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스터디 문학동네 시인선 138
이다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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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10 중에서

 

이제 진짜로 끝내, 너무 지겨워. 할 수 있는 말을 다 내뱉고 문을 있는 힘껏 닫는다 당신에 대한 나의 실망과 분노를 들려주려는 듯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다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실내에서 나의 실망과 분노를 받아낸 당신이 손에 얼굴을 묻을 때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끝내자는 말을 한 적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테니스공이 라켓에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테니스공은 선을 넘으며 부단히 움직인다 두 명의 선수가 공에 매달린 인형처럼 뛰어다닌다 나는 두 명의 선수가 아주 예쁘고 하얀 인형 같다고 생각한다

 

 

옛날이었음 이 시 읽고 울었을텐데 지금은 만년솔로된지 오랜지라 ㅋ 시인이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 문제의 '당신'은 멋대로 내가 그 관계를 끝내버렸다고 생각함 ㅋ 핑계도 아니었고 강력한 이유가 있었건만.

 

여기엔 올리지 않을 거지만(전반적으로 사회고발 성격이 강한 시집이고 그 중 제일 쎈 시지만 난 이 시인이 쓴 시 중 그렇게 특출나게 훌륭한 시는 아니라 생각한다.) 시 창작 스터디라는 시에서 자칭 오빠라는 인간의 맨스 플레인을 보고 있자니 지금은 좀 가라앉은 문단 내 성폭력 테마가 생각난다. 대체 그 가해자 한남들은 왜 그따구일까? 유달리 그 놈들이 빻아서일까? 아니면 여류시인은 성추행에 화내지도 신고하지도 않고 온화하게 그 놈들이 그렇게 타령하는 '젖무덤'을 열어줄 거라는 무슨 판타지라도 이 사회에 역병처럼 돌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그녀들이 시 쓸 능력이 없어(?) 가르치는(??) 거라면 좆 잡고 가르치기나 할 것이지 말이다.

 

뜬금없긴 한데 늦게 오는 자장가란 시를 읽으면서 우리 집 강아지가 내일이라도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주님께 나도 데려가 달라고 사정하게 되지 않을까..

희극 중에서

 

꿈속에서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혼자서는 꿈속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홀로 걷는 골목에 서 있는 내가

나를 보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보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모여 있어

서로 얼굴을 던지고 받으면서

슬픔 없이 죄책감도 없이 감정 없이

이 놀이에 동참하고 싶다

 

보고 싶은 줄도 몰랐던 얼굴이

나에게 던져졌고

나는 그 얼굴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다음 사람에게 얼굴을 던져야 하는데

 

내가 놀이를 망친다

나는 내 꿈 속에서 쫓겨난다

(...)

만들다 만 천사가 비척비척 걸어와

꿈의 시나리오를 넘기며 어디쯤, 어디쯤

 

 

 

어떤 사람에게 왜 주어와 목적어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아마도 다른 사람을 상처받게 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은 일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치과에서 일할 때 ~같아요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 어그러졌을 때 '이 치과의사가 데리고 있는 직원이 확실히 그렇다고 말했다'라고 클레임거는 걸 방지하는 게 본래 의도인 듯하다. 원래 을들이 갑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 붙이는 게 이 시대의 철칙 아니었나. 시인은 그런 상태를 보여주는 것처럼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쉼표로 끊는다.

