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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말하는 대로
미이케 타카시 감독, 후쿠시 소타 외 출연 / 알스컴퍼니 / 2016년 8월
평점 :
사랑하는 마음과 죽이고 싶은 마음은 같아.

1. 신?이라기보단 도깨비에 가까웠다. 사람을 가지고 놀아서 그렇지(...) 달마 빼고는 귀여운데다가 뭔가 다들 약간씩 어수룩한 데가 있어서, 이 신들에게 종일 먹히고 찢기고 맞아죽는 애들조차 한 세번째 인간이 죽을 때까지 울고불고하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지경. '내가 이런 장난감같은 애들에게 죽는다고? 믿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 같은? 동시에 사람 죽음을 굉장히 가볍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섬찟한 면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원작을 굉장히 잘 살린 수작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특히 영화 홍보에서 그런 점이 잘 보여지는데, 위의 사진은 신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들이 각자의 신을 들고 사진을 찍은 장면이다. 우와 하지마 ㄷㄷㄷ 고양이 들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성우를 보면 대략 아연실색해진다.

2. 사실 원작의 분위기는 미이케 다카시가 여태까지 연출한 공포영화와 상당히 분위기가 잘 맞는다. 아예 원작 만화가 영화로 상영될 것을 노리고 만든 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굉장히 허무한 개그를 연출하는데,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사람이 죽거나 뭔가 피해를 입거나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개그가 연출되는 그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진지하기 때문에, 마침 개그에 피식거리는 순간 비극스런 장면이 나타나고 순간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면서 우리는 마치 피를 흘리는 그 광기의 순간을 즐긴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감독이 즐기는 소소한 히트앤런 식의 장난인데, 이것 때문에 기분나쁘다고 이 감독을 싫어하는 사람도 부지기수. 무슨 파워레인저같은 전대물을 보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던데, 그것도 아마 감독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노렸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가. 이는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 중 하나인 '식녀 쿠이메'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연출이다. 아무래도 감독이 자체적으로 만든 영화인데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연된 작품인지라 식녀 쿠이메는 점수가 높고 신이 말하는 대로는 낮은 것 같은데, 이 감독의 존재 자체가 일본 호러 영화계의 신선한 충격이므로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보셔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식녀 쿠이메도 추천하지만, 이 영화보다 엽기의 강도가 훨씬 높으므로 민간인들은 이 쪽 영화를 보시면 된다. 난 솔직히 신이 말하는 대로 영화의 강도가 너무 낮아서 아쉬웠다.
특히 난 저 악역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동성애와 적그리스도 쪽으로 자꾸 밀고 나가는 티가 나서 말이죠... 살짝 좀 그랬음. 하긴 원작에서 나오는 캐릭터가 원래부터 그런 애라서 어쩔 수 없는 듯. 그 캐릭터의 그 성격만은 바꿀 수 없었다던가.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지. 하지만 좀 덜 노골적이었어도 좋았을 것을. 아, 맨 위에 있는 저 대사는 마음에 들었다.

3. 네팔에 지진이 일어났다. 예배당에 모여서 기도를 하던 서른 명 넘는 인원들이 한꺼번에 희생되었다. 외모, 재력, 능력은 확실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운 때문에 모든 것을 말아먹기도 하고, 모든 게 다시 리셋되어 새 인생이 시작되기도 한다. 언제나 확실한 것은 없다. 신에게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죽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렇다.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눈앞에 둔 존재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능성이란 잔인한 말이기도 하다. 오늘내일 자연의 대재앙 속에 던져지거나, 차에 치이거나, 자다가 숨이 멎거나, 삶은계란을 먹다가 목에 걸리거나, 기타 등등의 웃기지도 않는 일들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평범하게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 평범하게. 그래서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실행하는 게 중요한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통한 건 원통한 거다. 그럴 땐 저주하듯이 툭 내뱉고, 다시 앞으로 나가면 된다. "그래. 모든 건 신이 말하는 대로." 모르긴 몰라도 이 작품은 40대 혹은 50대가 되어서 초상집을 두 탕 이상 뛰고 소주를 한 짝 정도를 마셔야 하는 운명이 되어 출렁거리는 뱃살을 가다듬고 '야이씨 좀 작작 죽어라'라고 저주를 퍼붓는 회사원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