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Steins;Gate: Complete Series, Part One (슈타인즈 게이트 파트 1) (한글무자막)(Blu-ray) (2012)
Funimation Prod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1. 발명이야기

 ① 전화레인지

 

 

 

 오카린이라는 중2병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소꿉친구 마유시랑 다루라는 천재 해커랑 같이 조그만 연구실을 꾸려서 살고 있다. 어느 날 타임머신을 발명했다는 박사의 발표를 들으러 갔는데 마키세 크리스라는 천재 과학자 소녀는 자꾸만 아까 전에 자신을 보지 않았느냐고 우긴다. 그는 헛소리라 치부하고 지나치고, 몇 분 후에 그녀가 살해된 것을 발견한다. (데자뷰 때문인지) 그는 그녀가 자꾸만 아는 사람처럼 여겨지고 다루에게 크리스가 당한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마침 다루가 전화를 전화레인지에 연결하고 있었던 탓에, 여태까지 낡은 전자렌지로 여기고 있었던 기계가 타임머신 기계로 부각된다.

 

 오카링이 그랬었던 것처럼 과거로 메일이 발송되는 효과가 있으며, 당연히 그에 의해 현재를 지금과 다르게 변모시킬 수 있다. 다만 그 기계가 어떻게 작동될 수 있었는지는 이 당시엔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상태이다. 문자를 송신할 기계만 있으면 그들이 태어나기 전의 시절까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만, 보낼 수 있는 양은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메시지도 분해되서 보내어진다. 그러나 당시 철이 없어 이 기계가, 아니 말이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몰랐던 오카링은 장난하듯 크리스를 제외한 새 연구원 멤버들에게 과거로 메시지를 보내보라 제안하고 자신도 실험해본다. 그리고 나중에 그 결과가 참혹해지자 뒷처리를 하려 오카링이 동분서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오카링이 보낸 D메일은 전화레인지가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보낸 메일과 로또 당첨되게 해달라는 메일 이렇게 두 가지이다. 그러면 D메일을 회수했을 때 그 두 가지 모두를 회수시킨 건가? 각각 문자를 보낸 시점이 다른데 그럼 문자를 두 번 보낸 건가? 세세한 건 따지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애니메이션이긴 한데, 그래도 오카링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의 시초격인데도 불구하고 마무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은 든다.

 

 ② 타임리프 

 

 

'물리적 타임워프가 안 된다면 기억을 워프시키면 되잖아요.'라는 크리스의 이론으로 인해서 탄생된 물건이다. 메일을 전기 신호로 분해해서 송신할 수 있는 전화레인지처럼 뇌의 펄스를 워프시켜서 과거의 몸뚱아리에 현재의 기억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신박한 장치이다. 초창기 발명 땐 겨우 48시간 이내밖에 워프할 수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마유시의 급작스런 죽음을 막기 위해 오카링은 자신이 몇 번이고 직접 타임리프의 실험체가 된다.

 

 슈타인즈 게이트의 등장인물 중 누구도(심지어 다루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타임리프할 수 있는 시간대만 늘릴 수 있다면 이 물건이 가장 획기적인 물건이다. 만약 나이가 들어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젊어지고 싶다는 의식'이 있는 그대로 젊은 몸뚱아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오카링이 어릴 때의 신열로 인해 받은 리딩 슈타이너 능력이 있을 때의 가정 하에서지만, 논리상에서라면 애니상에서처럼 정신연령은 할머니인 로리캐릭터도 탄생시킬 수 있다. 아차 근데 이거 애니지?

 

 이 기계로 인해 오카링은 마유리가 죽는 대략적인 이유와(사실 그 이유가 사라져도 우연한 사고로 죽거나 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세세하게 탐구하여 파악한다. 어린 시절 마유리의 할머니가 죽고 나서 마유리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난 아무 말이나 했다는데, 오카링의 '실험' 자세를 보면 그의 말 그대로 마유리가 오카링의 인질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죽음을 모른다면 사정은 그런대로 나을 텐데 맨날 꿈 속에서 나오고, 그런데 정작 오카링은 크리스랑 맺어지고(...) 보는 내내 마유리가 불쌍했다... 그러고보니 SKT의 알테어도 그렇고 요즘은 주인공에게 희생(?)당한 애들을 진히로인이라고 부르나?

 

 참고로 이 헤드셋은 오디오테크니카 AD 시리즈이다. 닥터 페퍼도 그렇고 간접광고 쩐다...

 

 ③ 타임머신

 

 

 이 슈타인즈 게이트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아키하바라에서 타임머신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완성도 쩌네여...