 

(2020)

 

선물을 싼 얇은 포장지가 리본까지 달려 있는 포장지가 선물과 같이 왔다 상자를 흔드니 소리가 났다 자세히 들어봐 비틀즈의 미공개 음악 아닐까 그렇다면 대박인데 난 아직도 고민이 생기면 신해철씨한테 먼저 물어봐 머릿속으로 그냥 머릿속으로 아직도 오노 요코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얼핏 우는 소리 같기도 해 그렇다면 굳이 열어봐야 할까 얇게 언 눈밭을 걸어가는 기분이야 슈가코팅이 깨지기 전에 먹던 막대사탕을 눈사람 옆구리에 찔러넣는 것 같아

 

예쁜 포장지는 찢어버리기 아까워 2020번의 선물과 2020번의 포장지가 거대한 마트에 쌓여 있는 건 아닐까 부드럽게 카트를 밀고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이 좋아 뒤쪽의 성분 표시를 유심히 읽어보자 졸피뎀과 같이 먹으면 치명적인 성분이 있을지도 몰라 약국에 또 가야지 안전 수칙을 반복해서 듣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려야지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사라지는 약사를 쳐다봐야지 전문가들이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사라질 때 나는 그들이 신비롭다고 느껴 폰을 꺼내서 검색하고 또 검색한다 같은 문장을 새롭게 읽으면서 카트를 민다

 

 

2020에 굳이 괄호를 붙인 건 어떤 의미였을까. TIME지 표지에서도 그랬듯이 2020년을 빼버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제일 화나는 건 이런 때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생사의 기로에까지 놓인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무리 금지된? 로맨스였어도 그렇지 왜 오노 요코를 탓하냐. 멋대로 비틀즈 탈퇴해버린 존 레논을 탓하는 게 올바른 거 아닌가.

 

 

트렁크 중에서

 

방에는 싱글 사이즈 침대 하나 간이 탁자 하나 아주 작은 냉장고와 냉장고 위에 놓인 전기포트가 있어 간이 탁자에는 내가 마시다가 둔 커피가 있고 재떨이가 있어 이 호텔은 건물 전체가 금연인데 재떨이가 있네 지배인은 신중한 것일까 너그러운 것일까 생각하다가 구글 검색창에 north korea를 쳤어

(...)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어 여기는 밤 되면 너무 위험하다고 나는 갑자기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놨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지갑에 사진도 있는데 너무 아깝다고 그가 날 진심으로 위로하는 거야 나는 눈물이 핑 돌았어 그가 방에 올라가서 이야기하자고 하더라 나는 삼 초 만에 눈물을 그쳤지 아임 노스 코리아 우먼 소리치고 뒤를 돌아 엘리베이터로 걸어갔어 뒤를 돌 때 얼핏 그 남자 얼굴이 십 년은 늙어 보이더라  

 

 

외국 가서 남자들이 추근거리면 나도 북한여자라고 소리질러야겠구만 ㅇㅇ 근데 이것도 통할까 싶은 게 강원도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 갔을때 아저씨들이 대놓고 북쪽에 있을수록 여자들이 이쁘다고 이 지랄하며 실실 쪼개더만.. 참고로 이 사건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위의 시처럼 외국 사람들도 동양인이 유교에 쩔어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찝쩍댄다고 하더라. 그냥 죽어서 백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나을 듯.

 외설이 지나가고 슬픔이 지나간다 중에서

 

나는 총알을 장전한다

한 발로 적을 죽일 자신이 없으므로 총이 허락하는 총알 전부가 필요하다

기껏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나는 용기가 없어서

손끝이 냉정하지 못해서

급기야 총으로 적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비명을 지르며 총알 대신 내가 나가버린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닌가

총을 쏠 용기가 없어서 더 큰 용기를 내버렸어

아, 괜히 뒤통수가 아프다 꿰맨 자국을 보여줘

이 영화에서 흉터는 통행증이 된다 동료를 만날 수도 있고 애인의 죽음 앞에서는

면죄부가 되기도 하지

 

아주 가까이

 

이 영화 속에서 나는 언제 울게 될까 외설이 지나가고 슬픔이 지나간다

내내 조용하던 거울은

깨질 때

최대치의

비명을

지른다

 

 

이 시 보면서 생각난 게 웨스턴 샷건이란 만화다. 다들 짱이나 용잡이 같은 거 좋아하던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만화다. 아마 바지라거나 패션이 특이해서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메 모 게임이 이 만화의 주인공을 베꼈다고 내가 한창 주장하고 다녔던 적도 있지만 워낙 유명하지 못했던 만화라 그런지 주변에선 다들 제목을 얘기해도 모르는 기색이 있었다.

