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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ㅣ 창비시선 286
문인수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평점 :
미역섬
이 섬 주민이라곤
할머니 네 사람이 전부다.
목포며 여수로 떠난
이웃들이
한해 한번
미역 따러 들어왔다 나간다.
멀어져가는 배 꽁무니도 한점,
멀어져가는 섬 꼭지도 한점,
새까맣게
뜬
눈이다.
가슴에 못대가리만하게 박히는 저 뒤끝,
마저
수평선 넘어갔다.
미역국 마시는
바다,
질펀하게 번지는 해복이다.
얼마나 허하랴.

그러고보니 이건 들은 얘긴데, 보통 AV 찍는 여성들은 산전수전 다 겪고 리벤지라거나
하드코어라던가 코에 넣는 장면 등(...) 몸에 손상이 많은 장르와 체위까지 다 찍고 나면 쓸모없이 여겨진다고 한다.
성매매나 매춘에 뛰어드는 여성들은 힘쓰는 일을 하기 힘든 몸을 지녔다거나 주방일을 못해서 그쪽으로 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하고.
어쨌던간에 고물의 고물이란 소린데, 이렇게 매춘에도 AV에도 못 쓰고 남자들을 '서게' 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보통 외딴 섬으로 보내버린다고
한다. 카더라 뉴스지만. 그러나 한국 남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페미니즘 사상을 애써 외면하며 한국식 페미니즘에 내 딸이 물들면 안된다고 악을
써대는 걸 보면 있을 법한 일인 것 같다. 즉 여자가 결혼적령기에 '팔려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먹기 좋게 취향에 맞게 말을 바꿔가는 세상에서
걸맞지 않는 참 야만스러운 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부분으로는 진실에 가깝다.
상냥함에는 여러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1. 평소 지켜보다가 행함.
2. 지금 당장 행함.
3. 상대방의 호의의 여부와 상관없이 행함.
4.
필요한 걸 주어야 하니 반드시 다른 사람이, 사물이, 물질이 보는 세계가 어떤지 항상 궁금해있어야 함.
5. 그러기 위해선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이 섞여 있어야 함.
6. 자신이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측은지심이 생김.
7. 여태까지 보던
것과는 다르게 보되, 상대방의 슬픔이 절대 자신의 슬픔이라 생각하지 말며 상대방이 기쁘다 해서 자신에게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 기대하지 말
것.
그게 바로 야사시사.
상냥함이란 언어가 우리나라에선 굉장히 애매해서 가식적이라고만 해석하는데 절대 우리 야사시사를 그딴
걸로 보지 마라. 빙과 op 상냥함의 이유를 들어보라고.
인생의 막장에 지금 막 들어선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한창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곤경도 단지 생활일 뿐이다. 곤경을 헤쳐나와 우뚝 선
필자는 단지 견뎌나가는 것밖에 없다고 거듭 이야기한다. 대구지하철사고에 대한 시를 쓸 때도 그는 안전불감증인 피해자들이나 사고가 일어날 빌미를
제공한 정부를 비난하기보다는 그 사건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담아낸다. 횡단보도를 천천히 건너다가 빨간 신호등을 만난
할머니의 조급한 속마음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그녀를 도와주는 젊은 경찰의 시점에서 이야기 하기보다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듣거나 혹은 멀찍이서
바라보는 제3자의 관점을 고집한다. 그도 나름대로 힘든 일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은 정선에 대한 시 두 편밖에 없으며 매우 우회적이다.
시인은 상냥한 마음을 연마함으로서 시를 써 나갔고, 결국 인생을 바라보는 그 자신만의 비율을 제시하는데 성공한다. 아울러 그는 실천에 옮기기를
권하고 있다. 집 주변에 폐가에 들어가 사는 병든 사람이 있다면 방문해 보기를. 혹시 옛날에 버린 노모가 있다면 가끔씩은 그쪽을 돌아보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적이 있다면 울음과 함께 가슴 깊이 묻기를. 실행한 후엔 언제나 가슴이 떨리고 먹먹하고 허전하다. 그 느낌을 이 상냥한
시를 읽으며 식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