 아무튼 전화레인지를 토대로 하여 다루가 발명하고 다루의 딸 스즈하가 타고 온 기계이다. 현재에선 시도했다간 젤리가 되어버리고 마는 물리적 시간여행이 가능한 기체이며, 오카링이 다이버전스 1%를 넘는 세계선에서는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작동도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 세 개의 발명품으로 인해 라디오 회관에 잠입(?)하는 오카링은 세 명인데 전화레인지에 대해 앞으로 새롭게 조명한 오카링과 타임리프를 수없이 하고 타임머신을 한 번 탄 오카링, 그리고 두 번째로 타임머신을 탄 오카링 이렇게 세 명이다. 그래서 분위기는 진지한데 결말을 다 보면 나중엔 엄청 웃긴다...

 

 

 2.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

 

 

 처음엔 D메일로 크리스를 구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고, 오카링이 직접적으로 타임워프에 손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마유리의 죽음이었다. 그는 상당히 불안정한 장치인 D메일을 보내 세계선을 바꿔도 기억을 확실히 유지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유리를 구할 수 없는 자신에게 절망한다. 첫째, 돈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 SERN이 대중교통만 통제하면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허둥거릴 수밖에 없다. 나중에야 간신히 교통문제를 해결하는데, 그것도 그저 SERN이 교통을 통제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이를 '신의 인간화'라 부른다. 사실 오르페우스는 '남자들의 세계'에선 무력한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에우리뒤케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신의 아들인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결혼의 신을 불러오지만 왠일인지 그의 축복을 받지도 못한다. 더불어 아리스타이오스라는 양치기의 눈에 띄어 그가 에우리뒤케에게 추근거릴 때도, 에우리뒤케가 도망치다가 뱀에 발꿈치를 물려 사망할 때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무능'이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오카링과 오르페우스가 겹쳐져서 떠올랐다. 아마 슈타인즈 게이트를 만든 제작자도 예술 장르 중 하나인 오페라계를 크게 흔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오르페우스도 타임머신 기계가 그 시대에 발명되었다고 하면 굳이 지하 세계의 무서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만나 에우리뒤케를 지하 감옥에서 풀어달라고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오르페우스는 노래 실력만큼은 뛰어났으므로 지하 세계를 내려가는 어려운 일도 모두 자신의 노래로 해결했다. 심지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에게 하소연할 때도 맨 주먹에 수금 하나만 들고 대뜸 해결해버렸다. 아마 오카링한테는 천연덕스러운 성격과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이상한 언변능력으로 빗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오카링이 필사적으로 대적하는 적의 실체라는 게 문제이다. 사실 에우리뒤케도 '뱀'에 물려 죽었으니 오르페우스에게도 딱히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마음껏 저승에 쳐들어가서 탄원할 수 있다. 하지만 오카링은 세계선에 의해 마유리가 어떻게 죽는지도 달라지니 딱히 특정한 사람을 탓할 수도 없다. 비록 마유리를 죽인 사람은 '대부분' 모에카라는 여자였지만, 그녀도 다 나름대로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댄 사정이 있고 오카링이 그걸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결국 그에겐 어떤 세계선에서든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지지해주는 조력자만 남는다. 우연히 처음으로 세계선을 바꿈으로 인해 살려낸 마키세 크리스이다. 그에게 영감을 제공해줌으로서 수금의 역할도 하고, 타임리프를 개발함으로서 저승의 강을 건너게 해주는 카론의 역할도 하고, 마유리와 그닥 오랜 시간을 지내지 않았지만 (페이리스를 제외하곤 아마도 유일하게) 친한 동성친구로 남기도 하고, 그 미묘한 관계 때문에 오카링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겪은 괴로움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역할도 혼자 도맡아 한다. 오카링이 그녀에게 빠진 것도 무리는 아닌데, 자꾸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나면서 뒷맛이 씁쓸해지는 건 왜일까. 오르페우스는 실수로(말이 실수지 어떻게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살려서 데려가는 중인데 얼굴 한 번 보고 싶지 않겠는가.) 에우리뒤케를 돌아보게 되고, 그녀를 본 순간 그녀는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가게 되어 오르페우스가 아무리 슬피 울며 수금을 타도 영영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오카링이 크리스와 사랑에 빠지는 루트에 빠지게 될 때, 다시 말해 마유리와 사랑에 빠지는 가능성이 영영 틀어지게 될 때가 다이버전스 1%가 달성되는 바로 그 때인지도 모른다.

 

 

 3. 너무 착한 인물들. 

