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Ghost in the Shell 2.0 (공각 기동대 2.0) (한글무자막)(Blu-ray) (2009)
Manga Video / 200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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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트워크를 통하면 확실히 소수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쿠사나기 모토코는 아예 네트워크에서 생겨난 생명체와 융합해버린다. 말 그대로 '결혼'해버린 것이다.

 

 무슨 사정인지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그녀는 뇌를 빼면 온 몸을 기계로 바꾼 상태이다. 그 결과 그녀는 왠만한 인간 남자는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아니 인간을 뛰어넘는 체력을 손에 넣는다. 형사 직업 편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경찰을 은퇴하면 기계로 된 몸뚱아리를 전부 반납해야 하는 처지인데다가, 일을 계속 한다고 해도 전뇌능력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제대로 구제할 수 없어서 진퇴양난이다. "제대로 인간 취급 해주고 있잖아."라는 동료의 말에서도, 대외에 나가지 못하고 은근히 활동해야 하는 공안 9과의 사정에서도 그녀가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가 훤히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이 소속 기관에, 정부에, 세계에 종속되어있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2. 그런 그녀의 일상에서 불쑥 인형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비록 닥터인가 뭔가 하는 미국 놈이 멋대로 껍질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성별을 붙인 것이지만. 그것도 여자라고 깔보기 위한 의도가 농후하다.) 네트워크에서 우연히 태어난 생명체라 자신을 소개한다. 그녀는 공안 9과로 피신한 후 자신을 감금하려 출동한 공안 6과 관계자 앞에서 공안 6과 (혹은 일본 정부인지도 모른다.)의 프로젝트 명까지 까발린다. 또한 당당하게 자신을 '생명체'라 소개하며 망명을 신청한다. 비록 사람이 만든 네트워크에서 인간의 고스트들에 접촉하는 과정을 겪으며 '각성'하긴 했지만, 자신의 탄생은 어디까지나 우연이니 자신도 생명체가 아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박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놀랍게도 그녀가 거론하는 건 인간의 DNA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선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구성하는 건 DNA 체계가 전부이며, 우리의 육체는 그것의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조종하는 로봇기기나 다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잘 알듯이, 마지막에선 인간이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 애니가 에반게리온과 인기도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분위기나 메시지가 완전 정반대인 이유는 인형사의 존재에 있다. 에반게리온에서는 사도를 초월하는 능력을 지니기 위해 노력했던 인간이 멸망의 나락에 빠지는 결말이 나오는데, 공각기동대에선 반대로 '네트워크상의 생명체'가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 인간의 능력을 지니길 원한다. 놀랍게도 인형사가 원하는 인간의 능력은 다양성이다.

 

 3. 확실히 쿠사나기 모토코는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매력적인 존재다. 그 세계에서 비교적 편하게 살만한 능력이 있어서 그렇긴 하지만, 그녀는 공감이 가는 존재에게 가까이 가길 원하며,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고 싸운다. 비록 보통 일본캐릭터와는 상당히 다른 얼굴형이지만, 그녀가 상당한 팬층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 사실 공각기동대의 내용이 정치이야기 때문에 상당히 꼬여있긴 하지만, 그녀는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그런 일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흔히 내가 너 같고 너가 나 같은 것,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면 모토코가 인형사에게 다이브하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것도 사랑의 형태라고 보면 되려나? 공각기동대 원작과 달리 2.0에선 인형사의 성우를 매우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성으로 채택했는데,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내가 만약 쿠사나기 모토코였다면, 안 그래도 상당히 강인한 성격을 지닌 인형사인데 목소리까지 완고한 남성이라면 융합에 좀 부담감을 느낄 것 같달까... 형사 일 하면서 남성은 아주 흔하게 봤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인형사가 소수자로 억압받고 있다는 느낌도 나지 않았을 듯하고. 어쨌던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하나로 융합되고, 모토코도 인형사도 아닌 제 3의 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4. 그러나 찝찝함은 남는다. 특히 Stand Alone Complex를 먼저 접하고 '가족같은 알콩달콩 공안 9과'의 분위기를 바라며 이 영화를 시청한 사람들은 한동안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감정없이 한 짓이라곤 하지만 수백수천을 죽음보다 더 처참한 나락에 떨어뜨린, 나치범죄자 뺨칠 놈과 어찌 융합할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영화 세계관을 다시 돌이켜서 생각해보자. 인형사는 모든 기계는 물론이고 인간의 고스트, 즉 정신마저 해킹할 수 있는 먼치킨같은 놈이다. 게다가 인간이 아직 국가는 이루고 있지만, 거의 모두가 어떤 회사에서 만든 기계의 몸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모토코가 자신을 엄호할 인물로 유일하게 토구사를 두고 있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문득 떠오르게 되는데, 그녀는 분명 '자신이 에러가 난다면 에러를 보충해주거나 고칠 사람이 필요한데 공안 9과 내의 인물들은 다 같은 회사에서 몸을 기계화시킨지라 똑같은 에러가 생길 여지가 많다.'라고 했다. 만일 그녀가 악의를 품어서 공안 9과 사람들의 몸을 개조한 회사에 바이러스를 뿌린다면 일본 경찰이 마비된다는 소리이다.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그녀는 인형사와의 융합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었고, 고민많은 소녀에서 여성으로 한 발짝 다가갔으니 세상을 뒤흔드는 섣부른 짓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그녀는 인형사와 융합하지 않았을 때도 다소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스쿠버다이빙을 끝내고 배 위에 앉아 있을 때, 모토코는 자신의 옆을 스쳐가는 건물을 보다가 어느 카페에 앉아 있는 소녀의 얼굴을 본다.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잠시 소수자가 부상하고 다양성에 기초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때의 세상을 보았던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몸을 이루는 기체를 바다 속에 집어넣었다 뺐으니, 물 속에서 막 나온 그녀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지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날 그녀의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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