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O.S.T.
미누 (MiNU) 작곡 / 소니뮤직(SonyMusic) / 201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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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불쌍하네. 할아버지 생각을 누가 하나. 나밖에 하는 사람이 없는데...

 

 1. 워낭소리에서 상당히 거북해서 주인공인 소보다도 더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할아버지였다. 그 분들이야 투닥투닥 싸우면서도 나름대로 사는 재미가 있을테니 잘 살겠지만, 몇몇 관객들이 보기엔 상당히 거북해보였고 그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엄마의 부탁으로 인해 이 영화를 보러 같이 영화관에 가기 직전까지도 그 트라우마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워낭소리가 워낙 거하게 욕을 먹었기 때문에 편집한 건지, 아님 원래 할아버지 성품이 착한지는 모르겠지만(제발 후자이길 바란다.) 상당히 볼만했다. 여자 집안에서 사윗감을 찾다가 어머니를 일찍 잃은 남자를 데릴사위로 데려온 것도 유별나다. 게다가 상당히 장수하셔서, 할아버지는 100살까지 살다가 죽기를 꿈꾸고 있었다.

 

 게다가 할머니와 꽃구경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승에 관련된 이야기를 진중하게 하시는 걸 보면, 연륜을 담고 있는 분이셨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머니에 대해 설명할 때 자세히 언급하겠다.

 

2. 할머니에게 짖궂은 장난도 잘 치시는 데다가, 강아지를 매우 사랑해서 몸이 아파 앓아누울 때조차 강아지를 옆에 끼고 계셨다. 게다가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잘 불러드린 듯한데, 엔딩 크래딧에서 할아버지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다시 나오므로 영화가 끝났더라도 왠만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길 추천한다. 할머니가 잔소리를 할 때면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시면서 입을 꾹 다무는데, 할머니가 칭찬을 하면 금새 입 안으로 머금듯이 '히잉'하는 웃음소리를 내신다 ㅋㅋㅋ

 

 노인대학에서 상당히 별난 할아버지로 소문나셨을 텐데 워낙 몸이 안 좋으신 데다가 외딴 집에서 사시니 세간소문엔 연연하지 않으셨을 듯. 아무튼 요즘 시대에서조차 상당히 보기 드문 천연계(?!) 남성이었다.

 

 

 3. 사실 이 영화에서는 대사보다도 침묵이 더 값어치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숨소리는 너무도 가냘파서 금방이라도 뚝 끊어질 듯이 보인다. 노부부의 자식들이 노부부 앞에서 싸움을 할 때에도 할아버지는 무서우신 건지 기가 막히신 건지, 별 소리 못하고 숨죽여 울기만 할 뿐이었다. 약간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한없이 나약해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은데도 기어코 할머니를 따라가서 농사일을 하려 애를 쓰는 장면이라던가, 자녀들이 오기 전에 혼자서 벽에 거울을 달기 위해 애쓰는 장면(상당히 컸지만 아마도 젊은 시절에는 그 거울을 번쩍 들어 벽에 다는 건 할아버지에겐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병세를 지켜보다 지쳐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는 장면은 남성성을 넘어선 할아버지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무력감과 자괴감의 표출 없이 일상을 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히 할머니를 걱정해서 참았으리라.

 

 할아버지는 자신의 남성성을 암흑으로 표출한다. 그는 꽃이 피면 지듯이, 인간도 나고 죽으며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허무가 묻어 있다. 그의 생각 속에서 그가 머지않아 떨어질 저승은 그저 황무지일 뿐이다.

 

 

 

4. 그러나 할머니는 그 생각에 침묵과 무시로서 끈질기게 반대한다. 할아버지의 꺼림찍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어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가서 여태동안 살아가면서 잃어버렸거나 죽은 아이들의 내복을 산다. 그리고 내복을 하나하나 불태운다. 저승에 있을 그 아이들에게 입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그녀는 할아버지의 옷을 태운다. 저승길을 걷고 있을 할아버지가 춥지 않게 런닝셔츠까지 잊지 않고 불태운다. 그녀는 내세를 믿으며, 그 곳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화장은 서양에서 그닥 반기는 풍습이 아니다. 부모가 준 신체를 보존해야 한다는 유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화장을 장례 의식으로 생각하는 곳은 불교뿐이다. 불교는 마음이 거울이며, 그 거울을 항시 들여다보고 닦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마음 들여다보기'에 비해 화장은 생물의 궁극적인 육체정화의식이다. 난 장담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질질 짜면서도 속으로는 '설마. 저 할아버지 할머니도 물어뜯고 치고박고 싸우던 시절이 있었겠지.' 라고 못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으리라고. 혹은 '여름에 저 시골 한 번 다녀가 볼까? 할머니랑 사진도 찍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신문기사에 의하면 벌써부터 그 부근에 이상한 관광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장한다. 영화는 영화로 끝내자고. 그들은 적어도 영화에서는 대체로 행복한 순간을 살았고, 그 중 한 쪽은 완전한 정화의 순간을 거쳤다. 삶을 고독사로 끝내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서 말이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달고 다닌다. 당신은 당신의 옆에서 76년 가량을 살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당신이 죽으면 죽은 당신이 불쌍하다고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자격이 생길만한 인간으로 자신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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