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 후쿠시마가 전하는 원전의 진실과 미래를 위한 제안 생각하는 돌 5
다쿠키 요시미쓰 지음, 윤수정 옮김 / 돌베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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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여러 사람들과 영화관에서 모여서 같이 봐야 하는 영화다.


 최근 영화를 방영해주는 방송사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혼자 보는 영화'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영화는 여럿이서 같이 보아야 더욱 실감이 난다. 어느 광고에서 그렇게 말했듯이 깔깔 웃으면서 뒷좌석을 뻥뻥 차고 몸짓 발짓으로 생쇼를 해도 괜찮은 영화관은 없다. 영화관도 일종의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야 한다. 사회적 가치관에 묶여있다고 봐도 될 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원 이상의 돈을 내면서 굳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최대한 큰 스크린과 성대한 음향효과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고,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시사회부터 먼저 맛보려는 영화 얼리어답터들도 있고, 맘에 드는 감독이라던가 배우가 출연했을 경우 관객수를 한 명이라도 더 늘려서 그 영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회참여의 의미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어있는 것을 더러 보려는 심술궂은 마음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카트가 그렇다.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일부러 좌석을 휙 돌아본다. 나 말고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까, 관객 수는 얼마나 될까 유추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이 후쿠시마의 미래도 그런 경우이다. 혹시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전국적으로 소정의 증정품 그리고 다과와 함께 무료로 상영해주는 상영회를 찾으시길 바란다.

 

 

2. 후쿠시마의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일본 전역 중 후쿠시마와 가까운 지방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맞겠지만.)은 자신들의 악몽같은 삶을 '스트레스'라는 문자로 압축한다. 그들에게는 최근 쓰나미, 지진,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삼중고가 한꺼번에 닥쳤다. 일본 언론에서도 잘 방영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삶을 이 영화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나레이션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와닿는 건 피난민과의 인터뷰 중 '스트레스'라는 단어 한 마디였다. 인터뷰에 응한 이는 옛날에 어부로 일했다고 하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었는데, 방사능이 자신이 일터인 인근 바다에 퍼진 이후로 조업을 금지당했다. 그에게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어부로 일하더라도 자신이 잡는 물고기가 '오염물' 취급당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아직도 재난민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지 않고 있으며, 협동조합이나 일부 자선가들이 기부하는 생필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멍한 표정은 동정을 넘어 일종의 공포를 자아낸다. 그의 내부에서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은 치명상을 입은지 오래였고, 심지어는 존재감조차 부옇게 보였다. 이어지는 전문가의 인터뷰. 그는 자신들이 망가져가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지녀온 모든 특성들이 부서지고 있다고 하소연하며, '끔찍한 생각만 들어 매우 두렵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고 있다.

 

3. 이런 상황이니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전부터 아이들의 먹거리와 교육에 특히 깐깐했던 일본의 어머니들은 이제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자신들이 평상시 다니던 산책로, 아이들이 뛰놀았던 놀이터를 일일히 측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그에 대한 효과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버섯이나 키가 큰 나무 등에서 방사능 측정치가 유달리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전에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잠깐 거론되었던 검은 먼지는 가로수길의 작은 관상용 나무를 뒤덮고 있다가 이 어머니들에게 발견되었다.

 
 이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일본에서도 옛말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의 어머니들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선포한다. 여전히 그들은 일본 특유의 조용하고 날카로운 권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시청으로 가서 방사능의 위험 수치를 재설정해 달라고 권유하는 어머니 대표는 다소 험상궂기까지 하며, 일본 국회를 포위하는 100만명의 일본 시민들은 자못 시끄러운 음악과 큰 소리를 내며 후쿠시마에 아직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대피할 것을' 종용한다. 폐를 끼칠까 항시 조심하는 그들의 문화를 그들이 스스로 깨고 있다.

 

 

4. 후쿠시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그들 중 17명은 체르노빌로 여행을 떠난다.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기 이전, 체르노빌에서도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보고 싶었다. 체르노빌이 폭발했어도 그럭저럭 생존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비록 일본과는 거리가 꽤 떨어진 나라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 장소와 그 사람들의 운명이 자신들의 미래라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들도 이후에 괜찮아질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연히 그 희망은 산산히 부서졌다.