현재는 여자들 판치라가 등장하기도 해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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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를 가로지르고 선 아버지
홍연희 지음 / 책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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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를 가로지르고 선 아버지 중에서

 

6,70년대

반공 방첩으로

사방이 빨갱이라고

간첩신고 하라고

빨강 페인트로 멋지게 갈겨 쓴

현수막,

(...)

이마가 벗겨진 대통령이 지나가고

숨 거둔 아버지의 양팔이

찢어졌다

군데군데

예수처럼 세워 둔 아버지의 분신

 

묶인 손발로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목마른 포스터,

안녕하세요

세상은 그대로이고

신작로를 가로지르던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다

 

 

어쩐지 자꾸 신작로를 '십자가'로 읽게 되는 시이다.

 

부모님에 관한 시라고 할 만큼 시집 안의 시의 주인공이 전부 부모님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온 역사부터 일상 생활까지 전반적으로 훑어볼 수 있는 훌륭한 시집이다. 테마가 있지만, 의식하고 쓴 게 티가 나지 않는 게 좋다. 테마라고는 했지만 시인으로서 화자의 일상 이야기라던가 인생에 관한 교훈적 시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후자라고 해서 흔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이해하기 쉬웠던 시만 실었다. 나머지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스팔트 위 어머니

 

하루 온종일

천정만 바라보며 사는 엄마

그리워

하늘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 흐르네

꼭, 눈물 같은 비 오는 날

막걸리에 밀가루 반죽하여 아랫목에 묻어 놓고

당신 사랑만큼 부풀어 오르자

고명 담지 못한 공빵 건네주던

미안한 웃음 닮은 속 깊은 정,

가슴에 접어 두고 조금씩

조금씩 내어주던 아쉬운 사랑처럼

오늘은 붉은 팥 찐빵

한 입 베어 물어 하늘 보고

이슬 비추일까

고개 떨구니

생전 즐기시던 물방울무늬

검정 원피스

아스팔트 위에서

춤을 추네

 

 

그나저나 저런 걸 술빵이라고 하나? 한 번 만들어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저런 건 안에 팥소가 없어도 맛있지 않나. 심심하면 꿀을 찍어먹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옛날엔 꿀도 귀했을지 모르겠지만.

 

빈 가슴 중에서

 

공원 돌담을 끼고

굳은 표정으로 쪼그려 앉은 노인

깔끔한 행색에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행여 그 누가 들을세라 소곤대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러니까, 아들이 오라고 해야 가지"

(...)

바보처럼 내주기만 하여도

분이 넘치다 여기는 어미는

손주를 안겨 준 여자의 미래를 거울처럼 안고

저무는 노을 따라

강줄기 따라

나비 쫓는 소녀처럼 허무도 함께 날려 보낸다.

 

미래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는 나로선 저런 장면 보면 무섭기만 하다 ㄷ 적당히 하고 남은 인생 자신을 위해 투자하셨으면..

볼트 부재 중에서

 

TV를 켤 때마다

다른 세상이 보인다

 

내가 숨 쉴 만한 곳은 어디

 

콘크리트 방죽으로 갈 길 잃은 파충류처럼

언제나 상자 안에 갇혀 숨 쉴 수 없다

 

자연의 아지트인 것 같던 그곳,

거친 육두문자가 날아다니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저주를 퍼부은 게지

조잘 조잘 조잘 조잘

(...)

화면의 광기를 위해

나불대는 저

입술

 

볼트가 다 풀려 버렸다  

 

 

요즘은 다들 컴퓨터나 핸드폰을 이용한다지만 아직 어르신들은 TV를 더 많이 사용하시니까.

