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완역본 하서 완역본 시리즈 1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유성인 옮김 / (주)하서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그래요. 당신들은 아직 모르고 있어요. 이 애의 마음이 어떤지. 이 애가 도둑질을 했다고요? 이 애가? 이 애는 당신들이 필요하다면 입고 있는 단벌마저 벗어줄 만큼 착한 아이랍니다. 이 애는 그런 앱니다! 이 애가 황색감찰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를 위해서 몸을 판 것입니다. 아아! 돌아가신 당신, 여보! 여보, 당신은 보셨어요? 이것이 당신의 추도식이랍니다. 아아, 하느님! 자, 이 애를 보호해주십시오. 뭘 우두커니 서 있어요? 당신도 그 말을 믿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모두, 모두, 모두 이 애의 새끼손가락만큼도 못합니다. 하느님, 제발 보호해주소서!"

 

  

어렸을 적 수십 번은 죄와 벌을 읽은 듯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완역본을 통째로 읽은 건 처음이다. 확실히 예전에 책을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세상에 대한 잡지식도 풍부해지고 윤리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져서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책을 볼 수 있었다. 일단 도저히 종잡을 수 없던 스미드로가일로프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히 감이 잡히게 되었다. 마치 독일 사람을 소시지 장수라고 욕하는 장면에서 크게 웃으면서 반응했듯이(...), 이 남자는 난봉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정의에 어긋나면 망설임 없이 철퇴를 때려박았던 어린 시절이었으니, 증오도 없이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나오듯이 증오도 일종의 관심이 있다는 제스쳐니까.

 

 수법이 너무 뻔해서 여전히 왜 여성들이 그에게 빠져 있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어쨌던 간에 그와 얘기를 하고 그를 구원하려 했던 두냐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다부진 매력이 있는 여성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루진의 돈에 홀린 것 같다고 시인하면서 넘어가지만, 이 영문 모를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니 왜 스미드로가일로프랑 같이 그의 방으로 걸어들어가냐고? 정절 이전에 생명의 위기가 닥쳐오는데 오빠따위 알게 뭐야? 뺨이나 갈겨주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될 것을. 라주미힌과 만나서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로쟈의 독백처럼, 이 여성은 창녀인 소냐보다도 더 천박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를 잘 만나야 여자가 패가망신하지 않는다는 사상이 배어있는 듯도 하여 좀 씁쓸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일생일대의 선택에 마주하는 법이니까.

 

 

지금도 난 이 책의 종교적인 구도와 해피엔딩에 감동을 먹고 있다. 

 

 마르멜라도프와 카테리나에게 아직도 연민의 감정을 품고 있다. 소냐가 좀 인간으로서 과하게 완벽해 보이긴 하다만 광신도라니, 터무니없는 중상이라 생각한다. 그런 후기를 책에 붙일 시간이 있으면 오탈자나 섬세하게 수정해줬음 좋으련만. 지하 생활자의 수기를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줬는데, 이 책의 설명을 보니 로쟈의 감옥생활에서 소냐가 없는 엔딩이라 하여 도저히 흥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감옥 생활에 대한 글은 이 소설의 에필로그로도 충분히 본 것 같다. 난 사실 톨스토이를 더 좋아하는 편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필력을 보여두고 있지만 스케일이 비교적 작다. 차라리 국내의 감옥 생활에 관련된 다른 소설책을 읽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여기까지만 읽기로 한다. 찌질한 로쟈가 갱생했다. 라자로가 부활했듯이. 여기까지만 읽으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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