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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ㅣ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평점 :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남자에게 구속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일했다. 시골 마을 결혼식을
거쳐 아이들을 낳고, 내 꿈을 펼치지 못한 실망감을 아이들에게 쏟아내면서 아이들의 미움을 받는 운명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그런 길을 걷는 대신
나는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한 길고도 외로운 여정을 거치기로 결심했다.

미안하지만 난 처음에는 이 책이 소설인 줄 알았다. 하와처럼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나거나,
프랑켄슈타인처럼 남성의 실험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피조물이 실험실에서 감금되어 살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가 내 생각에 몇 개의 오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첫째, 이 책은 비소설이다. 하지만 저자가 워낙에 위트가 넘치고 관심이 있는 일은 몸이 작살나서도 하려고 하는 열성적인 미국인의 전형적
기질을 가진지라 코믹한 소설같은 느낌을 주기는 한다. 둘째, 파워퍼프걸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녀들이 과학자 복장을 하고 식물을 관찰하겠다고
이리저리 통통 뛰어다니는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캐릭터를 잘 그려서 스티커로 만들어 굿즈로 내놓으면 성공할 거 같았다. 눈길을 달리다
차가 뒤집어지는 장면까지도 그럭저럭 귀엽게 그려놓으면 잘 될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다면 후반부에 유방에 난 종양을 빼기 위해 칼을 쓸지
드릴을 쓸지 조수와 토론하는 장면은 빼도 좋을 것 같았다. 너무 아이마이미같잖아?

아무튼 어떤 사람이 알마출판사의 다른 책을 보고 왜 이런 책을 알마출판사에서 출판했는지
모르겠다는 애매한 칭찬을 하던데 그게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물리적 친밀감은 생각만 해도 빌을 겁나게 만들어서,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그를 만났을 때부터 빌은 늘 길고
윤이 나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가수 겸 배우였던 셰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뒤에서 보고 그를 여자로 착각하는 경우가 흔해서, 지나가는
남자들은 종종 흠모하는 눈길을 보내다가 마침내 앞에서 덥수룩한 턱수염과 남자다운 턱을 본 후에 놀라서 당황스럽고 화난 표정으로 지나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