그리고 이 책 읽어볼수록 자꾸 화자인 '부모님들'이 요양원에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쉰 일곱 사내 나이에 중에서

 

바람이 슬슬 불어왔다 녹음 부르는 햇살이 깊어질수록 사내 마음은 급해졌다 벌써부터 끊긴 일감으로 식구들 쳐다보기가 면구스럽다 돈벌이는 쉬엄쉬엄 해도 괜찮다는 아내 말에도, 뜸해진 일거리로 괜스레 뒤통수가 따가워진다

 

버스정류장 앞, 꼭 원주집에 들려 한잔 걸치기 좋은 날 뒷마당에 심긴 파 한 줌으로

먹음직한 파전을 부쳐 내오는 주모 얼굴엔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당신 심정 다 안다고 천 원짜리 몇 장에도 큰 인심을 베푼다

(...) 일감 떨어져 사방 기웃대는 쉰일곱의 남자, 돌아갈 곳은 가슴으로 낳고 날아가 버린 어미 닮은 여인 웅크리고 앉아 잦은 된장국으로 기운 돋궈주는 그곳으로 돌아가 한 바가지 긁히는 게지

 

육십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쉰일곱 나이에

 

 이렇게 시인이 사는 곳인 듯한 강원도 원주 맛집이라던가 경치 좋은 곳도 소개하는 지역시집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제발 여자한테서 자기 어머니 모습을 보지 말라고; 남한테 과하게 기대니 바가지를 긁혀도 이상하지 않지. 그리고 돋궈주는 게 아니라 돋워주는 것.. 이라고 하면 시집 분위기를 와장창 깨는 발언이겠고 남자가 갑분싸하겠지? 솔로 몇 년차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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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 예종.성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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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있는 남이 장군의 묘. 역모죄로 능지처참된 후 7일간 효수되어 있었던 까닭에 제대로 장사 지낼 수는 없었으리라. 남이가 실제 이곳에 묻혔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이곳에 남이 장군의 묘로 조성해놓았다. 춘천 남이섬에도 남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을 가진 돌무더기가 있었다.

 

 

페이트로 비유하자면 남이는 라이더가 아니었을까. 백성들은 좀더 날뛰고(?) 장군다운 남이를 좋아했을 듯하다.

 

구성군 이준이란 사람은 신중한 성격이라고 하지만 왠지 아버지에게 눌려 살았던 것 때문에 조심하는 게 과하다고 할까. 정치가 기질은 있어도 장군다운 기색은 없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남이의 일이 구공신의 함정이라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왕이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했거나 적어도 구공신과 왕의 합작품일 거란 의견이 주도적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개정판도 수정을 안 한 듯하다. KBS 역사를 찾아서 참조.

 

세조가 대군이었을 때, 후첩으로 들어와 자식까지 낳은 덕중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세조 즉위 후 소용에 봉해지기도 했으나 낳은 아이는 죽었고 세조의 관심 또한 멀어졌다. 아직 뜨거운 젊음을 가진 그녀, 어느 날 문틈으로 바라본 구성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적극적인 그녀는 절절한 연애편지를 썼다. 편지를 받아본 구성군은 기겁했고 부랴부랴 아버지와 함께 입궐하여 그 편지를 내놓았다. 구성군다운 처신이었다.

 

 

어떤 사람이 도쿄구울에서 얻은 교훈은 '여자 잘 만나야 한다'라더라. 그럼 여기서 얻을 교훈은 '남자 잘 가려서 반해야 한다'냐? ㅋㅋ

예종은 기다렸다는 듯이 남이를 좌천시켜버리는데 이날은 바로 예종이 즉위한 당일이었다. (...) 임금과 원상들로부터 주시받고 있는 상황인데 서둘러 측근들을 조직하기 시작한 것. 남이가 끌어들이려 애쓴 인물 중에 유자광이 있다. 서자 출신인 까닭에 벼슬길이 막힌 유자광은 처지를 비관하곤 건달 생활로 소일했다. 내기 바둑, 내기 장기, 아녀자 희롱.......

