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 아웃케이스 없음
신카이 마코토 감독 / 블루키노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마치 깊고 차가운 물 속에서 하염없이 숨을 멈추고 있는 듯한, 그런 나날이었다.

 

이 에피소드가 나중에 히로키와 사유리를 연결시켜주는 복선이 된다.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떠안게 되면 가까이 있어도 잃어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물건을 샀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그 물건을 봤을 때,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특수하게 그것을 쓰기 위한 목적이 있던 없던, 매장에 진열되어 있으며 아직 내 것이 아닌 그 물건은 반짝반짝 빛이 나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물건을 구입하거나 내 것으로 만들어 집에 두게 되었을 때, 대부분은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의식적으로 그 물건을 샀을 때의 느낌을 적고, 먼지를 털고, 매번 관리를 하지 않는 이상(모든 물건에 다 그러면 이상한 취급을 받을 테지만.) 그 물건을 매장에서 들고이고지고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길 때의 그 설렘은 온데간데가 없다. 단지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추억으로 밀어넣어지며, 추억은 점점 흐릿해져 마침내 까마득히 잊혀진다. 봄날 대청소할 때 우리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내다버리고 현재 유용하게 쓰이는 새 물건으로 채운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전개가 뒤죽박죽이어도 상관없이 숨죽여서 보게 된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영어속담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론과 언뜻 비슷해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영원한 약속은 없다.' 히로키와 사유리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사유리는 평행세계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녀가 잠을 깨면 세상이 무너진다는 건,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불멸의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히로키는 꿈에서 그녀가 꾸는 꿈 속에 들어간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중에 꿈 속에서 다시 그녀를 만나야지.'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꿈에서 깨어나면 히로키에게 이야기해야지. 내가 꿈 속에서 히로키를 그리워했다고.' 그들은 일단 현실에서 했던 약속은 이뤘다. 하지만 꿈 속에서 했던 약속은 이루지 못했다. 그들이 꾼 '꿈'은 같으면서도 서로 달랐다. 하지만 히로키는 꿈 속에서의 일을 잊어버린 사유리를 탓하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장소.

 

 신카이 마코토가 작품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이게 아니었을까 싶다.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사랑을 할 땐 한없이 어리석어진다. 그래서 '사랑'이란 단어를 함부로 거론하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취중진담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는 이유가 그거다. 하지만 그 최악의 취중진담으로 헛소리를 했다 한들, 그 시간을 그 단어를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몸으로는 명백히 알고 있다. 요즘 젊은 애들이 '썸' 운운하는 걸 작년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의 죽음이 무서워서 돈을 치덕치덕 처발라 수명을 연장시키는 판에, 정신의 죽음은 안 무서울까? 연애 경험이 많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별 경험이 많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사랑 없는 이별은 볼에 가벼운 입맞춤만 남기면 끝이다. 하지만 사랑이 있는 경우의 이별은 말 그대로 심장 속의 광란이다. 오죽하면 한 때 사랑했던 상대방을 죽이겠다고까지 할까. 

 

 몸은 붙잡을 수 없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건 마음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마치 꿈과 같다. 잔치가 끝나면 겉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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