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김경묵 감독, 이바울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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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나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1. 탈북한 준은 다소 독하고 영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유소에서 같은 탈북자인 한 소녀가 성추행당할 뻔한 걸 구해준 이후부터 그의 삶은 아주 달라졌다. 그 풋풋한 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영화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주유소 아저씨를 피해 도망가면서 둘이 잠시 일탈의 행복을 맛보고 사랑을 해보고 싶었음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장면이 바뀌는데... 정말 느닷없이 소녀가 SM 포르노물을 찍고 있고 심지어 준마저 지하철 화장실에서 어느 복면 변태에게 포르노물을 찍힌다(...) 다시 생각해도 참 꿈과 희망이 없는 엔딩이로세. 살려면 결국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일까. 아르바이트 만으로는 입에 겨우 풀칠하는 정도밖에 돈을 벌 수 없는데, 가족도 집도 돌아갈 곳도 없고 데이트같은 사치는 더더욱 꿈꿀 수 없는 그들은 그저 정처없이 서울을 떠돌아다닐 뿐이다. 상당히 여유작작하게 살고 있는 내가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는 듯하다. 아무튼 여전히 그 여자와 만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준은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하다가 폐가 아르바이트로서 어떤 고층 오피스텔을 치우는 일을 맡게 된다.

 

 

 2. 현은 부자 애인 성우와 오피스텔에서 동거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어린 티가 많이 나서 그런지, 애인을 정말 사랑하는지 확신하지도 못하는 티가 많이 난다. 무엇보다 애인 성우가 시시콜콜 해대는 불평불만에 시달리면서 그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은 듯했다.

 

 여기서 하나의 연애팁. '나에 비해 너는 앞길이 창창하잖아'라던지 '우리 그냥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어떨까?'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은 말하는 내용과는 정반대로 소유욕과 집착기질이 꽤 심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남자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요샌 여자도 칼 들고 쫓아올 수 있다. 가급적이면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 잽싸게 깨지라고 하고 싶다 ㅋㅋㅋ 감독이 꽤 그 분위기를 잘 캐치하는 듯.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마음같은가? 처음 그 오피스텔에 들어가서 그와 관계를 나눴을 때의 풋풋함을 잊지 못해서인지 그는 계속 그 오피스텔에 남는다. 하지만 나이도 한창 나이인 데다가, 끼가 넘쳐 천성 집에 틀어박혀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타입이라는 게 그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더군다나 동성 간 채팅사이트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남자가 되어 그는 네트워크상에서 잠깐의 일탈을 즐기게 된다. 그러다 애인 성우가 사실 본처가 있고, 게다가 본 이름은 성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현은 그동안 쌓인 모든 게 폭발한다. 그리고 관계가 깨지는 순간, 그는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다.

 

 

3. 현과 준은 공간 상에선 폐가가 되어버린 오피스에서 만난다. 한 명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한 명은 나락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정신상으로는 그 중간 지점에서 만난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고 서로를 모르는 데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 둘의 동작을 지켜보면서 내가 느낀 그 둘의 관계는 확실히 사랑이었다. '내가 너 같고 네가 나같이 생각되는 게 사랑이다'라는 구절을 어떤 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다. 현실에선 그것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것만으로 만남과 데이트와 접촉 등 연애의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되는 사랑이 성립되는 걸 보여준다. 그들은 그 깨달음 상태에서 죽으려 했고, 결국 완벽하게 하나의 괴물이 된다.

 

 '줄탁동시'라는 단어는 병아리가 부화할 때 어미닭도 껍질을 밖에서 같이 깨어주어야 병아리가 무사히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때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어미닭이 너무 일찍 껍질을 깨면 병아리가 죽거나 기형이 될 수 있으며 어미닭이 너무 늦게 껍질을 깨도 병아리가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전남친이 이 단어를 상당히 좋아하는데다 나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알아도 무시했다. 뭐 그렇다고 딱히 안타깝다거나 아쉬운 마음도 없는게, 난 어미닭도 알 속의 병아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할 게 있으면 니 입으로 직접적으로 말해라. 짜증나게 하지 말고. 솔직히 이 영화도 퀴어전문잡지 삐라에서 해설을 보지 않은 채 봤더라면 싫어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해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현 또는 준이 준 또는 현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왠지 에반게리온의 한 장면을 베낀 것만 같아서 거부감이 일었다. 그 영화 자체가 에반게리온에 대한 해석이었다면 또 몰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내 가치관에 정말 잘 맞아떨어진다고나 할까? 역시 난 방랑벽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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