 

 

5권 리뷰 쓸 때에도 얘기했지만 여기에서도 은근 이어지는 세조 찬양 ㅋㅋ 서자를 채용한 건 훌륭한 일이지만 단순히 그의 처신을 높이 샀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유망한 신진 그룹의 한 사람으로 잘 나가다 다음의 일로 세조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세조 10년, 세조는 잡학을 7개 분야로 나누고는 각 분야에 문사 6명씩을 두어 연구하도록 했다. 김종직도 그 중 한 분야인 시사에 배속되었는데 윤대에서 이 정책을 비판한 것.

 

 

유교니깐 ㅋ 아무리 세조가 중앙집권하려고 했어도 저 때도 신하들 중심이었나보다. 저렇게 면전에서 바른대로 말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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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 하버드 최고의 뇌과학 강의
제레드 쿠니 호바스 지음, 김나연 옮김 / 토네이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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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수건 중에서

 

황지영

 

하얀 손수건 속, 푸른 바다 넘실거린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 홀로 먼 바닷가로 시집 온 그녀

얼굴도 익히기 전 신랑은 저 멀리 태평양전쟁에 끌려가고

혼자 기나긴 밤을 재봉틀에 박았다

피멍을 가슴에 박고 온 남편, 밤낮을 이어 눈을 붙이지

못하고 휴일 어느 날 비행기소리에 혼비백산 황급히 동굴로 걸어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고향산천 돌아가 어미도 아비도 볼 수 없어 목으로 내려오던 식도조차 꽉 막혀

창자를 끊어내었다.

비오는 날이면 비감지기 어미생각 뼈를 고우고,

눈 오는 날이면 눈썰매를 함께 타기를 기다리는 동생 생각

강바닥에 돌을 달아 마음을 저렸다.

그녀의 치마에는 눈물 젖은 두만강 푸른 물이

출렁되고, 금강산이 아프게 수놓아져 있다.

 

 

딱히 눈썰매가 나와서는 아니지만(...) 문법 틀린 것만 빼면; 거의 황무지 시와 맞먹을 정도로 그 당시 한국의 역사를 잘 요약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집은 외할아버지가 6.25 참가하셨다가 다리 한 쪽을 잃고 오셔서 외할머니가 고생하셨다. 전쟁과 군대가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었는데, 철없는 아이들은 외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병신이라고 놀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전남친은 그가 장교가 아니라며 무시했다. 분위기 읽어라 좀 계급이 그리 중요했냐. 내가 그를 찬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순서가 아니었을까. 내가 보기엔 지금도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에게 아무런 보답이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그렇다. 박정희 시대 때라면 이 나라에서 가장 빡센 일에 뛰어드는 산업역군들 아닌가? AI가 좋다고 해서 이렇게 사람 목숨을 함부로 다루나? 여러 생각이 나게 만드는 시이다.

 

인쇄 오류가 있었는지, 마선숙 시인이 쓴 낙타란 시가 첫부분부터 잘려 있었다. 대략 맥락은 알 수 있지만, 가뜩이나 적은 분량으로 최대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시집에서는 치명적인 오류가 아닌가 생각된다.

