이 뭐 씹는 얼굴입니다 ㅠ 특히 최은영이라던가 김덕희라던가 박찬세 세대들이 맘에 안 드신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