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크리스티앙 데마르 외 감독, 필리프 카트린느 (Philippe Katerine)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영생할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과학자가 있었다. 실패해서 동물이 말을 하는 약을 만들어버리지만.

 

 그런데 경찰이 인큐베이터에 총을 쏴서 말을 할 줄 아는 동물들은 도망가버리고 실험관은 터져버린다. 그 손주가 할아버지가 되고 자식과 손녀 아브릴이 생길 즈음에는 과학자들이 모두 어딘가로 행방불명 되어버리는데, 그로 인해 쓸만한 기기는 증기기관밖에 없다는 전개로 인해 영화 속에서 스팀펑크 기계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되고 아브릴은 하나밖에 없는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가족의 비약을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추적하는 두 개의 세력이 범위를 점점 좁혀올 즈음, 그녀는 자신을 집요히 따라오는 어떤 남성과 만나게 된다.

 

 

 

스토리는 적당히 낭만적으로 진행된다. 그림체도 마치 동화책을 보는 듯하여 좋다.

 

 그러나 깊은 분석력과 통찰력이 부족하다. 결국 영화의 중심이 되는 불로불사약은 동물만이 효능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아브릴은 늙어서 병이 나는 결로 영화가 끝난다. 그러나 동물들이 영생을 살게 된다면 그들은 권력을 쥐게 되는 셈이다. 도마뱀이 그 예이다. 만일 우주에 있는 그 고양이가 지구로 와서 아브릴처럼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져 자식을 낳게 된다면 그 자식도 말을 하고 영생을 살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에서도 그런 식의 열린 결말이 나온 적 있었다. 거기서는 인간이 영생을 사는데 성공하지만, 점점 좀비를 암시하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영화 초반에 핵시설 같은 대안책이 없어 계속 나무를 베어내서 화력발전소를 만든다고 세계를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눈치를 챘지만, 깊이 파고들어가질 못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철학에 도달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한국 판타지에도 못 미친다. 최소 한국에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같은 끔찍한 소설이 나온 이후로 가족주의 스토리를 타파하자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성우에도 약간 회의적이다. 일본 외의 국가들에선 대체 왜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들을 애니 성우로 써먹으려 할까?

 일단 흥행이 나오지 않는 데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긴 한다. 러브라이브 선샤인에서도 다이아에서 전대 전문 배우를 성우로 쓰기도 했고. 그러나 마리옹 꼬띠아르가 설령 세계적인 배우라 하더라도 목소리만의 연기엔 한계가 있다. 그저 그녀의 예쁜 목소리만 부각될 뿐이다. 배우는 표정과 움직임이 봉쇄된다. 애니 캐릭터는 목소리 톤에 제약을 당한다. 쉽게 말하자면 언제든지 편집이 가능했던 드라마 배우가 생으로 뮤지컬을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우도 잘 하는 배우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듣기엔 줄리우스 역을 맡은 마크 안드레 그롱당이 조금 성우의 자질에 부각을 보였다. (대사는 적으니 기대하지 마라.) 아무튼 실사영화로 상영했으면 아주 괜찮았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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