 

동백꽃 바퀴타고 달렸다 중에서

 

마선숙

 

혹한 몰아친 겨울 한복판

실내의 동백이 폭탄처럼 개화했다

한파를 자양삼아 붉게 타올랐다

 

예전에 언니는 동백이 절정이면 살림과 연애하다

발칙한 소녀처럼 집을 나가 어둡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불나비에 홀리듯

 

문득

불량한 남자의 유혹처럼 지름신이 휘몰아쳐

엄마도 던지고 아내도 버리고

딸 방에 숨어들었다

 

청바지와 남방과 야구모자를 몰래 훔쳐 거리로 나왔다

선글라스 척 걸치고

 

청량리서 기차타고 반곡 간이역에 내려

휘적휘적 건들건들 걷는데 뒤에서 누가 말 붙였다

차나 한잔 할까요

 

봄처녀처럼 냉이 같은 남자 하나 꽃바구니에 담을까

고개를 돌리니 딸 친구 뻘쯤의 젊은 청년이다

 

실례했어요 나이 든 아주머니인 줄 몰랐어요

눈이 마주치자 청년은 기겁해서 뒷걸음질 쳤다

 

 

이 시집은 청미래라는 동인에서 나온 시집이다. 1년에 한 번 시집을 내는지 아님 시의 분량이 차는대로 내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 책은 3번째라고 한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전단지나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동백꽃 등 지역의 특색을 어필하기도 한다. 그나저나 딸 뻘의 청년이 접근해왔었다니 한 미모하시는 듯하지만 시인은 옷 때문이라 주장한다. 그러고보니 어느 젊은 커플 유튜버가 반지 사러 돌아다니는데 매장에 들어가는대로 족족 쫓겨나서 코트를 입고 다닌다 하더라. 겉모습만으로 인물을 파악하는 건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하느님

 

신언관

 

내 생각과 다르다 해서

얼마나 더 많이 죽일까 골몰하여

뱃속의 폭탄을 터트려

나는 영원히 살고 너희들은 영원히 죽는

주님의 경전이 전파되고 있다

 

내 하느님이 너의 하느님과 다르다 해서

너의 하느님을 죽이면

내 하느님이 나를 축복하여

더 큰 영광으로 인도한다고

봉긋한 소녀의 가슴에 낙인을 찍는다

 

한 숟가락의 밥술보다 못한

입술 언저리에 뱉어지는 정의를 되뇌이며

우주의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듯

팔다리 근육이 풀어해질 때까지

생명의 수탈을 자랑한다

 

한 길도 안되어 훤히 내려다보이는

허울의 어리석음을 외면하고

미친 괴물의 흔적을 따라서

내 하느님이 가르쳐준 속임수를 앞세워

주검의 광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를 보여주어도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하느님을 제일 가는 하느님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 점이 좀 안타깝다. 남의 감언이설이나 자신의 망상에 넘어가지 말고 스스로 옳은 길이 무엇인지 탐구하길 바란다.

 마침표 없는 애인 있어요 중에서

 

이소율

 

사시사철

브람스 교향곡 울리는 애인 있어요

길어서 빨강 망사 커튼

사이로 숨길 수없는 애인

노랑, 파랑 타일로 모자이크 된

호텔 복도에 하이힐 발자국 소리

숨기며, 숨죽이며 밀회하는

애인 같은 거 말고요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를 타고

가슴에 꽂히는 비밀

가슴 속 사연 안개비로 뿌리는 소문

그런 거 없는 애인 있어요

페이스 북으로 날리는 문자 아니고

알타미라 벽화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런 무늬 새긴 애인 있어요

(...)

헝가리 무곡에

속마음 쏟아버리고

사시사철 운명 같은 애인 있어요

 

 

 

여기서 등장한 음악은 클래식이어도 꽤 시끌시끌하며 밝은 면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귀는지는 잘 모르지만 서로 솔직하며 개방적인 면에선 닮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으로 날리는 문자같은 애인이 아니란 면에선 좀 불가능하다 싶기도; 나만 해도 전남친들이 대부분 문자로 고백하거나 최소한 SNS에서 만난 사이인데, 그런 만남이 욕을 먹을 소재도 아닐테고 무엇보다 그런 매개체 없는 만남이 지금와서 가능할지; 아무튼 이 시인 말고도 다들 분위기가 비슷해서 그런지, 클래식을 소개해주는 시인이 많으니 그걸 들어가며 시를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일기