 

 사실 극명하게 말하면 '선과 악의 극한대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비록 FB와 모에카라는 인물을 설정해두긴 했지만 그들은 모두 SERN이라는 아주 나쁜 기관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어쩌면 FB도 SERN에서는 그닥 중요한 인물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카링을 좋아해서 한 번 욕심내어 성별을 여자로 바꿔봤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루카. 오카링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죽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감정까지 무뎌져가는 오카링을 보며 결국 그를 크리스에게 보내주는 마유리. 한 때 마유리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이 대신 죽을 것을 결심했던 크리스와 오카링까지. 이 분들 덕택에...

 

 이 짜증날 정도로 착한 인물들 덕택에 원래는 10몇화 내에 끝났을 슈타인즈 게이트는 한없이 길어졌다.

 

 시간을 되돌리는? 아니면 세계선을 바꾸는? 작품 중에 슈타인즈 게이트만큼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딱 두 개 있다. 하나는 쓰르라미 울 적에이고, 또 하나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이다.

 

 쓰르라미 울 적에에선 리카가 오카링같은 역할을 하는데, 여기선 타임머신같이 버튼만 누르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히나미자와의 참상이 일어나야만 케이이치가 전학 온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미치고 팔짝 뛸 설정이 있기 때문에(...) 어제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들이 고기떡이 되는 걸 다 지켜보는 리카가 그닥 정상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기대할 수도 없다. 오니가쿠시 TV판에선 심지어 판이 다시 일으키기 틀렸다는 사실을 파악하곤 빨리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자결하기도 하고, 마을 사람 몇 명을 희생시킬 준비도 한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에선 호무라가 그런 역할을 한다. 소심한 성격에 병으로 인해 입원하다 전학 온 상황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는 그녀를 다시 일으켜준 마도카. 그녀는 시간을 조종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오직' 마도카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한다. 말 그대로 한 명만 살리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푸르기스의 밤이라는 설정만 없었으면 극악한 악한으로 생각될 정도.

 

 그러나 오카링은 마유리를 살리기 위해 마유리가 죽을 때까지 지켜본 적도 있으면서, 타인의 불행에도 엄청난 신경을 쓴다. 모에카와 크리스의 아버지에게 돌격하기도 했지만, 그건 단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불의에 분노하는 열혈 성격 때문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착한 성격 때문에 기막혀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격려해준다. 아마도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타입은 대체로 '나를 희생해서 모두를 구한다. 반드시 구해야만 한다'라고 주장하는 페이트의 에미야 시로라 볼 수 있을 것이다. 

 

 

 5. 사별=암 

 

 이건 내가 정의한 게 아니고 실제로 영국의 천재 작가 줄리언 반스가 아내를 사별하고 나서 쓴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나온 비유이다. 암은 대책이 없는 병이다. 우리는 보통 암이 가라앉으면 '암을 이겼다'라고 표현하지만, 그건 암이 약빨에 밀려서 잠시 휴전을 선언한 상태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도 암만큼 큰 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내를 잃고 나서 5년 후 '안색이 좋아졌다'라는 말을 듣지만, 정작 대체 언제나 되야 자신이 예전의 유머 감각을 반쪽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 확실히 아내의 꿈을 꾸면서도 아내가 죽었고 그것은 꿈임을 인지할 수 있을만큼은 회복되었지만, 사별의 슬픔은 아직도 가슴 한귀퉁이에 웅크리고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언제 다시 자신에게 닥쳐올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 내가 읽은 <너의 그림자를 읽다>에서 보면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한정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범위는 배우자 외에 더더욱 넓어진다.

 

 비록 크리스와 마유리를 살려내는 덴 성공했지만 어떤 세계선을 타도 오카링과 크리스는 2036년 내에 죽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오카링과 크리스는 세계선과 슈타인즈 게이트라는 이론을 내세우며 운명을 부정한다. 실제에서 이런 인물들이 나왔고, 그들이 책을 썼더라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버금가는 반종교적인 이론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임머신은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딩 슈타이너도 아닌 마유리가 꿈으로 명확히 여러 세계선을 옅볼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오카링조차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처음에 오카링이 다루에게 '마치 크리스를 둘이서 잘 알고 있는 마냥' 문자를 보낸 것도 그가 데자뷰에 씌여있다는 증거이다. 나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미 사별을 겪고 그 암같은 충격을 억눌러온 마유리는 세계선에 대해선 여기 나오는 인물들 중 누구보다도 빨리 이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타임머신을 개발한 현재까지도 죽음을 '이길' 순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에, 오카링을 빨리 포기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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