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2disc)
장훈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에프엔씨애드컬쳐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담배를 사왔어야 했는데...

1. 사복
이 영화는 운동권들에게 먹히는 영화는 아니다. 주요 등장인물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어서 다큐멘터리같은 형식으로 나오는 영화이긴 하다. 그렇지만 주인공 택시운전사의 꼰대같은 훈계질에 벌써 불편하고 짜증나서 영화관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시민군이 등장하지 않고 그저 몰살만 당한다는 설정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택시운전수의 시각으로 찍히고 있다. 그런데다가 80년대는 운동권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 빼곤 모두가 기피하고 싶은 기억이다. 그들은 시위하는 사람들 때문에 막히는 도로교통, 최루탄 때문에 다 버려진 옷들을 떠올리며 지긋지긋해 한다. 게다가 일상도 썩 즐겁게 진행되진 못한다. 이미 택시운전수는 외국인 기자를 만나면서부터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성질 급한 운동권 분들은 최소 그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리길 바란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드는 생각은 '먹고 사는 게 정말 어렵구나'였다. 캡사이신과 소화기가 난무하고, 무엇보다 집에 있던 두꺼운 이불로도 막아낼 수 없던 물대포로 핸드폰이 여러번 고장났던 적이 있음에도 그랬다. 어쩌면 운동권들도 그 때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영화에 대한 비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영상에 자신의 추억을 덮어씌우며 말이다. 물론 스케일은 작았다. 화려한 휴가에서 버스가 군인들을 막아섰다면, 택시운전수는 기자를 태우고 도망간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스릴은 있다. 과연 택시운전수는 10만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외국으로 가서 영상을 공개하고 애초 힘들게 광주까지 간 돈값을 할 것인가. 사실 우리도 일상에서 비슷한 스릴러물을 쓰고 있다. 어떨 땐 도망가기도 하고 어떨 땐 용기를 내기도 하며 훗날 세대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도 있는 조촐한 역사를 살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그 역사를 남기고, 자신의 이름을 김'사복'이라고 밝혔다. 군인이나 경찰의 제복을 입지 않은 그는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이 땅에 살고 싶다고, 외국기자에게 메시지를 남겼던 것이다. 이는 한 단어로 표현된 철학이며, 시이다. 이제 사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는 평범한 사람에서 아주 잠깐 벗어나, 사유 속에 잠겼다가 총알택시처럼 돌아올 것이다. 자신이 없으면 계속 집에서 혼자 지낼 딸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는 애초에 그 기자가 죽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2. 사우디
이런 재수없는 생각을 한 데엔 이유가 있다. 김사복 운전수가 사우디를 다녀온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레 하는데, 문득 내 머릿속에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20살에 미팅을 했는데, 27살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다. 그의 말로는 사우디를 가는데 죽을 지도 모르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내일 출발하며 안 가면 안 된다고 했다 한다. 그런가보다하고 헤어졌는데 그 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인가 광주사태가 났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사람은 사복경찰이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광주로 갔던 걸로 짐작된다 한다. 당시의 사복경찰들은 전두환 시대에 다 죽임을 당했다. 그 당시엔 사람들이 어딜 간다고 할 때, 특히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때 '사우디 간다'라고 했었다. 독일과 사우디는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이 흔하게 돈 벌러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독일은 힘든 일을 하는 광부라던가 전문적인 실력이 있는 간호사들만 갈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대부분은 사우디를 간다고 둘러댄다나. 내 말은, 그 택시운전수가 사우디 이야기를 정말로 했다면, 뭔가를 느끼지 않았을까 해서 하는 소리다. 최소 아무것도 모르고 가지는 않았을 듯하다. 러시아의 소설 죄와 벌에서는 등장인물 중 하나가 아메리카 간다면서 자살을 했지만, 우리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마저 되지 못했다. 나름 코리안 드림이랄까. 하늘에서나마 그 모두가 깊이 잠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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