 

장우원

 

제목: 할머니

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날씨 흐림

 

테레비전에 대통령이 나왔다. 할머니는 에구 불쌍쿠마, 에구 불쌍타, 혀를 찼다. 할매 와요? 뱅기도 맘대로 타고 돈도 많쿠로 뭐가 불쌍한교? 그게 다 무신 소용이고? 부모 없이 혼자 얼매나 외롭것노? 너사 엄마 아빠 없시믄 안 불쌍컷노? 와예? 할매가 더 블쌍하지예. 할매는 엄마 아빠 있능교? 옷도 좀 보시소. 저래 좋은 옷 할맨 있능교? 그기 아니라카이. 니가 안즉 어려놔서 잘 모리는 기다. 뉴스가 끝날 때까지 할머니가 테레비를 본다. 연속극도 안 보다니. 차암 별일이다. 텔레비전 가까이 앉아 꼬부라진 할머니 등이 엄청 작아 보인다. 일기 숙제 끝.

 

 

 

그래도 이 분은 닥치라곤 안 하네. 우리 어머니는 일혐이신데 내가 '고종 아무것도 안 했었다니까 그러네.'라던가 '이순신 너무 좋아하면 몇몇 가문의 후손들이 전화질한다 자기네 가문 깐다고 ㅋㅋ' 이러면 바로 닥치라고 소리지르심. 언제부턴지는 몰라도 갑자기 그렇게 흑화되셨는데, 내 생각엔 박근혜 불쌍하다고 읊조리실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도 나중에 나이들면 저렇게 흑화되려나 싶은데 나보다 3살 어린 동생 놈도 갑자기 야마가 돌아(그놈은 일베사이트 볼 때부터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게 내 추측이다. 본인은 아직도 극구 아니라 하지만 그 때 내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었거든.) 그렇게 설쳐대는 걸 보면 나이탓은 아닌 듯. 내가 걔 기저귀까지 갈아줬는데 얍삽빠른 면은 있지만 폭력적인 면은 없었는데. 아무튼 난 언제부터 그렇게 되는지 알았음 좋겠다. 그 전에 죽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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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즈를 웃게 한 사람 - 태석이 형과 함께 보낸 한 달
박진홍 지음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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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자 마을은 돈 보스코 미션에서 자동차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톤즈에는 유난히 나환자가 많다. 그래서 그 지역에 신부님이 따로 마을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방문해서 치료도 해주고 옷도 나누어 준다. 그 마을에는 신부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 나는 신부님이 진료하는 동안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다 커다란 개미집을 발견했다. 무척 신기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노랫소리가 들렸다. 저쪽에서 마을 사람들이 신부님이 나누어 준 옷을 입고 즐겁게 노래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개미집 찍느라고 옷 나누어 주는 장면을 못 찍었다고 하니 신부님이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록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신지 10년 지나서야 이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훌륭한 사람일수록 그가 죽었을 때 그 죽음이 머릿속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이렇게 10년이 될 정도로 길게 휴우증을 앓은 건 아니지만 나도 몇 년 정도 그랬던 적이 있다. 마치 죽음이 아직 무언지 몰라 장례식장에서 희희낙락하는 초등학생처럼 된다고 할까.

세상엔 온갖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온통 집중하는 신부님이기에 그 사람들이 존경을 보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뭐 대성공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남에게 존재감을 보이고 싶다면 이 책에 그 비법이 있다. 답은 간단하지만. 남을 도우면 된다.

이처럼 이 책은 얇아 아이들이 보기 좋고 글씨가 커 눈이 가물가물한 어르신분들도 읽기 편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내용이 가벼운 건 아니다. 이런 에피소드 말고도 두 개의 다르면서 같은 듯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나는 남편에게 얻어맞은 아내 이야기, 다른 하나는 아이를 임신했지만 말라리아에 걸려 애를 잃기 직전인 어머니 이야기이다. 둘 다 흑인 여성이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상징한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 학교 강당 옆에 있는 '이태석 신부님 기념관'을 찾아가 토마스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어느 신문사 기자가 토마스에게 학사모를 벗어서 이태석 신부님 동상에 씌워드리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자가 떠나고 토마스에게 물어보았다. 