 

 늘상 단체여행을 가면 그러하듯이, 체르노빌에서도 그들은 사진을 찍으며 연신 감탄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들이 찍는 풍경은 황폐해지다 못해 그로테스크해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주변 폐가의 모습이다. 게다가 그들이 여행에서 항상 자신의 옆에 가지고 다니는 게 있으니,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노란 방사능 측정기이다. 체르노빌에 진입했을 때 유달리 경고음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다시 함성을 지른다. 그러나 그 함성은 감탄사라기보다는 경악에 가까웠다. 그들은 현실도피를 하거나 반복되는 일상의 피로를 풀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직시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겪는 걸 감수하더라도 현실에 대해 올바로 알기 위해, 그동안 무심하게 지구의 자원을 낭비해왔던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영화 속 일본 사람들에게나 관객들에게서나 그 사실을 실시간으로 인지시켜주고 있는 게 바로 방사능 측정기의 날카로운 기계음이다. 

 

 

 5. 사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는 이 영화 속에 들어 있다. 아무리 언론에서 한국의 신생아 수가 급감하고 있다고 소란을 부리더라도 어차피 주변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은 많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도 많더라. 난 이왕 내 아이에게 투자하기도 벅찰 정도로 박봉인 인생, 절약하고 저축해서 그 아이들에게 투자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는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기 전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일이었다. 상당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나 생각도 보수적인 나로서는 녹색당 당원이 되는 것조차도 상당히 '좌파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바다 어딘가에 방사능이 집적된 곳이 상당하다는 뉴스를 보고서 생각을 더욱 진보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남자친구도 아마 일본에 친한 선배가 없었더라면 내 생각에 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남자친구는 선배가 후쿠시마에서 꽤 먼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도감도 잠시, 그 선배가 연락을 잠시 끊었을 때 남자친구는 걱정에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선배가 먼저 연락을 함으로서 연락이 이어질 수 있었는데, 그 선배의 말로는 '심한 두통을 느껴서' 겁을 먹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영화에선 체르노빌 사건 이후 피폭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강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코바린 마을이 등장한다. 그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두통'을 겪어서 잠시 책상에 엎드린 적이 있는 아이들이 60%를 넘는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학교는 어느 정도 북한 학교 느낌마저 감도는 딱딱한 분위기였으며, 아이들은 몸이 아파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자신들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듯했다. 땡땡이를 칠 수 있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6.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이 산간지방인 데다가 땅도 조그만 우리나라는 몇 기만 지어도 핵발전소 밀집지역이 된다. 게다가 몇몇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우리는 남한과 북한으로 구분되어 있다. 위험지역을 완전히 벗어나려면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이미 세계 어디에서도 처리할 수 없다는 핵폐기물이 경주에 쌓이고 있다. 문무대왕의 안부는 둘째치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후쿠시마 사건 피폭 지역 주민은 말한다. 각자 살 길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고. 

 

 이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4년 11월호' 리뷰에서 말했듯이 나는 '올바른 소비'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돈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선물해도 적당하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데 그보다 더 좋은 물품은 없으며 내 가치관을 표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금은 녹색당 당원이 되어 당이 활동할 기금을 달마다 내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보다 더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설계하고 있는 몇 가지 계획 중 하나는 내 월급 10분의 1을 환경을 위해 쓰는 것이다. (생협 회원이 되거나 야채 꾸러미를 사는 등.) 사실 교회가 나라를 뒤덮고 있고 개신교가 공공장소를 마음껏 활보하는 상황에서 난 '10분의 1은 환경에 투자하는 켐페인'같은 게 아주 적극적이고 대중적이기까지 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개신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거액의 돈을 교회에 바쳐서 정신적인 안식을 얻느니 차라리 사회에 더 효과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언가에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사실 전세계 사람들이 자기 월급의 10분의 1을 환경보존에 쓴다면 당장 오늘서부터라도 환경재난은 일어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가 독선적이고 독재주의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일단 자유도 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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