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픔을 권함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젊은 눔이 이만한 날씨에 추운 겨? 나도 까딱 읎는디?"
"없으면 한여름에도 추운 법이지요."
"뭐가 읎는디?"
"다 없어요."
"몽땅?"
"네."
"좆도 읎는 겨?"
"좆은 있지요."
"그라믄 좆만 있는 겨?"
"네. 좆만이지요, 제가."

명문장에 별 의미는 없고 그냥 몇몇 군데 사이트에 읎자가 올려지지 않는 거 같아 희안해서
올려봤다.
외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밥을 드신 다음 자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며, 할아버지는 평생 들락날락하신 병원에서 지병이
완쾌되었다는 판정을 받은지 얼마 안 되서 점심을 드시고 한 잠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특히 할아버지는 중간에 벌떡 일어나셔서 "가슴이
아프다"라고 하셨다는데, 그게 최후의 한마디가 되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생각하다가도 금방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중에는 신은
공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의지는 결국 수명에 달려 있다. 인간의 힘으로 이겨내겠다는 결심과 의지가 아무리 굳건한들 최후에 의지하게 되는
건 신이다. 인간의 최후는 결국 무언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도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죽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명구절들을 필사하는 건 174 페이지 이후로 끝났다. 여기가 끝인 것
같다.
내가 항상 어떤 책 맨 끝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빨리 끝난 셈인데, 뭔가 그 이후에도 쓴 시도 많고 추진력도 처음 글과
만만치 않게 좋긴 하다. 하나는 너무 허무주의에 찌들었고 또 하나는 자뻑 느낌이 들고 또 하나는 와카야마 보쿠스이의 시를 적절히 베낀 거 같은
느낌이 들고 또 하나는 불교와 기독교의 크로스오버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너무 책을 많이 읽으셔서 무슨 글을 쓰셔도 다른 사람의 글을
적절히 베낀 느낌이 든다. 그러니 시 비슷한 느낌으로 글을 써도 에세이 이상이 되기엔 무리일 수밖에. 공감은 가지만 딱 그것 뿐이고 배울 게
없는, 그런 글이다. 오히려 내가 벗어나야 할 권태를 직시하게 해주는 글인 듯하다.
저자의 이론은 알겠으나 슬픔을 너무 심하게
느끼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어쨌던 당신의 우물이던 황야이던 거기에 들어가서 당신을 구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더욱 나쁜 일이고. 그런 사람이
여태 없었다면 당신은 불운한 사람이지만, 미래에서라도 그런 실천을 할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고. 어쨌던 결핍을 느끼는 사람을 의식하기에 우리가
있는 거고, 그런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면서 우리도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는 거고, 그런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거다. 오히려 불의에 대한
분개라면 그럴듯 할지도 모르겠어. 분노하다보면 슬프고 눈물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