"토마스, 방금 한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

토마스는 빙긋이 웃으며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절을 올리기도 해. 그동안 자식을 위해 희생해 주신 데 대한 감사와 앞으로 정성을 다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각오를 그렇게 표현하는 거야!"

 

원래 어머니가 받은 책 선물이지만, 솔직히 이 책은 울지마 톤즈 영화나 나처럼 울지마 톤즈 그후 선물을 본 사람이 아니면 맥락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또 집에서 별별 책을 다 읽는다는 내가 이걸 잡게 되었는데..

솔직히 한국 미화시키시는(?) 측면이 좀 강한 듯 ㅋ 지금은 개나소나 대학가니 그런 퍼포먼스도 잘 없지 않나. 대학교 가기 엄청 어려워지면 유행할지도 모르겠으나.

근데 생각해보니 또 고졸 부모들 대리만족하는 꼴 보기가 싫다. 역시 이런 불필요한 옛날 관습은 없어지는 게...

나는 이날부터 바로 영어 수업을 시작했다.

한 아이의 이름은 토마스 타반 아콧이고, 매우 착하다. 

또 한 아이의 이름은 존 마엔 루벤인데, 이곳에서는 '바보야'로 불린다. 아기 공룡 둘리에 나오는 마이콜과 닮았다. 바보야는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고 똑똑하다.

 

스포지만 나중에 저 바보야라는 사람 한국에 와서 출세합니다 ㄷ 이름가지고 더 이상 놀릴 수 없다고 할까.

그나저나 애기 공룡 둘리에서 마이콜 찾아보려 했는데 잘 없네요. 피부 검다고 그러나? 인종 다르지 않은데 한국인인데 그분;

바보야는 이어서 말했다.

"야곱, 모세, 아브라함.... 우우 테러블 테러블!" 

피터 신부님은 사람들에게 야곱, 모세, 아브라함 등의 교육 영화를 보여주는데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이태석 신부님은 킹콩이 나오거나, 성룡이나 이소룡이 영웅처럼 등장하는 영화, 그리고 'NBA 농구'같은 영화를 보여준다. 그래서 신부님이 영화를 보여주는 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약 천 명 정도 몰려든다.

 

 

 

테러블까지야 ㅋㅋ 물론 자식새끼를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겠다는 장면 보고 있음 테러블하긴 하지. 그나저나 운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 동네는 오라토리오 시간에 수녀님이 축구를 하신다더라 ㄷ 튼튼하시겠구만요.

어느 날 신부님은 이런 부탁을 받았다.

'2월 19일에 로마에서 쎄삐르 추기경님이 룸벡 교구를 방문하실 계획인데, 그때 브라스밴드를 파견해 줄 수 있는지?' 

(...) 말하자면 어떤 아이는 돈 보스코 미션에서 10시 방향으로 90킬로미터쯤 떨어진 와우에, 어떤 아이는 4시 방향으로 12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룸벡에 사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원도에서 경상도까지 이르는 전 지역에 아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전화도 없고 자동차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이 직접 가서 전달하는 것이다.

(...) 밤에는 숙소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악보를 그린다. 미간을 잔뜩 모으며 악보를 그리고, 열댓 장씩 프린트해 놓는다.

 

추기경 분명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분위기 좀 띄우라고 주문한 걸텐데 이태석 신부님은 톤즈의 상황을 알리고 홍보하려고 승낙하신 듯 ㅠㅠ 뭔가 레벨이 사회복지사의 고난 수준인 듯; 이 분 사망원인 중 과로사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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